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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7일 화요일

[청년]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말.... 청년은 예비 노동자일 뿐

 [청년]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말.... 청년은 예비 노동자일 뿐

 

김경수 (대학생)

이젠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역대급 고용 한파'마저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청년실업 현상은 사회적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대학생들은 '캠퍼스 낭만'을 만끽하긴커녕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을 준비한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노력에 따른 보상을 약속한다.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삼성 같은 대기업에도 들어갈 수 있고,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될 수 있으며, 높은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사실은 통계만 들여다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청년층(15~29세)은 9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8만 9천 명 줄며 11개월째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은 46.5%로 8개월째 하락이 이어졌다.”

취업 준비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일자리는 가면 갈수록 줄어들어, 청년 중 피고용자가 절반이 채 안 되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이 사회진출을 하게 되는 시기인 20대 후반의 고용률을 봐야 한다고 지적할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상승세를 보인다. 그러나 다음을 보자.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21개월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용의 질을 고려할 때 이는 ‘착시효과’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20대 후반(25~29세) 청년 취업자 중 주당 취업시간이 36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단기간 취업자’ 수는 39만 3,315명이었다. 전체 20대 후반 취업자(252만 9,000명)의 15.6%에 해당하는 수치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배달업, 플랫폼 종사자 등 단기 취업자 수가 폭증하기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그 비중은 1.8% 포인트 늘었다.”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은 상승하고 있지만, 고용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대 후반 청년 취업자 중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단기간 취업자’ 수는 전체 20대 후반 취업자 중 15.6%로, 6명 중 1명에 달한다.


"회사 규모별로 살펴보면, 63.9%의 청년들이 3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했다. 1∼4인 규모의 직장에서 첫 일자리를 시작한 비율도 26.3%로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의 종사자 규모가 500인 이상인 경우는 7.7%에 그쳤다."

대다수 청년은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중소기업에서의 노동환경과 임금수준은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준에는 한참을 못 미쳐, 이들 기업은 청년들의 괄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대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어, 63.9%의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청년 학생들은 이제 뼈 빠지게 노력해서 학점을 관리하고, 온갖 자격증을 모으고, 인턴 경력을 쌓아도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 없다. 일부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우리 중 대다수는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전문직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결코 사회가 우리에게 들씌우는 비정규직과 실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독서실에서, ‘기업 서포터즈’에서, 인턴직에서, 대외활동에서, 학교 강의실에서, 시험장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취업은 안된다. 우리 중 대다수는 대기업·정규직·전문직 취직에 실패하고,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가 될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대기업ㆍ전문직 취직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처지를 자각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예비 노동자로서 사회로부터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청년] 청년 노동자 죽이는 윤석열 정권의 ‘MZ’ 타령



제7호 [청년]

청년 노동자 죽이는 윤석열 정권의 ‘MZ’ 타령

 

6월 8일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서울 중구 더플라자 서울대학교총동창회 강연에서 “한국노총이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 방침으로 간다면 총연맹 체제의 대표성은 없지만 ‘MZ세대’ 중심인 ‘새로고침노동협의체’나 한국노총 내 지역·산별 조직과 계속 대화하겠다”다고 밝혔다. ‘MZ’ 거론하며 노동운동을 탄압하고자 하는 이러한 기조가 우익 정치인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

이는 독점자본의 정권인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였다. 3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은 “모든 정책을 MZ세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주 최대 69시간 근로(‘근로시간 유연화’)를 정당화하였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그들 예상 밖으로, 그들이 ‘MZ’라고 일컫는 청년층의 반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에도 윤석열은 계속 ‘MZ’를 거론하고 있다. ‘MZ’가 윤석열 정권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MZ’를 파는 정권의 행태로부터 ‘MZ’ 타령의 본질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자기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따져보려고 한다. 청년 역시 자기 삶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자기 나름대로 ‘여러 방면’에서 찾는다. 이 ‘여러 방면’은 경험과 사색이 쌓일수록 ‘하나’로 전화하게 되는데, 이 ‘하나’가 자본주의이다. 청년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실업, 빈곤을 수반하는 고통의 근원임을 파악해 나간다. 자본가가 현재의 조건에서 이러한 인식 발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를 ‘여러 방면’ 또는 ‘다른 하나’로 호도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대론이다. 친자본 학자, 언론인은 여러 나이대를 근거 없이 묶어 청년이 겪는 사회모순 근원을 그 전 나이대가 ‘파이’를 많이 가져간 것에 둔다. 이를 그럴싸한 것으로 꾸미려고 온갖 ‘학술적 방법’도 동원한다. 이렇게 세대론은 사회모순에 관한 본질로의 접근을 차단키 위해 만들어졌다. 이 방법에서 청년이 겪는 사회모순 근원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나올 수 없음은, 이를 해결할 일말의 방도조차 나올 수 없음은 자명하다.

윤석열 정권의 ‘MZ’ 타령이 겨냥하는 것은 그 어떤 세대가 아니라 정확히 계급이다. 기업인 청년, 부르주아 자녀인 ‘명문대’ 재학 청년을 내세운 후 그들을 청년 일반으로 각인시켜 그들의 요구를 청년의 요구로 왜곡 후, 이를 ‘MZ를 위한 정치’라고 선전하며 반노동 정책을 밀고 나간다. 결국, 세대론은 세대를 거론하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계급투쟁 수단이다. 즉 ‘MZ’ 타령은 청년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한동백

 

2023년 4월 19일 수요일

청년에게 필요한 건 자본가들 손목 비틀 투쟁 요구

 자본가 주머니를 열어 모든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자!


“면접에서 떨어지면 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는 자책감에 시달려요.” 

“대학 졸업도 미루고 취업 준비 중인데 이력서 수십 개를 넣어도 연락이 안 와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 실업은 실로 만성적인 문제다. 최근에 서울시 청년 4.5%인 약 13만 명이 고립·은둔 상태라는 통계가 나왔다. 

'청년 50만 명, 구직도 취준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

역대 최대라는 통계도 많이 소개된다. 이것은 통계청이 15세에서 29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을 쉬었다는 경우가 39.4%,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가 18.1%였다. 


부르주아 언론들은 논평가를 초빙해 해법을 떠든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하던 낡아빠진 헛소리를 재탕하고 또 재탕한다. KBS에 출연한 논평가는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기업이 신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지껄였다. 

지배계급은 은근히 ‘청년들이 힘든 일을 안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기업에 돈을 뿌릴 명분을 찾는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천대받기 싫으면 대학을 진학해 오만가지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한 것은 국가였지 않은가?

장기 불황에 빠진 대한민국 자본가들은 국가가 주는 돈은 챙겨 먹고 투자는 할 생각이 없다. 

미래의 독점적 지위를 위해 치킨 게임을 벌이는 일부 기업들 말고는 당장 이윤 양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이미 많은 청년은 불합리한 상황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대학에서 복수 전공은 물론 취업을 위해 대학을 두 번씩 가기도 한다. 생활비 대출을 갚으려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하고, 전공과 관련한 일자리가 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버틴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을 시켜준다기에 공장에서 이 악물고 일하는 청년도 많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못 버티면 마음에 병이 나서 ‘고립·은둔’이네, ‘쉬었다’는 통계에 잡히는 것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논평가들의 헛소리가 아니다. 자본가들의 손목을 비틀 ‘투쟁의 요구’다. 그것은 ‘일자리 나누기’와 ‘생활임금 쟁취’에서 시작한다. 일감을 나누어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일자리를 만들자. 

“자본가 주머니를 열어 모든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자!”

이것은 트로츠키가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2차 대전 시기 혁명을 위해 제출했던 강령이다. 

이 요구는 오늘날 노동자계급 청년을 규합하고 전체 노동자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요구로써 여전히 생생하게 와닿는다. 

   이효정(노동자 투쟁 편집위원)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