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2일 화요일

[노동자교양예술] 마야코프스키 -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예술로 추동 인물

 [노동자교양예술]

 마야코프스키 

-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예술로 추동 인물


 한아석

 마야코프스키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를 하나 옮겨보자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혁명을 향해 달려온 시인에게 막 눈앞에 시작된 관료주의는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철저하게 관습을 거부했던 그의 눈에 이런 현실은 배반당한 혁명으로 비쳐졌다마침내 1930년 414일 마야코프스키는 그의 시구절처럼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런 평가는 스탈린이 마야코프스키를 고립시켰고 마야코프스키는 그 때문에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스탈린은 고리키를 암살했고마야코프스키도 스탈린 때문에 자살해야만 한다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스탈린 때문에 일어나야 한다그러나 마야코프스키의 작품 속에는 배반당한 혁명에 관한 구절이 단 한 줄도 없다.

소련의 제1차 경제개발계획은 1928년부터 1932년까지였고 마야코프스키는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스탈린이 이끄는 쏘련 사회주의 건설을 예술로 고무시켰다마야코프스키는 최후의 작품 중 하나인 희곡 <목욕탕>에서 타임머신을 발명한 추다꼬프와 관료인 조정국장 뽀베도노피꼬프와의 투쟁을 통해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무시켰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하여 세르게이 니끼찌츠에게 전화하며만일 세르게이 니끼찌츠가 동의하지 않으면니깐드르 페도또비치에게 전화합니다그런데 니깐드르 페도또비치가 동의하지 않으면이번에는 세몬 삐라미도노비치에게 전화합니다이런 모든 유형이 관료주의자의 일반적인 형상을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추다꼬프가 그따위 하찮은 물건을 발명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아닙니다동무들우리가 5개년 계획을 4년 만에 완수하는 일그것도 일종의 타임머신입니다. 5개년 계획을 4년에 수행하는 일, 이것은 시대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5개년 계획을 4년에 수행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시대를 조직할 것인가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속도를 앞당기는 기계인 것입니다.” - 마야코프스키모범 인쇄소 클럽에 있은 목욕탕의 토론회에서 발언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김규종 옮김(1993), 미스쩨리야 부프,p. 4 

마야코프스키가 (전화나 계속 돌려대는관료를 비판한 것은 혁명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탈린의 계획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였다이처럼 그의 예술은 레닌과 스탈린이 이끈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다루었고관료주의 비판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1924년 마야코프스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걸작 시로 꼽히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서 스탈린을 레닌의 계승자이자 사회주의 건설 지도자로 다음과 같이 호명한다.

 <그대들을 요구하는 이는 스딸린 동지다. / 복도 오른쪽 세 개의 문을 지나면 거기에 그가 있다.> —〈동지들, / 멈추지 마시오! / 앞으로자 이 안으로!—〈우체국에 급히 장갑차를 출동시켜라!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이득재 번역(1989), 내가 아는 한 노동자열린책들, pp. 59-60.

그는 스탈린 시기에 가장 사랑받는 국민시인이였다먀아코프스키가 사망했을 때 15만명이 참석했다소련 역사에서 레닌스탈린 다음으로 많은 추모객이 참가한 장례식이었다스탈린의 억압 때문에 고립되어 자살했다는 마야코프스키가 인민에게 받은 이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1935년 스탈린의 마야코프스키는 과거에도 그러했고현재에도 우리 소비에트 시대의 가장 재능 있는 시인이오그의 추억과 그의 시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범죄요.”라는 평가는 <프라우다머리기사로 실렸다


. 1937년 마야코프스키 박물관및 도서관이 모스크바에서 문을 열었다스탈린이 자신을 레닌의 계승자로 인정했고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열정적인 추동자였던 마야코프스키를 자살에 이르도록 억압할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가십을 퍼뜨리는 이들이여마야코프스키를 제대로 읽기라도 했나요마야코프스키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러분 모두에게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하지 마오그리고 이야깃거리로도 만들지 말아주오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하오.”

야코프스키는 하잖은 가십에 묻힐 수 없는소련 사회주의의 성공을 예술로 추동했던 맑스·레닌주의의 영원한 바쿠스(박카스).


[중국혁명가 열전] 마오쩌둥 혁명을 위해 일가를 희생하다

  

  [중국혁명가 열전]

 마오쩌둥 혁명을 위해 일가를 희생하다

 

이철의

 마오쩌둥은 중국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위인이다. 1949년 10월 1신중국이 성립하기 전까지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로서 혁명이론 수립 및 당의 지도전략 및 전술의 수립전쟁 및 전투지휘에 이르기까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그늘로 빛이 바랬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중국 공산당사는 그를 가리켜 위대한 맑스주의자이자위대한 무산계급혁명가전략가이론가중국의 위대한 애국자이며 민족영웅중국 인민을 영도하여 명운을 개척했으며 국가 면모를 일신한 일대 위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오쩌둥이야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여기서는 혁명과정에서 희생한 그의 가족들을 소개하기로 한다마오쩌둥은 혁명에 투신한 뒤 여섯 명의 가족을 잃었다그의 아우로 마오쩌민(毛澤民)과 마오쩌탄(毛澤覃)이 차례로 희생되었고 아내인 양카이후이((楊開慧)가 국민당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그리고 사촌 누이인 마오쩌지엔(毛澤建),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조카 마오추슝(毛楚雄)을 차례로 잃었다그뿐만 아니라 양카이후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도 모두 죽거나 다른 사람이 겪지 않을 고통을 받았다양카이후이가 국민당군에 잡혔을 때 후난성의 군벌 장군 허젠(何鍵)은 마오쩌둥과 이혼하고 공산당을 탈퇴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다그러나 양카이후이는 너희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마오쩌둥은 양카이후이의 소식을 듣자 내가 백 개의 목숨이 있더라고 바꿀 수 없다.”고 비통해했다고 한다.

양카이후이가 국민당군에게 잡혀 처형당하자세 아들은 상하이 공산당 지하당에 맡겨졌다상하이당이 파괴되자 세 아들은 유리걸식하며 유랑하게 되었다셋째 마오안룽(毛岸龍)은 유랑과정에서 실종되었다첫째 마오안잉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고 둘째 마오안칭(毛岸靑)은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지만유랑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평생 고통을 받았다마오쩌둥은 언젠가 아들들의 유랑과정을 회고하며 어린 나이에 백가(百家)의 밥을 먹었다.”고 탄식하였다즉 구걸하거나 남의 집에 얹혀 지냈다는 뜻이다.

마오쩌둥은 두 번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의 사이에서도 여러 자식을 두었다그러나 끝까지 남은 것은 딸 리민(李民)뿐이다첫 번째 딸은 마오쩌둥이 징강산 근거지를 빼앗긴 뒤 후난성과 장시성 등을 전전할 때라서 남에게 맡겼다그는 우는 허쯔전을 이렇게 달랬다. "아이를 맡기자혁명 투쟁에 승리한 후다시 데려오자." 그러나 그걸로 그만이었다둘째 아들 마오안훙(毛岸紅)은 장정을 출발하며 아우 마오쩌탄 부부에게 맡겼다마오쩌둥은 소비에트 은행 책임을 맡고 있던 요인이었다마찬가지로 불안한 신분이던 마오쩌탄 부부는 아들을 어느 경호원의 집에 맡겼는데 끝내 행방불명되었다국민당군이 루이진(瑞金)을 비롯한 장시성의 소비에트를 이 잡듯 뒤져 공산당원과 동조하던 민중들을 학살했으므로 함께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허쯔전은 국민당군이 루이진의 소비에트를 포위 토벌할 때 세 번째 아이를 낳았다쫓기는 환경에서 아이를 조산한 결과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혁명가의 부인 중 팔자가 기구하기로는 허쯔전이 손꼽힌다그는 장정 도중에 다시 딸 하나를 출산했다내일을 알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 부부는 어느 농가에 아이를 맡겼는데 행방불명되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쯔전은 국민당군 비행기의 폭탄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고 그 여파로 마오쩌둥과 이혼하는 운명이 되었다허쯔전은 옌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리민을 낳는다리민은 소련으로 정양하러 간 어머니를 따라갔으며 귀국 후에도 허쯔전을 보살폈다허쯔전은 모스크바에서 정양 중 마지막 아들을 출산했으나 금방 사망했다고 한다그리고 마오쩌둥과 이혼하는 처지가 되었다마오쩌둥의 자녀 중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세 번째 부인 장칭(姜靑)과의 사이에서 낳은 리나(李訥)이다그는 마오쩌둥 장칭 부부의 슬하에서 순조롭게 성장했으나 문화대혁명 후 어머니가 자살하는 비운을 겪었다.

마오쩌둥 일가 중 비교적 알려진 이는 맏아들 마오안잉이다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참전을 자원하였다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이던 펑더화이가 말렸지만마오쩌둥은 아들의 참전 요청을 받아들였다. “마오쩌둥의 아들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식들을 출전시키겠는가?” 하지만 마오안잉은 미군 비행기의 폭격에 맞아 전사하였다네이팜탄에 시신이 새카맣게 타서 손목에 찬 소련제 시계를 보고 신분을 겨우 확인했다고 한다마오안잉의 전사를 알게 된 펑더화이는 직접 전문을 기초하여 마오쩌둥에게 보고하였다.

마오쩌둥은 방에서 자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기밀비서 예즈룽이 말없이 전보를 건네자마오는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마침내 고개를 들었는데 기록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이라고도 하고 아무 표정도 없었다고도 적혀 있다마오는 낮은 목소리로 예즈룽에게 말했다. “전쟁에는 희생이 따른다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데 한 사람의 일만 생각할 수는 없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릉에 있다중국으로 이장하는 문제에 대하여 마오쩌둥은 인민의 자식들도 조선에 묻혀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문화] 소설을 통해 본 계급혁명의 조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기획]

 소설을 통해 본 계급혁명의 조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찬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그래서 그들이 사는 동네는 낙원구 행복동이다모두가 행복를 찾던 행복동모두가 가고자 했던 낙원은 한쪽에게만 열린 문이었다다섯명 가족의 빈곤한 삶을 하나로 묶어 주던 난장이 가족의 작은 집은 철거를 당했고 그 순간부터 가족은 흩어지기 시작했다난장이 가족은 높다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구름을 대신하던 은강시로 이사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집을 나갔던 딸 영희는 가족이 살던 곳을 되찾기 위해서 철거된 집을 찾았다사는 곳은 달랐지만 같은 행복동의 이웃인 신애 아주머니가 난장이 가족의 소식을 들려주었다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갔다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라고 말했다은강그룹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큰 오빠 영수는 살인을 선택했다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삶을 마감했다.

1970년대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점을 잘 드러내 준 이 소설은 1978년 초판이 발행된 후 46년 만에 150만 부가 팔렸다경향신문은 이 소설이 광고 또는 홍보작가의 유명세 등의 영향 없이 꾸준한 판매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난쏘공]이 무려 46년 만에 고작 150만 부가 팔렸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1970년대 농촌의 분화그로 부터 형성된 도시 빈민과 저임금 공장 노동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한국 노동계급이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고향과도 같다한국의 노동자는 2023년 8월 기준 2,195만 4천 명에 달하며 전국 인구의 90.7%가 도시에 살고 있다도시 노동자계급은 인구에 있어서 절대적 다수를 차지한다노동자 계급은 정치·사회적으로 유력한 집단이 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46년 전의 처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그러나 새로운 세계이 소설에서 표현된 일만 년 후의 세계는 만들지 못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빈곤을 주제로 한 계급투쟁은 낡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원동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상대적 욕망 속에서 싸우며 갈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모든 것은 체제가 만들어낸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 보다는 양보와 타협 속에서 체제를 바꿈으로써 모두가 지옥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말한다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그래서 이 낡아버린 계급적 분노를 담고 있는 소설은 고작 그 정도의 판매만을 기록했을 뿐인가 보다.

하지만 그들 주장은 사실일까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불안을 낳는 계급적 분열 상태는 중산층의 존재를 통해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지금과 비교한다면 절대적 빈곤층이 다수 존재 했던 70년대 조차도 거짓된 희망으로 환상을 쫓는 중산층을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당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쓰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1970년대 당시 사람들은 그렇다. 41.3%, 어느 정도 그렇다. 21.5%”로 답하고 있다다수가 희망을 품고 있었다이를 소설에서는 거짓 희망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국내 경제 규모가 고도성장의 여지가 있는 경우중산층을 위한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게 된다집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하층으로서 짓눌려 있을 때조차도 개개인에게 열린 기회를 통해서 누구는 중산층에 들어갈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계급 전체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개인의 경쟁과 부를 위한 노력은 일상적인 일이다다수의 대중이 가지는 생활 향상에 대한 희망은 고도 성장을 향해 발돋움하는 70년대 한국 자본의 성장에 대한 대중적 반영이다그러나 중산층은 일정한 경제 성장의 규모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한정된 기회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 낙원에 들어 갈 수는 없다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바람은 거짓 희망이었다.

오늘날은 다른 의미에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다사람들은 낙원구 행복동의 문이 닫혀 버렸다는 것을 안다고용 안정성과 중위소득 이상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인 국가기구의 공무원공공기관대기업의 고용은 예전과 같이 늘어날 수 없다자영업자중소상공인의 상위 30%는 예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지만 나머지는 공과금이자월세 비용의 상승으로 인하여 아래로 부터 차근차근 한계상황을 맞이한다낮은 노동소득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지나하층 자영업자의 처치는 다를 바가 없다다수가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채차오르는 물을 지켜보고 있다.

사회적 불만으로 꽉들어 찬 압력밥솥과 같은 사회상태는 어떠한 형식이든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간에 터져야만 한다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지 아니면 질식상태가 얼마간 더 계속될지는 사회적 다수를 차지한 중하층의 정치적 태도에 달려 있다중산층은 현재의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적이다대부분의 당파가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반면 민주주의 투쟁에서 무산자의 깃발을 들고 그들의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는 정당은 부재하다이런 정치적 상황은 무산자층에게 거짓 희망을 부추기며 그릇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렇듯 현재 경제 정치 상황이 요구하는 바는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시대와 구체적 상황을 달리 하지만 46년 전의 소설 [난쏘공]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자신들의 계급혁명의 단편들을 보여주었다노동운동을 탄압한 그룹 사장의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큰 오빠 영수 뒷편의 어린 여공들은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악당들과 맞설것을 종용했다신애는 남 보다 빨리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난장이의 말을 믿어 주었고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맞서 칼을 들었다그리고 어쩌면 저희도 난장이랍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 모두가 살아나야 한다희망을 짓밟는 낡은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기 위해 치켜 세운 깃발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국제] 푸틴과 서방의 도를 넘는 위선

 [국제] 

푸틴과 서방의 도를 넘는 위선

 

번역 김의진

쏘련 붕괴 이래 서방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망령을 항상 탐색하고 있다. 1991년과 2003년 당시 사담 후세인이, 1998년에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2001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2011년에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3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등이 바로 그러한 망령들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 국제정치에서 악당의 역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주어졌다최근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은 서방 주류언론의 반()푸틴 공세를 재생시켰다미국과 나토유럽연합은 러시아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세계의 기수로서 자신을 스스로 다시 한번 포장했다서방은 푸틴의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재차 굴고 있다실로 부끄러운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서방 지도자들에 의해 독재자로 묘사되고 있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은 실은 그들과 똑같은 부류이다그는 쏘련에서의 자본주의 반혁명의 정치적 적자이다그의 정치적 스승은 보리스 옐친과 아나톨리 소브착과 같은 극악무도한 반공주의자들이다푸틴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모든 대통령지도자들과 공통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다그는 자유시장의 옹호자이며열렬한 반공주의자이다.

오늘날 푸틴의 권위주의를 성토하고 있는 서방은 과거 1999년 8월에 푸틴의 정치적 부상을 축하했던 바로 그 서방이었다당시 옐친 대통령의 부탁으로 러시아의 총리직에 올랐던 자유주의, “민주적” 지도자를 서방 국가들은 환영했다몇 달 후푸틴은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며 선거에 당선됐다러시아 경제의 자유화를 향한 푸틴의 헌신은 서방 지도자들에 의해 매우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자본과 마찬가지로 반공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위해 복무하는 모든 이들을 단결시키는 경향을 띠고 있다.

옐친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던 발렌틴 유마셰프는 푸틴의 대통령 당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마셰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옐친은 보리스 넴초프세르게이 스테파신니콜라이 악세넨코와 같은 후보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소옐친과 나는 차기 대통령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네우리는 푸틴에 대해 의논했지옐친은 나에게 물었다네. ‘푸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나는 그가 훌륭한 차기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답했소. ‘푸틴을 차기 주자로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가 더욱 어려운 과제들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일을 처리해 왔던 방식을 볼 때 명백합니다.’ 푸틴이 과거 KGB의 요원이었다는 것은 아무런 하자가 되지 않았다네푸틴은 시장개혁을 이어 나가기를 원하는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을 증명했소.”

 2000년에 최초로 푸틴과 회동했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푸틴이 경제개혁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약속을 표명했다고 말하며 유마셰프의 주장에 동의했다미국과 유럽연합의 지도자들이 경제개혁에 대해 말할 때그들의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그들이 말하는 것은 독점체에 더 많은 이윤을사유화의 확대를복지국가의 완전한 해체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한다.

푸틴은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전략적 목표가 국제제국주의 질서에서 더 높은 지위를 더욱 적극적으로공격적으로 추구하고세계 전역에서 러시아 독점체의 이익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2007년 이전까지 미국과 나토유럽연합의 친구이자 동맹자였다그 후에 일어났던 일련의 모든 사건(조지아에서의 군사분쟁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분리독립미국이 후원했던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과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 등)은 모스크바와 서방 사이에서의 제국주의 내부 경쟁의 격화로 이어졌다.

오늘날 유럽-대서양 제국주의 블록은 민주적” 서방과 러시아 권위주의” 사이에 잘못된 선을 긋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그러나 양 진영이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났고 자라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양 진영은 인민들의 고혈을 대가로 자국 독점체의 이윤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의 개전 이래 2년 동안 노동자계급은 자각적 의식에 근거하여 그 어떤 제국주의 약탈자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레닌의 말은 이전의 모든 시기보다 더욱더 시의적절성을 지니고 있다.

번역 원문: Putin and the unbearable hypocrisy of the West. (In Defense of Communism)


[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어제도 들었다 . “ 사장님 ,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 저 사장 아닌데요 .  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 ?” 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  그저 웃으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