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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일 일요일

[과학칼럼] 국가 R&D 예산 집행 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미·중 기술패권 전략경쟁과 같은 전 세계적인 전환의 시기에 국가 과학기술정책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가는 일국 단위에서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이면서 동시에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로서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용한다. 국가는 법률과 제도를 통해 연구기관 (대학, 국공립연구기관, 공공연구기관, 민관 컨소시엄 등)과 매개 조직 (과학기술 관련 정부부처, 재단, 연구회, 정책 및 평가기관 등)의 임무와 역할, 권한을 규정하고 관리⸱운영함으로써, 1)R&D 수요의 수렴, 2)R&D를 위한 자원의 제공과 배분, 3)R&D 수행과 관리, 4)R&D 성과의 관리와 확산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가 규정하고 관리⸱운영하는 연구기관과 매개조직, 이 조직들을 지배하는 법률과 제도를 통칭하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일국 차원의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증진은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통한 기술혁신과 기술확산을 통해 가능해진다. 일국 차원의 생산력과 문제해결 역량은 그 나라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에 달려있다.

일국 차원에서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역량은 1)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 2)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 3)과학 엘리트의 역량, 4)과학기술노동의 구조 네 가지 핵심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는, 정부가 R&D와 고등교육에 연구개발비를 배정하는 절차와 방식이다.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에는 다음 요소들이 포함된다: R&D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부처와 펀딩 에이전시의 다양성, 펀딩 에이전시의 예산권과 연구과제 기획⸱관리⸱평가에 대한 역할과 권한, 국가전략과 공공정책, 임무중심 R&D 예산 지원 방식, 기관 차원의 출연금 예산과 경쟁적인 과제 기반 R&D 예산의 혼합 형태, 연구자가 신청하여 획득할 수 있는 외부 과제 기반 펀딩의 범위, R&D 성과 평가를 예산 및 자원 배분에 적용하는 방식, R&D 성과를 활용하고 사용하는 법적 수요자의 다양성 등.

둘째, 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은, 대학이나 출연연과 같은 연구조직들이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감독하고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과 전략적 독립성을 개발하고 수행해 내는 능력과 독립성을 갖고 자기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여 연구관리를 수행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셋째, 과학 엘리트의 역량은, 과학 엘리트들이 이익집단으로써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능력과 연구조직과 각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원 배정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정치인 및 정부 관료와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의미한다. 넷째, 과학기술노동의 분할 구조는, 대학과 출연연 등 연구조직을 포함하는 전체 과학기술노동 시장의 구조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연구자들의 고용과 직업이 조직되는 방식, 이론 중심의 연구와 임무중심 연구, 기술이전 등과 같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연구조직 간의 조직적인 분리 정도와 고정성 등이 포함된다.

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이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자율적 능력에, 과학 엘리트의 역량이 자원 배정 방식을 통제하는 능력에, 과학기술노동 시장의 분할 구조가 연구자들의 고용과 작업이 조직되는 방식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가 다른 세 요소에 비해 우선성을 갖는다.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역량은 전적으로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의 효과성과 효율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일방적⸱일괄적⸱졸속적⸱위법적으로 R&D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대학과 출연연 등 공공연구기관 노동자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과학칼럼] 과학의 당파성

 

신명호(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핵심에 바로 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구분이 있다. 또한 느리게 변하는 것과 빠르게 변하는 것을 나누고 변화의 속도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알아내는 것도 역시 과학이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과학의 핵심이 아니라, 바로 이 상수와 변수, 속도와 변화율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형식은 변해왔지만,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미지의 것들을 다루기 위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루는 개념과 생각들은 변해왔지만, 현실을 다루기 위해 개념과 생각을 창조해 내는 것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죽음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죽음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 간 역사이며, 변하지 않는 것 속에서 변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느리게 변하는 것과 빠르게 변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논문들이 수많은 숫자와 데이터, 사례들로 주장하고 있는 것들도 이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들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명백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일관한다. 죽음과 삶에 관련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과학은 마치 죽음과 삶을 초월한 불멸자처럼 죽음과 삶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은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를 그 자체에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 세계관이라고 논해보아야 아는 것이 모르는 것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증명하지 못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가설들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서 세계와 자신을 스스로 모델링하게 된다. 학자들은 항상 수많은 변수와 외란이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비선형적이고 복잡한 자연계와 인간사회를 단순화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일반화시켜 버리지만, 사실은 그 주장은 특정한 조건과 환경에서 국소적으로 작동할 뿐 신화보다도 더 못한 것이 되어 오히려 필요한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기 일쑤이다.

가치와 권력의 문제가 기본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두고 투쟁과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 모든 사회과학이 그러한 전장이다. 주류라고 하는 것들은 그들의 주장을 객관적인 결과와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힘으로 주류를 만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드러눕게 된 행인들은 자기 키가 침대보다 작다고 혹은 크다고 이야기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결국 늘여지거나 절단이 되어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프로크루스테스를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의 힘과 기술을 가진 테세우스와 같은 이가 나타나 그를 해치워야만 그 침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과학은 당파성을 갖는데, 침대가 행인의 키에 비해 짧고 길다는 것을 논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대 밖에 있는 악행의 프로크루스테스를 확인하고 그를 때려잡을 힘과 기술을 갖추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침대와 행인의 길이를 재고 비교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과학은 곧 죽음과 삶을 가르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침대의 길이나 키를 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를 때려잡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과학칼럼]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정부의 R&D 투자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는 앞서 과학의 기원과 대상
, 과학지식의 생산 메커니즘 등 과학 그 자체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자본주의 국가가, 독점자본이 필요로 하는, 그리고 사회의 일반적 필요에 따라 과학기술을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정부 R&D 투자를 수행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적어도 대공황 극복 과정에서 케인즈의 혁신을 통해 확립된 자본주의 국가의 필수적 경제 기능을 이해하면서 정부 R&D 투자에 임해야 한다.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이라는 제도적 기반에서 자본, 노동, 기술, 가치의 집적체로서의 생산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과학기술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노동력 재생산의 핵심 요소다. 따라서 국가는 공공복리와 사회적 수요에 대응하고 공공정책과 국가전략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 활동을 수행하거나 지원해야 한다 (임무지향 패러다임). 또한 외부성이 강할 때,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높을 때, 정보의 입수가 불가능하거나 왜곡되어 시장신호가 불명확할 때 등 기업 연구기관이 투자하기 어렵거나 시장기능이 실패하는 영역에서 정부 R&D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실패 패러다임).

그러므로 정부는 R&D 투자를 통해 에너지‧항공우주‧교통‧해양‧안전‧방재‧공공보건‧환경‧의료‧농수산업‧식량 등의 분야가 포함된 1)국가전략과 공공정책 목표에 기반한 목적 지향적 중장기 연구와 2)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문제해결 지향적 유형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과학 지식 생산을 지원‧촉진하기 위해 3)기초과학연구와 4)산업사회와 기초과학을 연결하는 매개학문 연구를 지원하고, 5)과학기술인력의 공급과 유지, 6)과학 지식의 유지‧관리‧확산‧공공적 이용가능성‧신뢰성을 보장해 주는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과 같은 공적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미·중 기술패권 전략경쟁과 같은 전 세계적인 전환의 시기에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국사회 보수집단과 과학기술계 상층부를 포함해서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노동계급과 좌파는 과학기술정책이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나? 초국적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국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과학기술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냥 저네들에게 맡겨놓고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좌파라고 자신을 일컫는 이들은, 자신들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을까?


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3)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는 앞에서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임과 동시에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로서 일국 단위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설명했고,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지식 생산을 총자본과 개별자본들의 역할 분담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은 사회인식론적인 관점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사회적이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추후로 미루고, 우리는 정치·경제적이고 조직적⸱제도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과 형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네덜란드의 과학철학자이자 과학사회학자인 Arie Rip은 과학이 일정 정도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과학은 3중의 신용 순환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하였다. 1단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평판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 공동체 내 구성원들 간의 신용 순환이고, 2단계는 “R&D 예산을 위한 경쟁”으로 연구개발 예산을 배분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에서의 신용 순환, 3단계는 “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과 사회, 국가 간의 신용 순환이다.

먼저, 1단계인 과학 공동체 내부에서의 신용 순환을 살펴보자. 과학기술 보고서와 논문을 생산하는 과학기술자는 과학적 평판과 신용을 획득하게 된다. 그는 그 평판과 신용에 기반하여 연구개발 사업비와 정보에의 접근성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생산적인 연구로 이어지고, 그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 보고서와 논문이 다시 생산됨으로써 순환된다. 1단계 신용 순환에서 보고서/논문, 평판/신용, 사업비/정보 간의 각 교환과 전환들은 과학 공동체 내에서의 평판과 신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2단계로 펀딩 에이전시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은 제안서를 받고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차기 연도를 위한 예산을 유지할 수 있다. 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기능과 신용 순환은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과 결합되어 있다. 과학기술자들은 연구개발 예산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연구 제안서를 검토하고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 조직은 스스로 정부와 국민에게 예산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속 공무원이나 위원회 구성원은 언론을 비롯한 대중적인 평가에 민감하다. 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은 다른 정부 부처나 후원자들과 공식적, 비공식적 연결 및 대중을 대상으로 한 확산 등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게 된다. 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과 과학기술자 간의 상호의존은 최근에 나타나서 안정화된 현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특징이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은 제도화되었다.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로부터 예산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관 단위의 R&D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그 제안서들은 과학기술자들 간의 동료평가를 통해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3단계에 해당하는 상관성에 대한 압력은 정부 부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기술 지식의 결과물과 생산, 과학기술자의 지위는 사회적 맥락에 결합되어 있고, R&D 예산의 배분은 과학적 결과물에 의해 정당화된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의 가장 위층에 상관성과 정당성에 대한 경쟁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과학기술에 대해 사회적 맥락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혁신 등에의 상관성이 요구되었다. 명시적으로 임무를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사업단이나 중간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자들과 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들이 연계하여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기술에서 확립된 통제된 자율성을 만들어 냈다. 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은 아직 규칙들이 명확하지 않고 주요 주체들에 의해 인정받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신용 순환 자체가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 최상위 단계의 신용 순환은 아직 확립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위법적이고 졸속으로 대폭 삭감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과학기술 지식 생산을 위한 3중의 신용 순환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과학기술 전반이 정치화되었다. 한국을 성공한 산업국가로 이끌었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양식과 조절양식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2023년 10월 9일 월요일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2)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2)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는 앞서 과학과 기술의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있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지식을 생산하는 행위자들의 집합인 과학 공동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과학 공동체를 보다 엄밀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문제 해결 결과를 누구에게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행위자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과학 공동체는 분과 학문별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구성원은 공통의 ‘지식 데이터베이스’ (학문과 지식의 총체)를 참조한다. 그리고 과학 공동체는 많은 경우 1)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문제는 어떻게 공식화되어야 하는가? (정의), 2)현 단계의 지식수준에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있는가? (해결 가능성), 3)그 문제는 어떻게 풀릴 수 있는가? (해결 방법), 4)어떤 지식이 유효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에 적용될 수 있는가? (지식의 유효성과 신뢰성), 5)누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해결 주체) 등과 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제해결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과학 공동체는 지식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생산할 수 없으므로 사회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공급받아야 한다. 모 사회는 과학 공동체가 지적/물질적 복리에 기여하기 때문에 자원을 제공한다. 모 사회와 과학 공동체 간의 가상의 사회적 계약이 바로 과학 공동체의 존재론적 필수 조건이자 근거가 된다. 사회로부터 지원을 유지하고 공공복리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과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수용하고 관리하는 사회와 과학 공동체 간의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이 인터페이스는 크게 과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대학과 출연연 등을 포함한 연구조직과, 펀딩 에이전시와 같이 자원 배분을 담당하기도 하고 연구와 연구 정책에 대한 의사 결정을 담당하기도 하는 매개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에 대한 사회적 기대, 연구를 위해 제공되는 자원, 연구를 통한 공공복리에의 기여 등은 이러한 조직과 그 조직을 지배하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조직과 제도를 통칭하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이라 한다. 

과학 공동체와 모 사회는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구조적으로 결합하고, 필요 자원과 지적/물질적 복리를 교환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과학 공동체와 근대 사회는 특정한 형태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을 발전시켰다.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으로서의 각국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은 역사성과 특수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성과 일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국가 R&D 총예산 중 정부 R&D 예산이 20~30%, 기업과 민간이 70~80%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지식 생산에 있어서 총자본과 개별자본들의 역할 분담이 그 정도 수준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 수치들로부터 간단한 질문이 나온다. 개별자본이 노동계급에 필요한 과학 지식은 자본을 투여해 개발할 리 만무하고, 그렇다면 총자본은 노동계급에 필요한 과학 지식을 어떻게 얼마만큼 생산하는 것일까, 과연 생산하기는 할까? 과학 지식의 보편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이 필요로 하는 과학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일까? 노동계급이 필요한 과학 지식을 스스로 생산해낼 수는 없는 것일까?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1)

 


제8호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1)

지식기반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지나서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직접 활용되고 있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생산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생산에 있어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지식은 직접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는 아니다. 따라서 사회적 기능을 생산과 재생산으로 나누는 마르크스의 구분을 적용하여 본다면 재생산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재생산 영역에 속하는 과학과 기술은 생산에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치 노동력을 제공할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것에 국가의 일차적 기능이 있는 것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과학과 기술을 재생산하는 데 자본과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투쟁하는 조직이자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인류사적 목표로 하는 노동계급으로서는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사회화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

과학 지식 생산 메커니즘에 그 어떤 신비와 몰역사적 진리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의 투여를 통해 노동자와 기계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듯이, 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로서 과학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에는 과학기술노동자와 축적된 제도와 조직, 지식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며 또한 자본이 필요하다.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지식을 생산해낸 마르크스는 대영제국 도서관이 필요했고 마르크스의 연구를 후원했던 필립스의 설립자인 외삼촌과 기업을 운영했던 엥겔스가 있었다.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유물론적으로 역사 사회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마치 어딘가에서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거나 무장한 예언자로 간주하는 무의식적 정신 상태야말로 관념론의 끈질긴 생명력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노동계급과 투쟁의 역사에는 어떤 신비도, 어떤 계시도 있을 수 없다.

다음을 위해 요약해서 이야기한다면, 과학과 기술의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물리적⸱기술적 문제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라는 목적을 위해 과학지식을 생산하는 분야별 행위자 집단들을 규정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학적 실천을 수행하는 이러한 분야별 과학기술노동자 집단을 과학 공동체라고 정의할 때, 과학과 기술의 기본 범주는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인 과학 공동체가 된다. 물론 이 과학 공동체는 학회나 협회만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개인과 단체 일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프랑스의 어느 관념론 철학자가 이야기했다. “질문이 제기되는 순간 사실은 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여러분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묻는 이야기인데, 좌파들은 무슨 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주체는 도대체 누구요?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