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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20호에서 이어짐)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기억하시는지? 신라를 배경으로 미실과 선덕여왕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왕족은 아니었으나 실질적 권력을 가졌던 미실이 권력싸움에서 패한 후, 결국 왕이 된 선덕을 찾아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 신라인 중에서도 선덕을 따르는 자, 미실을 따르는 자, 등 여러 집단으로 나눌 수 있지만, 횡으로 나누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딱 두 개로 분류된다. 당신과 나는 (서로 적대적으로 싸우는 것 같지만) 지배하는 자로서 같은 편이다.”

내겐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미실이 말하는 ‘세상을 횡으로 가르는 선’, 그것을 우리는 ‘계급’이라고 한다. 노동자 동지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노동조합 교육을 할 때 ‘계급’ 혹은 ‘계급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진짜 신라시대 사람 보는 듯 한 눈길을 종종 느꼈던 터라, 드라마를 통해서일지라도 1천5백 년 전 지배계급의 일원이 지금 사람들에게 진실을 실토하는 듯한 그 장면이 사이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조합원들 계급의식이라곤 1도 없어요.”라며 그런 인식(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내용을 부탁하는 동지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교육 내용이 좋긴 한데... 그 ‘계급’ 얘기는 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언제 적 계급 얘기요? 하하” “10년 넘게 노조 활동하며 여러 교육을 받아 왔지만 ‘계급’얘기는 처음 듣네요”라는 식의 반응을 더 많이 겪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미실이 말했듯 계급이란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의미한다. 바야흐로 ‘국민주권’시대에 같은 국민 안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니? 조선시대처럼 강상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노동자는 자본가와 법률적으로 대등한 관계라고 나오는데 ‘계급’ 타령하고 있는 꼴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보일 일이다. 뭐 지금도 예로 든다는 것이 무려 1천5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15년 전 드라마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름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장면을 현대물로 재구성 해봤다.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실권을 장악한 누군가가 그를 탄핵하고 권력을 잡으려는 또 다른 권력자와 나누는 대화로 가정해 보자.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등등 또 그 중에서 소위 1찍(민주당 지지자), 2찍(국민의 힘 지지자) 등등 이렇게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지만,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딱 두 개로 나뉩니다. 어차피 우리는 권력을 나눠 갖고 지배하는 자들로서 같은 편입니다.”

음... 이 정도면 똑같은 서사구조로 지금 현 시점을 다룬 현대물 장편 시나리오를 쓴다 해도 시청률 꽤나 나올 듯 하지 않으신지?

문화적으로 답해 보는 99%인 우리의 집단으로서의 정체성. 그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피지배계급으로서의 계급성이다. 법률과 제도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계급지배 사회이고 노동자는 그 사회의 피지배계급이라는 동일성을 가진 집단이다. 따라서 다른 문화와 변별 되는 노동자 문화의 성격 역시 그 첫 번째가 ‘계급성’이다.

그럼에도 ‘계급’을 말하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 희한하게도 사회적으로는 대체로 부정되는(당사자들에게서 조차) 계급 담론이 문화의 영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기생충이라는 한국 영화가 국제적인 상을 휩쓸며 전 세계를 달굴 때,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계급 문제’에 주목했는데. 그에 대해 ‘언제 적 계급 얘기냐?’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는 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물론 문화예술 영역과 현실 영역을 별개로 생각하는 형이상학적 인식이 이유이긴 하겠으나, 그보다 의식적인 긍정, 부정 여부와 관계없이 ‘계급’이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 나온 김에 기생충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앞서 말한 미실의 대사와 기생충 속 자본가(극 중 박사장)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선’이다. 미실이 세상을 횡으로 나누는 선의 위와 아래를 말하듯 기생충 속 자본가 역시 습관적으로 그가 고용한 이들(노동자)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한다. 이 둘이 말하는 ‘선’은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과거에는 보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차이가 있을 뿐. 흔히 ‘유리 천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사는 노동자에게 계급의 선은 그저 공간적 분리와 진입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과는 다르다.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채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이들이 노동자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 역시 독점하게 된다. 트럼프의 저 유명한 유행어 ‘You’re fired(너 해고야)’가 말해주듯 자본가계급은 한손으로는 노동자의 목줄을 쥐고, 한 손으로는 그러한 힘을 물리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국가를 쥐게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찌 자신의 목구멍을 장악한 이들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자신의 목구멍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 가족들의 목구멍도 모두 포도청이니 말이다.

맑스가 말했듯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고 지금도 그렇다. 미실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이들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그들의 지배대상이었던 백성들이었고, 기생충 속 박사장이 ‘선을 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의 표현이다. 언제나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으로 각성하고 단결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자본가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서 저들은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각성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해서 노동자 문화는 그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가 계급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마치 보이진 않지만 땅 밑에서 들끓고 있는 용암처럼.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문화] 임을 위한 행진곡

 

우지용 (소리꾼)

9월 28일, 김제 집강소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노래로 듣는 한국현대사’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강사 우지용(소리꾼)동지의 강의 원고 일부입니다. 긴 원고를 보내왔으나 한정된 지면 관계상 한 꼭지만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는 군부독재 타도, 민주화운동, 교육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이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 (1980년 12월)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서 가사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18 기념식 때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을 때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군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노래는 나중에 대만과 홍콩, 캄보디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가나 민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불려져 아시아 민중가요로 정착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82년에 제작된 ‘넋풀이 -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빛의 결혼식>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서 목숨을 잃은 윤상원(당시 30세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과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박기순(당시 21살)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이다. 이 노래는 ‘빛의 결혼식’에서 윤상원과 박기순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는데, 두 열사가 ‘지금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이 더할 수 없는 비장감을 준다.

 

광주항쟁의 빛, 윤상원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진군해 오는 계엄군처럼 망설임 없이, 가난한 예술의 도시 광주를 뒤덮어 오고 있었다. 연민의 시간이었다. 서른 살의 청년 하나가 한 무리 고등학생들과 여대생들 앞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돌아가십시오. 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들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1980년 5월 23~24일 상황을 알리는 한국 주재 외신 기자 서신
<르몽드> 기자가 물었다.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까?”
“일부 수습위원들이 군과 협상 중입니다만 성과는 전혀 없습니다. 계엄군은 무조건 무기 반납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박만 일삼는 그들과 무슨 협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볼티모어 선> 기자가 물었다.
“우리 같은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계엄군은 시내로 진격해서 광주를 탈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대학생 투사들의 무장은 계엄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데, 저항하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항복할 겁니까?”

윤상원은 그 인상 깊은 눈으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띤 채 짧게 답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죽음은 밤의 어둠이 걷히기 전에 이들을 덮쳤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이었다. 도청 건물 2층 민원실에 남아있던 윤상원은 복부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들불야학의 꽃 박기순

전남 보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박기순은 노동자, 농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따뜻한 마음의 처녀였다. 전남대 국사교육과 3학년 재학 중이던 이해 봄부터 광천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 준비에 앞장서고 있었다. 광천동 천주교회의 교리실을 빌리고 들불야학이라는 이름도 그녀가 지었다.

늦게까지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방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방문 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다. 박기순의 죽음은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권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장례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가수 김민기가 선창하는 <상록수>를 따라 부르며,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저 들판의 소나무처럼 푸르렀던 그녀의 삶을 애도했다.


빛의 결혼식

윤상원이 사망한 지 
2년이 되어가던 1982년 2월 20일. 군사독재의 폭압처럼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광주항쟁으로 사망한 이들이 묻힌 망월동 공동묘지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이었다.

양가의 가족 친지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눈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영혼의 결혼식은 노래극 <빛의 결혼식>으로 절정을 이뤘다. 특히 맨 뒷부분에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장하면서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참석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패배할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웠던 광주항쟁의 주인공들을 기리는 노래극 <빛의 결혼식>은 언론도 출판도 통제된 1981년 봄, 문화행사를 통해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자는 뜻으로 뭉친 광주지역 문화인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남녀가 영혼결혼식이 끝나고 자신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산 자들을 격려하고 투쟁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노래였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황석영의 집 밀폐된 골방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된 노래극은 이날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녹음테이프에 복사되거나 악보만으로, 혹은 구전으로 전국으로 번져 나가 민주화 운동권에서 제2의 애국가처럼 불리게 된다.

오랫동안 재야에서 불리던 ‘묏비나리’는 1990년 시집 ‘젊은 날’에 실림으로써 정식 출판물로 수록되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1991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음반에 공식적으로 실리면서 ‘불법’ 딱지도 떼게 되었다.

2024년 9월 1일 일요일

[문화] 1이 99인 상대를 어떻게 이기고 지배하는 거지?

― 절대다수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가 무엇인지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우리가 99%다” 이 구호를 기억하시는지? 소위 ‘미국발 금융위기’라 불리는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그 여파로 이어진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를 통해 확산된 구호다. 꽤 명성을 얻으면서 우리 투쟁 현장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었던 이 구호가 그렇게나 인기를 끈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단박에 그 의미가 와 닿고,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점 등이 그 이유지 싶다. 내 식으로 받아들이자면 자본주의라는 계급지배 체제에서 지배계급은 단 1%이고 99%가 (피지배계급인) 민중, 바로 ‘우리’라는 것. 따라서 세상은 절대다수인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외침이다.

심히 단순한 이 메시지에 가슴이 웅장해지기까지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이 참으로 새삼스러웠기 때문일 거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에, 그나마 모진 목숨 이어가려면 평생 채무노예의 삶을 강요받아야 하는 것이 공황기 노동자 민중의 삶이다. 우리는 그 고통을 그저 개인의 팔자소관으로 여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운이 없어서, 혹은 내게 문제가 있어서 당하는 불행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각각의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을 땐 그렇다. 그 와중에 우리가 99%란다. 그걸 누가 몰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알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식하지 못하도록 훈련되고 길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수밖에.

아무튼 ‘나’라는 개인이 ‘우리’가 되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겪는 고통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도나도’ 겪고 있었고 따라서 팔자소관도, 개인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판이 뒤집힌’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절대다수인 ‘우리’가 아니라 극소수 지배계급의 의지대로 돌아가는 그 세상 말이다.

그런데 뿌듯해야 할 이 구호를 접할 때마다 오히려 기운이 쭉쭉 빠지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 없으신지? 나는 종종 그랬다. ‘그래…. 우리가 99%인데 왜 여태껏 저 1%를 못 이긴 거냐….’ 전설 속 싸움 이야기라고 해봐야 17 대 1인데 하물며 99대 1의 싸움이라니. 그런데 언제나 그 99가 1에 지배됐다니. 1도 못 이기는 99인 우리는 당최 뭐냐 이 말이지….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가 99라고 아무리 외쳐댄들 공허하기만 할 뿐이지 않겠나.

답이 안 나올 땐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란 말이 있다. 내가 1이라면 99인 상대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물리적으로는 소수가 다수를 이길 수 없으니 언제나 내가 다수가 되고 상대가 소수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명이 100명과 싸워 이기려면 10대 1의 싸움을 백 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100을 어떻게 각각의 1로 만들어 놓을 것인가이다. 저들 지배계급은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99의 피지배계급을 지배할 수 있었다. 각각으로 쪼개진 99가 하나의 99가 된다면 저들 1은 결코 99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우리 입장에서의 관건은 저들의 역이다. 어떻게 각각으로 쪼개지지 않고 하나의 99가 될 것인가?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외쳐대기만 하면 진짜 하나가 되는가? 우리가 그렇듯 저들 자본도 늘 ‘노사는 하나’라고, 회사는 한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라고 말하는 99 각각은, 사실 1에 대한 99로서의 ‘우리’보다는 우리 회사, 우리 지역, 우리 동문 등등을 더 진짜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느끼게 하는 요소는 ‘우리’라는 집단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은 다른 집단과는 변별적으로 존재하는 구성원 간의 동질성이고 그 바탕 위에 형성된 것이 바로 그 집단의 (고유한) 문화이다. 1과 99 사이의 변별성은 다름아닌 계급이다. 99가 구호가 아닌 진짜 하나로서의 99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피지배계급으로서의 문화와 그에 대한 공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잠시 돌아왔지만, 이 글은 노동자 문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 지면을 통해 노동자 문화의 존재 여부에 관해 얘기했었다. 그러나 실존 여부건 정체성이건 그것을 왈가왈부해야 하는 이유를 수긍할 수 없다면 모두 헛짓이지 않겠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노동해방 세상으로 가는 길은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이 계급으로서의 독자적인 자기 정체성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당연히 자본은 절대로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각성하게 해선 안 된다. 바로 이 계급투쟁의 중심에 문화가 있다. 노동자가 계급으로서의 독자적 자기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눈앞에서 절절하게 벌어지는 물리적 투쟁으로 외화 되지 않기에 잘 못 느낄 뿐, 그 이상으로 치열한 계급투쟁 그 자체이다.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해 한글 말살, 창씨개명 등 문화통치에 열을 올렸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지배의 대상이 스스로 고유한 그들만의 문화를 옹골차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지배할 수 있겠나?

해서 이제 ‘우리가 99%다’라는 구호를 넘어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가 무엇인지 답해 보자. 문화적으로다가.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노동자교양예술]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맑스주의 혁명가 이육사의 혁명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아석

이육사(1904~1944)는 서정시를 쓰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맑스주의자였다. 육사는 1932년 아나키즘에서 맑스주의로 전화해 가던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에서 7개월간 수학하고, 졸업식에서 공연한 연극 <지하실>의 대본을 썼는데, 이 연극은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그린다.

경성의 모 공장 지하실의 어두운 방에서 노동자 일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으로 ‘모월 모일 우리 조선혁명이 성공하다’라는 보도가 있고, 계속하여 용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평양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부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하는 방송을 해 오고, 마침내 공산제도가 실현되어 토지는 국유로 되어서 농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식당, 일터, 주거 등이 노동자 등에게 각각 지정되어 완전한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가 실현되었으므로 농민, 노동자는 크게 기뻐하여, ‘조선혁명성공만세’를 고창하고 폐막하였다. -「김공신 신문조서」(제2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1, 1997, pp. 149~150.-

1934년 4월 『대중』 지에는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이란 글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소개하였다. 1936년에는 「노신추도문」을 써서 노신의 리얼리즘 문학이 사회주의 혁명을 고취시켰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1936년 12월에 『풍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발표한다.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하고 그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厭離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엔 단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이육사(2004), 『이육사 전집』, pp. 63-63, 깊은 샘]

 

*군수야업(軍需夜業). 군수공장의 야간작업. 한국인들은 군수공장에 징용되어 야간에도 작업을 했다. *행상대(行商隊).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행상. *옥야천리(沃野千里). 옥토가 끝없이 넓은 들판. *풍양(豊穰). 곡식이 잘 익어 풍성한 모양. *앵속罌粟. 양귀비를 뜻한다. 원문에 嬰粟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앵속의 오식으로 모두 보고 있다. *찬연(餐宴) 눈부시게 밝다. 영광스럽고 훌륭하다. *염리厭離. 육사가 한문을 쓰지 않았기에, 불교에서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싫어하며 떠나는 것으로 추정.

사회주의 혁명가 이육사는 3연의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인 식민지 조국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하기 원한다. 이 새로운 지구는 2연에서 노래한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이다. 새로운 지구를 건설할 이들은 4연의 군수야업의 젊은 동무들”, “행상대”, “화전에 돌을 줍는 백성”, 노동대중으로, 이들이 5연의 “지구의 주재자로/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지”고 “옥야천리를 차지”한다. 이들은 6연의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본다. 이 혁명 과정에서 7연의 과거의 사상을 대변하는 “신(神)”은 새로운 별로 가는 노동대중 “이민”에 낄 이유가 없다. 혁명은 8연의 “한 개의 별”에서 시작하지만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과 모든 별”로 가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육사가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육사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육사의 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통해 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좌파’적 해석들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육사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1934년 7월 안동경찰서의 육사에 관한 기록에도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었음. 또 그 무렵은 민족공산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으로 나와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0, 1997, p. 178.) 육사는 사회주의 조직활동을 이어가다가 43년 7월 체포된 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2024년에 이육사의 1936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를 읽는 것은 학창 시절 독립운동가로만 알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혁명시를 소개해 보았다.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