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7일 화요일

[문화]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문화]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완전히 포위당했지만 죽기로 싸워 기세가 꺾이지 않던 초나라 군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은 신무기도 일기당천의 장수도 아닌 ‘노래’였다. ‘사면초가’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낳은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 이야기. 한나라 군에 포위된 채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의 노랫소리에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요즘 들어 이 고사가 자주 떠오른다. 곤봉과 방패와 물대포로 포위되었을 때보다 더 큰 공포와 무력감. 사방에서 자본의 노래가 들려오고, 그렇게 자본의 문화에 포위당한 채 무너져 가는 느낌이다. ‘에이, 또 오버한다…’라고 말하실 분도 계실 테지만…. 생각이나 했겠나? 노랫소리 하나에 그렇게 허무하게 군대가 무너질 줄.


그럼에도 공포나 무력감까지? 요즘 나의 사방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가 있다. 민주노조에 몇 남지 않은 문화패들의 노랫소리가 아닌 곡소리다. 집행부 재정비와 대의원대회가 이어지는 요즘, 며칠 사이 찾아간 현장의 문화패들은 공통으로 한숨을 푹푹 쉰다. ‘또 문화패 예산 없앤대요. 문화패 운영 안 한대요….’ 자주 그래왔고 그럴 때마다 문화패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방어해 왔지만, 이번엔 정말 초나라 군사들처럼 전의를 상실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민주노조는 아주 힘드니까. ‘이 힘든 상황에 한가하게 문화 타령이라니?’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을 만나 문화활동에 대해 말할 때마다 천덕꾸러기가 된 느낌이다. 며칠 전 한 노조에서 주최한 ‘민주노조에서의 문화패 활동’과 관련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가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토론회를 주최한 동지에게 ‘바쁘실 텐데 이런 것까지….’라는 말을 해버렸다. 뭐야…. 나도 초나라 군사가 되어 가는 건가….

아무튼 그럴 만하다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게도 민주노조는 매우 힘드니까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미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베트남이 승리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땅굴 전술인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좁은 지하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버티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호찌민은 곳곳에 비교적 넓은 공간을 공연장으로 만들게 했다. ‘무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그 순간에 한가하게 공연장이라니?’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토록 급박한 절체절명의 상황이기에 더더욱 한 칸의 무기고만큼이나 한 평의 공연장이 필요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터널에서 8년을 버틸 힘. 그것은 무엇보다 강력한 문화의 힘인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민주노조의 문화패는 바로 그 땅굴의 공연장 같은 존재이고 또 그래야 한다. 실제로 자본과 군사독재,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어용노조의 극악한 탄압 속에서도 민주노조의 꽃을 피워내고 민주노총까지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자 문화패라는 힘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공단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며 키워낸 노동자 의식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고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외국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가끔 얘기를 나눌 때면 모진 탄압 속에서도 한국 노동운동이 역동성을 잃지 않는 이유는 풍부한 노동자문화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 문화패가 지금은 민주노조에서 거의 천덕꾸러기 취급 받으며 소멸해 가고 있다. 물론 때가 되어서 자연스레 소멸해 가는 거라면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노동자 자본가 간 계급대립은 전혀 소멸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화하는 자본의 위기 속에서 더욱 격화하고 있지 않은가! 소멸은커녕 노동자문화의 힘과 문화패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호미로 땅굴을 파고 그 안에 공연장을 만들던 호찌민과 베트남 민중의 심정으로 이 사면초가의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볼 일이다. ‘예산이 없어서, 할 사람이 없어서, 본인들 노래하고 춤추는 걸 왜 노조가 지원해야 하냐?, 딱딱하고 구려서….’ 등 문화패를 없애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지양의 대상이지 폐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해서 본질을 따져 보자면, 우선 노동운동이 전망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계급해방, 세계해방이라는 운동의 전망이 사라지면 노동자는 계급적 존재가 아닌 자본주의의 한 구성원이라는 정체성만 남게 된다. 당연히 노동자계급문화는 어색하거나 불필요해지고 그 자리엔 본인들의 정체성과 더 가까운 대중문화가 채워지게 된다. 또한 문화패와 문화활동가들도 자신들의 활동을 성찰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계급적 문화활동이라는 목적의식성은 사라지고 공연단이 되어버린 채 관성적인 활동을 반복한다면 당연히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문화는 그저 엔터테인먼트라는 인식이다. 심지어 헌신적인 활동가들조차 그런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물론 문화에는 그러한 요소도 있지만 그럼에도 더 깊은 본질은 이데올로기다. ‘한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고 맑스가 말했듯. 노동해방은 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숨구멍 하나만큼이라도 파열구를 낼 때만 가능할 것이며 바로 그 숨구멍을 낼 송곳이 노동자문화이며 문화패이다,



[청년]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말.... 청년은 예비 노동자일 뿐

 [청년]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말.... 청년은 예비 노동자일 뿐

 

김경수 (대학생)

이젠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역대급 고용 한파'마저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청년실업 현상은 사회적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대학생들은 '캠퍼스 낭만'을 만끽하긴커녕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을 준비한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노력에 따른 보상을 약속한다.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삼성 같은 대기업에도 들어갈 수 있고,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될 수 있으며, 높은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사실은 통계만 들여다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청년층(15~29세)은 9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8만 9천 명 줄며 11개월째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은 46.5%로 8개월째 하락이 이어졌다.”

취업 준비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일자리는 가면 갈수록 줄어들어, 청년 중 피고용자가 절반이 채 안 되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이 사회진출을 하게 되는 시기인 20대 후반의 고용률을 봐야 한다고 지적할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상승세를 보인다. 그러나 다음을 보자.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21개월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용의 질을 고려할 때 이는 ‘착시효과’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20대 후반(25~29세) 청년 취업자 중 주당 취업시간이 36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단기간 취업자’ 수는 39만 3,315명이었다. 전체 20대 후반 취업자(252만 9,000명)의 15.6%에 해당하는 수치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배달업, 플랫폼 종사자 등 단기 취업자 수가 폭증하기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그 비중은 1.8% 포인트 늘었다.”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상승하고 있지만, 고용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대 후반 청년 취업자 중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단기간 취업자’ 수는 전체 20대 후반 취업자 중 15.6%로, 6명 중 1명에 달한다.


"회사 규모별로 살펴보면, 63.9%의 청년들이 3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했다. 1∼4인 규모의 직장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한 비율도 26.3%로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의 종사자 규모가 500인 이상인 경우는 7.7%에 그쳤다."

대다수 청년은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중소기업에서의 노동환경과 임금수준은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준에는 한참을 못 미쳐, 이들 기업은 청년들의 괄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대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어, 63.9%의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청년 학생들은 이제 뼈 빠지게 노력해서 학점을 관리하고, 온갖 자격증을 모으고, 인턴 경력을 쌓아도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 없다. 일부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우리 중 대다수는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전문직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결코 사회가 우리에게 들씌우는 비정규직과 실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독서실에서, ‘기업 서포터즈’에서, 인턴직에서, 대외활동에서, 학교 강의실에서, 시험장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취업은 안된다. 우리 중 대다수는 대기업·정규직·전문직 취직에 실패하고,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가 될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대기업ㆍ전문직 취직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처지를 자각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예비 노동자로서 사회로부터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주노동자] '불법 이주노동자 퇴출'이라니, 그들도 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

'불법 이주노동자 퇴출'이라니, 그들도 사람입니다

 

김헌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이 독일에 도착했을 때 독일 노동부장관이 했다는 이 유명한 말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켄 로치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우리 곁으로 왔다. 이름하여 ‘나의 올드 오크’. 원작은 ‘The OLD OAK’인데,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제목은 ‘나의 올드 오크’이다. 올드 오크가 영국의 어느 탄광 마을에 있는 유일한 펍(선술집)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내가 가고 싶은 우리 동네 펍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영화가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나의 올드 오크’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불법고용 근절을 주장할 때,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함께 투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구호가 불법이주노동자 퇴출이란 구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에다가 건설경기의 악화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건설노동자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이럴 수는 없다. 약한 고리를 붙들고 투쟁하는 것은 유의미하고 적절한 투쟁이기는 하나, 적의 약한 고리를 물고 늘어지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2023년 연초부터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을 받으면서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 터라,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서 읍소하면 동지들의 상황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이 멈춰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민주노조가 외치는 당당한 외침, ‘국경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외침이, 건설노조 동지들의 외침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만남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급기야 파업현장에 참여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함께 타고 이동하는 버스에 ‘불법이주노동자 퇴출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우리가 1월부터 4월까지 단속추방을 저지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비정규직 이제그만’ 동지들, 민주노총 동지들, 장애인 동지들을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동지들, 그리고 하루 파업을 결심하고 혹은 야간을 마치고 달려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출입국 앞에서 목이 쉬도록 외쳤던 ‘불법 사람은 없다!’라는 외침은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건설노조 동지(?)들이 출입국 앞에서 ‘불법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업하는 현장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세우고 등록ㆍ미등록을 확인한다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배격하고 추방하기 위해 공권력의 동원을 호소하는 건설노조(?)의 전술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자본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통해 건설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으로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본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 소모품을 치우기에만 급급한 건설노조 동지들은 한 때 건설노동자가 아니라 노가다 막장으로 살면서 소모품의 삶을 강요당하던 시절을 잊지 말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그렇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이 되지 않는 방법은, 등록노동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자본가의 법인 ‘고용허가제’와 출입국 관련 모든 법은 미등록노동자들이 등록노동자로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자본가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악법 ‘고용허가제’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라는 우리 운동의 대의를 실천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을 옮기지 말라는 악법을 엿 먹이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체류 기한을 넘기지 말라는 악법에 맞서 ‘엿 먹어라!’로 응수하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그들은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혹은 당당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기꺼이 미등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다. 강제 추방 단속에 혈안이 된 법무부와 그 하수인들은 자본가의 앞잡이가 되어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체포 연행하여 강제 구금 후 추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절규하는 것이다. 우리는 쓰고 버리는 종이컵이 아니다. 우리는 쓰다 버리는 걸레 쪼가리가 아니다.

미등록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이 자본가의 책동에 놀아나는 자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결국 자본가의 앞잡이이다. 너희는 외래종이라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너희들은 건설노조의 가면을 쓴 자본가의 앞잡이들이다.’

자, 이제 우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미등록노동자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힘이 없어서 자본가의 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무기가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감히 우산을 그 로고로 쓰지 않는가? 이 우산 아래 들어오면 그 어떤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그게 거짓 선동일 리 없지 않은가?

다시 들어보자.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결국 노동력으로 소모되지 않고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이미 와 있는 사람으로 함께 사는 방법은 우리에게 있다.

켄 로치가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함께 고민해 보자고……. 다만 그 소주를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문 걸고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함께 둘러앉아 마시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자고…….



[청년]

[국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최저임금제 파기와 계급투쟁의 격화

 [국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최저임금제 파기와 계급투쟁의 격화

 

번역 : 김의진

 2023년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파기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최저소득의 93%가 실질임금보다 추가 소득에 기초하여 있으며, 단체교섭 협약의 파기와 함께 전례가 없는 빈곤 속으로 추락했다.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여태껏 가장 불안정한 존재 조건에 처했던 적은 전혀 없었다. 2023년 11월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2022년 11월의 2배인 359%(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통계 기준)를 기록한 데에 더하여, 국정 최저임금은 18달 동안 월당 4달러보다도 적은 130 불리바르로 동결됐다. 이는 세계에서 베네수엘라 노동력의 가치를 가장 낮은 축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 기간에, 거의 365일 동안, 2018년 10월에 체계적으로 도입했던 노동 탈규제 정책을 강화했다. 이는 대다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추가급여와 도시락으로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상황을 조성했다. 국가통제의 작동구조는 정부 스스로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과 함께 우리를 인도했고, 노동자계급이 구조적 위기와 제국주의자들의 고압적인 조치들의 모든 무게를 온전히 지도록 강제하고 있는 사회적 참사에 직면한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시위를 막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헌법과 노동 기본법에 조응하는 임금정책 없이,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반과 함께, 파업할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 없이, 치명적인 산재사고를 더욱더 유발하는 노동현장의 보건 및 안전규제에 대한 범죄적 위반과 함께, 노동자계급은 엄청난 빈곤과 구걸에 준하는 상태에, 전례가 없는 수준의 초과 착취에 처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국가 예산법은 근로민중의 삶의 질 개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선순위들을 부과하고 있다. 자본의 특권은 오히려 강조되고 있고, 재원들은 대중선동과 선거조작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기생적인 지배계급은 국가수입의 극심하고 불평등한 분배의 막대한 수혜자가 될 것이다. 상당한 수준의 임금과 연금을 책정하기 위한 예산안은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추가급여―사회적 연금과 휴직금, 소득, 크리스마스 상여금, 기타 법률적, 계약상의 보상금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만 꾸준하게 지급할 뿐이다.

 

계급투쟁의 격화

지난해는 교사들과 기타 교육노동자들의 수 달 동안 이어진 대규모 시위들―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교직원들의 단체교섭 협약 체결을 요구했던―로 시작됐으며, 당국에게서 연말 추가급여의 완전한 지급을 요구하는 산발적인 몇몇 파업들로 끝나가고 있다.

불만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으며, 임금과 연금에 의존하고 있는 연령층들의 물질적 생활 수준의 심각한 악화를 고려한다면, 이는 2024년 초에 파업과 함께 표출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어느 누구도 임금이나 연금으로 살아가지 않으며, 그중 대다수는 생존하기 위해 무수한 공식적, 비공식적 노동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 결과는 가족 돌봄제도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우리의 억압적 현실을 위한 바꾸기 위한 투쟁에서 대중적 참여를 촉진하는 사회적, 문화적, 조직적 활동의 구현에 있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또 다른 경향은 정부의 증가하는 권위주의와 독단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범죄화와 정리해고, 엉터리 해고로 표현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당국의 승인과 함께, 노동자들의 개인적, 집단적 의사를 억누르기 위한 고용주와 정부의 압박과 함께,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기 위한 사법권력의 활용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아 노동자계급과 모든 인민의 통일적인 투쟁을 확장하고, 노동조합들과 은퇴자, 연금 수령자 협회들을 분열시키고 와해시키는 모든 요소를 내려놓아야 할 임무를 지고 있다. 올해 선거를 맞아,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조직체들을 조종하기 위한 정부와 우익 야당들의 발악은 거세질 것이다. 인간적, 사회적 권리와 노동권의 복원을 위해 투쟁하고, 오직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며 노동자계급과 전체 인민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정책들을 파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인민들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지금 보다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원제: Class Struggle Sharpens in Venezuela as Minimum Wage is Dismantled. (ML-Today)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