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확전 기도, 이란의 보복 수위와 미국의 태도 촉각
― 이스라엘 내부 네타냐후 사퇴와 조기 총선 요구 확산
편집국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초강경 정책을 펴왔다.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팔레스타인에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고 폭력적 시위 진압해 왔다. 경제위기 등으로 인한 민중들의 저항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자지구를 공습하여 모면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해안까지 봉쇄했는데, 이는 가자지구 연안에 발견된 석유와 천연가스전의 강탈과 연관되어 있다.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에서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전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팔레스타인 관할인 가자지구 연안에도 엄청난 매장량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러시아와 협정을 맺고 석유와 가스 자원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4년 이스라엘 10대 소년3인 실종ㆍ사망사건을 빌미로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고 “가자지역에서 발견된 석유와 가스 자원을 독점적으로 탐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스전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가자지구 해안을 봉쇄했다. 하마스의 공격을 빌미 삼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진정한 이유를, 가자 연안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강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https://www.pcmn.kr/11)
한편,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마스와의 전쟁은 정치적 위기를 전쟁으로 돌파하려는 기회로 삼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의 파장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 공격을 단행했다. 이때는 미국의 중동 지배전략 차원에서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은 수교 협상을 중단시켰다. 미국의 중동전략에 파열구가 난 셈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 공세에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헤즈블라, 예멘의 후티군이 하마스 지원에 나섰다. 그러자, 4월 1일,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영사관을 폭격하여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 최소 7명이 숨지게 했다. 4월 13일, 이란은 이스라엘에 무인기와 미사일을 350기를 발사하여 보복에 나섰다. 이로써 팔-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립 확장되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이란을 자극하여 미국을 끌어들여 확전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을 미리 알리는 등 확전을 피하려고 이른바 ‘약속 대련’ 성격에 한정했다. 7월 31에는 또다시 이란 새 대통령 축하를 위해 방문한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를 이란의 한복판, 테헤란 숙소를 타격하여 피살했다. 이란은 보복공격을 공언한 가운데 확전을 피하려는 고심이 엿보인다. 8월 7일, 이란 대통령은 ‘전쟁 피하기를 원한다면, 가자와 휴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카타르의 군주인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는 8일 공동성명에서 가자 전쟁을 끝내려는 ‘최종적인’ 휴전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한겨레 8.9) 그러나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휴전에 관심이 없고 오직 하마스의 궤멸, 더 나아가 이란과의 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도 이란도 전쟁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
팔-이 전쟁, 중동 전쟁에 주춤할 수밖에 없는 미국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7월 실업률은 4.3%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이자 전월치인 4.1%를 웃도는 수치다. 비농업 부문 고용도 예상치에 크게 못 미치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공적 부채는 미국경제의 뇌관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 연방정부의 부채 부담은 26조 2천억 달러(약 3경6천조원)에 달한다. 2년 새 3조9천억 달러 늘어난 것으로 미국 GDP의 97.3%다. 미국경제가 대규모 연방 예산과 상품 무역의 ‘쌍둥이 적자’ 때문에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상당 부분이 중국에 넘어간 후 중국이 무역 흑자를 통해 미국에 투자를 늘리고, 이것이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군사적 무력과 달라(돈), 그리고 계략으로 세계를 지배ㆍ개입해 온 미국이 2008년 리먼사태 이후, 공황구제를 위해 무한정 달러를 찍어내서 유지해 왔지만, 인플레와 세계경제 여건의 변화로 인해 한계지점에 봉착한 것이다. 국지전을 만들어 무기를 팔아도 직접 전쟁에 나설 수는 없는 형편이다.
반전ㆍ평화 행동이 전쟁을 막는 국제연대다
이스라엘 민중들은 네타냐후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면 격렬한 시위기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역시 대학가에서 이스라엘 규탄과 반전시위가 확산되었다.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각 후보 진영에서는 전쟁반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1965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이 확대되는 것에 반대하여 미국 본토와 세계 각국에서 전쟁반대 시위가 번져 나갔다.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민주당)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베트남 전쟁 종식과 징병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당선되었다. 닉슨 대통령은 반전 여론에 힘입어 1969년 4월부터 베트남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국제연대는 곧 가열한 반전ㆍ평화시위를 조직하는 것이다.
[경제]
일본 기준금리 인상 발 금융발작 통화거품 취약성 보여줘
신재길
8월 초 일본은행(일본 중앙은행, JOB)의 정책 변경과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이 급등락을 촉발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대량으로 풀린 통화 거품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통화 거품의 취약성은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정책 변경을 시사하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요동친 탓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경제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일본은행은 경제 회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내렸다. 이에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아 외화를 사두거나 금리가 높은 나라의 예금·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투자자들은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라고도 불렸다. 와타나베라는 성(姓)이 흔하고 투자자 중에 주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거래는 외환·금리·세금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만큼 금리나 화폐가치의 방향이 바뀔 때 급격히 청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검은 금요일’ ‘검은 월요일’로 불린 최근의 아시아 증시 폭락의 원인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지목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일본은 올리고 미국은 9월 인하를 시사하면서 엔화 강세 전환이 예상되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대거 이뤄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엔 캐리 규모 추산은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유비에스(UBS) 일본법인은 지난 7일 글로벌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5천억 달러에 이르렀다가 최근 2~3주 사이 50%가 청산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도이체방크 추산은 무려 20조 달러(약 2경 7천조 원)다. 엔 캐리 자금 규모가 추정 기관에 따라 5천억 달러에서 20조 달러로 널을 뛰고 있는 셈이다. 엔화는 30년 넘게 이어진 일본 중앙은행(BOJ)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대표적인 캐리 트레이드 수단으로 활용 되어왔다. 전문가들은 2021년 말 미국이 양적완화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그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일본은행의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0.1%에서 0.25%로 인상하고 추가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 엔-달러 환율이 3거래일 사이 3.9% 급락(엔화 가치 급등)하여서 한 달 전만 해도 달러당 162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이 140엔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세계 금융시장에 쇼크를 발생시켰다. 이에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가 8월7일 오전 “금융자본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시장 안정에 나섰다.
규모와 자금 흐름이 손에 잡히지 않다 보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여부나 그 규모와 무관하게 청산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투매를 불러왔을 거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2000년 닷컴의 주식거품 붕괴, 2008년 파생상품 거풍 붕괴에 이은 총체적 거품을 만들고 있는 통화 거품 붕괴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통화 거품의 붕괴는 아마도 전 세계 통화 거품의 가장 약한 고리인 엔화에서 터지지 않을까 생각 든다.
2008년 위기와 팬데믹 시기에 엄청난 통화가 풀였다. 이에 인플레이션이 폭발하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일본만은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5.5%까지 인상하였는데도 일본 기준금리는 0.1%에 머물러 있었다. 달러 강세 엔화 약세의 기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꾸고 이 달러로 미 국채나 다른 달러 표시 자산을 구매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엄청난 규모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긴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엔화를 통해 달러를 전 세계에 계속 공급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은 일본 GDP의 14배 정도의 통화를 발행했다고 한다. 이는 미 달러가 미국 GDP의 2.5배 정도 발행한 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발행한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 발행량의 차이는 달러 대 엔화 약세의 기본적 요인이다. 일본은 일본은행이 일본 장기국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일본재정을 일본은행이 엔화를 찍어 감당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앙은행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일본은행은 10여 년 해오고 있었다. 엔화가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것이다. 엔화 폭락을 막기 위해서는 너무 많이 풀린 엔화를 축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국채는 발행하지 않고 금리는 올려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행은 7월 말에 국채 매입을 줄이고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겨우 0.25% 금리 인상으로 세계 금융시장에 쇼크가 일어났다. 결국 일본은행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긴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지금 일본은 금리를 현상 유지하자니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고 금리를 올리자니 세계 금융시장이 발작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통화 거품의 붕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거나, 긴축으로 모든 자산의 가격 폭락이 일어나가나이다.
[뉴스해설]
베네수엘라. 차베스주의의 ‘전락’과 그 교훈
진상은(陳祥殷)
7월 28일에 치른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신흥 집권 부르주아 분파와 미제(美帝)를 등에 업은 전통적 부르주아 분파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그리고 특히 수많은 노동자ㆍ인민대중이 선거 결과를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면서, 베네수엘라의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거니와, 지금 우리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현 사태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인데, 극우 언론은 물론 사실상 부르주아 언론 일반이 현 사태를 기화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면서, 사태의 원인은 사회주의라고 왜곡ㆍ비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미치광이(El Loco)’라고 부른다는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는, 역시 미치광이답게, “베네수엘라인들은 공산 독재를 끝내기 위해 투표했다”고까지 지껄여댔다고 한다.(≪조선일보≫, 2024. 7. 30. 참조.)
주지하다시피, 현 사태의 직접적인 배경은 특히 2016년 이후 격화되어 온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에 수반한 노동자ㆍ인민대중의 극악한 빈곤과 고통인데, 저들 부르주아 언론의 일반적 주장인즉슨, 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은, 사실상 석유산업 일변도의 심히 불균형한 산업구조와 더불어, 우고 차베스 정권이 정착시킨 사회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들은,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진 5대 산유국으로서 남아메리카 최부국이었는데, 차베스 정권 이래의 사회주의적 정책 때문에 오늘날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저들의 주장대로 ‘남아메리카 최부국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누가 그렇게 부자였는가? 저들은 GNP, 즉 ‘국민총생산’이 어떻고 하면서, 마치 ‘국민’ 일반이 그러했다는 듯이 능청을 떤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베스가 집권하던 1998년 당시 ‘석유 대국 베네수엘라’의 실상은, 인구의 80% 이상이 빈곤층이었고, 인구의 5%가 경작지의 75%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학교와 병원이 붕괴되어 학생들의 퇴학률이 70%, 문맹률이 7%에 달했으며, 인구의 60%에서 70%가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채만수,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정세와 노동≫, 제15호, 2006년 7ㆍ8월 합본호 참조. 이하 자료들도 동일.) 게다가,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28년 동안에 베네수엘라의 1인당 소득은 35%나 떨어져서 그 지역에서 최악의 감소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하나”여서, “베네수엘라에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10만 명 정도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자본주의로 인해 임금노예나 채무노예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는 증언도 있다. 차베스가 반미제(反美帝)와 ‘21세기 사회주의’의 기치 하에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극빈과 노예상태, 즉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ㆍ동맹자인 현지 부르주아지가 베네수엘라 노동자ㆍ인민대중에게 강제해온 극빈과 노예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차베스가 내걸었던 저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는 정말 사회주의인가? 차베스 생전, 특히 2000년대 중반에는 많은 사회주의자들조차 그 사회주의적 성격을 단호하게 부인하거나, 명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많은 사회주의자들조차 ‘21세기 사회주의’에 고개를 끄덕였다. 1976년에 국유화되었다가 다시 주로 미국 자본의 지배 하에 있던 석유자원[PDVSA]의 재국유화를 비롯하여 차베스 정권은 철강 등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한데다, 때마침 상승하던 국제 유가 덕분에 생긴 거대한 자금을 무상교육ㆍ무상의료ㆍ무상주택 등 빈민들을 위한 여러 사업(missions)에 지출하여 인민대중의 빈곤ㆍ노예상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일응 사실과 실천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확해진 것처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베네수엘라가 가진 최대의 자원인 석유를 이용하여 인민대중을 빈곤과 노예상태로부터 구제하겠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맑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그가 내세운 ‘볼리바르 혁명’은 과학적 사상과 규율로 무장된 노동자계급의 전위, 그 혁명적 정당에 의해서 조직되고 지도된 혁명이 아니었고, 석유 자원과 철강산업 등 일부 기간산업을 국유화했을 뿐,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폐지, 계급의 폐지를 위한 어떤 계획조차 없었다. 더구나 인구의 다수가 종사하고 있던 농업은, 유휴지(遊休地) 일부가 농민들에게 분배되었을 뿐, 기본적으로는 대토지소유에 기초한 반(半)봉건적 생산양식이 그대로 온존되었다.
차베스와 그 정권의 ‘볼리바르 혁명’ 혹은 ‘21세기 사회주의’의 이러한 성격과 한계는, 자신들의 정권에 대한 거듭된 불법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미제의 앞잡이이자 동맹자인 기존의 부르주아ㆍ지주 세력을 사실상 고스란히 존치시키는 것,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온존ㆍ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집권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PSUV)’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르주아 분파가 형성ㆍ발전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한때 널리 칭송받기도 했던, 차베스와 그 정권의 ‘21세기 사회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적인 조건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 우연적 조건들이란, 우선 심히 유감스럽게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무지에도 불구한, 미제를 배제하고 석유 수입(收入)을 이용하여 인민대중의 상태를 개선하겠다는 차베스의 강한 선의와, 그리고 특히 그 선의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 고유가였다. 그러나 그 우연적인 조건들이 사라지자, 특히 유가가 크게 떨어지고, 이 저유가가 장기화되자, 게다가 미제의 경제 봉쇄ㆍ제재가 장기화되고 심화되면서 석유 생산시설의 갱신ㆍ개선도, 그나마 저유가로의 수출도 심히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 전개되고 있고, ‘21세기 사회주의’도 급전직하로 전락하였다. 그리하여 집권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은 그나마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즉 그나마 노동자ㆍ인민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ㆍ정치세력이 아니라, 경제위기를 핑계로 그들의 제반 권리와 이익을 짓밟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특히 최근에 들어 빈번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에 대한 탄압이다.
차베스 시대 이래의 베네수엘라에서의 상황과 그 전개로부터의 교훈은, 우선 저 유명한 격언, 즉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의’ 대신에, 즉 그 주관적 선의가 초래할 객관적 결과에 대한 무지 대신에 모름지기 과학으로, 즉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사상으로 무장해야 하고, 그에 기초하여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과거에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나 ‘볼리바르 혁명’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를 그대로 존치시킨 채 단지 그 권력만을 장악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맑스주의 국가관을, 따라서 맑스-레닌주의를 부정하는 소부르주아적 망상일 뿐이다.
[정치]
양질전환과 헤게모니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1. 파국의 가시화
미국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한 예고는 자본독재의 첨병들인 주식과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벌써부터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본질은 미국 중심 다국적 금융자본의 글로벌 수탈체제가 갈수록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이제 그 종말의 출발점에 와 있다는 것, 자본독재의 종주국에서부터 체제 붕괴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 아닌가. 어떤 미봉책들로도 해소될 수 없는 이 근본문제는 이미 1세기 전 레닌이 명확히 개념화한 바 있다. 즉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능가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 자본주의의 부후하는 최종단계, 즉 제국주의가 그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누려온 달러패권에는 군사력이나 이데올로기만 아니라 고도의 생산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생산력발전은 불균등하다. 점점 더 많은 생산력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 독일, 대만, 한국 등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달러패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서 전쟁의 불씨로 작용한다. 생산력의 불균등발전에 따른 경제영토 재분할은 국제법 따위가 아니라 힘관계에 의해, 결국 제국주의전쟁을 통해 결정된다. 제국주의전쟁은 이미 인류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제국주의적 착취와 수탈체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전쟁의 참화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예측불허다.
연일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지진이나 쓰나미 등은 물론 인간적 요인을 벗어난 자연재해다. 그러나 이로부터 파생되리라 충분히 예상되는 재난, 즉 제2, 제3의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확실히 인재다. 즉 자본증식을 절대원리로 삼아온 자본독재체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온난화에 앞서 핵재난으로 폭발할 환경재앙, 경제위기로 인한 절대빈곤의 전지구적 양산, 일상화된 제국주의전쟁의 참화는 인류문명을 당장이라도 끝장낼 수 있는 재앙의 삼위일체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에 맞서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자본독재의 노예이길 거부하는 노동자민중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 양질전환
대안사회 건설은 객관적 필요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극복을 위한 방법과 대안의 구체적 전망을 공유하는 조직적 주체세력이 일정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위기는 혁명이 아니라 야만의 밑거름이 되기 쉽다. 최근 영국의 반이민 폭력시위가 그 단적인 예다. 노동자계급의 분열, 외국인 혐오, 성적, 지역적, 세대간 갈등, 운동의 파편화, 각자도생 문화 등등을 유도⋅조장하는 것은 자본독재세력이 교육⋅문화사업⋅소비구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무기다. 뿌리깊은 반공이데올로기, 특히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확산된 반노동자중심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허물고 대안사회 건설의 주체적 조건을 만드는 과정은 바로 자본독재에 맞선 해방전쟁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이다. 주체적 조건 형성의 요체는 대안전망의 생산과 대중적 공유다. 대안사상⋅이론⋅정책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지식노동자들이나 활동가들이 극소수에 머물고, 또 그 성과들을 노동자민중 다수와 공유하지 못한다면, 고전적인 표현으로 ‘이론이 대중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지금처럼 자본독재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노동자민중을 압도한다면, 어떤 위기가 밀려와도 대안사회 건설은 첫발을 떼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노동자민중 모두가 대안사상으로 무장해야 대안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와 혁명적 변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교육과정을 압축하고 주체적 조건의 질적 도약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도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어느 정도의 양적 팽창, 즉 적극적 주체들의 조직화와 조직의 일정한 확장을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안의 구체화와 함께, 이를 조직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절대적으로 시급한 당면과제다.
3. 헤게모니
대안세력의 양적 팽창은 수정주의나 개량주의의 온상을 만든다고 우려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조직의 확장에 소극적이거나, 대규모 조직들의 기존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피한다면, 소수의 폐쇄적 스터디그룹을 넘어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세력확장 자체가 운동의 목표일 수도 없다. 이 난제를 헤쳐나가는 데에는 헤게모니 개념이 유효하다. 대안사상⋅이론⋅정책으로 무장한 적극적 주체들이 아직 소수일지라도, 다수가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면 변질 없는 조직확장도 가능한 것이다.
다수의 자발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대안사상⋅이론⋅정책이 현실성과 호소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호소력 있는 대안이론 생산을 위한 체계적 연구와 치열한 논쟁 및 검증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필요 있다. 또 검증된 성과들을 광범하게 공유하기 위한 조직적 교육체계를 제도 차원에서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때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당이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도록 추동하는 것도 고려할 만한 과제다. 무엇보다 대안의 대중화에 적극 나서는 주체들이 헌신적 활동을 통해 대중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헤게모니 형성의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자본독재와의 가시적 대결만 아니라, 대안세력의 확장과정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일부터가 해방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요인이다. 밀려오는 위기를 호기로 전환하기 위한 시간싸움에 전력을 다하자. 재앙은 그냥 기다리는 이들의 몫이다. 전력을 다하는 이들의 몫은 승패를 넘어선 삶의 의미다.
[노동자논평]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국가기관들
- 계급전쟁의 양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건수
제79회 광복절 기념행사가 두 쪽이 났다.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따로 기념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면서 촉발되었다. 김형석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하는 등 퇴행적인 역사관을 가진 인물로서 독립기념과 관장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처럼 국가기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임명 행위를 일삼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을 여가부 장관으로 앉히고, 고용노동부에 반노동적 시각을 갖고 돌출행동을 하면서 노동계 기피대상으로 지목된 김문수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는 방송장악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이진숙을 위원장에 앉히는 인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사형제 등 주요 인권 쟁점에서 소수자 인권 보호에 역행하는 행보가 적지 않았던 인물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윤석열의 임명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환경부는 4대강 사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난다고 평가받는 '4대강 14개 댐' 건설사업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짓 논리로 강행하고 있고, 기후위기라고 쓰고 돈벌이라고 읽는 산림청은 30년 된 나무를 ‘늙은 나무’로 매도하며 전국을 민둥산으로 만드는 벌목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감사원은 용산 대통령실·관저 이전 불법 의혹에 대한 감사기간을 오는 11월 10일까지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2022년 12월 감사 착수 결정 이래 7번째 연장이며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자기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있는 이면에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점, 그리고 이들 기득권자를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윤석열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쌍특검법, 채상병특검법, 이태원참사특별법, 전세사기특별법 등 2년 3개월 재임 중 21번이나 남발된 법안 거부권의 목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전 정권에서는 최소한 87년 헌법체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보호했다면, 윤석열 정권은 헌법이 보장한 자신들의 권한 행사에만 집중하며, 그 어떤 명분이나 논리도 외면하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본격적인 계급전쟁의 시대가 왔다.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본성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알량한 쥐꼬리만 한 기득권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보다 힘센 자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이제 희망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에 있다. 미 제국주의 일극체제의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다극화시대가 다가오면서 세계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주변 열강의 세력판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노동운동세력에게는 시련이자 기회이기도 한 정세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국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국가, 노동자국가의 비전을 선명히 하고 우리의 역량과 준비태세를 점검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과연 국민이 주인인 나라인가?
- 헌법은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건수
지난 7월 17일은 제76주년 제헌절이었다. 제헌절의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왜 제헌절은 5대 국경일의 하나이면서 공휴일이 아닐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 이유는 주5일제(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자, 휴일 수가 너무 많다면서 반발한 기업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에게 제헌절은 휴식권도 보장 안 되는 날로 먼저 다가온다.
노동자 서민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76년 전 제헌헌법 당시에는 노동자 이익균점권을 두었으며, 사회정의와 국민경제를 위해 개인의 경제상 자유를 제한 등 이른바 가진 자들의 '갑질'을 제한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치를 헌법으로 보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악의 산재사망에 시달리고, 중소상공인은 재벌과 부동산투기꾼들의 온갖 '갑질'에 시달리며,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이제는 인간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혼인조차 포기하는, 그야말로 '헬조선'이 되었다. 제헌헌법 이후 76년 동안 빈익빈 부익부, 기득권 정치는 더욱 심화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역사상 최악의 유신헌법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시작된 현행 헌법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에 불과하며,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라는 두 기득권 집단끼리의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된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국민은 제쳐놓고 소수 기득권자가 권력을 서로 돌아가며 차지하는 정치체제에 불과하다. 87년 이후 민주당의 주도로 민주화가 된 이후 대한민국은 소수 특권계급이 지배하는 과두제 가짜 민주주의 체제가 되었다. 정권교체는 가짜 민주주의다.
87년 이후 민주당의 주도로 민주화가 되었다는데, 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게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분신했는데, 민주화가 되었지만, 바뀐 게 없다. 작년에 건설노조의 양회동 열사가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도 공갈범으로 몰리자, 이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세상에서 노동자는 기본적인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도입했고, 비정규직법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도입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짜 민주주의이다. 노동자만 이런 처지에 내몰린 것이 아니다. 농민, 영세자영업자, 학생, 여성 등 다수를 차지하는 계급 계층이 똑같은 처지다.
헌법 제1조 제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밝히고 있고,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 제76주년을 맞이하여, 헌법 제1조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87년 이후 정말 국민이 주인이 되었나? 백성 民, 주인 主, 이 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가?
[인터뷰]
“연대하면서 계급의식이 가랑비처럼 몸에 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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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김형균 (노동자신문 발행인)
◦답변 :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소수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의지가 있어도 장기간 투쟁을 지속하기는 매우 어렵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사히글라스 동지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 5월 29일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나 아사히그라스 자본은 22명의 조합원을 즉시(6월 30일) 해고했다. 그 후 9년간 한결같이 거리에서 투쟁을 이어왔다. 올해 7월 11일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이로써 22명의 동지가 복직하게 되었다. 관련 보도로는, 복직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기나긴 투쟁 과정, 복직 후 현장 상황, 이후 전망과 계획 등을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 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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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으로서 외국인 투자 기업에 맞서 9년 만에 투쟁을 통해 복직했는데,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데요? 소회를 한 말씀…
행복합니다. 많은 분이 함께 만든 승리입니다. 9년간 생계비를 위해 후원해 주신 분들, 아사히 김을 명절 때마다 사주신 분들, 아사히 투쟁에 늘 연대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노조결성 당시 노동조건, 집단해고 배경, 그 이후 9년간의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참혹합니다. 아사히는 점심시간 20분, 일하다 잘못하면 징벌조끼를 입혔습니다. 수시로 권고사직, 인권침해 등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지만 도리어 178명이 해고되었습니다. 그것도 노조 만든 지 한 달 만에. 억울했습니다. 우리는 22명의 소수지만 단결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단결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연대활동을 일상적으로 진행하면서 다른 투쟁을 깊이 있게 경험한 것이 우리 투쟁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사히지회는 연대활동, 투쟁사업장 연대는 물론, 여러 차례 일본 원정 투쟁, 소성리 싸드 투쟁 등을 해왔습니다. 이는. 이른바 품앗이 연대를 넘어서는 것 같은데, 그 내적 힘이 궁금합니다.
아사히 동지들은 연대하면서 계급의식이 가랑비처럼 몸에 스며들었습니다. 계급의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만 집착하지 않고, 전국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투쟁과 정세적으로 중요한 투쟁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동지들은 끈질기게 연대하면서 연대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또 어떤 연대를 할 것인지 자체적으로 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요즘 너나없이 노동조합은 회의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토론도 없고, 고민도 없는 형식적인 회의, 뻔한 회의가 아니라 우리가 실천적으로 필요한 회의를 9년간 진행했습니다. 매주 평가 회의도 9년간 회의록을 작성하며 빼놓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복직 후, 회사 측의 노조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요? 출근 시기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던 것 같은데… 노조활동 인정 등의 요구에 대해서 사측의 태도는 어떤가요?
아사히는 대법원판결이 나자마자 출근명령을 내렸습니다. 출근하지 않으면 무단결근 처리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회사가 출근하라는 날짜 2주를 넘겨서 출근했습니다. 8월 1일, 출근해서 회사와 마찰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회사는 3주간 교육 일정을 잡았는데, 첫날부터 교육은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불법을 자행했으면 사과부터 하라고 했고, 회사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아사히는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어플을 내려받아서 회사 내에서 카메라 사용을 금지하는 공장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플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으로 이틀간 논쟁을 벌였습니다. 3일째가 되면서 회사가 더 이상 어플을 설치하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출근했지만 현장에서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근 3일째, 식당에서 선전물을 돌렸고, 많은 분이 받았습니다.
복직하자마자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맞닥뜨린 것 같은데, 아사히그라스 상황은 어떤가요?
회사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생산라인 일부를 가동 중단하면서 회사는 구조조정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막 어용노조와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구조조정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복수노조인데, 다수 노조의 구조조정에 대한 활동이나 태도는 어떤가요? 소수 노조로서 대응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집중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소수 노조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수지만 아사히 자본과 맞서 싸워서 승리한 노조입니다. 현장에 노동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구조조정 저지와 노조 가입 선전물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집중하는 사업은 조직화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말씀…
긴 시간 아사히 투쟁에 함께해 주신 동지들 고맙습니다. 투쟁 2막도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겠습니다. 늘 연대하는 조직으로 아사히글라스지회 동지들과 함께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조합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동정세일지]
죽음과 차별을 멈추기 위한 ‘아리셀 희망버스’ 外
편집국
■ 죽음과 차별을 멈추기 위한 ‘아리셀 희망버스’ 연대
8/17 일터에서 죽음과 차별을 멈추기 위한 ‘아리셀 희망버스’에 50개 도시, 100대 희망버스·승합차를 탑승한 2,000여 명이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추모현장으로 집결. 유가족의 간절한 바람인 ‘진상규명·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 ‘차별 없는 피해자 권리보장’, ‘파견법 폐지’ 등을 요구하며 전국 곳곳에서 모인 것. 이번 희망버스는 서울지역에서는 백기완버스, 종교버스, 기후버스 등 부문별 버스를 비롯해 청년 학생, 인권, 산재 피해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 문화예술인 등과 개별참가자를 합쳐서 8대의 버스가 17일 오전 11시30분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출발. 당일 진행 1부는 합동분향, 2부는 화성시 거리행진, 3부 본행사는 화성시 정문에서 진행.
■ 화섬식품노조 소속 KCC 7개 지회, 공동쟁대위 구성하여 투쟁
화섬식품노조 소속 KCC 7개 지회(KCC도료안성, 건재세종, 대죽, 건재전주, 실리콘전주, 전주도료, 울산)는 올해 단체교섭을 진행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교섭은 난항을 겪다 이달 2일 결렬. 7개 지회는 공동으로 쟁의대책위원회를 꾸려 지난 22일부터는 교섭위원을 중심으로 파업. 오는 8월 13일부터는 전 조합원 총파업을 계획. 이를 위해 22일부터 26일까지 세종, 안성, 대죽, 전주, 울산 등지의 각 공장을 순회하며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공동선전전 진행. 오는 8월 13일 화섬식품노조는 서울시 서초구 KCC 본사 앞에서 산별교섭(초기업 교섭) 쟁취와 노조탄압 분쇄, KCC 파업투쟁 승리를 결의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
7/27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벌어진 지 34일째. 서울역 광장 시민추모제. 앞서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 희생자들의 영정을 품에 안고 용산을 출발,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 시민추모제에서는 고 김지현 님 유족 지경옥 님은 “아리셀 참사로 애들을 보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독가스에 질식하고 1000도씨가 넘는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울분으로 가득 찬 가슴은 미어지고, 미칠 것 같다. ... 우리는 알고 싶다.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왜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왜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왜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지 알아야겠다”고 말함.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경고파업
7/30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경고파업.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총파업 출정식. 출정식에는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 9백여 명을 포함하여 야간근무를 마치고 참여한 조합원과 연대단위까지 총 1,600여 명 참석. 최근 인천국제공항은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평균 이용객이 22만 명 이상. 게다가 오는 10월에 이용객 1억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단계 개항을 앞두고 있음. 그런데도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 종료되기 이전보다 적은 인력으로 운영,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높아지는 노동강도와 업무량에 고통을 호소. 노동자 시민 안전을 위한 4단계 인력 충원과 4조 2교대 교대제 완료, 노동자 처우개선 요구.
■ 방영환열사대책위, 택시발전법 개정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
8/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방영환열사대책위는 국회 앞에서 택시발전법 개정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 택시판 최저임금제도인 월급제는 법인택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해 사업주가 월급을 최저임금 이상 지급하게 하는 제도. 서울시는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됐고 8월 20일부터 다른 지역도 적용. 그런데 7월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등이 발의한 택시월급제법(택발법 11조의2) 개정안은 노사합의에 따라 소정근로시간을 조절해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주는 것을 합법화하는 내용. 수십 년 만의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통과된 택시월급제가 4년간 제대로 실시도 해보지 않고 사실상 폐기될 위험이라고 주장하며 개정안 철회 촉구.
■ 양대노총, 서울교통공사 집단해고 복직촉구 기자회견
8/5 양대노총이 서울교통공사의 기획노조 탄압으로 인한 노조간부 집단해고는 부당해고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제대로 된 판단을 촉구. 서울지노위의 심판회의를 하루 앞둔 5일 오전 10시, 서울지노위 앞에서 양대노총이 서울교통공사 집단해고 복직촉구 기자회견.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5월 돌연 두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 한국노총 공공연맹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의 간부 36명에 해고(파면 19명, 해임 17명)하고 4명에 대한 정직처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를 통한 노조활동이 '무단결근'이라는 이유. 공사의 집단해고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 2023년 건설노조 건폭 몰이에서 드러난 용산 발 ‘기획 노조탄압’의 연장선이라고 양대노총은 지적.
■ 민주노총 & 시민사회, 노조법 2,3조와 방송4법 공포촉구 농성투쟁 돌입
8/6 민주노총과 노동시민사회가 노조법2.3조 개정안과 방송4법 즉각 공포를 촉구하며 서울 도심 속 농성투쟁에 돌입. 이들 법률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는 윤 정권의 폭주를 멈춰 세우기 위함. 민주노총,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은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을 규탄행동에 나섬.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오후 5시 퇴근길 시민선전전, 오후 7시 투쟁문화제를 마친 뒤, 보신각까지 행진. 이날 시작된 투쟁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고 '노조법 2.3조와 방송4법이 공포될 때까지' 서울 보신각 앞에서 쉬지 않고 계속된다고 밝힘.
■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전국택배노동조합 결의대회
8/10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전국택배노동조합 결의대회. 숭례문 앞에서 개최. 노조법 2조·3조 개정안은 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용자 간의 교섭 보장,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요구를 금지하는 법안으로 ‘노란봉투법’으로도 불림. 지난 21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무산, 이에 지난 5일 수정된 개정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 높음. 이에 택배노조는 노조법 2·3조를 개정안 요구의 정당성을 알리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에게 경고하기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 파업하고 상경한 조합원 700여 명이 결의대회에 참여.
[국제]
전쟁과 시위로 전 세계는 달아오르고 있다
전원배
요즘 대한민국 언론매체와 가짜뉴스 제조업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전면 배치와 친일적 행각, 김건희를 둘러싼 추문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모든 사태는 한곳을 향하고 있다. 2026년 봄 대통령 선거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오로지 대권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대권 쟁취에 유리한가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으며 이 좋은 먹잇감을 소재로 가짜뉴스 제조업자들은 연일 새로운(진부한)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지겹고 신물이 난다. 한국에서 모든 관심이 선거를 둘러싼 충돌에 붙들려 있는 지금, 세계는 전쟁과 시위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 미국 대학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격화…일부 시위대 체포
KBS 뉴스, https://news.kbs.co.kr › news › view
2024. 4. 25. — AP통신과 CNN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후 동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대학 내 반전시위가 최근….
○ [뉴스프라임] 격화하는 미국 대학가 반전시위…유럽으로도
연합뉴스TV, https://m.yonhapnewstv.co.kr › news › MYH20240503...
2024. 5. 3. — 미국 전역의 대학가에서 친팔레스타인 반전시위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전 세계 대학가로 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요.
○ 유럽 대학가 반전시위 격화...'곤봉에 굴착기 동원' 강제 진압
YTN, https://www.ytn.co.kr
2024. 5. 8. —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유럽 주요 국가로 번지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선 곤봉과 굴착기까지 동원해 강제…
○ [이 시각 세계] 아르헨서 '옴니버스법' 반대 시위 격화
MBC 뉴스, https://imnews.imbc.com › 뉴스투데이
2024. 6. 14. —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자, 살수차가 화염에 휩싸입니다. 현지 시각 12일 극우 지도자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추진해 온 '옴니버스 법안'…
○ 방글라 시위 격화로 사망자 100명 넘어…군대 배치·통금 발령
KBS 뉴스, https://news.kbs.co.kr › news › view
2024. 7. 20. — 방글라데시 정부가 추진 중인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면서 사망자 수가 100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
○ "마두로 3선 인정 못 해" 베네수엘라 시위 격화…"최소 6명…
연합뉴스, https://m.yna.co.kr › view › AKR20240731002451087
2024. 7. 31. —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대선 개표 결과를 둘러싸고 '부정 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가 점점 더 격화하면서...
○ [이 시각 세계] 영국 흉기난동 지역서 '반이슬람' 시위 격화
MBC 뉴스, https://imnews.imbc.com › 뉴스투데이
2024. 8. 1. — SNS에 흉기난동범이 무슬림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서 반이슬람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을 ...
올해 벌어진 세계 각지의 시위를 일람해 보았다, 이보다 훨씬 많은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다시피 시위의 목적과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단지 명확한 것은 시위가 빈발하며 점점 폭력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위 배후에는 히드라가 숨어있다. 바로 공황이다. 우리는 공황하면 1929년 대공황만을 떠올리기에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시장을 맹신 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기술발전에 따른 구조적 실업의 확산에 뒷짐을 지다가 29년 대공황이라는 참사를 겪으며 공황 관리에 나섰다. 자본가들은 시장에 대한 개입(케인즈주의)과 세계대전을 통하여 공황을 극복(?)하고 1980년까지 자본주의 제2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공황을 기점으로 고갈된 소비력은 돌아오기는커녕 더욱 금융화를 부추기고 부의 쏠림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이 가세한 전자화폐, 자동화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1870년대 자본주의 최초의 공황 이후 공황은 자본가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자본가들은 1910년대에 들어서서 공황과 자본주의 체제 타파를 외치는 노동자들을 동시에 보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전쟁이다. 흔히 제국주의라 불리는 강대국 간에 벌어진 전쟁은 과잉된 생산설비를 노골적인 폭력으로 파괴했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혁명가와 그의 굳건한 조직가들, 지지대중을 광범위하게 학살하고 멈추어 섰던 악마의 맷돌을 다시 돌리게 했다.
2024년 자본가들과 그들의 졸개인 정치인들은 전면적 전쟁을 획책하고 여기저기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강대국 간 과잉 생산설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전쟁은 핵폭탄의 존재로 회피하면서 대리전이 조성하는 전쟁특수로 위기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러우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이란 전쟁, 동북아 전쟁(대만, 남북)이 그것이다.
제2의 젤렌스키 윤석열을 앞장세워 남북 간 전쟁을 획책하고 있는 엄중한 정세이다. 반전시위에 노동자들이 나서지 못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하다. 그동안 성과를 한 방에 날리는 전쟁을 결사반대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은 퇴진투쟁ㆍ타도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 세계에 벌어지는 투쟁의 목적은 아직 산만하고 심지어 반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투쟁은 한계에서 출발한다. 그 한계를 돌파하는 것은 투쟁 그 자체이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서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모자랐으며,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의 글,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에서
[영세 자영업]
누가 자영업자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김형균
영세 자영업자의 고통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부터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다. 대기업은 대형 슈퍼마켓뿐 아니라 빵집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의 문어발식으로 골목상권 침해한 지 오래다. 자의든 타의든 직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먹고살 방도를 찾기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청년들이 취직을 포기하고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정부조차 청년 창업지원이니 세제 혜택이니 하면서 이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세 자영업자가 대기업과 경쟁이 될 리 없다. 좁아진 골목상권에서 경쟁은 제 살 파먹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러한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와 영업 제한으로 매출은 급감했다. 알바 노동자보다 못 버는 사장들, 자기 인건비도 못 가져가고 빚만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점주들이 많다. 거기에다 건물 임대료 상승, 인건비, 원자재 가격 상승, 세금에 경기침체까지… 빚으로 버틴 자영업자들은 대출만기가 도래하면서 사면초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혹은 가족노동으로 겨우 버티거나 폐업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생계비는 어쩌고 갚아야 할 부채는 어찌할 것인가!
배달의 노예가 된 음식점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배달시장이 활성화ㆍ일반화되었다. 배달 음식점이 너무 많이 늘어 피 터지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배달’ 음식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익이 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배달비가 너무 올라 이윤이 줄었다. 지금은 쿠팡이츠와 배민원의 단건 배달 경쟁으로 배달료가 치솟았다. 단건 배달료는 6천 원이 기본이고 먼 곳은 만 원이 넘는 예도 있다. 배달 수수료가 오른 만큼 음식값에 모두 반영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주문금액 2만 원에 소비자가 지불하는 배달비를 2,500원으로 설정했을 때 점주는 중개수수료 1,360원, 배달비 3,500원(배달비는 총 6,000원 중 소비자 부담 2,500원) 등 4,860원을 내야 한다. 부가세와 결제수수료 등을 포함하면 실제 점주가 정산받는 금액은 2만 원 중 1만4,000원 안팎이다. 배달앱 광고비, 식자재비, 임대료, 인건비, 고정비와 세금을 제하면 오히려 적자다.
그럼에도 음식값은 전반적으로 올랐고, 이는 배민이나 쿠팡이츠 같은 수익이고 피해자는 소비자와 식당업주다. 러ㆍ우전쟁 이후 식자재비까지 치솟아 이윤은 더 줄었다. 배달의 민족은 설립 당시 최초 자본금이 3,000만 원이었는데 10년 만에 매출 2조 원 회사로 성장했다. 소상공인을 위한 플랫폼이 되겠다는 배민은 배달 식당 사장들의 피땀과 눈물 위에서 성장한 기업이다. 배민을 만든 우아한 형제들은 우아하게 돈을 벌고 있지만 배달 식당 사장들은 배달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누가, 영세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 것인가?
500만 자영업자들은 노조 같은 단체도 없고 자영업자 보호법도 없다. 노동자도 아니고 사장도 아닌 자영업자는 어떠한 권리도 없다. 영세 자영업자ㆍ가족노동에 기초한 1인 업주는 명백히 소생산자의 지위에 있다. 그러나 배달앱에 종속된 온라인 기반 노동자(플랫폼)의 처지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영세 자영업자는 노동자 출신이거나 그 가족이 많다. 기업에서 구조조정이 되어 명퇴나 정년퇴직해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취업의 길이 막혀 일찌감치 자기노동에 근거한 자영업에 뛰어든 청년도 많다.
엄밀히 말해서 자영업자는 소생산자(소부르주아)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대자본과 자본주의의 중층적 모순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연대세력이다. 과거에 농민이 그러했다면, 지금은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대신에 도시빈민과 영세 자영업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영업의 평균수명은 의료 업종을 제외하고 평균 3.7년에 불과하다. 세무서에는 수많은 업체가 폐업신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사업자등록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세자본은 자본주의 경제법칙으로 인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경쟁사회이고 대자본이 중소자본과 경쟁이 불가능하고 영세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영세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말이 있다. 스스로 단결하여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선은 배달앱 자본의 횡포에 맞서, 국가의 정책과 연동하여 스스로 단결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 자영업자의 근본적인 고통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최저 임금인상 반대만을 외친다면, 그것은 과녁을 잘못 잡았다. 을들 간의 대립·반목을 부추기는 자들은 바로 자본이고 그들의 정치부대자 자본독재 권력이기 때문이다.
AI로 표현되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 늘어나면서 ‘좋은 일자리’는 계속 줄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온라인 매개노동(특수고용) 형태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실업과 반실업의 증가는 동시에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을 부추기는 조건이 된다. 생산력은 고도로 발전하고 온갖 상품이 넘쳐나지만, 노동자 민중의 처지는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오직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 풍요롭고 평등한 세상을 열어젖히지 않고서는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없다. 노동운동이 내부의 분할통제를 넘어 각성하고 단결하여 사회변혁의 중심에 서야 한다. 동시에 몰락하는 자영업자를 굳건한 동맹세력으로 굳건히 세워야 한다.
[노동]
제2의 티메프사태, 이번엔 배달플랫폼에서 터져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배달대행업계에서도 일명 ‘티메프사태’가 발생했다. 상점주와 라이더를 중계하는 플랫폼사인 만나플러스에서 상점주에게는 미리 받아놓은 라이더 정산금을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태는 현재 3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사장들은 당장 운영을 위해 사비로 라이더 정산금을 지급하며 빚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만나플러스는 라이더가 3만 3천명, 지사는 1천 6백여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배달대행시장 점유율은 20%로 업계 내에선 규모가 상당한 곳이다. 라이더 정산금은 말 그대로 임금이다. 이를 미지급한다는 것은 플랫폼사가 막장까지 몰려있다는 뜻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사측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현재 만나플러스가 약속한 사항은 8월1일~10일 사이에 현재 보호예치금이라는 명목으로 미지급하고 있는 라이더 정산금을 모두 출금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만나플러스가 그간 함께 해 온 라이더와 지사장들에게 마지막 신뢰를 지키려면 이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고, 현재 발생한 피해회복과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현재 회사의 소통이 자신들과 가까운 일부의 총판들과만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회사를 위해 현장에서 뛰어온 라이더와 지사장들에 대한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있다면, 모든 소통은 투명하고 책임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재 배달플랫폼 업계는 대행사 설립에 있어 아무런 법적 요건도 없고 검증절차도 없는 상태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거나 라이더 안전을 위협하는 대행사가 상당함에도 국토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만나플러스는 국토부의 인증을 받은 업체임에도 이 같은 대규모 임금체불 사태가 발생한 것은 국토부의 무책임한 행정도 한몫한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이 아무런 효력 없는 인증제가 아닌 최소한의 구속력을 가진 대행사 등록제 시행을 꾸준히 요구했음에도 국토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과 재발방지 대책은 무엇인지, 답해야 할 것이다.
[과학칼럼]
국가 R&D 예산 집행 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미·중 기술패권 전략경쟁과 같은 전 세계적인 전환의 시기에 국가 과학기술정책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가는 일국 단위에서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이면서 동시에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로서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용한다. 국가는 법률과 제도를 통해 연구기관 (대학, 국공립연구기관, 공공연구기관, 민관 컨소시엄 등)과 매개 조직 (과학기술 관련 정부부처, 재단, 연구회, 정책 및 평가기관 등)의 임무와 역할, 권한을 규정하고 관리⸱운영함으로써, 1)R&D 수요의 수렴, 2)R&D를 위한 자원의 제공과 배분, 3)R&D 수행과 관리, 4)R&D 성과의 관리와 확산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가 규정하고 관리⸱운영하는 연구기관과 매개조직, 이 조직들을 지배하는 법률과 제도를 통칭하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일국 차원의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증진은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통한 기술혁신과 기술확산을 통해 가능해진다. 일국 차원의 생산력과 문제해결 역량은 그 나라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에 달려있다.
일국 차원에서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역량은 1)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 2)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 3)과학 엘리트의 역량, 4)과학기술노동의 구조 네 가지 핵심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는, 정부가 R&D와 고등교육에 연구개발비를 배정하는 절차와 방식이다.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에는 다음 요소들이 포함된다: R&D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부처와 펀딩 에이전시의 다양성, 펀딩 에이전시의 예산권과 연구과제 기획⸱관리⸱평가에 대한 역할과 권한, 국가전략과 공공정책, 임무중심 R&D 예산 지원 방식, 기관 차원의 출연금 예산과 경쟁적인 과제 기반 R&D 예산의 혼합 형태, 연구자가 신청하여 획득할 수 있는 외부 과제 기반 펀딩의 범위, R&D 성과 평가를 예산 및 자원 배분에 적용하는 방식, R&D 성과를 활용하고 사용하는 법적 수요자의 다양성 등.
둘째, 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은, 대학이나 출연연과 같은 연구조직들이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감독하고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과 전략적 독립성을 개발하고 수행해 내는 능력과 독립성을 갖고 자기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여 연구관리를 수행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셋째, 과학 엘리트의 역량은, 과학 엘리트들이 이익집단으로써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능력과 연구조직과 각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원 배정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정치인 및 정부 관료와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의미한다. 넷째, 과학기술노동의 분할 구조는, 대학과 출연연 등 연구조직을 포함하는 전체 과학기술노동 시장의 구조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연구자들의 고용과 직업이 조직되는 방식, 이론 중심의 연구와 임무중심 연구, 기술이전 등과 같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연구조직 간의 조직적인 분리 정도와 고정성 등이 포함된다.
연구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이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자율적 능력에, 과학 엘리트의 역량이 자원 배정 방식을 통제하는 능력에, 과학기술노동 시장의 분할 구조가 연구자들의 고용과 작업이 조직되는 방식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가 다른 세 요소에 비해 우선성을 갖는다.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역량은 전적으로 정부 R&D 예산 집행 체계의 효과성과 효율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일방적⸱일괄적⸱졸속적⸱위법적으로 R&D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대학과 출연연 등 공공연구기관 노동자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혁명가]
한위건과 장지락의 엇갈린 운명
이철의
장지락은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본명이다. 김산은 한국인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불굴의 혁명가이자 독립투사로 일제와 맞서 싸웠으나 간첩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 자신이 투신하여 활동한 중국 공산당이 그를 죽인 것이다. 그는 1983년이 되어서야 중공에 의해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복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장지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2008년 정부수립 기념식 때 그의 아들 고영광을 초청하였다.
한위건은 ‘아리랑’에서 장지락의 복당을 막은 인물로 그려져 있다. 김산이 칼을 가지고 가서 한위건에게 “5분 안에 돌중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한이 울자, 그는 칼을 놓아둔 채 나와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실은 한위건의 입당을 장지락이 먼저 막았고 나중에는 한이 장의 복당에 반대하였다. 두 사람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서로 대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제와 국민당의 밀정이 횡행하는 가운데 벌어진 비극이었다. 중국 공산당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국민당의 밀정으로 오인받아 희생되기도 하였다. 결국 김산은 옌안의 정풍운동 시기에 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트로츠키주의자이자 간첩” 혐의를 쓰고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한위건은 조선인 가운데 중국 공산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1896년 함경남도 홍원(현 신포시 신풍리)에서 4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의 용원사립학교를 졸업한 뒤 오산학교에서 수학하고 경성관립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3학년에 재학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시위에 앞장섰다. 3.1 운동 직후 그는 경성부에 결성된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위원, 임시의정원 함경도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한위건은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과 여운형의 일본 방문을 비판하며 신채호가 상하이에서 발간하던 주간신문 ‘신대한(新大韓)’에 참여하였다. 1920년 그는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923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에 참가하여 총무를 맡았으며 국내 순회강연을 벌였다. 1924년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민족적 경륜’을 게재하자 동아일보사의 사죄 및 논설 취소를 요구했다. 1924년 귀국한 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6년 한위건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7년 신간회 발기에 참가하였다. 그해 조선공산당 선전부장으로 활동했고 1928년 2월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으나 일제의 검거를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한위건은 중국에 머물며 잡지‘계급투쟁’을 발간하며 조선 공산당 재건운동과 항일투쟁의 이론가로 활동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리티에푸(李鐵夫)라는 중국식 이름을 썼는데 공산주의자협의회, 학생공산당, 노동계급사(勞動階級社), 북평반제동맹(北平反帝同盟:북평은 베이징의 당시 이름이다) 등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한위건은 193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허베이성 베이핑시(北平市) 당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3년 국민당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출옥 후 중공 허베이성위원회 선전부장이 되었다. 그는 리리싼, 왕밍등의 좌경기회주의 노선에 맞서 노선투쟁을 벌이다 출당되었다. 한위건은 ‘화선(火線: 전선이라는 뜻)’을 발행하여 당의 극좌노선을 비판했다. 그는 국민당 지역에서는 합법활동으로 힘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티에푸 노선은 우경 청산주의 노선’이라고 비판하며 한위건을 허베이성 선전부장직에서 해임하고 곧 출당하였다. 그의 아내 장수안(張秀岩)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공산당과 연결이 끊겼지만, 그는 1935년 텐진에서 항일집회 및 시위운동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공산당은 장정 중에 마오쩌둥이 지도부가 되어 왕밍, 보구등의 좌경기회주의 노선을 변경했다. 1936년 봄 한위건은 중공 북방국 서기 류사오치에 의해 허베이성위원회 서기겸 톈진시위원회 서기로 임명되었다. 1937년 5월 옌안(延安)에서 당대회가 열릴 때 국민당 지구 대표로 참석했다. 그때 한위건은 마오쩌둥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들었다. “화북당이 한때 중앙의 모험주의 노선에 날카롭게 반대하였다. 그 영수가 바로 리티에푸 동지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탁상공론을 일삼는 이들로 주관주의자들이다. 다른 이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며 공론보다 시기, 지역, 조건을 고려하여 활동하는데 유물변증법의 혁명관이라 할 만하다. 류샤오치와 리티에푸같은 사람들이다.”
옌안에서 한위건은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본래 지병이던 폐결핵에 장티푸스가 겹쳤다. 당은 한위건을 허베이성위원회와 텐진시위원회 서기로 임명했으나 옌안에서 치료하도록 하였다. 1937년 7월 10일 한위건은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 공산당은 한위건(리티에푸)의 추도회를 열었으며 신중화보에 그의 약전을 실었다. 한위건의 유체는 옌안 칭량산(清凉山)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한위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장지락과 한위건은 다같이 일제에 맞서 싸웠다. 둘 다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국민당에도 맞서 싸웠다. 한사람은 간첩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 다른 이는 투쟁하다가 병마에 시달려 요절하였다. 장지락은 불행하고 한위건은 영광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지락은 님웨일즈에게 거듭 한탄하였다. “광동 코뮨에서 조선독립의 정수라 할 만한 동지들이 모두 죽었다.” 이처럼 혁명 과정에서 이름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여 투쟁할 뿐이고, 죽고 사는 것 또한 조건과 선택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문화]
1이 99인 상대를 어떻게 이기고 지배하는 거지?
― 절대다수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가 무엇인지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우리가 99%다” 이 구호를 기억하시는지? 소위 ‘미국발 금융위기’라 불리는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그 여파로 이어진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를 통해 확산된 구호다. 꽤 명성을 얻으면서 우리 투쟁 현장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었던 이 구호가 그렇게나 인기를 끈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단박에 그 의미가 와 닿고,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점 등이 그 이유지 싶다. 내 식으로 받아들이자면 자본주의라는 계급지배 체제에서 지배계급은 단 1%이고 99%가 (피지배계급인) 민중, 바로 ‘우리’라는 것. 따라서 세상은 절대다수인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외침이다.
심히 단순한 이 메시지에 가슴이 웅장해지기까지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이 참으로 새삼스러웠기 때문일 거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에, 그나마 모진 목숨 이어가려면 평생 채무노예의 삶을 강요받아야 하는 것이 공황기 노동자 민중의 삶이다. 우리는 그 고통을 그저 개인의 팔자소관으로 여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운이 없어서, 혹은 내게 문제가 있어서 당하는 불행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각각의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을 땐 그렇다. 그 와중에 우리가 99%란다. 그걸 누가 몰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알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식하지 못하도록 훈련되고 길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수밖에.
아무튼 ‘나’라는 개인이 ‘우리’가 되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겪는 고통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도나도’ 겪고 있었고 따라서 팔자소관도, 개인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판이 뒤집힌’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절대다수인 ‘우리’가 아니라 극소수 지배계급의 의지대로 돌아가는 그 세상 말이다.
그런데 뿌듯해야 할 이 구호를 접할 때마다 오히려 기운이 쭉쭉 빠지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 없으신지? 나는 종종 그랬다. ‘그래…. 우리가 99%인데 왜 여태껏 저 1%를 못 이긴 거냐….’ 전설 속 싸움 이야기라고 해봐야 17 대 1인데 하물며 99대 1의 싸움이라니. 그런데 언제나 그 99가 1에 지배됐다니. 1도 못 이기는 99인 우리는 당최 뭐냐 이 말이지….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가 99라고 아무리 외쳐댄들 공허하기만 할 뿐이지 않겠나.
답이 안 나올 땐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란 말이 있다. 내가 1이라면 99인 상대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물리적으로는 소수가 다수를 이길 수 없으니 언제나 내가 다수가 되고 상대가 소수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명이 100명과 싸워 이기려면 10대 1의 싸움을 백 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100을 어떻게 각각의 1로 만들어 놓을 것인가이다. 저들 지배계급은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99의 피지배계급을 지배할 수 있었다. 각각으로 쪼개진 99가 하나의 99가 된다면 저들 1은 결코 99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우리 입장에서의 관건은 저들의 역이다. 어떻게 각각으로 쪼개지지 않고 하나의 99가 될 것인가?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외쳐대기만 하면 진짜 하나가 되는가? 우리가 그렇듯 저들 자본도 늘 ‘노사는 하나’라고, 회사는 한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라고 말하는 99 각각은, 사실 1에 대한 99로서의 ‘우리’보다는 우리 회사, 우리 지역, 우리 동문 등등을 더 진짜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느끼게 하는 요소는 ‘우리’라는 집단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은 다른 집단과는 변별적으로 존재하는 구성원 간의 동질성이고 그 바탕 위에 형성된 것이 바로 그 집단의 (고유한) 문화이다. 1과 99 사이의 변별성은 다름아닌 계급이다. 99가 구호가 아닌 진짜 하나로서의 99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피지배계급으로서의 문화와 그에 대한 공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잠시 돌아왔지만, 이 글은 노동자 문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 지면을 통해 노동자 문화의 존재 여부에 관해 얘기했었다. 그러나 실존 여부건 정체성이건 그것을 왈가왈부해야 하는 이유를 수긍할 수 없다면 모두 헛짓이지 않겠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노동해방 세상으로 가는 길은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이 계급으로서의 독자적인 자기 정체성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당연히 자본은 절대로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각성하게 해선 안 된다. 바로 이 계급투쟁의 중심에 문화가 있다. 노동자가 계급으로서의 독자적 자기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눈앞에서 절절하게 벌어지는 물리적 투쟁으로 외화 되지 않기에 잘 못 느낄 뿐, 그 이상으로 치열한 계급투쟁 그 자체이다.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해 한글 말살, 창씨개명 등 문화통치에 열을 올렸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지배의 대상이 스스로 고유한 그들만의 문화를 옹골차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지배할 수 있겠나?
해서 이제 ‘우리가 99%다’라는 구호를 넘어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가 무엇인지 답해 보자. 문화적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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