2023년 6월 18일 일요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볼륨을 높여라. 그리고 다음소희...

 ‘Talk hard!’ 이 대사를 기억하시는 분? 해석하자면‘당당히 말해라. 열심히 말해라’정도의 의미이다. 스땅달증후군까지는 아니어도 살면서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 예술 작품들이 한둘은 있을 거다. 내게도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망설임 없이 꼽을 수 있는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 나온 대사이다. 

문화선동을 하고 선동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니 저 짧은 영화대사 한마디가 지금의 내 삶을 꽤나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1990년에 나온 이 헐리웃 영화는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불합리한 사회와 기득권의 비리에 맞서 해적방송을 통해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그 영화의 주인공과 똑같이 불합리한 사회와 교육현실에 대한 분노가 컸었던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진짜로 이 영화가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영화보다 1년 앞서 한국에서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왔다. 지옥 같은 입시와 경쟁에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의 유서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당시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교육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했다. 

‘고교생 일기’ 같은 택도 없는 낭만청소년기를 그린 드라마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불합리한 현실을 폭로하는 우리의 얘기가 영화로 나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설레어 하며 영화를 봤었다. 

그리고 울었다. 학생의 비극적 죽음 자체가 슬퍼서이기도 했지만 그 죽음 앞에 모두가 울기만 했고 나도 울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이었다. 불합리한 현실은 알렸다. 

그래서? 결과는 현실이 이러니 울어라...였다. 그러나 볼륨을 높여라는 달랐다. 그 학생 역시 결국 경찰에 잡혀가며 패배한다. 그러나 아무도 울지 않았다. 

자신의 방송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 앞에서 경찰에 잡혀 가며 남긴 주인공의 말. ‘Talk hard’그 말을 실천 하듯 주인공이 잡혀 간 이후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주인공들이 해적방송 주파수를 띄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보며 느꼈던 패배감을 마치 폭포수로 씻어내리는 듯한 그 장면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나중에 공부하며 알게 되었는데 이 점이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중요한 차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위대함을 제일먼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헐리웃 영화에서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나 ‘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픈 영화이다. 

꽤 많은 평론가들이 한국에도 드디어 ‘켄로치’같은 감독과 작품이 나왔다며 꼭 보기를 권했다. 

그러나...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처럼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어른은 울면서 끝난다. 

30년전처럼...물론 나도 꼭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한다...아프게.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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