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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7일 토요일

민주노총 로고 이야기

 


제8호 [민주노총 이야기]

민주노총 로고 이야기

민주노총 홈페이지 ‘소개’란에 들어가면 로고(상징마크)에 대해, ‘강령에 나와 있듯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 건설을 향한 염원'을 잘 나타내고 있고, 메인 로고인 노동자의 옆얼굴은 인간평등과 함께 단결을 표현하여 노동자의 진취적인 기상을 담고 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로고체로 힘있고 강단있는 노동자의 결의를 잘 표현하고 있고, 붉은색, 흰색, 회색 등 3가지 색깔은 노동자의 열정, 의연함, 순수함을 함께 표현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연대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93년 6월 1일 전노대를 거쳐 1994년 11월 13일 민주노총준비위원회를 발족할 당시만 해도 로고 없이 ‘민주노조총단결’ 깃발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 창립을 앞두고 상징적인 로고가 필요했다. 민주노총(준) 집행위원회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로고를 공모하였으나 마땅한 로고를 확정 짓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기획사인 앤드(ANND)와 레드(RED,최철호)에 제작을 의뢰하여 6개 도안을 제출받았다. 창립대의원대회 직전 50여명이 참가한 중앙위원회에서 표결했지만 의견이 분산되었고 결국 12표와 11표를 얻은 도안 중 하나인 지금의 로고를 채택했다. 민주노총 창립과 함께 이 로고는 국내외를 통해 ‘민주노총’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민주노총 창립 이후 정식 기관지(<노동과 세계>) 발간 이전에 창간준비 <민주노총> 제7호(1996.2.17.) 1면 우측에 ‘민주노총 상징마크 확정’기사가 실린다. 기사내용은 현재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있는 로고 설명에 추가해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은 참세상 건설, 노동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4천만 국민의 꿈과 희망인 민주노총을 상징하는 것’이 추가되어 있다. 동시에 로고설명과 함께 1면 주요 기사는 1차 정기대의원대회 결과로 “이제 민주노총이 나선다”,“불순한 통합제의 못 받아, 민주적 재편 다짐, 한국노총에 거부 뜻 밝혀”, ‘양규헌 수석부위원장 구속’등이었다.

민주노총 로고는 총연맹의 단순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참세상’과 ‘노동해방’은 자본의 노동착취와 기후재난 위기를 극복하는 ‘체제전환’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선언과 강령 개정, 로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추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영광만큼 책임이 큰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와 한상균 위원장만 임기를 채워


민주노총은 1995년 11월 11일 창립한 이래 28년째다. 위원장의 임기는 규약 45조 1항에 따라 3년이다. 집행부 3년 임기를 기준으로 “기”와 위원장 순서를 나타내는 “대”는 불일치한다. 1기 집행부 임기는 과도적으로 2년 2개월로 정했으나 1997년 말 권영길 1대 위원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로 채우지 못했다. 

2기 집행부는 1998년 이갑용 2대 위원장이 출마 당시 1년 임기 공약으로 당선된 후 1년 6개월 만에 사퇴하였고, 보궐선거로 단병호 3대 위원장이 잔여 임기를 마쳤다. 3기 집행부는 2001년 단병호 4대 위원장이 연임하였고, 3년 임기를 마쳤다. 

4기 집행부는 2004년 이수호 5대 위원장이 수석부위원장 뇌물사건으로 2년 만에 사퇴하였고, 보궐선거로 조준호 6대 위원장이 잔여임기 11개월을 마쳤다.

5기 집행부는 2007년 이석행 7대위원장이 노조간부의 성폭행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고, 임성규 8대 위원장이 잔여임기 9개월을 마쳤다. 6기 집행부는 2010년 김영훈 9대 위원장이 직선제실시 유보를 처리한 대의원대회가 부정으로 치러진 책임을 지고 임기 1달을 남기고 사퇴했다.


7기 집행부는 2013년 신승철 10대 위원장이 직선제 실시를 앞두고 과도적으로 단축된 1년 6개월 임기를 마쳤다. 8기 집행부는 2015년 첫 직선제에서 당선된 한상균 11대 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쳤다.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위수사)은 조합원 직선세로 선출하나 부위원장은 대의원 간선으로 선출했다. 9기 집행부는 2018년 김명환 12대 위원장이 대의원 대회에 상정한 노사정합의안 부결로 2년 6개월만에 사퇴했다. 잔여임기가 10개월 미만이라 규약 45조 4항에 따라 보궐선거는 하지 않았다. 

10기 집행부는 2021년 양경수 13대 위원장이 3년차 임기를 수행 중이다. 현재까지 임기 3년을 채운 위원장은 단병호, 한상균 두명 뿐이다. 단병호 위원장은 유일하게 두 차례 위원장을 역임했다. 민주노총 규약 47조에 따라 위촉된 지도위원은 전임 위원장 11명 중 권영길(1대), 이갑용(2대), 단병호(3, 4대), 한상균(11대) 등 4명 뿐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거나 대통령 선거 지지를 이유로 지도위원을 사퇴했다.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2023년 4월 19일 수요일

노동조합 대표자 회의가 되면서 노동단체 배제

 전노대의 기원은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요즈음 ‘전노대’라고 말하면 ‘전국노동자대회’를 떠올린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 특히 민주노조총단결을 내건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조직 명칭이다.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이 창립되기까지 현장에는 수 천 개의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이를 기초로 단위노조의 연대연합조직과 상급노조도 속속 생겨났다. 1990년 1월에 지역노조협의회 연합체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으로, 2월에 현대그룹소속 노조는 현총련(현대그룹노조총연합)으로, 5월에 업종연맹·협의회는 업종회의(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뭉쳤다.

1991년 10월에는 전노협, 업종회의, 전국노운협(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전국노련(전국노동단체연합)이 모여 ILO공대위(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1992년 11월에는 ILO공대위에 참여하지 않는 노조를 포함해 전국노동자대회조직위원회를 구성해 민주노조 총단결에 박차를 가해나갔다. 1993년 들어 전국의 민주노조 연합단체 대표자들은 전국에서 모이기에 가장 편리한 장소인 대전 유성 ‘경하장’에서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였다.


3월 19~20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조직위 2차 수련회에서 명칭을 놓고 노동단체를 포합하는 ‘전국노동자대표자회의’와 표결 끝에 10 대 9 한 표 차이로  공동사업추진체인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로 결정되면서 노동단체는 배제됐다. 그 때 조직명칭을 전국‘노동자’대표자회의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새로운 연대조직 결정에 대해 업종회의와 현총련 내부의 문제제기가 있어 수차례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등 논란을 거쳤다. 이후 집행위원회를 통해 조직체계, 사업, 재정계획 등을 구체화 한 뒤  1993년 6월 1일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기타 지역, 업종에서 1145개 노조, 40만 7천명이 참여하는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약칭,‘대표자회의’)를 결성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전노대(全勞代)’로 보도했는데 자연스레 <전노대>가 약칭이 됐다. ‘대표자회의’로는 ‘전국’적인 ‘노조’조직을 ‘대표’할 수 없다고 판단한 탓이다. 물론 자본언론이 민주노총을 폄훼해서 부르는 ‘민노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연합체 이상의 총단결 총투쟁 본부

 "10여 년 동안 부위원장으로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

‘민주노동조합총연맹’(KCTU)은 지역과 산업을 불문하고 전국에 있는 노동조합들의 상급단체인 총연합단체이다. 

민주노총은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1945.11.6. 창립) 시절 관변어용단체였던 대한노총(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1946.3.10 창립)을 전신으로 하는 한국노총과 대별된다.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민주노조’여야 한다. 민주노조가 아니면 황색노조, 어용노조 또는 우익노조로 불리지만 사실은 노동조합이 아니다. 

우리가 굳이 민주노조라 부르는 이유는 모양이나 무늬만 노조 흉내를 내면서 실제는 반노동자적이거나 또는 자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어용노조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이 땅의 민주노조는 역사적으로 봉건제도, 자본, 외세, 군사독재정권, 재벌 그리고 어용노조에 맞서 투쟁을 통해 건설한 조직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 현장에서 시작한 민주노조 건설의 불씨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그 해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불타올랐는데 전국, 전 산업에 걸친 비합법 연대투쟁이었다.

1987년 파업에 참여한 연인원 200만 명, 파업건수는 3341건에 달했다. 

이 투쟁으로 노조와 조합원 수는 1986년 2,658개, 103만 6천명(조직률 15.5%)에서 1998년 6,142개, 170만 7천명(조직률 22%)으로 노조수는 131%, 조합원수는 64.7% 증가했다. 1946~'47 전평 총파업, 1996~'97 민주노총 노개투 총파업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노동자 총파업이었다.

이렇게 건설된 민주노조는 1988년부터 노태우 정권 5년간 2천명의 노조간부와 노동운동가가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자본과 권력에 맞선 투쟁을 통해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으로 뭉쳤다. 이어 1991년 '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1994년 민주노총 준비위원회를 거쳐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을 건설했다. 

민주노총은 단순히 노조조직체계상의 총연합단체(National Center)가 아니다. 노동해방을 향해 전진하는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총투쟁’ 본부다.    허영구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