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5일 금요일

미국 위한 전쟁으로 뛰어드는 윤석열

 북 침공훈련,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대만 전쟁 개입

윤석열 정권이 국내 지지기반을 잃어가자, 정권의 운명을 미국과 일본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이미 굴욕적인 일본 방문으로 보수층조차 윤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국빈방문이라는 감투를 씌고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 국민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미외교를 마쳤다. 

윤 대통령은 방미에 앞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을 끌어 들이기위해 대통령실을 도청한 미국을 감싸고 돌았다. 친구를 감시하는 친구가 있냐는 미국 기자의 조롱에 한미 간의 신뢰와 동맹이 굳건하다는 수치스런 답변을 했다.

대통령실은 일본이 백년 전의 일로 한국에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하다가 기자가 발언 원본을 폭로하여 망신당했다. 윤 대통령이 정권의 정당성을 미일에 의존하는 대신 돌려받은 청구서는 한반도가 한미일과 중러북이 대결하는 전쟁터가 돼도 좋다는 각서이다. 



한미일은 이미 지난 3월에 육해공에서 북을 전면 침공하는 자유의 방패 훈련을 한바 있다. 이번 방미에서 윤 대통령은 북과의 핵전쟁을 막는 예방책을 제시하는 대신 한미일과 함께 북에 대한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공동선언했다.  한미일의 공격훈련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경고를 했음에도, 윤 정권은 아예 중러를 상대로 전쟁도 불사할 태세이다. 

윤 대통령은 방미에 앞서 우크라이나가 사용할 포탄을 독일 내 미군을 통해 지원했다.

또한 한미정상 공동선언을 통해 대만전쟁에도 개입할 의도를 드러냈다.                        

편집국

 정규직도 1호봉으로 적용받는 최저임금, “1만2천원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포함한 4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4월 26일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들은 물가폭등과 가구생계비를 기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을  9천620원보다 24.7%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4월 4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4개 지역에서 '2023 최저임금 투쟁 선포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중소사업장에 직접 적용되고 있다. 나아가 공무원, 군인 등 다수의 정규직도 처음 고용될 때 최저임금을 1호봉으로 적용받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시작하여 전체 공공부문, 민간 부문까지 장기적으로 최저임금을 기준 임금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경기침체와 물가폭등 속에서 노사정 간의 최저임금 투쟁은 어느 때보다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4월 18일 첫 전원회의는 신경전 끝에 회의조차 열리지 못했다.             

편집국

달러 패권의 거대한 댐에 금이 가고 있다

 미국의 결제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브릭스와 중동이 선두

여기저기서 달러 패권의 거대한 댐에 금이 가고 있다. 

지난 4월 2일 러시아 국영방송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러시아 의회 부의장인 알렉산더 바바코프는 브릭스 기축통화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판매의 위안화 결제를 일부 수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중국이 중동산 LNG 6만5천톤을 위안화로 결제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처음으로 LNG가 위안화로 거래된 것이다. 

같은 날 브라질과 중국은 양국의 수출입 결제와 금융 거래에서 위안화와 헤알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기업들은 미국의 SWIFT 결제 시스템 대신에 중국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도 달러가 아닌 자국화폐인 루피로 무역을 하겠다고 밝혔다.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공통 통화(SUR)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위안화를 결제 통화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달러의 기축통화 기반은 1973년 미국의 키신저과 사우디의 파이살 국왕의 비밀협상으로 석유 거래는 달러로만 하기로 하면서 만들어진 페트로달러이다. 

페트로달러는 달러의 구매력을 보장하여 마치 달러가 금과 같은 가치를 갖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하여 달러가 가치저장 수단의 기능을 갖게 되어 각국의 중앙은행은 준비금으로 금 대신 달러를 비축하게 되었다.

결제 수단으로서의 달러는 1973년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달러 국제결제시스템인 SWIFT를 만들어 달러를 중심 통화로 삼으면서 확고해졌다. 

이후 달러는 무역거래와 금융거래에서 결제통화로서 80%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SWIFT 시스템을 무기화했다. 이는 미국의 자충수가 됐다. 2012년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을 빌미로 SWIFT 시스템에서 이란을 차단했다. 

이에 놀란 것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이후 러시아는 2014년 루블화 결제시스템을, 중국은 2015년 위안화 결제시스템을 완성했다. 

이런 탈달러 움직임을 보인 나라는 비단 중국과 러시아만은 아니다. 유럽도 2018년 자체 결제시스템을 마련했다.

이후 달러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달러는 2003년 전세계 총 준비금의 3분의 2를 차지했지만 그 비율이 2021년 55%로, 2022년 47%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신재길

금과 천연자원에 연동하는 브릭스 기축통화가 부상한다

 브릭스 기축통화는 3단계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1단계는 특정통화(위안화). 2단계는 디지털화폐. 3단계는 금과 회토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가치불변 화폐)의 사용이다.

1단계에서 기축통화가 다원화될 것이다. 위안화가 급부상하면서 달러, 유로, 위안의 3두체제로 될 것이다.

2단계에서는 화폐의 종류가 다양화된다. 기존의 법정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그리고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3단계는 신용화폐와 실물화폐가 대결하고, 법정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이 대결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기존의 달러나 유로는 신용화폐이자 법정화폐이고 새로운 브릭스 화폐는 실물화폐이자 스테이블 코인이다. 만약 3단계까지 진행된다면 세계화폐제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다시 상품(실물)화폐시대의 도래다. 브릭스 국가들은 자원보유 대국이다. 

그동안 달러체제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나라들이 자원보유국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가 없는 달러와 가치담보물인 자원을 교환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릭스 국가들은 상품화폐를 선호한다. 과연 실물화폐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데 브릭스 국가들은 자원대국일 뿐만 아니라 특히 중국, 인도, 러시아는 금을 다량으로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금과 중요 자원을 화폐발행의 담보로 삼을 공산이 크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이 희토류이다. 희토류는 첨단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인데 브릭스가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72.5%를 독점하고 있고 중국은 희토류 가공생산(기술)의 87%를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원유도 화폐발행의 담보로 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와 이란이 브릭스에 가입하게 되면 주요 원유생산국이 브릭스에 가담하게 되고 원유를 브릭스 통화의 담보로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브릭스 통화는 상품화폐가 되어 신용화폐인 달러와 경쟁하게 되는데 결국 상품화폐인 브릭스 화폐 쪽으로 승기는 기울어 질 것이다.

물론 당장 달러 패권이 무너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거대한 댐도 조금씩 금이 가다 어느날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초기엔 천천히 나중엔 빠르게 그렇게 달러 패권은 무너질 것이다.

신재길


1,000조 원이나 된다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면? 

 연금까지 모든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고, 착취된 노동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약 1,000조 원이다. 일종의 거대한 은행이다. 국민연금은 보통 은행처럼 채권, 주식 등에 투자한다. 이 기금은 화폐자본으로 기능한다. 작년에는 약 80조원 손실을 보았다. 자본은 은행자본-산업자본-상품자본으로 순환한다. 이를테면 기금 1천조가 채권, 주식에 투자되어 생산자본이 된다. 

생산자본은 생산수단(공장, 기계, 원료)과 임금으로 분할된다. 일년에 총가치의 1/10이 회전한다고 하고, 100W이라고 하자. 90C의 생산수단과 10V의 임금으로 분할되어, 상품생산에 소비된다. 노동자는 60w의 가치를 새롭게 생산한다고 하자. 

잉여가치는 50w이고, 잉여가치율(잉여가치/임금)=50/10=500

%가 된다. 그러면 상품의 가치 (90C+10V+50S)는 = 150W이다. 이윤(잉여가치)는 50w이 된다. 즉 연기금 1천조는 50조원의 이윤을 1년간 남겼다(이윤율 5%).따라서 그 생산을 만들어낸 노동자의 소비와 소비된 생산수단을 공제하고, 50조원만큼의 생산물을 사회에 제공한 것이다.

그러면 50조원만큼의 생산물은 누구의 몫인가. 1천조 원을 운용한 주체는 두 곳이다. 첫째, 국민연금은 대부를 했고, 둘째, 기업가는 생산자본을 운용했다. 

따라서 이자율이 2.5%라면, 연기금 25조원(1천조의 2.5%), 기업가도 25조원을 가지게 된다. 연기금은 이 돈으로 퇴직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연기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유행어처럼 “연기금이 고갈된다면” 어떡하나? 그러면 퇴직자는 굶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에는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도, 그리고 노동력도 차고 넘쳐나고 있다. 연기금이 퇴장해도, 다른 화폐자본이 대신할 것이다.

혹은 70-80% 정도인 공장 가동율만을 올려도, 50조만큼의 잉여가치(잉여생산물)를 더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전자에서는 25조원을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다. 

후자에서는 다른 화폐자본가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연기금과 기타 화폐자본은 모두, 그리고 모든 자본은 궁극적으로 노동의 산물이고, 착취된 노동이다. 그 25조원 자체도 물론 착취된 노동이다. 결국 연기금이 고갈되어도, 생산은 아무런 문제없이 지속된다. 그런데 그 노동의 생산물, 혹은 그 가치형태(화폐)를 자본이 소유하고, 임의로 처분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힘으로 쟁취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고,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의 형태로, 여유로운 노후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연금을 지급받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현숙(노동운동가)

세월호 희생자 중 강제폐광 후 이주한 광부들 후손 많아

 43주년을 맞이하여, 현재진행형인 사북항쟁을 되새김

4월 21일은 사북항쟁이 발발한지 43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광부들의 삶은 처참했다. 최저생계비의 64%에 불과한 임금과 도급제로 착취당했으며, 그나마 채굴량을 눈대중으로 적게 계산해, 차액은 회사에서 횡령했다.

노동자 1천명당 사망자 비율이 일반 제조업보다 20배 높은 희생을 치렀지만, 인생 최하류 막장 취급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사는 집은 고지대의 산기슭에 슬레이트지붕에 블록으로 다닥다닥 이어진 연립주택으로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환경이었으며,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었다.

사북항쟁은 1980년 4월 21일부터 4일간 정선군 사북에서 광부와 그 가족, 지역주민까지 떨쳐 일어나 노동인권 개선과 부당한 국가공권력에 대항했던 항쟁이다. 어용노조 집행부가 회사 측과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에 합의한 것을 계기로 4월 21일 노동자들은 농성에 들어갔고, 경찰의 감시와 폭력적인 진압에 맞서서 광부 가족은 물론 사북의 모든 지역사회가 들고 일어나 4일간 사북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근로조건 투쟁을 넘어서서 노동자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80년 당시 학내에서만 머물던 학생운동이 가두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어낸 투쟁이었고, 노동운동 측면에서도 유신 이후 최초로 파업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폭동’이라는 어두운 누명은 20년도 더 지나서 벗겨졌다. ‘같은 시기에 발생했던 부마항쟁이나 광주항쟁과 달리 가장 늦게 명예회복을 한 것이다. 

그러나 뒤늦은 명예회복으로 사북항쟁이 끝난 것은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다. 90년대 석탄산업합리화의 광풍에 밀려 폐광이 진행되자, 광부들은 일자리를 찾아 당시 조성되기 시작한 안산의 반월공단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그리고, 2014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 중에는 광부의 후손들이 많았다. 이렇게 한국에서 가장 아래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노동계급이 대를 이어 희생되고 있다. 

사북항쟁 43주년을 맞이해 반복되는 노동계급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늦은 만큼 더욱 더 많은 관심과 되새김이 필요하다. 고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광부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이건수(노동당 전국위원)

이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으로 구체화하자

지난 4.24 민주노총 임시대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직권 상정한 총선(정치)방침은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과 대의원들의 동의아래 토론안건으로 변경되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토론방식이 집행부가 상정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당`에 대한 찬반토론에 갇히는 바람에 대의원들의 고민들과 입장들이 총선(정치)방침으로 풍부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특정 정치방침(안)에 대한 찬반토론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치방침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 향후 총선(정치)방침 논의기구는 찬반이 아니라 다양한 방안을 나열하면서 논의하고 합의해나가야 한다.



반대토론에 나온 의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합원 목소리는 없다, 성급하게 결정하면 안 된다, 노동자 투쟁과 함께 해야 한다, 패권주의와 야권연대에 대한 우려, 진보`좌파4당이 합의해야 한다, 정해놓고 하면 안 된다, 선거주의 의회주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보수정당과의 정치적 단절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와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방안이 되어야 한다, 진보정당들이 먼저 뭉쳐야 한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의회정치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진보정당들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가는 길이 정치세력화다.”

찬성토론에 나온 의견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없거나 늦어져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원정수를 늘려 감시의 눈을 늘리자, 정치방침도 7월 총파업도 함께 준비해나가야 한다, 정치총파업과 진보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120만의 정치를 세우자, 20만 조합원 당원시대로 나아가자, 보수정당 기웃거리기 싫다 힘 있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진보정치 통합에 대한 현장의 기대감과 갈증이 있다, 민주노총 선언과 강령대로 합의해나가자, 패권주의에 반대하지만 차이는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하자.”       

이후 민주노총은 총선(정치)방침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한다. 이 기구의 내외에서 민주노총 내 각 정파들과 집단들 그리고 진보`좌파4당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정치(총선)방침으로 구체화해서 제출해야 한다. 또한 개인과 집단 그리고 정당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방식을 공개해야 대중적 논의가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은 자본의 보수양당체제를 타파할 구체적인 총선(정치)방침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은 지난 12년간의 정치방침 없는 후보단일화도 넘어서야 한다.        김동성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 사업, 정당 사전 동의 불필요

 정치부대·정치교육과 정치투쟁·강력한 원내정당 건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란주체로서 정치부대의 형성, 정치교육과 정치투쟁, 강력한 원내정당 건설이다. 정치위원회가 회의체 수준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실천단은 제대로 구성조차 되지 못해 정치부대 형성에 실패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에 대한 정치교육을 정당에 떠넘겼으며, 정당 역시 독자적인 노동자정치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에 있어 민주주의, 반전평화, 통일, 생태 등을 위한 거리투쟁과 양당제 돌파를 위한 정치개혁투쟁을 나름 전개해왔다. 

강력한 원내 정당 건설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희망적인 출발을 하였으나 견고한 보수양당제의 장벽을 넘지 못했으며, 이념논쟁, 패권과 분열로 인해 퇴보해왔다.

민주노총 내부에 정치부대 형성, 정치투쟁과 정치교육 강화라는 목표에 대해 큰 이견은 없다.다만 기업별 노조 대표자 조직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민주노조운동의 쇠락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후 정치세력화 논란에서 보듯이 핵심적인 쟁점은 원내정당의 건설에 동의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건설하느냐이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에 원내정당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이미 변혁이론에 의해 부당한 것으로 검증됐고, 다수 노동자 대중의 뜻과 다르므로 원내정당 건설 방침은 부득이하게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의회참여를 반대하는 세력은 정치투쟁에 주력하면 될 일이지 노동자 다수의 원내정당 건설에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다. 

둘째 민주노총이 출범정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사업이므로 더 이상 정치를 무기력한 진보정당에 맡길 수 없으며,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사람과 돈을 얻어가면서 “정치는 당에게 맡기라” 식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셋째 현재 진보정당들은 통합이든, 연합이든 하나가 되라는 조합원 다수의 소망을 자발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사와 능력이 부족하므로 민주노총이 진보정당들이 최소한 연합정치를 하도록 강력하게 견인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민주노총은 진보정당들의 연합정치를 추동하는 안을 다수결로 결정할 때 정당들에게 사전동의를 받고 추진할 필요가 없다.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사업이며, 그동안 정당들의 성과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민주노총은 지지정당에게 민주노총안을 함께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그에 반대하는 정당은 지지정당에서 제외해야 한다.

여섯째 민주노총과 연합정치에 참여하기로 한 진보정당들은  중요사항에 대해 합의하여 추진해야 한다.                       

김장민

전미자동차노조(UAW) 첫 직선 선거에서 민주파 승리

지난 3월 27일 치러진 미국 최대의 제조업 산별노조인 전미 자동차노조(UAW) 집행부 결선투표에서 숀 페인 민주파 후보가 현직 레이 커리 위원장에게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앞서 1차 투표는 5파전으로 진행돼 커리 현 위원장이 38.2%를 얻어 페인 후보를 0.6% 차이로 이겼지만 이번 결선에선 페인 후보가 거꾸로 단 505표 차이로 승리했다. 

첫 직선제 투표율은 본선 11%, 결선 14%로 저조했다. 숀 페인은 조합원 단결(Members United) 후보 진영을 구성했고, 재무서기(마가렉 막)와 부위원장 2명(마이크 부스 & 리치 보이어), 지역대표 3명이 선출돼 집행평의회에서 집행부파에 비해 다수를 점하게 됐다.

1936년 연좌 농성 파업으로 결성된 UAW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대표적 산별노조이고, 조합원 40만 명과 은퇴조합원 60만 명이 소속돼 있다. 1979년 정점을 찍었던  150만 명 규모에 비하면 현재 크게 감소한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GM의 경우 1970년대 조합원이 최고 45만 명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5만 명(11%) 수준으로 감소했다. 또한 2017년 미시시피 니산공장과 2018년 테네시 폭스바겐 공장에서 조합 승인 투표에 패배했다. 

조합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 노동자(조교 등 학사지원 대학원생)를 조직해 이들이 전체 조합원의 20%를 차지한다. UAW는 미국 육체노동자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70년 넘게 집행부 독재를 유지했다. 이에 1980년대 이후 노동조합 개혁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개혁파가 형성됐다. 

1986년 제리 터커가 결성한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 그룹과 그 뒤를 이었던 조합원 행진단(UAW Caravan)이 대표적이다.

그 후 개혁파는 집행부의 탄압과 개혁의 실패에도 노동조합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2019년 결성된 민주파 현장조직(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 UAWD)이 “부패 반대, 양보 반대, 이중임금제 반대”의 슬로건을 내걸고 조합원 단결(MU)을 지지했다. 

UAWD의 개혁 요구 가운데 하나는 1 조합원 1표, 직선제 요구였다. 이 요구는 2019년 전 위원장 2명을 포함한 간부 13명이 구속된 부패 스캔들로 가능해졌다. 연방정부의 감독을 받게 된 UAW는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2021년 직선제 도입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고 63.6%의 찬성으로 직선제 실시가 확정됐다. 

그리고 첫 직전제 선거에서 민주파가 승리한 것이다. 구 집행부 측이 집행부 선거에서 패배했어도 전국 집행위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고, 특히 지역과 지부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어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번 특별총회에서 구 집행부를 대표하는 척 브라우닝 부위원장은 “협상을 앞두고 분열해서는 안 되므로 새 집행부를 지지하자”고 호소했다.                                                 원영수 

향후 과제는 조합원 감소·고용불안·산업전환

전미 자동차노조(UAW) 새 집행부가 직면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도부 부패 척결 외에도 전 집행부의 유산인 양보교섭과 조합원 감소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히 2007년 양보교섭으로 도입된 이중임금 시스템은 조합원의 단결을 가로막는 핵심적 문제다.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위기와 고통분담이란 명분 아래 UAW는 물가연동 생계비 수당(COLA)을 포기했고, 기존 조합원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신규 채용을 승인했다. 그 결과 같은 공정에서 신규 노동자는 정규직이지만, 기존 조합원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연금과 은퇴 후 의료보험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에 대처해야 하는 과제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의 조직화 수준은 낮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수당은 내연기관 조합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당장 UAW는 미국 자동차 빅3와 정면 대결을 앞두고 있다. 9월 14일 GM, 포드, 스텔란티스(크라이슬러)와 단체협약이 종료된다. 숀 페인의 위원장 선출 직후인 3월 27일 UAW는 단체협상 특별총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900명의 단협 대표가 참여했다.

현재 빅3의 UAW 조합원은 약 15만 명이고, 9월 종료된 단체협약을 갱신할 4개년 마스터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캐나다에 있는 빅3 소속 노동자 2만 명을 대표해 캐나다 유니포(Unifor, 구 CAW) 노조도 협상에 나선다.

이날 페인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의 정당한 몫을 거부하는 수백억 달러 기업과 사용자들, 우리의 진짜 적, 유일한 적에 맞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고 말했다.  또한 페인 위원장은 “UAW는 허락을 구하기 세워진 것이 아니다. 노조의 창건자들이 법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법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의 존엄과 정당한 몫을 원했으며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원영수

노동당이 추진한 조선공산당 표석 설치돼

 2023년 4월 17일 낮 1시쯤, 서울시 을지로 친일재벌 ㄹ호텔 앞 길. 소공동 빌딩가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붉은 깃발과 확성기를 들고 파고다 공원에서부터 이곳저곳 들러서 걸어온 사람들. 행사가 시작되자 그들의 행동거지는 자유스러움과 기품이 흘렀다. 

그들은 ‘조선공산당(코민테른 조선지부)’ 창당 97돌을 맞아 서울시 공식 기념판을 세우려고 지난 2년 동안 애쓴 노동당 인사들과 이를 축하 하려고 모인 민중들이었다. 이들은 인사동 ‘화요회’ 사무실 터·무산자동맹 터·허 헌·김원봉 살던 독립운동 유적지를 거쳐서 시간 맞춰 이곳에 모였다. 1925년 4월 17일 오후 1시 ㄹ호텔 커피가게 즈음에 있던 청요리집 아서원에 열아홉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조선공산당 창당을 결의하고 전형위원·중앙집행위원·검사위원을 뽑았다. 국제공산당(코민테른)에 보낸 당창립 총회록은 간명하다. “一九二五年 四月十七日에 경성에서 제1회 조선공산당 대회를 개최하다 출석대표자가 십구인이라 준비위원으로부터 준비에 대한 보고 및 검사한 대표증을 전부 승인하고 규칙, 강령과 국제가입과 정치, 경제, 로동 기타 모든 문제를 토의결정한 후 김재봉, 김약수, 주종건, 김 찬, 유진희, 조동호, 정운해 일곱동무를 중앙집행위원으로 윤덕병, 홍덕유, 송봉우 세 동무를 검사원으로 선거하다 一九二五年 四月十七日 議長 金若水 書記 趙東祜(세로로 쓰인 김약수 이름 밑에 그의 서명이, 날자 옆에 당직인이 찍혀 있다)”

다음날인 4월 18일 가회동 김찬 집에서 제1차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책임비서 김재봉 등 당 조직을 구성하였다. 이날 고려공산청년회도 결성되어 책임비서 박헌영과 권오설 등 중앙집행위원 일곱을 뽑았다. 이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조공 당원들이 감옥에서 보낸 세월은 수만 년에 달한다. 감옥에서 쓰러진 혁명가들은 미처 헤아리지도 못했다. 긴 빙하기를 거쳐 감격의 당재건. 곧 이어 북조선분국의 분립, 남북로동당 창건과 조선로동당 합당, 6.25전쟁과 미제간첩 재판을 거쳐 숨가쁜 98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2023년 4월 17일 남한 진보정당과 민중들이 서울시 공식 표지판을 세우고 기념식을 한 것이다. 조선공산당의 투사들이 항일전쟁기와 해방공간을 거쳐 이루고자 했던 자유독립국가 건설과 세계혁명은 무엇이었으며 지금 현실과 어떻게 다를까. 지난 세월의 가운데 쯤인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남한 민중들은 맑스·레닌주의와 변증법적 역사유물론과 사회과학과 혁명적 문예운동의 세례를 받고 열심히 공부도 했다. 

그러나 맑스주의 동아시아화(化)와 조선 맑스주의 운동에 대한 고민은 너무 적었다. 우리는 현단계에 대한 인식, 즉 남한은 어떤 사회구성체이며 민족모순과 분단모순은 어떻게 할 것 인가하는 문제풀이와 함께 우리를 위해서 싸워준 분들을 공부해야 한다. 

이는 바로 나의 존재조건을 인식하는 일이다.                  

류승완

국제공산당 인사 방한, 러우 전쟁 성격 놓고 토론

 지난 4월 4일부터 8일까지 영국의 ‘맑스레닌주의공산당’ 크리스티나 코스토우라 부대표와 조지 코르코벨로스 중앙위원이 ‘반제폴랫폼’의 초청으로 내한했다. 이들은 노동자신문을 비롯한 다수의 사회단체에서 러우전쟁을 유발한 미국을 규탄하고 그리스공산당의 ‘제국주의피라미드’ 이론을 비판하는 강연회와 토론회의 연사로 나섰다.

국제공산당들은 러우전쟁에 대해 러시아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 충돌로 보는 입장과 미국 제국주의의 나토확장에 따른 러시아의 정당한 대응으로 보는 입장으로 나눠져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제국주의국가의 개념을 확대하여 타국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를 제국주의국가로 본다이러한 제국주의 피라미드 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최고 정점에 있는 제국주의이며, 중러뿐만 아니라 터키나 그리스처럼 제3세계에 대해 강압적 정책을 구사하는 나라들도 제국주의다. 

이들 제국주의들은 피라미드처럼 1등 제국주의 집단, 2등 제국주의 집단, 3등 제국주의 집단을 구성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러우전쟁은 미러 제국주의 간의 전쟁이 되므로 양측 모두를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주의 피라미드 이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미러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므로 동정의 대상이며, 심지어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그리스공산당을 비판하는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권이 러우전쟁 이전부터 자국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해 차별과 학살을 자행해왔다면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을 위해 대신 전쟁하는 대리정권 혹은 파쇼정권이라고 비판한다.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발전수준인 독점자본주의로 보는 레닌의 기준으로 해석한다면 국내적으로 금융자본의 지배, 국외적으로 식민지 혹은 대리정권 수준의 강한 정치적 지배가 없는 경우를 제국주의로 볼 수 없다.

따라서 터키나 그리스는 물론 자본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중러가 비록 타국에 대해 지배력을 확대하더라도 상품과 자본을 수출하려는 목적으로 대리정권을 내세우는 수준의 지배가 없는 한 레닌이 말하는 제국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제국주의 개념을 확대한다면 중러를 제국주의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을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에서 러우전쟁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은 친미세력이 친러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반면 국제전은 미국이 원인을 제공하고 러시아가 특수작전이라면서 사실상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김장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말살당하는 건설노동자

 일감실종, 마녀사냥에 흩어지는 현장, 단결투쟁으로 돌파해야

건설현장도 2022년 말부터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나 역시 현장에서 일감이 없어 수개월째 실업상태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권이 임기초반부터 지지율이 폭락하자 보수 표를 노리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더니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을 주 목표로 잡고 타격하고 있다. 그로 인해 건설 노동자들의 생계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평소 민주노조에 불만이 있던 노동자들은 조합이 일감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가 노조가 사측에 너무 강성이거나 임금을 너무 많이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노조를 비난한다. 사측은 정부의 뒷배를 믿고 교섭을 시도하는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피해 다니고 있다. 

사측은 대신 어용노조와 한패가 돼 민주노조를 압박하고 노동자들을 노조에서 내몰고 있다. 정권의 탄압 이후 사측은 더욱  고강도의 노동을 요구하면서 수십 년 경력의 팀장과 반장들까지노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하도급으로 내 몰고 있다. 

기능학교 출신처럼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나 별다른 인맥이 없는 사람들이 노동현장에서 처우가 더 열악해지고 고용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 중 여성 노동자들은 특히 심각하다. 여성노동자는 작업 숙련도나 업무처리 능력과 상관없이 “여자니까 노동생산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사측의 편견으로 사실상 대놓고 차별당하고 있다. 

정권의 탄압과 건설현장의 불안은 현장 노동자들보다 박봉에 시달리는 상근자나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큰 재앙이다. 이들은 사측과 치열하게 투쟁해야 일감이 생기는 건설현장의 특성 때문에 평상시에도 경찰서와 법정에 자주 출두해왔다. 

그런데 윤 정권이 건설노조 수십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수백 명의 조합 활동가들을 체포구속하거나 수사하면서 마녀사냥 식 처벌이 폭증하고 있다. 보수여론을 등에 업고 경찰과 검찰이 온갖 죄목으로 건설노동자들을 재판에 넘기고 있고 법원 역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경우가 늘고 심지어 법정구속이 빈번해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다. 건설현장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불안을 넘어 공포로 흘러가고 있다. 공황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는 있을 리 없다고 장담하던 부류조차 노동전반에 생존경쟁과 노동좌절이 심각하다고 인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조 및 정치세력에 필요한 것은 협상이 아니라 매우 강한 투쟁이다. 

노동자가 각자도생으로 분열하면 음식쓰레기를 두고 다투는 비둘기와 같은 비참함에 처한다.

노조가 평소대로 현장노동자들을 대충 통제하려고 하면서 어영부영한 태도로 집회를 한다면서 한가롭게 촛불이나 들고 다닐 때가 아니다.  노동자 전체가 힘을 합쳐 결사투쟁하지 않으면 각자도생의 이기심에 갇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두고 서로 먹겠다고 쪼아대며 더럽고 비굴하게 사는 도시 비둘기처럼 처참하고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영훈(건설노동자)

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

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투쟁에 나서며 내걸었던 요구 중 하나가 ‘두발자유화’였다는 것은 꽤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처음으로 파업 투쟁에 나섰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 의미가 ‘학교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라고 인정받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임금 인상 투쟁이 아닌 사회적 지위 인정 투쟁이었다.”(《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교육공동체 벗, 2023, 147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억압받고, 능력주의로 포장된 위계 속에 차별을 겪게 된다. 노동운동은 이에 저항하여 평등한 존엄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초·중·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제기했던 문제도 ‘두발자유화’였다. 2000년, 온라인 서명운동과 거리 캠페인 등으로 시작된 ‘노컷운동’은 처음으로 학생인권 문제를 사회에 공론화시킨 대중적 운동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거치며 딱 한 줄,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문만 남아 통과되었다. 이 조항은 초·중등교육법에 학교의 학생인권 보장 의무가 명시되었다는 성과는 있지만, 아무런 구체성이 없었기에 학교 현장에 잘 가닿지 못했다.

두발자유화를 비롯해 학생인권에 조금이나마 가시적 진전이 이뤄진 건 2010년에 이르러서였다.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이후 3년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까지 총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던 것이다. 2020년 충남과 제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 현재 총 6개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한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그 이전에는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에 있었던 두발복장규제가 지금은 50~60%가량에 있는 걸로 조사되며, 그 규제 정도도 완화되었다. 야간자율학습 강요나 소지품 검사와 같은 악습도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학교 체벌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2011) 및 아동복지법 개정(2015)이 더해져 최근 조사에선 경험률이 20% 아래로 떨어졌다.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 진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권위주의적인 위계와 상명하복의 문화를 겪어 왔고, 권력자의 편의에 따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인권을 짓밟아도 된다는 규범을 받아들여 왔다. 이는 일터에서도 노동자들의 두발복장을 단속하고, 휴대전화를 금지하며,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게다가 이런 폭력적인 억압은 학생들을 경쟁과 서열화로 몰아넣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충남에선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이 주민발안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여타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 중엔 ‘학생인권 때문에 학생이 교사에게 대든다’, ‘학력이 떨어진다’(근거도 없지만) 등이 있다. 이는 결국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란, 윗사람 말에 잠자코 따르며 얌전히 입시 공부만 하는, 체제와 권력에 순응하고 경쟁에 열심인 학생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교육은 노동자를 위한 교육도, 인간을 위한 교육도 아니다. 학생인권은 전국 모든 지역에 적용되는 ‘학생인권법’으로 오히려 확대되어야만 한다. 첫째론 학생도 인간이기 때문에. 둘째론 모든 사람의 존엄이 존중받고 인간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위해서.

 공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2023년 5월 4일 목요일

최저임금 투쟁을 통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자!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란 구호 아래 현재 최저임금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최저임금이 모든 노동자들, 특히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의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과 민주노총을 귀족노조, 폭력집단, 간첩집단, 부패집단으로 몰아가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최저임금투쟁을 통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자는 의미의 바람직한 구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16일 중집에서 2024년 최저임금 요구안과 2023년 최저임금투쟁계획을 확정했다. 4월 4일 한국노총과 함께 시급 12,000원, 월급 250만원을 노동계 요구안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최저임금 투쟁은 가시화되었다. 

4월 18일 제 1차 최저임금전원회의는 노동계의 권순원 간사 사퇴요구 선전전을 이유로 개최되지 못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권순원 간사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핵심인물이니 당연한 요구이다. 

민주노총은 홈페이지에 2023 최저임금 특별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각종 영상 및 카드뉴스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주 69시간제 주장의 주범이자 최저임금 역대 최악의 인상률을 기록한 권순원 간사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시급 12,000원(월 250만원) 동의 서명운동, 영상과 수기 공모, 체감경기 임금실태 전국설문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 언론에서 다루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근거는 “물가 폭등도 맞고, 임금인상도 필요한데 그러면 물가가 또 오르는 거 아니냐?”이다. 민주노총은 카드뉴스로 기존의 최저임금 인상율과 물가인상율의 비교표를 통해 2010년 최저임금은 2.75% 인상, 소비자물가인상률은 3% 인상, 2018년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16.4% 인상, 소비자물가인상률은 1.4% 인상에 불과함을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인상은 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임금이 노동력이란 상품의 대가이며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며,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들의 잉여가치(이윤)이 줄어들고, 임금이 줄어들면 자본가들의 잉여가치(이윤)이 늘어난다는 것만 이해할 수 있다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가짜뉴스에 속지 않고 최저임금투쟁을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부산일반노조 대학사업장은 근로시간을 일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축소하여 임금을 작년 기준으로 16만 원, 올해 기준으로 26만 원이 줄어든 곳이 있다. 지방노동위 쟁의조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좀 오른다고 근로시간 단축하고 산입범위 확대하는 저 꼼수들도 다 박살내야 한다. 투쟁!

천연옥(부산일반노조 위원장)

불법파견 투쟁 18년 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했으나

 2002년 10월 27일 대법 승소, 해고 이후 18년 만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에서 정규직으로 원직 복직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 첫발을 내디뎠다. 현장으로 들어오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조립차량에 부착된 명판 하단에 “내 손으로 최고의 차”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원직 복직한 업무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공정이다. 인원 10명 중 나만 정규직이고 기존에 일하던 비정규직은 직접 고용한 촉탁직으로 채워져 있다. 현대자본은 불법파견 판결 이후 하청업체를 없애고 고용형태를 촉탁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공정 및 법원의 잇따른 승소 이후, 촉탁 노동자의 수가 상당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해왔던 나로서는 그들의 지극히 불안정한 처지를 보며 참으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분노가 교차한다. 

촉탁직 노동자들은 기피 공정에서 3개월씩 연장하여 최대 1년 10개월에 한해서 일할 수 있다. 자본은 파견법을 비켜나가기 위한 꼼수로 근속 2년을 채우기 전에 잘라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재입사는 평생 불가능하다. 현대차 자본이 내세운 “내 손으로 최고의 차”는 2년도 되기 전에 ‘완전히’ 버려지는 촉탁 노동자의 현실과는 극명한 모순이다. 이런 현실은 부끄러운 비정규직 정규직화 운동의 자화상이다.

2001년경부터 각각의 논의와 준비를 거쳐 2003년 비정규직투쟁위원회 결성했다. 그해 7월 비정규직 노조를 출범시켰고, 현대차 자본은 극악한 탄압을 자행했다. 새내기와 다름없는 비정규직 노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차 자본과의 명운을 건 싸움 과정이었다. 

하나의 파도를 넘으면 또 다른 거대한 파도가 수없이 밀려오는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분신 자결, 구속·수배, 해고, 손배 등 이루 말할 수 없었던 탄압에 맞선 투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촉탁직 노동자의 현실 앞에 투쟁 승리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에서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차별과 특별채용으로 재입사한 9천 명의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가 여전하다.

임단협 등과 불법파견 투쟁이 지속되고 있고 불법파견 투쟁으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현장에는 촉탁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가 넘쳐나고,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으로 노동자 죽이기에 나서는 상황, 현장에는 여전히 탈의실 휴게실조차도 정규직만이 쓰는 현실에서 무엇을 위한 노동조합이고 운동인지 근본적인 고민과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안기호(전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

우체국 집배노동자는 언제까지 봉이 돼야 하는가?

 대체인력 투입과 교섭거부, 강제노동, 구조조정을 연대투쟁으로 깨부수자!

3월 14일부터 시작된 우체국택배노조 부분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단가인하로 인한 생존권의 문제가 달려있기에 택배노조는 협상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와 물류지원단 자회사는 집배인원 대체로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협상자체를 거부하거나 해태하고 있다. 믿는 구성이 바로 집배대체 인력인 것이다. 위탁택배 파업해봐야 집배노동자가 택배를 대신 배달하면 불편함이 없기에 교섭에 성실의무를 다하지 않을뿐더러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의 ‘배 째라’ 대응을 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불만은 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교섭대표노조인 우정노조가 대체인력투입에 ‘협의약속’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파업은 장기화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사태를 만든 우정사업본부와 물류지원단은 임금하락 없는 제대로 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또한, 연구용역에 맡겨 ‘집배정원 재배치와 집배 구조재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전국의 집배원이 455명만 남는다는 결론을 만들어 냈다. 우편물량이 줄어든 건 맞지만 배달업무가 줄어든 건 아닌데도 전산상의 수치만으로 인원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는 긴급성명서를 통해 소위 ‘과인원’ 정원회수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만약 연구용역의 결과대로 진행 된다면 큰 저항을 불러 올 것이다.사측 주장대로 인력이 남는다면 왜 휴일근무를 강제하는가? 

노조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던 전북지역본부 군산우체국지부에서 ‘택배노조파업시 택배배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21명의 노동자들이 부당징계를 통보받았다. 감봉에서부터 견책까지 사상초유의 대규모 징계 사태이다.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금지한 강제노동을 거부한 것이 어찌 징계사유가 된다는 말인가! 군산지부 조합원들은 당장 승진인사와 금전적 큰 손해를 입었다.

조합원과 노조는 소청진행과 법적 투쟁도 불사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집배노동자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못해 탄압과 굴종을 강요받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노예 같은 현실을 참지 않을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계급적 연대투쟁으로 사측의 교섭거부를 깨부수고, 부당징계를 철회시키고, 후퇴되는 노동조건을 반드시 막아내는 힘찬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정창수(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부천우체국지부장)


보험설계사도 노조법 2조, 3조 개정이 필요하다

 보험설계사는 보험 상품을 한 개 판매할 때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로서 현재 전국에 약 40만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 12월 20년 만에 전국단위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으면서 합법적 노조 활동을 시작하였다.

보험설계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수십년 동안 회사의 일방적 수수료 삭감, 부당 해고, 관리자 갑질 등의 피해를 당해 왔다. 그러다가 노조 합법화 이후 2021년 한화생명지회가 설립되면서 곧바로 2500명의 조합원이 가입했으며, 삼성화재노조에도 현재 보험설계사 4500명이 가입되어 있고, KB라이프파트너스, 우체국에서도 보험설계사 노조가 설립되는 등 급속한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험설계사들의 주요 요구는 회사의 관리 감독, 영업 강요 등을 거부하고, 기존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보험판매 수수료 등을 노사 협상을 통해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자본은 보험회사 영업조직을 분리하여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모든 설계사를 자회사로 보내고,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보험사와 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화생명의 경우 1만9천명이나 되는 보험설계사를 한화생명금융서비스라는 자회사 법인보험대리점을 만들어 분리시켰으며, KB라이프파트너스 또한 그렇게 영업조직만 분리된 회사이다.

현재 두 회사에서 단체협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회사는 수수료 결정권이 원청인 보험사에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노조법 2조, 3조 개정 투쟁이 보험설계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초기의 노동자는 ‘형식적인 신분의 자유’가 있지만, 생계를 위해 ‘스스로’ 임금 노예가 되어야하며, 작업장과 작업시간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끼리 일자리를 위한 경쟁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착취를 당하는 구조였다.그러나 보험설계사의 경우 작업장과 작업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형식적인 자유’가 있지만, 아무런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면 서 회사의 일방적 수수료 삭감 등으로 ‘스스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임금노예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보험설계사들의 투쟁은 은폐된 임금노예의 사슬을 끊는 투쟁이며, 노동자가 진정한 노동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오세중(사무금융노조보험설계사지부 지부장)

조봉암, 진보당 성공 뒤 사법피살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분단선거와 분단정권 참여

망우역사공원, 조봉암은 만해 한용운 맞은 편에 누워 있다. 터도 양명하고 잘 꾸며 놓았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남긴 까닭은 권력을 누려서가 아니라 권력에 죽임을 당해서이니, 사람은 끝도 중요하다. 항일전쟁기 그의 사회주의 운동은 빛난다. 

장덕수와 비슷하게 열다섯 살에 강화군청 고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군서기를 마다하고 일본에 간 것도 그렇다. 1921년 11월 조봉암은 박열과 함께 흑도회, ‘검은 파도회’를 만들었다. 

이때 김사국도 조선 대표격으로 초청되어 동경으로 갔었다. 조선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은 중국처럼 대개 볼셰비즘으로 정리된다. 

조봉암은 1922년 쏘련 베르흐네스크에서 열린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고려공산당 통합회의에 국내대표로 참석하고 이어 모스크바 동방노력자대학에서 공부한다. 1925년 5월 27일, 조공 제2차 중앙집행위원회는 조봉암을 코민테른 파견대표로 선임하고 전권대표 보좌의 권한을 위임했다. 

그 뒤 그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상해에서 코민테른 극동위원회 조선담당 위원을 지냈다. 1932년 일제에 붙잡혀 7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그의 처신은 현실주의였다. 1946년 6월 그는 전향선언을 했다. 이 과정은 미 정보기관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승만 밑에서 농림부장관을 했다. 그 무렵 토지개혁은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소작인과 지주의 첨예한 대립이 생생하게 나온다. 그가 이름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미군정과 이승만은 명목상의 토지개혁이라도 치러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가 당시 박헌영 주류파에게 던진 문제의 본질은 남한에서 미군정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하는 ‘원칙론과 현실주의의 관계’였다. 

절대무력을 가진 미군정은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적대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탄압이면 항쟁’이 원칙이지만, 자칫 사마귀가 수레에 달려드는 꼴이 된다. 

전멸 당하느니 피해서 주역량을 보존함은 대장정의 정신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그냥 굴종하면 다음 세대가 싸울 동력마저 잃게 된다. 어느 쪽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조봉암은 다시 이상을 좇았다. 1956년 진보당을 만들어 이승만의 북진통일에 맞서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공산독재와 자본독재 모두에 반대한다”는 제3의 중도노선을 명시했지만, ‘평화통일론’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 죽이는 ‘사법살인’의 구실이 되었다. 

그가 받은 216만 표가 다음 대선에서 이승만의 506만 표를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2011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재심에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봉암은 담담하게 갔지만 그의 비서 이영근과 조용수로 이어지는 남한 정치판의 ‘뫼비우스 띠’는 지금도 그대로이다.                                            

류승완

진보가 집권한 울산북구에서 발생한 민중항쟁

 주민이 반대에도 친환경시설이라고 강행했으나


2004년 11월 9일 울산북구청 앞에서 주민 2천5백여 명이 구청장,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양측에서 부상자와 구속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범 구청장, 조승수 국회의원, 북구의회 의장도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완전히 집권한 울산북구에서 왜 주민항쟁이 일어났을까? 집권한 민주노동당이 음식쓰레기를 재처리하는 음식물자원화 시설이 친환경시설이라며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반대하자 조승수 국회의원 후보,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공직자들이 총선 때 공사중단을 약속했다. 조승수 의원이 당선됐지만 울산북구의 집권정당과 구청장이 총선 후 공사를 강행해 주민들이 공사를 몸으로 중단시키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주민들은 공사장 진입을 막고 자녀의 등교를 거부했다. 이에 대응해 구청측은 사복형사들을 동원해 주민들을 감시하고 회유하였으며 주민들에게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했다.

충격적인 것은 음식물자원화 시설을 강행한 측도 민주노동당 소속이지만 농소동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하여 대책위 지도부도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2004년 9월말 북구당원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 국회의원, 구의원, 울산시당 위원장 등이 주민대책위 소속인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격론했다. 

진보적 가치에 부합하는 친환경시설이기 때문에 건설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친환경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짓지 않겠다는 총선 당시의 주민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 대립됐다. 결국 민주노동당 소속인 양측이 입장을 조율하지 못했다.

11월 폭력사태 이후 강혁진 민주노동당 당원 등 주민대책위 지도부가 구속되고, 주민들에게 손배가압류가 청구된 조건에서 주민들은 구청 측이 사실상 강요한 시민배심단을 통해 음식물자원화 시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은 시민배심단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라고 홍보까지 했다. 

조승수 의원은 총선 기간에 음식물자원화 시설을 중단하겠다는 불법 유인물을 뿌린 혐의로 처벌받아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정갑득 의원이 조승수 의원 자리에 출마했으나 주민들은 표로 심판했다. 울산북구에서 패배한 민주노동당은 논란 끝에 김혜경 지도부가 사퇴했다. 민주노동당 측이 강행한 음식물자원화시설은 민주노동당 주장과 달리 악취를 내뿜었다. 

한나라당은 선거 때마다 이 시설이 악취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 건설 중단 약속을 위반한 것, 자본가와 권력보다 더 악랄하게 주민을 탄압한 점을 부각하여 민주노동당의 아성 울산북구를 공략했다. 

울산북구를 탈환한 한나라당은 이 시설을 체육시설로 전환한 후 ‘진보의 독선’이라며 선거 때마다 민주노동당을 비난하는데 활용했다.                           

김장민

프랑스와 이탈리아 총동맹이 이탈 후 사회주의 WFTU 쇠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ITUC 소속

5월 1일은 113주년 메이데이였다. 누군가는 집회에 나가고 누군가는 그냥 쉬는 날이었다. 아무리 어용이라도 노동조합이 있어야 쉬는 날이다. 모든 노동자가 쉬는 날이 아니고, 국가 공휴일 여부는 나라마다 다르다.

메이데이의 기원이 된 8시간 노동제 쟁취의 역사는 아득한 과거이다. 국제적으로 편차도 심하고, 지구상에는 아직도 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이에 비하면 주 40시간 노동제가 지켜지고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나라의 노동자는 가히 노동귀족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이런 노동귀족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의 지표를 찾자면 조직된 노동조합의 크기가 하나의 준거가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원은 자동적으로 국제노총(ITUC)의 조합원이다.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마찬가지다. 양대노총은 모두 국제노총의 회원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국제노총은 2006년 국제자유노련(ICFTU)과 기독교계 세계노총(WCL) 통합으로 결성됐다. 그 전인 냉전시대에는 반공주의 경향의 국제자유노련과 공산계 국제노련(WFTU)이 대립했다.  소규모인 기독교계 세계노총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국제자유노련과 기독교계 세계노총은 냉전 종식 이후 통합을 논의하다 2006년에야 통합조직인 국제노총을 출범시켰다. 국제노련은 과거 자신을 지탱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국제노련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나 이탈리아의 노동총동맹(CGIL)은 사회주의 몰락과 유럽통합의 분위기에 맞춰 유럽노총(ETUC)을 거쳐 1990년대 국제자유노련에 가입했다. 현재 국제노총에는 168개 나라 338개 노총이 가입돼 전세계 2억명의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노총은 잠자는 거인, 국제노동 NGO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중국의 노총인 중화총공회(中華總工會)는 3억 명의 조합원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노동자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왜 그럴까?

 원영수


국물이 흘리면 난리 나지만 라이더 피가 흐르면

 이런 현실을 상점, 배달업체, 고객, 누가 알아줄까?

“자, 어플을 켜고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 단건 배달이 아니라 묶음배달 방식이다. 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이다. 

음식픽업을 다하고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고객이 배달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아! 그럼 왜 공동현관문을 열어줬지? 

다시 앱을 확인해보니 아뿔사! 이름이 비슷한 아파트로 착각했다. 아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뒤에 배달해야할 음식이 두 개나 있는데, 시간이 지연되기에 상점, 고객의 독촉걱정에 앞뒤 안 가리고 달린다.

다행히 15분 안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배달은 어김없이 상점에서 독촉전화가 온다. 또 불안한 마음으로 스로틀을 땡긴다. 20분 만에 배달완료!

마지막 세 번째는 음식이 식었을텐데 가까스로 29분 만에 도착해서 고객께 전달하니 늦게 왔다고혼나고 환불을 운운한다. 맨탈이 흔들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토바이 세우고 담배 한개비 물어들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휴대폰을 쳐다본다. 

계속 터치하니 하나가 찍힌다. 커피 배달이다. 잘 고정하지 않으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전까지는 노하우가 없어서 쏟기 일쑤였고, 환불과 욕바가지에 배달을 계속 있을까? 라고 고민도 많았지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노! 

배달지에 도착하니 다행히 멀쩡하다. 고객님께 잘 전달하고 배꼽인사까지 잊지 않고 한다.  

어, 근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얼른 우비를 꺼내 갈아입고, 방수 팩을 씌우고 세 개를 찍었다 우천할증 500원이 붙고 돈이 더되니 조심해서 타자고 마음먹고 픽업지로 달린다. 

첫 배달지가 주차장 바닥이 미끄럽기로 소문난 곳이다. 겁이 덜컥 났지만 조심이 들어서며 천천히 지나가는데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졌다. 와장창창! 왼쪽 다리가 끼고 오른쪽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히며 통증이 온다. 

그 와중에 음식이 걱정되어 음식부터 확인했는데, 다행히 무사하다. 혼자서 오토바이를 일으킬 수 없어 지나가는 입주민께 도움 청해서 같이 세우니 서글프다. 

통증을 안고 남은 음식은 시간은 좀 늦었지만 무사히 배달 완료했다. 상처를 치료 후 또 배달에 나선다. 문득 작년 국정감사자리에서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국물이 흘러버리면 고객도 난리가 나고, 배달대행업체에서도 난리가 나는데, 라이더의 피가 흐르면 난리가 안 일어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령인가?

두 번째 고객은 참 따뜻한 분이었다. 비오는 날 고생이 많다면 음료와 과자를 주며 안전 운전하라고 한다. 세상은 이래서 돌아가는구나! 우리의 노동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된다.

이상진(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게임 몰입하면 종교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어

 과거 민중을 바보로 만드는 3S 정책이 스포츠, 섹스, 스크린(영화) 산업이다. 오늘날 청소년은 물론 청년까지 게임에 좀비처럼 중독된다. 성인남녀 중 68%는 게임을 하고 이중 모바일 게임이 74.8%이다. 성인남녀 4명 중 1명(25.7%)은 스스로 게임중독이라고 생각한다. 성인남녀 60%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 중독이 아니라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것이다.

게임중독자 중 88.5%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조울증, 자폐스펙트럼장애 등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중독이 이런 질병을 유발했는지, 이런 질병이 게임중독을 유발하는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게임 옹호론자들은 잔인한 게임이 범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잔인한 범죄자들이 게임을 활용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2021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2% 증가한 21조로 집계됐으며, 모바일 게임이 58%를 차지했다. 2022년 전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약 280조원로, 모바일 게임이 61%로 추정된다. 2021년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7.6%로 미국(22.0%), 중국(20.4%), 일본(10.3%)에 이어 4위를 유지했다.

한국은 IT산업의 증진 위해 게임의 각종 규제를 풀고 게임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게임산업 환경이 좋은 까닭에 외국의 게임사들이 시제품을 한국에서 시험하기도 한다.

가상세계에서 만족하기 위해 현실에서 게임 아이템을 사려고 한다면 가혹한 현실이 때로는 범죄를 만든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최고 가격 게임 아이템은 ‘칼립소 행성’이 600만달러(약 60억원)이며, 국내에서 리니지 게임의 아이템 ‘진명황의 집행검’은 수천만원에 거래된다. 

청소년이 애용하는 게임의 아이템 역시 고가로 거래되고 있으며, 정부는 2009년부터 게임아이템 거래사이트를 전부 청소년 유해매체로 단속하고 있다.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듯한 영화 메트릭스는 이미 오래 전에 현실인 셈이다.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현실도피, 공격 본능 만족, 불만족한 대인관계에 대한 대리 충족 등 다양한 이유이다. 종교에 몰입하듯 가상세계에 빠지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하지만 현실보다 더오래 가상세계에 머물 때 어떤 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편의 위로 기능과 마비기능 모두를 지칭한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종교는 현실의 모순을 반영한 것이므로 현실의 모순이 없어지지 않는 한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종교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공격이다. 게임산업의 병폐는 자본주의의 병폐일 뿐이다.

김장민

소비를 거의 하지 않을 각오로 시골로 내려와

낮선 땅에 3년이 넘자 그럭저럭 뿌리 내리는 느낌

나는 2020년 1월 4일 해남으로 귀촌했다. 2019년 말 정년 한 달 전부터 친하던 이들을 두루 만났다. “나 멀리 가서 살 거야.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앞으로는 보기 힘들 거야.” 사람들은 대개 어이없어 했다. 멀리 이민이라도 가느냐는 반응이었다.

나는 어지간한 일로는 해남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시골로 내려와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 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삼년 반이 지난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적응하는 동안 예상과 다른 여러 일들을 경험하였다.

첫째, 두해반 동안 임금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국립공원에 기간제로 취업하여 돈을 벌었고, 현장투쟁을 벌였으며, 노동조합에도 가입하였다.  둘째 녹색당에 가입하여 대의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구상의 국가나 사람들 하는 짓으로 보아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혼자라도 자연에 피해를 덜 끼치며 살자는 주의로 당 활동을 하게 되었다. 셋째, 땅을 오백 평쯤 사서 자급농을 할 생각이었지만 거저 땅을 얻었다. 이사하자마자 집 앞 백여 평 되는 텃밭을 얻었는데 밭주인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동네 아우네 산밭 800평을 매우 저렴한 연세로 얻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아우는 그냥 지으라고 했지만 내가 고집하여 연세를 주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시와의 연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 고집불통 영감이 시골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다. 

최근에는 하루 서른개 가량의 달걀을 팔아 생계에 보태고 있다. 비싼 달걀을 도시 사람들이 팔아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대중활동 경험은 귀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우호적 관계가 되었으며 해남 인근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었다. 땔감은 이웃한 강진의 표고농장에서 폐배지를 얻어다 쓰고 닭모이는 양조장의 술지게미나 맥주공장의 호프보리 찌꺼기를 얻어다 주고 있다. 동네 아우들이나 강진 녹색당원 동지의 트럭을 빌려서 쓰고 있다.

시골에서는 시비를 가리며 살기 힘들다. 일단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시비를 가릴 수 있다. 처음 이장에게 인사하러 갔을때 마을 발전기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발전기금을 이체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떡과 수육을 돌리며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개 두 마리를 풀어놓고 동네를 산책할 만큼 사람들과 친해졌다. 

윗집 형은 봄만 되면 두릅이나 엄나무 순을 가져다주고 옆집 할머니는 나 없을 때 묵은지나 갓김치를 마루에 두고 가신다. 생면부지의 타향에서 그럭저럭 뿌리를 박았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이철의(전 철도노동자)



[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어제도 들었다 . “ 사장님 ,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 저 사장 아닌데요 .  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 ?” 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  그저 웃으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