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어제도 들었다. “사장님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 사장 아닌데요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그저 웃으며 대답하고 지나간다. “괜찮습니다많이 파세요.” 악의 없이 한 말임에도 듣는 나는 황당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사장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냐무턱대고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쓰라는 건 회사 방침이냐?’ 등등따지는 것은 그저 애쓰는 그 노동자의 마음과 노동을 더욱 고되게 할 뿐일 테니.

암튼 마음의 소리를 꾹 누르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내 정신건강 문제도 있으니여기서라도 얘기 좀 해보자언제부턴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문화가 꽤나 자리했다대체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기분을 좋게 하려는 목적혹은 존중하려는 의도로 쓰는 듯하다사장으로 보일 리 없는 나조차 자주 듣는 걸 보면 사회적으로 꽤 통용되고 있다는 건데그렇다는 건 대체로 사람들은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기분이 좋아지거나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는 의미이다딱히 그렇진 않다고 해도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은 아니라는말하자면 평타는 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자리 잡은 호칭 문화일 거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소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노고를 폄훼할 생각은 없을뿐더러 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개개인에 대한 인간적 악감정이 있어서도 아니다그럼에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뭔지 모를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아마 사장님이라는 호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떠올린 분은 거의 없을 거다보편적으로는 자본가 혹은 그 하사관(부사관)계급을 부르는 명칭이 사장님이고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라는 명칭이 있다요컨대 다른 이의 노동력을 착취해 생활하는 자본가혹은 그 무리의 일원으로 불리는 것은 존중받는 혹은 기분 좋은 일이고, (순전히 형식논리학적으로 따지자면) ‘노동자로 불리는 것은 반대로 존중받지 못하는기분 나쁜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언젠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감수성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가 학부모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던 활동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항의의 요지는 내 자식이 노동자가 되라고 고사 지내는 거냐학교에서 왜 그따위 교육을 하느냐?”는 거였다황당하다고 여기실 분도 계시겠으나 사장님이라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호칭 문화 하나만 놓고 봐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싶다.

따지고 보면 이 현상의 뿌리는 꽤 깊다어릴 적 내 할머니는 밥을 먹고 빵빵해 진 내 배를 볼 때마다 아이고우리 욱이 박사장님 되시겠네하며 세상 환한 웃음을 짓곤 하셨다물론 사장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평생의 노동으로 뼈마디가 내려앉아 밥 먹는 모습보다 약 먹는 모습이 기억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는 할머니가그 말을 할 때만큼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에 일부러 배를 더 빵빵하게 부풀려 할머니에게 내밀곤 했었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현상이 그저 기분 나쁜 것을 넘어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가끔 따라가 본 할머니의 일터는 작은 건물(지금 보면 작은 마을 회관이나 옛날 동사무소 같은)을 만들던 공사장이었다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으며 건물을 만들던 할머니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이거 우리 할매가 만들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그러나 의기양양한 나와는 반대로 할머니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마라라고 하시는 거다왜 그러면 안 되냐고 묻자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하셨고 그땐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창피하다 아이가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끝내 사랑하는 손자가 자신의 노동을 창피하게 여길 거라는 오해를 풀지 못하고 눈 감으신 할머니가 생각나 밑도 끝도 없는 답답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대체로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노동자들이기에 그들의 모습에 할머니가 자꾸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아무튼 이 글은 문화칼럼이고 문화라는 단어의 은 한자로 글월 문이다말 그대로 말글살이가 문화의 근본이고 가장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는 거다일제가 행한 문화통치의 핵심 또한 우리 말과 글을 없애려는 이른바 언어 말살 정책이지 않았는가따라서 노동자의 문화를 올바로 세워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언어를 올곧게 세워내는 것이다안타깝게도 우리 현장에서 동지라는 호칭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자면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며 우리는 그것을 동지라고 부른다노동자계급다운 호칭을 사용하는 작은 실천이 곧 문화적 실천의 시작이다그리고 나도 연습 좀 해야겠다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하하하그런데 저사장님이라는 호칭은 제게 안 써주시면 안 될까요?”




[문화] 사람이 안 보이는 영화, “건국 전쟁”

 심미숙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치는 역사 강사 황현필은 단군 이래 적이 아닌 자국민을우리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 리승만이고 그 자국민도 거의 대부분 민간인이었다고 재차삼차 일갈하며영화 건국 전쟁의 끝없는 거짓왜곡변명날조숨김을 수많은 사료를 들어 열혈 명쾌하고 꼼꼼하게 파헤친다.

한 네티즌은 이 영화와 관련한 어느 논쟁의 댓글에서, “생각이 있는 국민들은 참 힘들다건국 전쟁과 같은 리승만 사태를 바라보는 역사가들은 지금 기자회견을 해줘야 한다행동해줘야 한다그것이 저들에게 역사가들과 생각있는 국민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그 영화에는 사람이 안 보인다!”. ‘그 영화에 사람이 안 보인다고거기 사람 많이 나오는데이상한 사람들 많이 나오는데...?’ 라고 생각하며나는 영화 건국 전쟁에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그 말을 내내 붙잡고 있었다.

자본론을 비롯한 맑스ㆍ엥엘스의 저작을국가와 혁명을 비롯한 레닌의 저작을 읽다보면 크게 감동하며 깨닫는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가장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관심과 사랑또 하나는그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집요하고 집요하고 집요한 탐구.

영화, “건국 전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도 등장하는데그리고 이상한 말들도 많이도 하는데그 중 압권은 피해자에 집중하는 것, “희생자 중심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한참 생각했다놀랍게도그것은 가해자에 집중하고 가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보라는 말이었다학살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아니라학살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에 집중하라는 말가해자에 대한학살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섬뜩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죄도 없이 손가락 총에 의해 경찰서로 끌려가서뒷산에서개울에서구렁텅이에서언덕배기에서 집단학살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정식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된 억울한 부모형제들의 한을 풀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유족들도 보이지 않는다가해자들이 건국 전쟁을 벌이며 학살한 사람이 백만 명 가량이었다.(경향신문기사, 2006. 6. 22.) 한 사람두 사람열 사람백 사람도 아니고천 사람만 사람도 아니고십만 사람도 아니고이십만삼십만,,, 구십만백만 사람이었다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그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그 영화에는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 백만의 희생자 중 몇 사람을 KTV(국민방송)에서 만났는데그 중 한 사람이 고 노상도씨이다그는 해방 후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했고벽보를 11군데 붙였다는 이유로 1948년 4월에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그 벽보의 내용은 “1. 정권을 인민에게 넘겨라, 2. 농지를 순수 농민에게 돌려줘라, 3. 남녀평등권 실시하라, 4. 친일 세력들 색출 엄벌하라” 였다징역을 살고 1949년 9월 출소 후 보도연맹에 가입이 되었으며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7월 초마을 이장을 통해 보도연맹원들은 면사무소로 일을 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삽과 쌀소쿠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그 길로 형무소에 수감, 8월 14일 사형을 언도 받고 전차상륙함(LST)에 실려 구산면(마산앞바다로 끌려가 총살수장되었다그의 아들 노치수씨는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일을 했다.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해방 이후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미군정과 대한미국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그 대한미국의 건국 대통령 리승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그리고 내가 피해자희생자의 관점이 아니라가해자학살자의 관점권력자국가의 관점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내가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사람같지 않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이런 사람저런 사람이었을그 백만의 사람을 상상해보았다자주적인 인민의 국가 건설토지개혁남녀평등일제청산이라는고 노치수씨의 네 가지 열망은 당시 대다수 인민들의 열망이었고그 열망 때문에 학살당했고그 열망은 아직도 우리 노동자 인민이 달성하지 못한 과제따라서 최대한 앞당겨 달성해야 할 과제이다.

묻혀있던 학살의 진실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1996년 거창 특별법을 시작으로 2000년 ‘4·3 특별법’, 2005년 5월 통합 과거사법’ 제정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위)의 출범과 2010년까지의 활동그리고 2020년 진실위의 재출범에 이르렀다그러나 아직 백만 학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학살자들의 무리는 밝혀진 진실의 조각마저 되묻으려고 한다.

지난 2021여순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래작년 2023년 말에는 여순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기획단이 구성되었는데이 기획단에 뉴라이트를 포함한 극우 인사 9(전체 15명 중 당연직 5명과 유족대표 1명을 제외한 위촉직)이 포함되었다그리고 그 기획단의 지난 2월 22일 회의에서는 “14연대의 봉기는 반란이었다여순사건 진상규명은 반란군과 이에 찬동하는 민간인들이 합동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기에 진상보고서는 반란이라는 원칙 속에서 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여순사건 유족 진상보고기획단에 극우 인사···재구성해야””, 무등일보, 2024. 02. 28.)

영화 건국 전쟁을 만든 자들이 바로 그러한 극우 인사들이다. “건국 전쟁 2”도 만든다고 한다학살된 반란군과 이에 찬동하는 민간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그 참혹한 학살의 진실을 덮으려는 그자들은 과연 사람일까좀처럼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저 엄청난 대량 학살자 대한미국의 건국 대통령 리승만을 가리켜, “일반 보통 사람들평민 계층들이름 없는 민초들의 수도 없는 죽음의 자리에 함께 했던 그야말로 민중의 벗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였다고 추앙찬미하는 저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그러고 보니이래저래 그 영화에는 정말 사람이 안 보인다그리고 현실에는사람들과 사람이 아닌 자들사람답지 않은 사람들과의 냉혹한 투쟁이 있다.

이렇게 인간같지 않은 인간들이 득세하고 활개를 치며더욱 냉철하고 엄혹한 투쟁을 노동자 인민에게 강제하는 정세의 직접적 계기는 극우 윤석열 정권의 탄생이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복궁 동편인 송현광장에 리승만기념관 건립을홍준표 대구시장은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 건립과 박정희 광장으로의 개명을윤석열 정부는 주미 한국대사관 앞 리승만 동상 설립을추진검토지원하겠다고 밝힘.), 그 근본적 배경에는 독점자본의 전반적이고 만성적인 과잉생산 위기의 격화와 노동자 인민들의 실업과 빈곤의 심화가 있다이에 더욱 거세게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노동자 인민의 저항과 투쟁을 억누르고위기의 자본주의체제를 연명하기 위한 독점자본의 방책이 파쇼 독재정권과 극우세력의 재탄생과 육성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정확히 말하자면글로 씌어져 전해온 모든 역사. (공산당 선언))” 원시 공동체 사회의 해체와 더불어 사회가 서로 적대적인 계급들로 불가피하게 분열하기 시작하면서동시에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당하는 계급즉 착취억압하는 가해자들과 착취억압 당하는 피해자들 사이의 불가피한 투쟁계급투쟁이 시작되었고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다행히도 인간이 만드는 역사는 진보하고멈추고때로 후퇴하지만 다시 전진해 왔다피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속한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마침내 계급 자체를 폐지할 때까지 전진할 것이다자본의 만성적 과잉생산과 노동자 인민의 가난과 실업전쟁과 학살의 공존이 필연인 착취와 억압의 사회 자본주의의 폐지로 나아갈 것이다뉴라이트와 극우를 포함하는 모든 사회악을 영원히 잠재우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사회] 자본주의 “의료대란”의 해결방안: 가치중심이 아니라 사용가치 중심의 보건의료를 만들자!

 [사회]

 

손미아 (강원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정부가 쏘아 올린 의사 수 2,000명 증원계획안에 의해 의료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사 수 2,000명 증원계획안이 410 선거용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윤석열정부를 향해 정면 투쟁을 해나가고 있다.

의사들이 이 투쟁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걸었던 윤석열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비민주적인 태도와 행동에 대해 거센 저항을 한 것이다그러나의사집단이 간과한 것은 무엇인가투쟁의 기백은 좋으나그 방향과 목표가 잘못되었다개업 의사들이 의사 수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로 자신들의 소득이나 임금수준이 저하되는 것을 든다면이는 윤석열 정부와의 투쟁에서 이겨도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지는 것이다또한 전공의들이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고강도의 노동강도장시간 노동저임금으로 시달린다고 호소하면서도 현재 그들이 처한 노동환경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아니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주저하는 것이라면 이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건 의료의 의미가 무엇이고, “의료 상품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 상품화의 의미는 의료의 사용가치가 가치로 나타나면서의료의 사용가치즉 의료의 유용성이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의사들의 보건 의료 노동은 인류에게 매우 유용한 서비스사용가치이지만 이것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이 이 서비스의 가치로 나타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보건 의료 노동이 가치 중심의 서비스로 나타나고 있다그러므로 의사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유용노동의 중요성을 버리고 가치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의사들의 노동은 인류의 건강을 돌보는 의미에서 볼 때보편적인 노동의 측면에서 볼 때참으로 고귀한 것이다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의 질적 유용노동이 무시되고양적 추상적 노동이 강조되면서 의사의 노동이 화폐로 환산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고귀한 질적 유용노동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의 사용가치 즉 유용노동을 무시하고가치즉 추상노동이 가치화된 화폐로만 환산하기 때문에의사들의 노동이 화폐로만 취급되어 버리고의사들은 화폐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불행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의사들이 화폐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면 의사들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러난 의료상품화의 희생양이다또한 의사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위대한 노동인 것을 모른 채 자신들을 스스로 자본화된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이러한 모순자본주의 사회의 이윤추구 중심의 의료상품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하고 가치중심화폐 중심의 사회가 아닌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질적 노동을 무시하고양적 노동만을 화폐로 환원하는 이 자본주의 모순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의사들도 자신들의 노동이 화폐로만 환산됨에 따라 잃어버린 질적 노동을 되찾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그 질적 노동이 의사들의 주머니에 화폐로 들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의사들이 사람을 살리는 유용한 노동을 통해서 사회의 대다수 대중에게 존경받고 신뢰받는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의 대다수 대중과 논의해야 한다.

대다수 대중에 속하는 우리도 그동안 이 문제를 가진 놈들의 전쟁이야” 하면서 강 건너 불 보듯 쳐다본 측면이 있지 않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보건의료는 사회적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할 필수 재화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재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대다수 대중이 나서야 한다.

공공의료의 확대”, “지역의료의 확대” 등은 다 좋은 말이다그러나 문제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말에는 어떠한 계급관계나 계급의 힘 관계 등을 지적하는 내용도 없다는 데에 있다의료의 사유화를 계급관계를 통해서 드러내고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사유화 폐지를 해나갈 때만이 공공의료 확대” 이슈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건의료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보건의료부문에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중심인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보건의료부문에서 사회의 물신성을 없애고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중심인 사회를 위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보건 의료의 생산과정에서 의료의 상품화사적소유이윤추구를 지양하고 사회적 의료공동체적 의료를 지향해야 한다의료를 생산하는 보건의료인력이나 지역사회주민들이 공동체적인 협동활동으로 의료서비스를 생산해야 한다.

둘째사회가 의료를 부담하는 보건의료 정책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다양한 개인들의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칼 맑스자본론)을 고려해 볼 때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총생산물은 사회적 생산물이 되어야 하고사회구성원들의 질병이라는 위험에 대해서 사회가 보건의료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가치중심을 지양하고사용가치 중심으로 가야 한다가치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지양해서 의료서비스가 화폐와 교환되는 의료의 상품화를 지양하고의료의 사용가치(유용성)을 증대시켜서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어제도 들었다 . “ 사장님 ,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 저 사장 아닌데요 .  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 ?” 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  그저 웃으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