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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국제] 트럼프는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전원배

격변의 세월이다.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압승 자체가 사건이 아니라 미국 주류 언론과 이를 받아쓰기한 국내의 많은 언론들의 오보가 사건이라면 사건이겠다.

놀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사거리가 300㎞에 이르는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사용을 허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인 지뢰 제공도 승인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겨울 시작 무렵 악천후로 진흙탕이 돼 군사작전이 어려워지는 ‘라스푸티차’ 시기를 앞두고, 전황이 불리해진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한 결정이지만, 민간인 피해 등을 불러올 수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전쟁을 신속히 끝내겠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이전, 우크라이나전을 지원할 최후의 방법의 하나로 대인지뢰 카드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이후 줄곧 대인지뢰 필요성을 밝혀왔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에 “러시아는 어쨌든 대인지뢰를 사용한다며 잠재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의 정책 변경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한겨레신문 김미나기자 2024-11-20) 

우크라이나는 최대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큼스(ATACMS- Army Tactical Missile System) 6발을 러시아 본토 브리얀스크로 발사했다. 더 나아가 바이든 정부는 대인지뢰 사용을 승인했다. 푸틴은 이에 대해서 전술핵 사용을 포함한 무제한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끔찍한 3차세계대전이 현실화하는 것인가?


트럼프의 선거공약(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은 현실성이 있는가?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자신이 집권하면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다. 일부 사람들은 트럼프의 공약이 지켜지길 희망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금 전쟁종결 가능성은 있는가 탐색하는 시점에서 바이든(미국 딮스테트 전략그룹)은 우크라이나에 사거리가 300㎞에 이르는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사용을 허가하고 대인 지뢰 제공도 승인했다. 즉 확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2025년 1월 20일 취임하기 전에 최대한 전쟁을 확대하여 휴전 자체를 어렵게 하기 위한 바이든과 전쟁지지 그룹의 마지막 승부수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전쟁을 멈추려 하는가? 트럼프가 전쟁을 멈추려는 의도는 우리같이 반전평화를 위한 것임이 아님은 모두 잘 알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이 군자금을 미국민을 위해서 쓰겠다는 것이다. 백악관 밖에서 큰소리치던 트럼프는 1기 집권시기(2016-2020)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으며 손발이 다 잘린 상태로 자기 참모들과 이전투구하다 비참하게 몰락 했었다. 거의 내란수괴로 몰려 벼랑 끝에서 겨우 재개하였다. 그만큼 백안관에 입성하는 순간 딮스테이트라 불리는 미국 전략그룹에 포섭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1기에 당해서 2기는 다를 것이라고? 이는 미국 전략그룹도 마찬가지이다. 전략그룹은 트럼프 집권하기 전 2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귀신같이 알고 있음을 이번에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만큼 그들은 전쟁지속, 확전에 미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며, 그만큼 그들은 사활적인 것이다. 이 공세 앞에서 평생 자신의 출세와 탐욕, 거짓말로 일관해 온 트럼프가 끝까지 저항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트럼프, 푸틴에 더 적은 관심을, 자본주의 체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국제적으로는 트럼프. 푸틴, 시진핑이, 국내에서는 윤석열, 이재명 등을 마치 국제정세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듯이 묘사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출되는 자는 권력이 없고 권력이 있는 자는 선출되지 않는다”<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울리히 벡, 홍찬숙 옮김 길 펴냄)는 격언이 있다. 80억에 달하는 지구촌은 이제 구석구석 철저히 자본의 논리가 현실화되었다. 1848년 공산주의선언을 마르크스가 저술할 때의 자본주의가 아니며, 100여 년 전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이 혁명이냐 야만이냐를 외치던 자본주의도 아니다. 1820년대 영국에서 완성된 형태를 띠며 물결이 퍼져나가듯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세계로 번져나갔으며 이제는 전 지구를 자본주의 이윤논리로 도배하였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는 분명히 세계적 공황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과 같은 파국적 공황을 변주할 기술이 충만하다. 자본가들은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헬리콥터 밴(밴 버냉키 당시 미국 연준의장)은 달러를 프린트해서 헬기로 살포했고, 이는 세계적 공황을 지연, 변주시켰다. 추가해서 사상 최고의 재앙인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비 여력이 고갈되자 다시 한번 달러를 대규모로 살포했다. 이러한 지연전술은 먹히는 듯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20일, 미국을 등에 업은 나토가 허수아비 우크라이나를 앞장세워 동진을 거듭하자 푸틴이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세계화는 종식되었고 공급망 불안 등 세계자본주의는 크게 출렁거렸다. 격화되는 위기 속에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전격 기습작전(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창살 없는 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미국, 이스라엘의 야만적 봉쇄에 맞선 정당한 공격이었다)으로 촉발된 중동정세의 불안정은 회복세이 있던 세계경제를 급속히 공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에 더해 가속도가 붙은 AI, 자동화의 생산에의 급격한 투입은 재앙일 뿐이다. 자본주의하에서 AI, 자동화는 급격한 실업,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소비력 고갈로 이어질 뿐이다. 한쪽에는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 다른 한편으로는 급격히 소비력 고갈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노동자 민중들. 임박한 파국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차세계대전의 종결은 몇몇 정치지도자들의 결단에 의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장기화한 전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군수산업 현장에서 전쟁터에서 파업과 전쟁 거부 투쟁을, 목숨을 걸고 행하였으며 마침내 약한 고리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볼셰비키 정부가 전쟁을 종결시키면서 야만의 전쟁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국제] 삼성전자 인도공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인도 노동계급의 단결

 

박인규

타밀나두(Tamil Nadu) 에 있는 삼성전자 인도 스리페룸부드르(Sriperumbudur) 공장 노동자들이 2024년 10월 16일, 37일 간의 파업에서 승리하였다. 최대의 쟁점이었던 노조에 대한 인정은 법원의 판결을 받아 보고 법원에서 인정하면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파업은 인도 자본가들에게 강력한 계급적 경고를 준 사건으로,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와 연대가 자본가의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 투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 수단인 삼성의 무노조 경영 전략

삼성전자 인도 공장은 1,800명의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 중 1,000명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삼성 자본은 ‘삼성 인도 노동조합(Samsung India Workers’ Union; SIWU)’을 불법집단으로 규정하고 파업을 불법화하였다. 이런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통제하는 무노조 경영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자본가가 노동자 계급을 개별화하고 조직적인 목소리를 억압함으로써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전략으로, 인도에서도 비슷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이러한 계급 억압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중요한 사례로,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자본가의 지배를 무력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삼성은 사내 어용노조인 ‘근로자 위원회(Workmen’s committee)’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회유하였다. 타밀나두 정부는 이것을 근거로 10월 7일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풀고 복귀할 것을 명령하고,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하는 등 경찰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였다. 이런 사실은 타밀나두 정부가 초국적 자본가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폭력 기구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일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인도공장 노동자들은 ‘삼성 인도 노동조합(SIWU)’의 인정을 요구하며 비타협적 투쟁을 하였다. 타밀나두 정부의 집권당(Dravida Munnetra Kazhagam; DMK)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파업을 진압하려 하자 JK Tyres, Apollo Tyres, Hyundai, Yamaha, BMW 노동조합이 타밀나두 정부의 삼성 노동자 파업 진압에 반대하는 연대 투쟁을 조직하였다.

노동자 계급의 연대 투쟁이 조직화 되면서 타밀나두 정부는 삼성전자 인도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삼성 자본 역시 노동자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 자본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몰아 여론을 바꾸려 하였다. 인도의 Trade Union Act, 1926에 따르면 조합 설립 신청 후 45일 안에 조합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삼성전자 인도 공장 노동자들은 7월 27일에 조합 설립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도 삼성 자본은 90일이 지났음에도 조합 인정을 거부하였다. 또한 Industrial Disputes Act, 1947에 따르면 파업 시작 14일 전에 사업주에게 파업을 예고하면 합법성이 인정된다. 삼성 인도 노동조합은 파업 시작 3주 전인 8월 19일에 파업을 예고하였다. 그런데도 삼성 자본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투자 자본의 탈출을 내세워 타밀나두 정부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삼성 자본의 노조파괴 공작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삼성의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은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권리를 보장하는 인도 헙법 제19조 1항 C와도 정면으로 충돌하는데 이것은 인도 노동 계급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삼성전자 인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의 노동 계급을 고무시켜 주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2024년 7월에 어렵게 만들어진 전국삼성전자노조(Nation Samsung Electronisc Union; NSEU)가 인도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투쟁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것은 초국적 기업인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삼성 노동자들과 인도의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는 초국적 자본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삼성의 공격과 노동 계급의 단결

37일 동안의 긴 투쟁을 통해서 인도의 노동자들은 삼성 자본과 국가 기관의 결탁을 보았다. 그들이 노동자 계급의 권리를 억누르기 위해 얼마나 깊이 결속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있다. 삼정 자본은 노동력의 초과 착취를 위해 높은 생산성과 과도한 노동 강도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근로자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을 회유하였다. 삼성 자본은 생산성이라 가면을 쓰고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의 착취에 맞서 투쟁으로 단련되었다.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인도의 다른 산업 부문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면서 노동 계급의 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 계급의 계급성 고양과 각성은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 투쟁을 조직하는 힘으로 된다. 주변의 여러 노동 단체들이 이번 파업에 연대 의사를 밝히고 집회에 참여한 사실이 노동 계급의 조직화를 한층 고양시키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개별적 요구에 머물지 않고, 계급 전체의 권리를 위한 조직적인 저항을 구축하려는 계급적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로 된다.

계급적 관점에서,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강력한 국가의 폭력 수단과 자본이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조직적 연대와 단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입증하고 있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자본과 국가 기구의 결탁은 점점 더 공고화되면서 폭력적인 성격을 뛸 수 밖에 없다. 그런 구조적 폭력과 착취에 맞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면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 각성하고 조직되고 연대하여 싸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삼성전자 인도 공장 노동자들이 입증하고 있다.

[국제] 확전인가 종전인가

 

홍승용(현대사상연구소)

1.  가짜뉴스

현정권은 러우전쟁 참전에 정권의 명운을 맡기려는 듯하다.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미국조차 명확히 확인해주지 않은 우크라이나발 토막정보를 근거로, 우리와 직접 관계없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진작부터 참전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살상무기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순간, 종말 단계로 기울던 러우전이 다시 어디까지 확산될지 예측불허다. 이미 최고의 전쟁 위험지역으로 떠올라 있는 한반도에 참화의 불이 옮겨붙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행히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국민여론은 절대적이다.

북의 파병은 언론을 통해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뉴스의 출처나 전황과 관련한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자료를 근거로 파병 자체를 가짜뉴스라고 보는 입장도 강력하다. 파병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부대의 규모 혹은 역할, 한국의 안보에 끼칠 위험성, 정부의 대응 속도와 방식 등에 대해서는 연일 엇갈리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가짜뉴스는 전쟁의 상수 아닌가. 하지만 가짜뉴스는 적을 향해서만 아니라 국내 여론조작을 위해서도 생산된다. 참전을 부추기는 국내 가짜뉴스 생산은 전쟁범죄나 다름없다.

 

2. 손익계산

가짜뉴스들로 상황판단이 어려울 때에는, 그것들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지 따지는 것이 우선일 듯하다. 북이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으로 얻을 것이 많다는 점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도 북의 도움을 물리칠 이유는 없다. 양국은 파병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전쟁중이니까. 이에 비해 궁지에 몰린 젤렌스키가 나토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러의 협력관계를 부풀려서 가짜뉴스를 생산할 동기는 훨씬 더 명백하며, 그만큼 우크라이나 발 뉴스들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설혹 북의 파병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고 파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젤렌스키는 윤석렬에게 무엇을 주고 무슨 약속을 받았기에, 동맹국도 아닌 한국에 무기를 요청한단 말인가? 그로써 한국이 얻을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와의 적대관계와 전쟁의 위험 말고는 별로 없다. 윤석열은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정권의 위기를 덮을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정권과 개인의 작은 이익을 국익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허나 그에 따른 국민적 피해는 계산을 초월한다.

 

3. 대리전쟁

턱도 없는 국익계산서를 국민들 앞에 내밀 수 있는 뻔뻔함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약자를 멸시하는 뇌구조나, 무속적 국정농단, 혹은 매국적 친일친미 이데올로기나, 한몫 챙기려는 욕심 따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한국병력을 전쟁터에 보내는 전작권은 엄연히 미국에 있다. 젤렌스키 정권이 미제국주의를 대신해 우크라이나를 전쟁터로 만든 것처럼, 윤정권이 한반도에 재앙을 불러오면서 3차대전을 폭발시킨다면, 그 최종 결정은 미국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윤정권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결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요구에 앞장서 맹종하는 정권에 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의 의무다. 반민족 반민주 독재정권이 임기를 채우도록 방관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수치다. 윤정권은 노골적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민생을 허물고, 무분별한 반중 반러 노선과 대북 적대정책으로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왔다. 무자비한 노동탄압, 국가권력을 이용한 가족비리, 심지어 전대미문의 국정농단까지 묵과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대리전의 불구덩이로 몰아넣는 것까지 용납해선 결코 안 될 것이다.

 

4. 전쟁종식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전쟁이 늘어지거나 본격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고, 트럼프의 장담처럼 단기간에 끝날 수도 있다. 누구든 실제로 전쟁을 조속히 끝낸다면 무슨 평화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러우전쟁과 중동전쟁이 끝난다고 인류가 공존과 공영의 시대를 맞이할까? 그럴 리가 없다. 양쪽 전선이 안정되면 미국은 주적인 중국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세력의 경제전쟁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직접적 군사 충돌은 대만과 한반도에서 인류문명을 끝장낼 핵지옥의 문을 열어젖힐 수도 있다.

정권교체는 당장의 확전을 피하고 남북의 평화체제를 조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본독재 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한동안 요술처럼 통해온 달러패권 혹은 통화제국주의의 수명은 근본적으로 생산력에 의존한다. 자본의 최강무기는 가성비 좋은 상품 아닌가. 그런데 생산력은 불균등하게 발전한다. 새로운 생산력 강자의 부상으로 시장과 영향력이 흔들릴 때 해결책은 힘의 행사이며 그 최종판은 핵전쟁이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극복 없이 평화도 없다. 대안사회 건설에 매진하자.(2024. 11. 4)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국제] 반미전선 중심이 아니라 혁명적 관점에서 현 정세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전원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국제정세가 하루하루 격변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격변의 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국제정세 전문가들도 변화의 속도와 강도에 놀라고 있을 정도이다. 며칠만 기사를 안 보면 깜깜이가 될 정도라고 넋두리할 정도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가라앉는 제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국 중국이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주변부에 있다고 하기에는 그 비중이 너무 크다. 미국을 상대하기에 중국은 에너지 자급에 치명적 약점이 있고 러시아는 인구와 제조업 능력에서 미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국 외교의 우두머리였던 헨리 키신저는 통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통탄은 백악관의 잘못된 외교정책 때문에 반드시 갈라쳐야 할 러시아와 중국이 한배를 타게 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 세 나라는 규모가 대륙급이다. 영토는 물론이고 인구 또한 많다. 세 나라의 충돌로 전 지구적 격변이 휘몰아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이 속한 한반도는 이 격변에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즉 한·미·일, 북·중·러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국제정세의 복잡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주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미국 주도 일본 우선의 미·일·한 동맹의 하위파트너가 된 지 오래다. 윤석열 정권의 지속적인 친일 행보에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 있다는 말이다. 한일 동반자관계는 분명히 미국 주도 동북아 체제 형성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미·일·한 동맹을 구축하여 떠오르는 중국을 봉쇄하고 러시아 포위망을 촘촘하게 짜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북(조선) 봉쇄 또한 지속하려는 것이다. 국회 절대다수를 장악한 민주당의 행보는 어떤가? 국회에서 동북아 반전 평화를 위한 정책적 행보를 할 힘이 충분하건만 이재명 차기 대통령 만들기 이외에는 관심 밖이다. 절체절명의 전쟁 발발 위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97년 이후 교대로 두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두 집단은 많은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지배에 대한 노예적 굴종과 자본지배, 노동 개무시라는 두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전쟁의 소용돌이로 우리를 몰아넣는 미국의 침략 정책에 국힘이나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은 1도 없는 것이다.

 

혁명이냐? 야만이냐?

110년 전인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의 두발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지하조직인 흑수단 소속의 가브리엘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총탄으로 살해하면서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었다. 직접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심의 삼국협상 세력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 중심의 삼국동맹이 제국주의 정책을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하다 전쟁으로 갔지만 이 또한 피상적 이유이다.

진짜 전쟁의 원인은 고도로 발달한 독점자본주의가 불러온 경제파탄과 계급충돌 해결(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을 학살하고 무력화)하기 위해서 전쟁이란 수단을 사용한 것이었다. 족쇄가 풀린 자본주의가 악마의 맷돌처럼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과잉된 상품과 노동력으로 자본주의 작동이 한계에 봉착하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치장한 야만적 전쟁으로 몰아가서 자본주의 작동의 원활함을 회복한 것이다. 당시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적 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어떠한 행보를 하였던가? 독일 자본가들의 우두머리 카이저의 제국주의 침략의 동반자가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혼란기일수록 사태를 파악하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재 정세의 특징을 미국 일극 패권에서 다극으로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물론 미국 일극 패권에 맞서 다극화로의 전환은 일보전진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정세의 급진전 앞에서는 애매모호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이탈한 세력들은 미 제국주의 주도의 봉쇄와 간섭전쟁 아래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말았다. 혁명 주체의 오류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고립된 혁명과 제국주의 봉쇄에 의한 굴절이었다.

물극필반이라 했던가? 자본주의 최고절정기인 지금이야말로 세계적 규모의 혁명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1950년대 이후 세계의 대다수 사회주의자는 혁명 포기 대가로 개량을 취하려 했다. 현실성, 대중성이란 이름으로. 그러나 혁명 포기의 대가는 개량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정글 자본주의였다. 그나마 서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들도 정글 자본주의로 편입되었다. 1995년 민주노총의 건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시작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제대로 된 반성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무기력만큼 이 운동의 실패를 웅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은 우리가 쌓아 놓은 성과를 모두 휩쓸어 갈 수도 있지만, 거대한 연을 하늘 높이 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 국지전의 발발과 확산, 노동조합, 의회주의적 정치운동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혁명적 비상의 계기를 잡아 보자. 경제위기가 노동운동의 위기로 온 데에는 대중들의 책임도 있지만 노동조합-의회주의 운동에 매몰된 운동 방식도 뒤돌아 보고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개량적 양 날개를 접고 혁명적 양 날개를 활짝 펴서 세계적 소용돌이에 대응하자.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