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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7일 토요일

[민주노동당 흥망사] 소수의 의원과 거대한 민중이 국회 안팎에서 공동투쟁


 

제8호, [민주노동당 흥망사]

 

소수의 의원과 거대한 민중이 국회 안팎에서 공동투쟁

원내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원내 활동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민중연대와 함께 국회 밖 투쟁에 참여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국회 안팎의 공동투쟁을 통해 비록 입법투쟁이 실패해도 민중들의 정치적 각성을 고양시켜 그 역동성이 선거에 반영되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입장은 2004년 원내 진출을 전후로 하여 ‘거대한 소수’ 전략으로 수렴되어 당 내에서 꾸준하게 논의되어왔다.

의정활동과 대중투쟁의 통합전략인 ‘거대한 소수’ 전략의 핵심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거대한 민중의 힘으로 원내 소수의 열세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대한 소수 전략은 원외의 대중투쟁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이해당사자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실현을 위한 운동과 네트워크를 통해 국회를 압박하여 입법을 실현한다는 입법프로세스까지 포함하였다. 따라서 이 전략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와 함께 사회적 쟁점을 공동으로 설정하는 것을 포함했고 이는 구체적으로 이들 단체와 함께 선거공약과 입법안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소수 전략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은 의정활동만을 통해 집권할 수 없으므로 대중투쟁과 결합된 의정활동을 토대로 당 지지율을 높여 합법공간에 더 많이 진출하고 확대된 합법공간을 이용하여 사회변혁 전략의 일환으로 강력한 제도개혁운동을 전개하는 등 대중투쟁 – 의정활동 성과 – 정당지지율 상승의 선순환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원내에서 소수정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쌀 개방을 막지 못했고 비정규직 철폐법안을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국회 밖에서는 전농뿐만 아니라 농민 5단체, 그리고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과의 연대투쟁을 주도하면서 거대 여야를 압박하였다.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공동주최하는 노동절 노동자대회의 유일한 정당대표자로서 연설을 했으며, 양대 노총의 대표자와 함께 비정규직 철폐투쟁, 한미FTA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쟁점 형성 → 사회적 이슈화 → 민주노총과 전농의 대중 투쟁 촉발 → 원내 압박이라는 전술을 택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소수전략이 작동했던 배경은 진보정치세력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결집되고, 민주노조는 민주노총으로, 농민은 전농과 전여농으로 결집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빈민, 청년학생들도 하나의 전국조직으로 결집되고 이러한 노농빈학 조직이 민주노동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며 공동투쟁을 전개했다. 나아가 정당과 민중조직들이 민중연대와 같은 공동투쟁체를 만들어 구속을 각오하는 거리 투쟁을 전개했다.

김장민

2023년 5월 4일 목요일

진보가 집권한 울산북구에서 발생한 민중항쟁

 주민이 반대에도 친환경시설이라고 강행했으나


2004년 11월 9일 울산북구청 앞에서 주민 2천5백여 명이 구청장,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양측에서 부상자와 구속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범 구청장, 조승수 국회의원, 북구의회 의장도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완전히 집권한 울산북구에서 왜 주민항쟁이 일어났을까? 집권한 민주노동당이 음식쓰레기를 재처리하는 음식물자원화 시설이 친환경시설이라며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반대하자 조승수 국회의원 후보,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공직자들이 총선 때 공사중단을 약속했다. 조승수 의원이 당선됐지만 울산북구의 집권정당과 구청장이 총선 후 공사를 강행해 주민들이 공사를 몸으로 중단시키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주민들은 공사장 진입을 막고 자녀의 등교를 거부했다. 이에 대응해 구청측은 사복형사들을 동원해 주민들을 감시하고 회유하였으며 주민들에게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했다.

충격적인 것은 음식물자원화 시설을 강행한 측도 민주노동당 소속이지만 농소동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하여 대책위 지도부도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2004년 9월말 북구당원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 국회의원, 구의원, 울산시당 위원장 등이 주민대책위 소속인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격론했다. 

진보적 가치에 부합하는 친환경시설이기 때문에 건설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친환경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짓지 않겠다는 총선 당시의 주민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 대립됐다. 결국 민주노동당 소속인 양측이 입장을 조율하지 못했다.

11월 폭력사태 이후 강혁진 민주노동당 당원 등 주민대책위 지도부가 구속되고, 주민들에게 손배가압류가 청구된 조건에서 주민들은 구청 측이 사실상 강요한 시민배심단을 통해 음식물자원화 시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은 시민배심단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라고 홍보까지 했다. 

조승수 의원은 총선 기간에 음식물자원화 시설을 중단하겠다는 불법 유인물을 뿌린 혐의로 처벌받아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정갑득 의원이 조승수 의원 자리에 출마했으나 주민들은 표로 심판했다. 울산북구에서 패배한 민주노동당은 논란 끝에 김혜경 지도부가 사퇴했다. 민주노동당 측이 강행한 음식물자원화시설은 민주노동당 주장과 달리 악취를 내뿜었다. 

한나라당은 선거 때마다 이 시설이 악취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 건설 중단 약속을 위반한 것, 자본가와 권력보다 더 악랄하게 주민을 탄압한 점을 부각하여 민주노동당의 아성 울산북구를 공략했다. 

울산북구를 탈환한 한나라당은 이 시설을 체육시설로 전환한 후 ‘진보의 독선’이라며 선거 때마다 민주노동당을 비난하는데 활용했다.                           

김장민

2023년 3월 6일 월요일

비례대표로 흥하다 의석 경쟁 과열로 망해

  정당명부 헌법소원 승리 '신의 한수'

진보정당, 10% 득표율로 항상 5석 이상 확보

민주노동당은 헌법소원을 통해 2001년 정당명부제도를 실현시켰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8% 넘게 득표하여 국회 17석을 지닌 자민련을 제쳤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선 13% 득표로 10석을 얻었으며 노회찬 사무총장이 김종필 총재을 제치고 비례 끝번으로 당선됐다.

이후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10% 내외의 득표율로 항상 5석 이상을 확보했다. 특히 2012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탈당한 진보신당 지도부들이 합당한 통합진보당은 민주당과의 ‘묻 지마’ 선거연합, 그리고 정당명부에 힘입어 무려 13석을 획득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제 때문에 흥했다가 정당명부제로 망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에 몰입하지 않겠다.”며 당 지도부가 국회의원을 겸직하지 못하게 하는 겸직금지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피선거권이 없었던 김혜경 부대표와 지역구에서 당선된 권영길 대표를 제외하고 천영세, 최순영, 노회찬 등 대표단 전원이 비례대표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겸직금지는 “원외 지도부가 국회의원을 지도한다.”는 취지였는데 지도부가 여의도에 몰입한 결과 원외 지도부가 원로급 의원들을 모시는 꼴이 됐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의원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개인플레이’에 주력했다.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지도부가 의원을 겸하도록 허용했는데, 이번에는 국회의원인 지도부에게 너무 힘이 실리는 모양새가 됐다.원내지도부와 원외지도부가 조화를 이룬다는 취지가 널뛰기를 하다 무색해진 셈이다.

2004년 비례대표 후보 선거는 당원이 남녀 각 2인 총 4표를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006년 지도부 선거 이후 특정 세력이 당 내 다수가 되자 소수파에게 돌아 갈 비례의석이 거의 없게 됐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소수파도 비례후보에 당선될 수 있도록 1인 2표 제도가 논의됐으나 부결됐다. 결국 비례대표 당선권에 멀어진 소수파는 점차 분당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모순되게도 분당한 소수파들이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합류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비례대표 의석 때문이다. 분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의석도 전멸했다. 반이명박 전선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단일화 덕분에 지방의석을 대거 획득한 진보신당은 지역구 야권 후보단일화와 정당명부 득표율 저지선(3%) 돌파를 목표로 전격적으로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야권단일후보가 되려는 당내 경선, 비례대표 경선이 과열되면서 부정선거 시비로 통합진보당은 폭력사태와 경찰의 강제수사 끝에 결국 다시 분당되고 만다.                

김장민

2023년 1월 2일 월요일

전국분회장 수련회와 열성당원대회

 민주노동당 흥망사

천명 넘게 모여 당원 공연과 모범 발표, 뒤풀이가 밤새 이어져

민주노동당은 창당 때부터 읍면동에서 당원들의 세포단위로서 지역분회를 운영해왔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던 민주노총 역시 당원들로 구성된 직장분회 혹은 현장분회를 설치했다.

대공장에서만 가능했던 직장분회는 선거 때 지원을 열심히 했지만, 평상시에 현장조합원과 함께 하는 투쟁과 선전활동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이를테면 현대 차 조합원 당원에 대한 정치사업의 주체가 울산북구 지역위원회 사업인지, 직장분회 사업인지 모호했다.

2005년 기준 약 92%가 지역분회이며 6%가 직장분회였다. 당원의 60%가 분회에 참여하며 이중 7천명은 고정적으로 참여했다. 월 1회 모임에 5~10여명의 분회원이 참여했다.  약 50% 가량의 분회가 평균 3인 정도로 <분회운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분회 정치활동의 경우 선전전의 형태가 26%, 지역봉사 11%, 일상적 주민접촉 14%, 지역현안투쟁 13%, 상담사업 2%, 정치활동 자체가 없는 경우가 31%이다. 민주노동당이 노회찬, 심상정 의원과 같은 스타 중심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일반 당원들은 “민주노동당이 잘하고 있구나” 대리만족하며 현장 활동에서 멀어졌다. 

당의 간부들은 중앙과 의회 진출에 방점을 두는 활동을 했으며, 의원들은 스타가 되기 위해 각자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10명 의원이 290명을 상대한다는 명분 아래 "바쁘다"며 의원들의 현장투쟁과의 결합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실망한 일반 당원들은 분회에 무관심해졌고, 조합 내에서 조합원의 당적이 달라지자 직장분회는 빠르게 붕괴됐다.

의회로 집중되면서 현장 활동과 분회도 시들해져

전국 분회장 수련회는 2000년 10월 7일, 2001년 12월15일, 2003년 8월 23일, 2005년 5월 21일 등 4차례 열렸다. 참여자는 초기에 200명, 300명에 불과했다. 보통 공연, 모범사례 발표, 분과 토의, 결의, 뒤풀이 다음날 결의문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나는 2002년 7월 13일 수안보 사조 리조텔에서 열린 '열성당원대회'에 참가하였는데, 8%라는 6.13 지방선거 결과에 고무되고 대선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거의 천여명이 모였다. 

나는 2005년 보람원 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분회장수련회에도 참가했다. 당원들로 구성된 6인조 밴드 '왕대포'의 공연이 있었고 천명이 넘는 당원들이 초여름을 즐기며 연수원 곳곳에서 밤새도록 뒤풀이를 즐겼다. "앞으론 민주노동당에게 대여를 안 해준다"고 할 정도로 보람원은 초토화됐다.

용산지역위원회에서 서로 경쟁하던 김종철, 이정미 최고위원이 당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어깨 걸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김장민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희망과 절망의 사건 현장 킨텍스

'축제'와 '난투극' 모두 의원 금배지를 향한 폭주 과정에서 발생 

민주노동당은 2009년 6월 20일 부산 벡스코에서 제1차 정책 당대회를 열고, <광우병 미 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의 염원을 이어받아 국민과 함께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