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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6일 목요일

[기획] 기후 위기,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양동규

1. 현실

지난해 UN 사무총장 구테흐스는 “인류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라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유엔 환경계획’의 22년 ‘배출 격차보고서’는 기후 위기를 막는 유일한 길은 “사회의 급격한 변혁”이라고 밝혔다. 제국주의 강대국이 지배하는 유엔에서조차 이런 과격한 표현이 들려 온다.

2019년 호주에서는 6개월간 1만 5천 건의 산불이 일어나 3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되었다. 2020년 미국 서부지역의 산불은 남한 면적의 20% 이상을 태웠다. 2020년 6월 38℃를 기록한 시베리아의 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가스인 대량의 메탄이 방출되었다. 7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코로나바이러스도 지구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급망 중단, 도시봉쇄, 국가 간 이동의 중단으로 자본주의 경제는 강력한 인플레이션과 침체에 빠졌다. 지금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대홍수로 침수됐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2024년 여름도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와 같은 기상이변이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지난 200년간의 자본주의는 총 1억 5천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 평균 기온을 1.2 °C 높였다. 1.2℃ 상승에 이런 기상이변이 일어나는데 만일 2℃를 넘어 3℃까지 오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절반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하고 대재난이 몰아치는 영화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을 인정하고 2018년 제48차 IPCC 총회는 지구 평균 기온을 1.5 °C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줄이고, 2050년까지 배출 제로를 달성하자는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물론, 이미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서도 지구 평균 기온은 1.5℃ 이내로 억제하자고 결정했지만 달성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다.

 

2. 성격과 원인


기후 위기는 기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식량
, 주거, 보건, 국경분쟁으로 파급된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제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사안이다. 또 기후 위기의 특징은 전 지구적이다. 기후 이변이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그 피해도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다. 기후 위기는 불평등하게 발생하고 불평등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계급적이다.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잠자던 노동자 일가족이 침수로 참변을 당했고, 22년 8월 파키스탄은 폭우로 국토의 1/3이 침수돼 1,3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2,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코로나 위기에 홍수 피해까지 겹쳐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제3세계 많은 나라의 민중들이 홍수, 가뭄, 식량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 생산의 무정부성은 경제공황과 전쟁으로 표출되고 해소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노동자의 저항만이 아니라 자연의 공격을 부르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노동자의 저항보다 기상이변이 먼저 자본주의 체제를 흔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기후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있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기후 위기의 해결 방향은 자본주의 극복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상이변과 그 피해 양상은 더 근본적이면서 촌각을 다투는 접근을 요구한다. 애매한 절충적 방식으로는 이미 시작된 거대한 생태적, 물리적 관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쓰나미가 몰려오는 바닷가에서 플라스틱병을 줍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후 운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멸종이냐, 사회주의냐, 선택하라! “라는 벽보가 거리에 나붙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은 노동과 자본의 격돌 장이자, 체제 변혁의 주요 전장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3. 노동운동의 대응

미국 석유, 화학, 원자력노조 부위원장 토니 마조치는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정의’라는 개념의 상대성이 부르는 논란은 차지하더라도 기후 위기와 산업전환을 노동계급이 주도하자는 마조치의 전환 구호는 호응을 불렀다. 2018년 국제단체의 협력으로 작성한 ‘ 탄소 세계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지형도’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현상 유지형, 관리개혁형, 구조개혁형, 사회변혁형으로 분류했다.

그 중이 관리개혁형이 한국에 자주 소개되는 독일의 사례다. 독일 노동운동은 기후, 생태 위기를 해결과 산업전환을 위해 첫째, ‘전환위원회‘에 참여해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한다. 둘째, 공동 결정 셋째, 전직을 위한 재교육 넷째, 단체협약 강화 다섯째, 사회복지 안전망을 요구하고 실현했다. 그러나 이런 독일 사례도 많은 투쟁으로 가능했다고 하니 구조개혁형, 사회변혁형 전환에는 얼마나 큰 투쟁이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독일의 모델도 경기침체로 인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수기에 그칠 위험성이 큰 노동자 참여를 넘어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제도화하는 노동자의 끊임없는 투쟁과 노동자 정치 역량 구축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국제노총(ITUC)의 경우는 기후 위기 대응과 노동권이 보장되는 산업전환을 위해‘새로운 사회계약’ 체결과 ‘사회적 대화’ 강화를 제시한다. 이런 국제노총의 기조가 기후·생태 위기 해결과 자본주의 체제 문제를 연결하는 운동으로 나아갈지는 의문이다. 많은 제3세계 노동자가 제국주의 경제 강국의 자원 수탈, 생태계 파괴, 노동 탄압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극우파의 집권, 경제위기, 전쟁, 기후위기로 격동하는 세계 정세를 고려해 국제노총의 운동 기조 바뀌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세계 노동운동 진영은 계급적인 관점에서 기후 위기와 산업전환 투쟁의 기조를 제대로 세우고 투쟁 역량을 집중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후 위기조차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본이 주도하는 녹색 구조조정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4. 한국 노동자의 대응

세계 5위의 제조산업국이자 탄소 배출 9위의 기후 악당 국가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 정부와 자본은 디지털경제. 녹색 성장론으로 탄소 배출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을 회피하려 한다. 그들이 제기하는 녹색 성장론과 그린뉴딜의 내용은 결국 대기업 지원을 통한 산업전환과 경제성장 촉진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꼼수와 반동적 기조를 막기 위해서도 노동자계급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노총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기후 위기 대응 특별결의문을 채택하고 기후 위기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2021년 12월에는 ’민주노총 기후 위기 대응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가맹 산하 조직과 함께 조직적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국제 노동운동의 계급적 전투적 대오의 한 축으로서 비로소 기후기와 자본주의 체제 전환 운동을 결합하자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민주노총은 기후 위기 대응, 에너지, 산업전환이 녹색 구조조정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관점과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기후 운동은 출발부터 지구적 운동이어야 한다. 다른 나라 변혁적 노총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제조산업국이자 탄소 배출 9위이다. 현시점에서 기후 위기에 아홉 번째의 책임 있는 기후 악당 국가이다. 한국 정부와 자본은 디지털경제. 녹색 성장론으로 탄소 배출 감축에 노력하는 흉내를 내려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론과 그린뉴딜은 결국 대기업 지원을 통한 산업전환과 경제성장 촉진으로 요약되고 실질적인 탄소 배출 감축에서는 뒷걸음질하고 있다. 이와 같은 꼼수와 반동적 기조를 막으려면 노동자계급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큰 기조에서 에너지, 교통, 주거, 의료, 금융 영역의 공공성 강화를 전면화하고 요구를 정식화해야 한다. 가장 우선해야 할 영역은 에너지 공공성이다. 민영화로 치닫는 에너지 산업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고 공공적 소유, 관리 체제를 쟁취해야 한다. 둘째, 공공 대중교통의 확대에서 무상대중교통 실시까지, 생산지와 주거지의 결합과 공공주택 대규모 확충과 같은 탈탄소 시대를 위한 획기적인 교통, 주거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넷째, 노동시간 단축과 질 좋은 일자리,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노조할 권리 보장 등 노동기본권을 전면 확대가 동반되어야 한다.

다섯째, 노동자가 주도하는 산업전환 투쟁의 기조와 요구를 정립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조직적인 교육 홍보사업으로 현장을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은 제도개혁과 정책적 요구의 쟁취는 거대한 사회적 투쟁이 요구되고 그것은 노동자 총파업과 정치적 투쟁이 동반되는 투쟁일 것이다. 우리 변혁운동은 그 지난한 투쟁을 계속 시도하면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나선형적 발전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그 계속된 투쟁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할 새로운 사회의 상과 대안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담대한 투쟁으로 평등 사회를 받쳐 줄 골격과 근육을 만들고 변혁의 지평도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탈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환경]


탈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탈성장이란

지난 몇 년 사이 이른바 ‘탈성장’ 담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탈성장이란 그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이다. 기후위기 문제가 전면화된 지금, 탈성장론은 꽤 급진적인 이념으로 취급되곤 한다. 왜냐하면 이는 ‘성장 없는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장’이란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을 말하는 데, 이는 곧 자본주의적 성장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막대한 이익을 위해 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제 구조의 ‘끊임없는’ 팽창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성장을 목표로 하는 반면, 지구의 자연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금의 기후 위기가 발생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탈성장론이다.

탈성장론은 기후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음을 인정한다. ‘탈성장’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프랑스의 정체 생태학자 앙드레 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구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 생산에 있어서 무성장, 나아가 탈성장이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균형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가?” 사실 “지구의 균형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은 꽤나 중요하다. 이는 ‘자본주의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견해보다 진일보한 것이기도 하다. 작금의 기후위기는 자본의 탐욕과 성장지상주의가 원인임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진영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성장론이 갖는 한계 또한 바로 여기서 나온다. 탈성장론은 자본주의로부터 ‘성장’이라는 목표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성장이란 물론 이윤 중심의 생산을 멈추자는 의미이다. 그런 데 이는 자본주의의 존재 근거를 침해한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자기 존재 근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무제한적인 생산과 탐욕을 이어가면서 지구와 함께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

 

성장지상주의의 문제인가?

탈성장론에 의하면, 우리는 대상(자본주의)에 대한 관점(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을 달리하면 대상의 성격(기후위기를 일으키는 무제한적 생산)마저 바꾸어 낼 수 있다. 이는 당연히 불가능한 발상이고, 몽상이다. 이처럼 “탈 유물론에 기초한 탈성장 논의는 성장주의의 물질적 토대라는 문제를 간과하여 성장주의의 원인을 찾는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부차적인 요인”으로 보는데, “그 결과 탈성장 논의는 경제 중심주의, 성장 중독주의의 증상을 여러 측면에서 폭로하지만, 그 이상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김민정, 〈탈(脫)성장 논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진보평론》 80호, 진보평론, 2021)

지금과 같은 ‘무한한 성장’에 대한 신뢰는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나타났다. 기계제 대공업의 발달과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 이전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시간 내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신’이 주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자연(세계)은 인간에 의해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대상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성과들이 터져 나오면서 ‘무한한 성장’이라는 신화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본주의에서 ‘성장지상주의’만 제거하겠다는 주장은 공상적으로 들린다. 초기의 ‘성장 신화’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나타났고, 현재는 자본주의를 유지 존속시키는 데 기여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자본주의는 이윤의 무제한적 축적, 즉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이 단순히 돌고 도는 구조가 아니다.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으면, 자본가들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려 한다. 여기에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자본과의 경쟁도 동반된다. 이처럼 이윤에 대한 무한한 추구와 극심한 경쟁이라는 조건은 성장지상주의를 만들어 내는 토대이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이다.

 

국가권력에 맞서지 않고 탈성장할 수 있는가?

한편으로 탈성장론은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려는 제법 급진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그 수단으로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탈성장을 위한 실천과제로 내놓은 것들(생산의 축소/복지제도 확대/화폐와 신용제도의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 시키는 ‘물질적 힘’, 즉 국가권력과의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제도의 확대’와 같이 자본주의 존립 근거를 훼손하지 않는 몇몇 개량적 요구의 경우, 강력하고 조직된 노동계급이 존재한다면 국가를 상대로 쟁취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탈성장’은 복지 확대 요구와는 결이 다른 문제이다. 자본가들에게 이윤에 대한 탐욕, ‘축적을 위한 축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윤에 혈안이 된 자본가들로서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요구이다.

그럼에도 탈성장론자들에 따르면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한 정치는 국가 전복이나 자본의 파괴를 요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성장 물신주의에 따라 유지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를 근저에서부터 거부”(김민정, 위의 논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실현 불가능한 발상이다. 탈성장이 기후위기 문제를 ‘정치화’하는 시도의 일환이라면, 마땅히 정치권력의 획득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탈성장론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지배를 실현하는 폭력기구이다. ‘주권재민’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재벌 총수에게는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반면, 파업 노동자에게는 수백억 규모의 손배가압류를 명령한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비해 대폭 후퇴된 채로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그마저도 정부의 시행령 개악 시도로 무력화할 위기에 처했다. 많은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에서도,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엄청난 양의 경찰력을 투입하지만, 참사 몇 시간 전부터 도움을 요청하던 이태원의 시민들을 위해서는 노동자 집회에 훨씬 못 미치는 극소수의 인원만 보냈다. 이러한 모습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극소수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탈성장 측에서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문제는 회피하면서도, 국가의 공적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와 자본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이며 “(…)국가의 자율성은 국내의 자본축적 요구를 어떻게 수행할지에 관한 제한적 자유‘만’을 허용”할 뿐이다.(김민정, 위의 논문)

 

결론

자본주의가 기후위기를 만들어 낸 주범임을, 자본주의와 환경은 서로 보폭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한들, 이러한 탈성장론의 관점은 좋게 말해서 선의이지만, 당면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공리공담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하에서 필연이며,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가계급의 국가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필자주 : 이 글은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현장과 광장’이 공동주최한 2022 기획 강좌 “기후 ‘위기’가 아니라 재앙이다”에 발표한 글을 축약한 것입니다.

박한솔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3만 명이 참가한 시민 축제



제10호 [기후·환경]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3만 명이 참가한 시민 축제


편집국


서울시청 앞 광장 일대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은 다채로운 피켓들을 든 시민들의 많은 참여로 즐거운 축제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집회를 이끄는 주최 측은 기후위기를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퇴보와 경제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종래의 환경운동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세종대로에 모인 참가자들은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호소하고 대기업과 부유층등이 주요한 원인 제공자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외쳤다. 저비용 고이윤 추구의 생산과정과 소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연한 사회에서 환경의 문제로 인한 피해는 경제적 하층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 올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기후 참사는 저개발국에 더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기후정의운동이 환경과 사회라는 측면에서 기후위기에 접근하는 관점은 노동운동단체, 빈민운동단체등 다양한 사회운동세력을 포괄 할 수 있게 해주며 기후위기의 해결이 현재의 사회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해주었다.

집회가 끝난 뒤 용산 대통령집무실, 일본대사관, 정부서울청사를 지나는 행진이 진행됐고 다양한 퍼포먼스들은 주변 시민들의 많은 호응과 관심을 자아냈다.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핵 폐수 공포가 세상을 덮고 있다!

 

제9호 [환경]

핵 폐수 공포가 세상을 덮고 있다!

- 12년째 불타는 후쿠시마 원자로, 핵분열을 멈출 방법 없어

8월 24일, 일본은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를 강행했다. 방류가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수산물 공포는 소금이며 미역이며 사재기로 나타났다. 수산물 도소매 시장은 핵 폐수 방류 전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 수산물시장 인근 상권도 위축되고 있다. 이런 중에 윤석열은 일본에서 가장 인근 국가로서 묵인 방조하며 동영상까지 만들어 안전을 홍보하는 짓을 했을 뿐이다. 핵 폐수 조기 방류에는 한국 정부도 공범이다.

2011년 3월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 탱크가 폭발하고 원자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 후, 녹아내린 원자로 핵분열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핵분열을 멈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원자로 내부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로봇을 투입해도 노심에 접근하는 순간 강한 방사선의 영향으로 작동을 멈춘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핵 폐수는 30년간 바다로 내보낸다고 하나,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일본 정부 총리에게 “폭발 가능성은 없다”라고 보고했으나 그 직후에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원자로는 통제 불능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어민들에게 ‘이해관계자의 합의 없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일본 정부는 이 원자로는 통제 불능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폐로작업이 가능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기시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와 동시에 원자로 폐로화가 추진될 것처럼 했으나, 핵 폐수 방류가 시작되자 이 방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를 “모른다”고 했다. 결국, 거짓말임을 고백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정부는 외부의 어떤 사찰단도 들어오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핵 폐수 방류로 인한 생태적 영향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분석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과학”이라는 단어 뒤에서 거짓을 일삼고 있다. 이 원자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얼마나 오래 핵 폐수를 할지, 방류로 인한 생태적 영향이 무엇인지, 과학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과학적 기준에 따른 오염수 정화를 검증한다는 말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 현대 과학은 플루토늄의 성질에 대해 2%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해양 심층수 해류에 플루토늄이 조금씩 쌓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핵 폐수 방류에 눈을 감았다. 얼이 빠지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한 일인가!

편집국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