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문화] 임을 위한 행진곡

 

우지용 (소리꾼)

9월 28김제 집강소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노래로 듣는 한국현대사’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강사 우지용(소리꾼)동지의 강의 원고 일부입니다긴 원고를 보내왔으나 한정된 지면 관계상 한 꼭지만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는 군부독재 타도민주화운동교육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이었다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 (1980년 12)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서 가사를 만들었다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18 기념식 때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을 때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군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이 노래는 나중에 대만과 홍콩캄보디아필리핀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가나 민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불려져 아시아 민중가요로 정착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82년에 제작된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빛의 결혼식>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서 목숨을 잃은 윤상원(당시 30세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과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박기순(당시 21)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이다이 노래는 빛의 결혼식에서 윤상원과 박기순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는데두 열사가 지금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이 더할 수 없는 비장감을 준다.

 

광주항쟁의 빛윤상원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진군해 오는 계엄군처럼 망설임 없이가난한 예술의 도시 광주를 뒤덮어 오고 있었다연민의 시간이었다서른 살의 청년 하나가 한 무리 고등학생들과 여대생들 앞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돌아가십시오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들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1980년 5월 23~24일 상황을 알리는 한국 주재 외신 기자 서신
<르몽드기자가 물었다.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까?”
일부 수습위원들이 군과 협상 중입니다만 성과는 전혀 없습니다계엄군은 무조건 무기 반납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협박만 일삼는 그들과 무슨 협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볼티모어 선기자가 물었다.
우리 같은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계엄군은 시내로 진격해서 광주를 탈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대학생 투사들의 무장은 계엄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데저항하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아니면 항복할 겁니까?”

윤상원은 그 인상 깊은 눈으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리고 엷은 미소를 띤 채 짧게 답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죽음은 밤의 어둠이 걷히기 전에 이들을 덮쳤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이었다도청 건물 2층 민원실에 남아있던 윤상원은 복부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들불야학의 꽃 박기순

전남 보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박기순은 노동자농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따뜻한 마음의 처녀였다전남대 국사교육과 3학년 재학 중이던 이해 봄부터 광천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 준비에 앞장서고 있었다광천동 천주교회의 교리실을 빌리고 들불야학이라는 이름도 그녀가 지었다.

늦게까지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방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방문 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다박기순의 죽음은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권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장례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가수 김민기가 선창하는 <상록수>를 따라 부르며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저 들판의 소나무처럼 푸르렀던 그녀의 삶을 애도했다.


빛의 결혼식

윤상원이 사망한 지 
2년이 되어가던 1982년 2월 20군사독재의 폭압처럼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광주항쟁으로 사망한 이들이 묻힌 망월동 공동묘지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이었다.

양가의 가족 친지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눈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영혼의 결혼식은 노래극 <빛의 결혼식>으로 절정을 이뤘다특히 맨 뒷부분에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장하면서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참석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패배할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웠던 광주항쟁의 주인공들을 기리는 노래극 <빛의 결혼식>은 언론도 출판도 통제된 1981년 봄문화행사를 통해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자는 뜻으로 뭉친 광주지역 문화인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남녀가 영혼결혼식이 끝나고 자신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산 자들을 격려하고 투쟁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노래였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황석영의 집 밀폐된 골방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된 노래극은 이날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공개되었다이후 녹음테이프에 복사되거나 악보만으로혹은 구전으로 전국으로 번져 나가 민주화 운동권에서 제2의 애국가처럼 불리게 된다.

오랫동안 재야에서 불리던 묏비나리는 1990년 시집 젊은 날에 실림으로써 정식 출판물로 수록되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1991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음반에 공식적으로 실리면서 불법’ 딱지도 떼게 되었다.

[중국혁명가] 공산당 섬북 근거지 개척자 류즈단(刘志丹)

  

이철의

중국은 본래 개인숭배를 엄격하게 억제했던 전통이 있다. 1949년 1대륙의 내전에서 승리가 분명해질 무렵 공산당은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런 결의를 하였다. “생일 잔치를 하지 않고선물을 주지 않으며술은 조금만 권하고박수는 적게 치고사람 이름으로 지명을 만들지 않고중국 동지를 마르크스 레닌과 같은 반열에 두지 않는다.” 이 규정에서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류즈단의 이름을 딴 즈단현이다본래 바오안(保安县)으로 류즈단의 출생지였는데 1936년에 전사한 그를 기려 이름을 바꾼 것이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유일한 지명을 갖게 되었을까?

1934년 공산당은 국민당의 초공작전을 견디지 못해 각지에 건설한 해방구를 탈출하였다장시성의 루이진에 있던 중앙소비에트도 2만 5천리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10만명의 인원이 8천명으로 감소한 고난의 대행군이었다장시후난윈난구이저우쓰촨을 거친 장정 도중 마오쩌둥은 소련 유학파로부터 지도력을 넘겨받았다. 4방면군 지도자 장궈타오와 장정 노선을 놓고 충돌하던 마오와 중앙 지도부는 북상항일을 주장하며 쓰촨성에서 섬서간쑤 지방으로 이동하였다쓰촨성을 벗어난 마오쩌둥은 우연히 입수한 신문을 보다가 섬서성에 비교적 건실한 해방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바로 류즈단가오강 등이 건설한 산간(陕甘소비에트로 섬서성과 간쑤성에 걸쳐있는 해방구였다비로소 확실한 목적지를 확인한 마오쩌둥은 장정 대오를 이끌고 섬북에 자리잡았다.

류즈단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중국 공농홍군 고위 지휘관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군사가서북 홍군과 서북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중 한사람. 1996년 중국 인민해방군 36명 군사가에 포함, 2009년 신중국에 공헌한 100명 인물에 포함(중국 공산당 홈페이지에서 인용류즈단은 1903년 섬서성 바오안현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류린(榆林중학(한국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학생회 주석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하였고 다음해 공산당에 가입하였다당의 지시로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국민혁명군 4로군 정치처장 등을 맡으며 북양군벌과 전투했다. 1927년 국공합작이 파탄하고 그는 후베이안후이섬서성 등에서 군사봉기를 기도하였다. 1928년 류즈단은 동지들과 함께 마침내 웨이화(渭华기의(중국은 봉기를 기의로 표기한다.)를 일으켜 서북 공농혁명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그는 서북 반제동맹군을 조직하여 부총지휘 및 참모장을 맡았는데 나중에 중국 공농홍군 섬감유격지대로 발전하였다. 1932년 중국 공농홍군 26군이 성립되었을 때 류즈단은 지휘자가 되었다. 1935년 류즈단이 지휘하던 26군과 25군이 합병하여 중국 공농홍군 15군단으로 확대되어 그는 부군단장과 참모장을 맡았다.

섬북이 공산당의 최종 정착지가 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류즈단과 그의 동지들은 국민당군의 세차례에 걸친 포위토벌에 맞서 싸웠다중과부적의 불리한 조건에서 류즈단은 공기무비출기불의(적이 허술한 곳을 치고 예상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는 전술)의 전법으로 아홉 번 싸워 모두 승리하였다그러나 당시는 공산당 중앙 노선도 격변을 거듭하는 시기여서 마오쩌둥도 장정 도중에 보구리더 등으로부터 지도력을 빼앗았다리리싼왕밍 등의 좌경 기회주의 노선은 전국 각지에 영향을 미쳐 많은 이들이 혼란 속에서 이른바 숙반(숙청의 다른 말)을 겪어야 하였다이때 류즈단도 좌경 기회주의의 모자를 썼다계속되는 군사행동 속에서 의견 차이와 주도권 다툼이 그런 일을 만들었을 것이다. 1935년 부대를 합병한 뒤류즈단은 기회주의자로 모함을 받아 체포되어 생명을 위협받게 되었다그때 마침 마오쩌둥과 중앙 지도부가 섬북에 도착하여 그를 구해냈다석방된 류즈단은 서북 혁명군사위원회 부주임과 북로군 총지휘홍군 25군 사령을 맡았다. 1936년 그는 당의 명령을 받고 산시성으로 동정에 나서 싸우다 전사하였다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마오쩌둥은 나중에 비문을 쓰기를 군중의 영수민족의 영웅이라고 하였다저우언라이는 비문에서 “5천년 역사에 영웅이 많지만 인민의 영웅은 류즈단을 꼽는다고 하였다.

시중쉰(习仲勋)은 지금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부친이다그는 류즈단 휘하에서 활동했는데 나이 차는 열 살 아래였다그는 19세 때 처음 류즈단을 만났다그는 1998년 류즈탄 탄생 95주년에 이렇게 썼다. “즈단 동지는 나보다 열 살 위이다그는 좋은 선생이자 영도자였고좋은 형이자 친구였다.” 시중쉰은 13세에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했으며 15세에 공산당원이 되었다그는 류즈단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혁명과 전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하지만 내가 만났을 때 그는 보통의 전사와 다를 바 없었다그는 소박했으며 다가가기 쉬웠고 항상 전사들과 함께 하였다동지들은 그를 류형으로 불렀다.”

중국은 땅도 넓고 인물도 많다각지에서 활동한 혁명가들이 스스로 근거지를 개척하며 당의 노선을 관철해 냈다신사군을 이끌던 천이도 당과 몇 년동안 연계가 끊어져 있었지만 연결되었을 때 금방 당의 통일전선 노선을 관철해 냈다이처럼 통일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기획] ‘의사파업’과 사회의료의 전망

 

손미아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1. ‘의사파업’: 의사들의 노동자화와 소외의 증대

정부의 의사인력 2,000명 증원이라는 정책에 맞선 의사들의 파업이 심화되고 있다싸움은 정부와 의사 집단으로 보이지만그 본질은 자본과 의사 집단에 있다. ‘의사파업은 자본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이에 맞서는 의사들이 자기중심적이고 환자나 전체 인구집단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으나의료 자본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측면도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시대에 의료 자본들은 의사들을 자본에 편입시켜 왔고이제 의료 자본에 의해 의사들의 자본에 재편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한국에서 의료는 약 10% 미만의 공공의료 체계를 제외하고는 민영화된 체계인데자본은 이제 이 민영화된 체계에서 아직 남아있는 덜 자본화된 부분들즉 의사들의 개업 행위를 의료 자본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거대 대형 병원들이 들어서면 거기에서 의료노동자로 종사할 의사들이 필요한 것이고자본은 이를 파악하고 있으며 의사 인력을 대거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소규모 생산수단으로 개업한 의사들은 결국 노동자화를 겪어왔다거대 의료자본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러한 거대 의료자본 체계하에서 의사들은 의료행위에서 자율권과 전문성을 빼앗기고의료기업인 거대 병원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특히 인공지능(AI)이 의료에 도입되면 의사들의 기술은 점차 무력화될 것이고인공지능 중심의 의료로 발전되면 의사들의 대기업에 고용되는 비율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의사들은 임노동 체계에 편입되고 노동자화될 것이다.

현재에도 소위 수련을 빌미로 거대 의료자본·병원들에 고용된 젊은 의사들인 인턴레지던트들은 초인간적인 노동시간 증대야간노동고도의 노동강도노동력 유지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으로 점점 소외되고 있으며그들의 일과 환자로부터 분리되고 있다의사들은특히 거대 의료자본·병원의 의사들은 스스로 노동에의 자율권과 조절권을 갖지 못하고 의료 자본 경영진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어서 의료서비스 생산물과 생산과정에서 소외되고 있고동료 의사들과의 경쟁구도 속에서 소외되며결국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됨으로써 그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2. 의료체계 붕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사회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

한국의 대다수 인구는 이번 의사파업으로 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어떻게 붕괴될 것인가한국에선 그나마 미미하게 존재하던 공공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다정부와 의료자본은 의료재원의 부족을 구실로 사회보험제도보다는 민간보험제도를 적극 추진할 것이고비보험 민간의료비의 증대의료비의 차별화 및 증대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벌써 정부 대책 발표에서 의료의 민영화불평등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러한 사회불평등의 증대와 건강불평등의 증대는 사회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노동자·민중들은 더 이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질 높은 민영화된 병원을 찾아가지 못할 것이고의료의 불평등사회의 불평등은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4. 노동자·민중 공동체를 통한 의료체계의 개혁

대다수 의사도 파업하면서 원래의 회귀’, ‘원상 복귀는 어렵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의료체계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현재 자본주의 의료체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그것은 공동체에 의한 공동소유의 보건의료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독재 국가 중심의 의료민간 의료체계에서 벗어나려면 그 주체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노동자·민중 공동체의 의료체계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민중 공동체를 위해서는 노동자·민중들과 의사들이 공동 협력해야 한다우선 노동자·민중들이 나서야 한다민중들은 스스로의 건강에 책임을 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의료체계개혁에 나서야 한다바로 보건의료가 민영화되면 안 되는 이유가 인간의 건강이 인류 전체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보건의료 문제의 해결도 인류 전체또는 당장 그 문제에 처해 있는 집단 전체가 해결해야 한다.

의사들은 의료체계 개혁을 원한다면 우선 자신들이 살기 위해 인구집단의 돌봄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계속해서 인구집단의 건강을 돌보면서전체 민중들과 함께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의사들이 자신들의 요구만을 내세우면서 고립적으로 계속 정부와 의료자본에 대항해서 투쟁한다면 그들은 급속히 노동자화가 되어버리고 의료 자본에 흡수되고 말 것이다의료자본이 소자본들을 집적과 집중시키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자본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고여러 다른 산업에 적용했던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의료에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사들은 노동자·민중들과 결합해야 한다이것만이 자신들의 의료자본으로부터 노동착취를 당하지 않고 인간의 질병을 치유한다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의사가 되는 길이다의료자본은 절대 의사들을 노동력상품인 의료인력 상품으로 보기 때문에 의사들은 의료자본에 포섭되어서는 인류를 위한 진료를 할 수 없다그러므로 한국의 의사들이 인류의 건강을 위한 더 큰 의료를 지향한다면 대다수 노동자·민중들과 손잡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5. 결론노동자·민중들이 나서야 한다

한국의 의사파업의 문제는 이제 일부 의사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그러므로 이제 전체 민중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자본화된 의료를 사회화된 의료사회의료민중의료로 만들어 나가기위해 민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그 해결책을 공유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자본주의체계에서 자본주의 국가중심의 의료민간의료 체계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그 주체가 노동자·민중 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우선 가능한 단위에서각 지역에서노동자·민중 공동체를 만들고노동자·민중들의 논의를 증대시키는 일을 시작하자!

[국제] 반미전선 중심이 아니라 혁명적 관점에서 현 정세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전원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국제정세가 하루하루 격변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격변의 속도는 매우 가파르다국제정세 전문가들도 변화의 속도와 강도에 놀라고 있을 정도이다며칠만 기사를 안 보면 깜깜이가 될 정도라고 넋두리할 정도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가라앉는 제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국 중국이 있다그렇다고 러시아가 주변부에 있다고 하기에는 그 비중이 너무 크다미국을 상대하기에 중국은 에너지 자급에 치명적 약점이 있고 러시아는 인구와 제조업 능력에서 미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그렇기에 미국 외교의 우두머리였던 헨리 키신저는 통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그의 통탄은 백악관의 잘못된 외교정책 때문에 반드시 갈라쳐야 할 러시아와 중국이 한배를 타게 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 세 나라는 규모가 대륙급이다영토는 물론이고 인구 또한 많다세 나라의 충돌로 전 지구적 격변이 휘몰아치고 있다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이 속한 한반도는 이 격변에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즉 한····러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국제정세의 복잡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주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미국 주도 일본 우선의 미·· 동맹의 하위파트너가 된 지 오래다윤석열 정권의 지속적인 친일 행보에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 있다는 말이다한일 동반자관계는 분명히 미국 주도 동북아 체제 형성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한 동맹을 구축하여 떠오르는 중국을 봉쇄하고 러시아 포위망을 촘촘하게 짜려는 것이다이를 통해 이북(조선봉쇄 또한 지속하려는 것이다국회 절대다수를 장악한 민주당의 행보는 어떤가국회에서 동북아 반전 평화를 위한 정책적 행보를 할 힘이 충분하건만 이재명 차기 대통령 만들기 이외에는 관심 밖이다절체절명의 전쟁 발발 위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97년 이후 교대로 두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두 집단은 많은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지배에 대한 노예적 굴종과 자본지배노동 개무시라는 두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즉 전쟁의 소용돌이로 우리를 몰아넣는 미국의 침략 정책에 국힘이나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은 1도 없는 것이다.

 

혁명이냐야만이냐?

110년 전인 1914년 6사라예보에서의 두발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세르비아 민족주의 지하조직인 흑수단 소속의 가브리엘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총탄으로 살해하면서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지만그것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었다직접적으로는 영국프랑스러시아 중심의 삼국협상 세력과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탈리아 중심의 삼국동맹이 제국주의 정책을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하다 전쟁으로 갔지만 이 또한 피상적 이유이다.

진짜 전쟁의 원인은 고도로 발달한 독점자본주의가 불러온 경제파탄과 계급충돌 해결(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을 학살하고 무력화)하기 위해서 전쟁이란 수단을 사용한 것이었다족쇄가 풀린 자본주의가 악마의 맷돌처럼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과잉된 상품과 노동력으로 자본주의 작동이 한계에 봉착하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치장한 야만적 전쟁으로 몰아가서 자본주의 작동의 원활함을 회복한 것이다당시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적 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어떠한 행보를 하였던가독일 자본가들의 우두머리 카이저의 제국주의 침략의 동반자가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혼란기일수록 사태를 파악하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현재 정세의 특징을 미국 일극 패권에서 다극으로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물론 미국 일극 패권에 맞서 다극화로의 전환은 일보전진이다그렇지만 이 또한 정세의 급진전 앞에서는 애매모호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이탈한 세력들은 미 제국주의 주도의 봉쇄와 간섭전쟁 아래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말았다혁명 주체의 오류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결정적인 것은 고립된 혁명과 제국주의 봉쇄에 의한 굴절이었다.

물극필반이라 했던가자본주의 최고절정기인 지금이야말로 세계적 규모의 혁명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1950년대 이후 세계의 대다수 사회주의자는 혁명 포기 대가로 개량을 취하려 했다현실성대중성이란 이름으로그러나 혁명 포기의 대가는 개량이 아니었다신자유주의라는 정글 자본주의였다그나마 서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들도 정글 자본주의로 편입되었다. 1995년 민주노총의 건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시작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었다제대로 된 반성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무기력만큼 이 운동의 실패를 웅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은 우리가 쌓아 놓은 성과를 모두 휩쓸어 갈 수도 있지만거대한 연을 하늘 높이 띄울 수도 있는 것이다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국지전의 발발과 확산노동조합의회주의적 정치운동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혁명적 비상의 계기를 잡아 보자경제위기가 노동운동의 위기로 온 데에는 대중들의 책임도 있지만 노동조합-의회주의 운동에 매몰된 운동 방식도 뒤돌아 보고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개량적 양 날개를 접고 혁명적 양 날개를 활짝 펴서 세계적 소용돌이에 대응하자.



[노동정세일지] "전국동시다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 개최"外

 

■ 9/4. ‘한국지엠 불법파견 특별교섭ㆍ4대요구 쟁취 금속노동자 결의대회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7월 25일 대법원의 한국지엠 불법파견 인정에도 묵묵부답인 한국지엠 자본에 항의대법원은 지난 7월 25일 한국지엠 창원·부평·군산공장 1·2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128명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법원은 한국지엠의 엔진·차체·도장·조립·품질관리·생산·KD 등 모든 공정에서의 불법파견을 인정.


 






■ 9/5. 명동 세종호텔 앞해고자들의 투쟁승리 1,000일 문화제 개최

참석자들은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원직복직과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결의를 다짐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김란희 조합원의 사회로 진행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호텔 측이 신규 직원을 채용해 기존 노동자들을 교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알림김란희 조합원은 현장 노동자들이 호텔 안팎에서 여전히 투쟁 중임에도 세종호텔은 반성 없이 더 기세등등해졌다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짐.

 

■ 9/7. 성주 소성리17차 범국민평화행동 열어

민주노총을 비롯해 소성리 주민과 지킴이전국민중행동김천시민대책위원불교 등 시민사회는 경북 성주군 소성리 진밭교 일대에서 제17차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을 열고 불법사드 철거하라”, “한미일 MD구축 반대”,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등을 주장사드가 두 번째로 성주 소성리에 반입된 2017년 9월 7일로부터 꼭 7년이 된 날당시 사드 발사대 4기가 사드 기지에 배치돼 1개 포대를 갖춤.

 

■ 9/9. 거제 옥포사거리금속노조-조선노연 결의대회 열어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이 거제 옥포사거리에서 ‘2024년 임단투 승리노조무력화 분쇄조선업특별법 제정금속노조-조선노연 결의대회’ 진행조선노연 파업 지침에 따라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케이조선지회성동조선지회는 4시간 파업투쟁을 전개최근 조선업은 호황기로 들어서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지만여전히 자본은 물량팀이라 불리는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무분별하게 늘려가며 착취 구조를 강화거제 한화오션의 경우 지속적인 노조 무력화 시도와 탄압, 22년 조선하청 파업투쟁 당시의 손배소 유지 및 블랙리스트 문제 등 한화자본의 적대적 노무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

 

■ 9/11. 한국전력의 65개 섬 발전 노동자 4차 상경투쟁

지난 8월 15일 한국전력의 65개 섬 발전 노동자 184명 집단 대량해고용산대통령집무실 앞, 4차 상경투쟁작년 6월 법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으로 인한 직접고용 이행 촉구 및 해고 철회 외침최대봉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은 "한국전력공사 직원도 없는 전국 65개 섬에서 발전소를 운영하며 70만 섬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왔다열악한 숙식 환경에 서로를 의지하며 주민에 대한 의무와 봉사라는 정신으로 살아왔다"라며 국민들과 대통령실에 관심과 책임을 촉구.

 

■ 9/23. 민주노총부산본부, 2025 부산시 생활임금위원회 집중 선전전

민주노총부산본부가 부산시청 후문에서 2025 부산시 생활임금위원회 집중 선전전을 개최약 3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집중 선전전은 같은 날 10시에 진행되는 부산시 생활임금위원회를 압박하기 위해 개최참가자들은 ‘2025년 부산시 생활임금 13,600원 쟁취하자와 부산시 공공기관 하청노동자에게도 생활임금 적용하라는 요구사항을 구호로 외침생활임금위원회 회의결과, 2025년 부산시 생활임금은 5%가 인상된 시급 11,918월 209시간 근로 기준 2,490,862원으로 결정인상률로 따지면 2018년 5.1% 이후 최고 인상률.

 

■ 9/24.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배달의민족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배달의 민족'은 건당 3천 원이었던 배달료를 구간배달 도입을 통해 2천 원 대로 줄이는 등 일방적으로 약관 변경을 해옴배달료 인상을 위해 7월부터 임금 교섭을 시작했지만 5차례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배달료 인상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 입장만 고수플랫폼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미비한 틈을 악용하여 배달료를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마음대로 착취하는 사측을 규탄배달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라고 촉구.

 

■ 9/26.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고용승계 쟁취 투쟁승리 문화제 열어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고용승계 쟁취 투쟁승리 문화제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주관으로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 앞에서 진행문화제가 열린 이날은 구미공장화재 724일차해고 603일차구미 고공농성 263일차평택 농성 131일차금속노조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투쟁승리를 위한 지부별 순환농성을 결의했고 순환농성 첫날인 문화제 당일금속노조 경기지부와 한국지엠지부가 함께 문화제에 참석.

 

■ 9/28. 전국동시다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 개최

퇴진 광장을 열자! 9.28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가 전국동시다발로 열린 가운데 수도권 5,000(숭례문 앞)을 비롯한 전국 5만여명의 노동자 민중이 윤석열 퇴진을 외침결의한 내용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해 여기 모인 우리는 결의한다하나. 10월 8일 시작되는 윤석열 정권 퇴진 국민투표를 광범위하게 진행한다노동자는 현장에서농민들은 들녘에서빈민들은 노점에서학생들은 학교에서퇴진의 국민적 요구를 모아낼 것이다하나이러한 국민의 뜻과 힘을 모아 11월 9, 11월 20, 12월 7일로 이어지는 윤석열 정권 퇴진 총궐기에 온 힘을 다할 것이다하나박근혜 퇴진광장을 열어내었던 노동자 민중우리가 앞장서서 퇴진광장을 열어낼 것이다.”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