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일요일

5월 18일 새벽, 캐나다 총리가 유발한 구역질 

 여느 날과 달리 감구(感舊)했어야 할 5월 18일 새벽에 여느 날과 달리, 아니 새삼스럽게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라는 가히 천하의 속물이 그 전날, 그러니까 5월 17일에 국회에서 했다는 연설 때문이었다.

새벽에 접한 보도에 의하면, 이제는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그는 “내일은 바로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라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희망의 등불”이라느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탄력적”이라느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인의 피와 희생으로 힘들게 얻어진 것”이라느니 운운했을 뿐 아니라, 고맙게도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윤석열 검찰정부의 오늘날의 행태, 특히 분신으로 저항하는 노동자가 나올 만큼, 자주적인 노동조합들을 압살하려 들고 있는 그 극악한 행태를 번히 보면서, (여느 세계적 ‘리더들’과 같은) 천하의 속물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어떻게 저 따위 소리를 뇌까릴 수 있겠는가? 


그래, 그거야 외교적 인사치례라고 치자. 그런데, “한국과의 협력 증진을 위해서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느니, “북한 인권을 보호ㆍ증진하고 북한 주민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 강화할 것”이라느니, 이것이 “한국인들이 ...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니 하는 따위의 말 같잖은 말들을, 어떻게 다른 데도 아니고 이 한국에서 떠벌릴 수 있단 말인가? 

― 그야말로 북한, 즉 한국의 북부 지역인 경기도나 강원도 북부, 나아가 서울까지를 가리켜 한 말들이라면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환갑”이라는 말을 빼고는 영어와 불어로 지껄였다고 하니, 그가 말한 ‘북한’이란, 예컨대, North Korea의 번역어여서, 조선 혹은 (휴전선) 이북을 가리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제정신을 가진 인간, 눈곱만큼의 양심이라도 가진 인간이라면, 그는, ‘북한의 인권’이 이렇고 저렇고 하기 전에, 이 한국의 인권, 즉 인민대중은 북에 관한 어떤 객관적 사실 하나도 알 수 없는 이 한국의 ‘민주주의’ㆍ인권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그것을 개선해야 하는 데에 대해서 얘기했어야 할 것이다. 그가 연설한 곳은 바로 여기 한국이니까!

자신의 말같은 소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겠지만, 그는 “우리는 유엔의 인권고등판무관의 활동을 지지한다” 운운도 했다고 한다. 자살자가 속출하는 이 한국의 인권에 대해서, 인권고등판무관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자못 궁금하다.

                                  진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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