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2일 화요일

노동자신문 제15호(2024.3.12)★★★

 



[헤드라인] 

노동자계급 정치, 그 활동의 개념과 상()부터 재정립해야

더불어민주당, 지배계급이자 한국의 내외 독점자본 비둘기파

 

편집국

 213, 연합정치시민회의,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은 1차 회동에서 사실상 비례 위성정당추진을 위한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약칭 민주연합’) 결성에 합의했다.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아온 진보당이 민주당 주도의 비례정당에 참여하고 지역구 후보단일화와 정책연대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진보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연대·연합하기로 함에 따라 민주노총 내외에서 논란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과의 이 연대·연합은 친자본 보수양당 타파라는 기존의 합의·결의를 위배한, 그 타파 대상의 하나와의 야합이므로 민주노총은 20239월 총선방침에 따라서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2020년 총선에서 선거용 연합비례정당에 참여한 녹색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바도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24년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결정했다. 보수양당체제 타파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 투쟁과 직접 정치, 체제 전환 운동 대중화를 위한 정치사업 전면화,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가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민주노총 방침의 제4항 문구는 이렇다.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 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진보당의 이번 결정은 1997년 이후, 국승21,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져 온 제도권 중심의 정치운동 퇴행과 실패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노동자·인민의 계급적 각성과 단결의 확대, 그로부터 사회변혁의 주체를 강화하는 정치운동이 아니라, 의회 진출 자체가 가장 큰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독점자본 정치세력의 한쪽 날개인 민주당에 기대어 의석 몇 개라도 건지자는 것이 절박한 목표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총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원칙조차 부담일 뿐이다. 이미 국회에 입성하여 활동해 온 정의당 정치는 진보적인가? 민생·생활상의 요구를 들어서 진보연하지만, 그간의 정치활동 내용을 볼 때, 노동자계급의 계급적·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는 정치세력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이른바 한국 진보정당의 현주소이다.

 

노동자 계급정치, 그 목적은 어디를 향해야 하나?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더욱더 확대된 단결이다.”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들과 아울러 계급대립의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공산당 선언> )

노동자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 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들과 아울러 계급대립의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는 것이며, 그 최종 목표는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지배는 무자비할 뿐 아니라 교활하기도 하여, 즉 그 무력도 그 이데올로기 지배도 강고하여, 노동자계급이 그 혁명의 첫걸음을 내디디기까지의 여정은 여간 간고한 게 아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더욱더 확대된 단결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당면한 우리의 노동자계급 정치 역시 이 혁명의 첫걸음을 내딛도록 하는 데에, 직접적으로는 그 모든 활동과 투쟁의 성과가 노동자들의 더욱더 확대된 단결로 귀결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부르주아 정치행사로서의 선거와 관련해서는, “어느 시대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임을 잊지 않으면서, 노동자 인민대중에게 내면화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모든 부면에 걸쳐 깨뜨려 나가는 정치활동이 기본이다. 절박하고 당면한 투쟁들, 고통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 자체ㆍ자본독재 극복에 있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한 주체로서, 그러한 혁명적 정치적 주체로서 더욱 확대된 단결을 도모해 가는 것이 노동자계급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독점자본가계급의 한 날개인 더불어민주당과 노골적으로 선거연합에 나서고 있는 진보당은 물론, “지역 차원운운하며 부정직하게 그 연합에 참가하고 있는 녹색정의당 등,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외쳐온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과연 노동자계급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에 조금의 기여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 정치에 복무 혹은 기여하기보다는 노동자계급을 이데올로기적·정치적으로 부르주아지에게 더욱 종속시키고 있다. 서유럽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20세기 초부터 사민주의 정당들이 해왔던 반동적 역할을 뒤늦게 이 땅에 이식·배양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의 부속물로 전락한 정치운동으로는 사회변혁은 고사하고 이미 의미 있는 개혁조차 쟁취할 수 없다. (5면 하단으로 계속)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도 있을 수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논의도 협소한 노동자주의, 그 경제주의·조합주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정치적 단결을 도모할 정치활동의 개념과 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활동과 투쟁도, 노동자 대중을 즉자적 이해에 기초하여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투쟁하되, 그 과정은 동시에 노동자의 정치·군사학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혁명적 이론으로 무장한 지식인과 선진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자계급의 정치참모부로서의 혁명적 당을 획득해야 한다. 레닌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도 있을 수 없다.”(<무엇을 할 것인가> ) 혁명적 이론을 견지하고 발전시키면서 혁명적 실천을 지도할 수 있는 정치조직의 건설, 그것이 현시기 우리 노동자계급 운동의 중심적 과제이다.

진보정당’, ‘노동자계급 정치를 자임하는 조직들이 선거 시기에 후보를 출마시키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일체의 정치활동은 위와 같은 원칙과 과제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의회나 지자체 등 제도권에서의 정치활동도 마찬가지다.



[경제]

사실상 산업예비군인 영세자영업자 가계부채 폭발의 뇌관

 

 신재길

 자영업자들이 고금리 등의 한계에 이르면서 이들이 갚지 못하는 대출 규모가 27조 원에 육박했다. 4일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가계·기업대출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 3358,499명의 금융기관 대출(가계대출+기업대출)은 모두 1,1096,658억 원이다. 2022년 말(3273,648·1,0826,258억 원)과 비교해 1년 사이 대출자가 84,851(2.6%), 대출잔액은 27400억 원(2.5%) 더 늘었다. 자영업자 대출은 20181분기 5723,000억 원이던 것이, 20223분기 1,0142,000억 원으로 1,000조 원을 넘었고, 20232분기 1,0432,000억 원까지 치솟았었다. 가계부채 총액이 11년 걸려 100% 가까이 늘었다면 자영업자 관련 대출 규모는 최근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특히 분기(3개월) 단위로 5년여 동안 단 한 번도 이들의 대출이 줄어든 사실이 없다. 단 한 번의 숨 고르기조차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또 지난 1년 사이 자영업자의 연체 금액(3개월 이상 연체 기준)182,941억 원에서 273,833억 원으로 9892억 원(49.7%)이나 급증했고, 평균 연체율도 1.69%에서 2.47%로 약 0.8%포인트(p) 뛰었다. 은행, 카드사 등 업종 불문 금융시장에서 연체율 1%가 넘는다라는 건 위험 신호를 넘어 사실상 사고 상태로 인식하는 수치다. 그런데 자영업자 평균 연체율이 2%를 넘고 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는 가계대출 연체율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222일 발표한 ‘202312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 현황(잠정)’을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로 전달 대비 0.04%P 하락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23%이다.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최대한 빌려 추가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상황은 1년간 더 나빠졌다. 전체 다중채무 개인사업자(자영업자)는 현재 1731,283명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3358,499) 가운데 절반 이상(51.5%)을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6916,232억 원에 이르렀다. 다중채무 인원과 대출 규모가 1년 전(1681,164·6753,047억 원)보다 5119(3.0%), 163,185(2.4%) 불었다. 이들의 연체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 빨랐다. 다중채무 개인사업자의 연체액(217,955억 원)2022년 말(142,950억 원) 보다. 75,005억 원(52.5%) 증가했고, 평균 연체율도 2.12%에서 3.15%1.03%P 높아졌다.

가계부채 문제가 위기 상황으로 확대되면 그 시발점 중 하나는 개인사업자 등 소상공인을 포함한 자영업자 관련 부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자영업 부채문제는 소상공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의 자영업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의 성격이 강하다. 자영업의 평균 소득이 월 160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 수준보다 적다는 점은 자영업자들이 임금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도 한국의 자영업은 한국 경제에서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퇴직 후 연금으로 생활할 수 없어서 창업하게 되는 경우와 해고 등 실직 이후 사회보장이 안 되어 있기에 소위 창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세자영업의 경우 가족노동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족 중 일부는 임금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경우 평균적으로 210만 원을 이자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다. 월 평균소득이 160만 원인데 월평균 이자비용이 210만 원인 것이다. 이는 자영업자들의 부채와 연체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다중채무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자영업대출의 71.3%라고 한다.

자영업자의 부실규모를 PF대출과 비교해 보면 그 위험성을 알 수 있다. PF대출 규모가 134조 원 정도라고 하는데,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1,000조 원이 넘어가고 있다. 자영업자 부실이 터지면 PF부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체불임금 대리지급액이 7,000억에 육박해 역대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대지급금은 임금체불 시 정부가 대신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2021년만 해도 재지급금은 794억 원이었다. 그런데 20236,869억 원으로 2년 만에 거의 9배까지 상승했다. 그만큼 자영업자 상황이 심각하다.

자영업자는 고금리에 가처분소득이 20% 정도 줄었고, 상업용부동산 담보대출도 위험하다. 물가는 상승하고 고금리로 이자는 늘어나고, 내수는 부진하여 매출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대외경기도 나쁘다. 더욱이 이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IMF 같은 상황도 아닌데 작년에 경제 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당했다. 세계경제 블록화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출금 만기연장 등의 미봉책으로는 자영업자의 대출부실을 막지 못할 것이다.




 [뉴스해설] 

민족문제 :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다


이현숙

올해 초 이북에서 남북을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평화통일을 부정하였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민족에 대한 재검토이다. 둘째는 고조되고 있는 전쟁 위기이다. 전쟁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1월호 <노동자신문>의 기사에 나온 북한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북의 매우 이례적으로 호전적인 발언, 러시아로의 무기수출, 대남기구 폐지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민족문제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스딸린에 따르면,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경제적 연계), 그리고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상태 공통성에 기초하여 발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이다. [이러한] 온갖 특징을 다 구비하고 있을 때만 우리는 그것을 민족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민족은 특정한 발달단계에 있는 공동체이다. 원시공산사회에서는 혈연적 씨족공동체가 있었다. 계급사회에서는 적대적 계급들, 즉 노예와 노예주(노예제), 농노와 봉건지주(봉건제), 임금노동자와 자본가(자본제)의 공동체가 있다. 이때 노예제와 봉건제에서의 공동체를 준민족이라고 한다. 자본제에서의 공동체를 민족이라고 한다. 만약 민족을 핏줄(혈연)까지 포함하여, “단군 할아버지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인간존재의 필연인 사회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사회과학의 민족개념과 다르다.

민족의 전구체인 준민족과 민족은 무엇이 다른가. 봉건제 국가에서 생산은 가족의 소생산으로 고립되고, 자급자족한다. 소규모 시장이 존재하지만,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경제 문화적 교류가 미발달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언어, 문화와 심리상태의 공통성이 낮은 단계에 있다. 신분제는 집단 간의 장벽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적 생산과 국내시장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경제적 연계가 긴밀해진다. 신분제는 폐지되고, 정치적 집중(중앙집권제) 발달, 문화적 공통성 등도 급격히 발전한다. 사람들의 결합도가 비약하여, 공동체는 새로운 질을 획득한다. 봉건조선과 한국의 국력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민족은 그 구성원을 평등한 개인(민족구성원)으로 조직한다. 형식적 법률적으로 평등한 개인들은 국민, 혹은 시민으로 규정되어 민족국가를 형성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발전시키며, 계급으로의 분열을 은폐한다.

자본주의에서 민족이 부르주아 민족이라면, 사회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족이라고 부른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지배하는 민족이다. 여전히 민족인 이유는 이렇다. 공고한 민족성, 민족들 사이의 적대, 배타성은 수백-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즉각 사라질 수 없다. “중쏘분쟁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족은 사적소유(사리사욕)의식, 국가처럼 계급사회의 유산이다. 민족은 사멸해야 하고, 사멸시켜야 한다.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민족은 (민족이 아니라) 계급으로 조직된다. 국가는 노동자·민중의 조직된 폭력으로서 공인되며, 부르주아를 억압한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투쟁한다. 경제적으로, 계획경제 하에서 국내, 국제적으로 경제적 통일성을 발전시킨다. 민족과 민족국가 간에 교류와 평등, 연대를 발전시킨다. 문화(이데올로기)혁명을 통해 민족성에 존재하는 계급사회의 잔재를 일소시킨다.

공산주의에서 민족은 사멸한다. 세계경제의 통일성이 완결된다. 경제적 문화적 융합과 인류의 연대가 완성된다. 세계시민이 출현하다. 본성적으로 지역적 배타성을 가지는 민족은 사멸한다.

봉건조선시대까지 한(조선)반도에서는 준민족이 특별히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식민지해방운동과 태동하던 자본주의와 함께 민족도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은 분단되었다. 민족형성의 토대는 동일한 지역, 경제생활(경제적 연계)”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언어, 문화, 심리상태의 공통성이다. 결국 반도에는 부르주아 민족과 프롤레타리아 민족이라는 두 개의 민족이 형성되었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상이한 민족의 단계이다. 북은 사멸하는 그리고 사멸시켜야 하는 민족, ()은 극성기의 민족이다. 더구나 계급적으로 적대적 민족이다.

한국전쟁과 이후의 지속적 적대, 그리고 최근 이북의 적대적 두 [민족]국가발언이 증명하듯, 두 민족은 화해할 수 없다. 민족으로서는 그러하다. 민족이란 집단을 문화적, 심리적공통성, 따라서 이데올기적 공통성을 가지는 공동체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이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민족이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공통으로 하는 민족이다. 부르주아 민족이란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공통으로 하는 민족이다. “민족통일이 같은 민족의 ()결합을 의미한다면, 남북은 민족통일할 대상이 없다. 만약 남북이 통일된다면 민족통일이 아니라 두 지역의 통일이다.

남과 북의 연대는 가능한가? 민족으로는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이북) 대 부르주아 국가(이남)의 관점이 먼저 필요하다. 다음으로 노동자 국제주의적 관점, 국제적으로 반제(반미) 통일전선의 관점이 필요하다.

 


[노동자논평] 

역사 왜곡과 흡수통일 의지만 도드라진 윤석열의 3.1절 기념사

 

이건수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서 기미 독립선언의 뿌리에는 '자유주의'가 있었다는 역사 왜곡은 물론,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며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한다고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의지를 드러냈다.

3.1절을 맞이하여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돌아보고 항일 민족해방운동에 나섰던 선열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간의 상호 극한 투쟁을 통한 통일을 추구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윤석열이 3.1절 기념사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기미독립선언서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라고 웅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기미독립선언서에는 그러한 구절이 없다. 윤석열의 주장은 아마도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조선의 독립국임)를 주장함이며라는 구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이 구절을 통해 기미 독립선언의 뿌리에는” “자유주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이러한 역사 왜곡은 그의 기념사에서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라는 주장, 즉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북한 흡수통일을 강변하기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극우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도 윤석열의 3.1절 기념사를 높이 평가하며, “윤 대통령이 통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북한이 남북 관계를 동족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불가노선으로 돌아선 것과 관련 깊다. 김정은 정권 스스로 반통일 세력임을 자처한 지금이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 통일 담론을 확산시킬 적기라고 보았을 것이다.”라며 극찬했다.

북한은 지난 115일 최고인민위원회에서 연방제 통일정책을 폐기하고 조국통일 운동을 포기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남북한 간의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보겠다며 2개 국가의 분립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해 정권붕괴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사자 한쪽이 통일을 포기하고 각자 살자고 선언한 마당에 상대방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통일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침략정책을 발표한 것과 다름없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서 외교도, 경제도, 민생도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윤석열 정권이 3.1절 기념사를 통해서 흡수통일 의지를 드러내면서 이 땅에서 다시 한번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의 시대가 퇴조하고, 반동의 시대가 오고 있으며, 민중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퇴진만이 더 심화될 위기를 단축시키는 길이다. 민중운동 진영의 분발이 필요한 때다.


[정치]

노동계급정치? 노동자 정치세력화?

 

오세중

지난 224민주주의와 노동연구소에서 노동계급정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떻게 다른가?(달라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정치토론회가 진행되었다기조 발제 내용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모호한 단어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 ‘노동계급정치를 노동자 정치세력화로부터 분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기조 발제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 지금은 계급없는 진보정치를 벗어나 계급정치와 계급정당을 세우고, 좌파없는 노조정치를 벗어나 좌파중심의 계급정치를 세워야 할 때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노동계급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호하다. 계급없는 진보정치를 벗어난 계급정치란 무엇인지? 좌파중심의 계급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인지?

토론 자료집에 인용된 공산주의 선언내용 중에 노동자계급정치에 대한 정의가 잘 나와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정치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기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을 현실화한 혁명가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그 이후 스탈린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 활동한 볼셰비키당과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민주적, 대중적 투쟁기구로서 자본가계급의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만들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건설 과정은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노동자국가의 형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인 것이다.

, 노동자 출신 의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지배정당이 되는 것,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계급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전선동하고, 지배계급이 되기 위한 노동자 대중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인 것이다.

경제주의, 조합주의, 개량주의, 의회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분파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국가 건설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위한 사상적, 조직적 통일과 대중 투쟁에 대한 선전·선동이 필요한 때이다!



[여성]

3.8 세계 여성의 날 유례와 정신

 

편집국

세계 여성의 날 유례

1908, 미국 노동자 15만여 명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뉴욕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과 여성 투표권 쟁취를 외쳤다. 그리고 일 년 후, 미국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이 이를 기념하여 국가 여성의 날을 발표하고 뉴욕시 행진을 기획했다.

19108월 독일의 공산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여성의 날'을 제안하여 17개국에서 온 100여 명의 여성 대표 만장일치 동의로 제정되었다. 그 후 여성의 날이 세계 역사에서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왔을 때는 1917년 러시아에서였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페트로그라드를 행진한 푸틸로프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마침내 300년간 이어져 온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으로 가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세계 여성의 날1925년 조선여성동우회가 국제 무산 부인데이기념행사를 하려 했으나 일제에 의해 행사가 금지당하고, 대신 국제 부인의 날기념하는 간담회를 개최한 것이 세계 여성의 날기념의 시작이다. 해방 이후에는 “38일을 조선 부녀해방투쟁의 기념일로!”를 강력하게 내건 조선부녀총동맹의 주도로 민주주의 정권 수립, 토지개혁, 테러 근절 등과 함께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정부수립 이후 독재정권의 통제로 수십 년간 여성노동단체 활동이 없다가 1985년에 여성의 날이 복원되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톰보이 부당해고 반대 투쟁, 결혼퇴직제 반대운동, 25세 여성 조기 정년제 반대운동, 금융권의 여행원제 폐지운동 등을 벌였다. 그 해 세계 여성의 날기념대회는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제목으로 각계 기층 여성들의 투쟁에 연대를 표명하며, 여성노동 문제를 폭로하고 연대의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노동자대회는 1989년부터 열렸다. ‘차별의 사슬을 끊고 단결 전진이다는 제목으로 열린 여성노동자 전진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연대단체와 함께 혹은 독자적으로 매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공유하고 그 해결을 요구해 오고 있다. (민주노총 교육지)


2024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3.8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은 <2024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반여성적이고 반노동적인 정책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에 맞선 여성 노동자의 투쟁으로 성별 임금격차 해소, 평등한 돌봄, 여성노동권 쟁취 등의 구호를 전면에 내 세웠다. 22대 총선을 맞이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정책 요구안을 발표하고 총선에서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 여성 노동자 총선요구안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성평등 단협의무 법제화, 여성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 확대, 안전과 재생산에 미치는 노동환경의 성별 영향 점검, 12세 미만 아동 양육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 우선 적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정세 일지] 

‘2024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2024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

3/8 민주노총이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2024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 가맹산하 조합원 2,000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과 여성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반여성적이고 반노동적인 정책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에 맞서 여성 노동자의 투쟁으로 성별임금격차 해소, 평등한 돌봄, 여성노동권 쟁취의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차별을 넘어 평등의 봄으로 가자며 사회 곳곳의 성차별과 싸울 것을 결의했다.


노조탄압 사업장 파리바케트, SPC대표 이사 구속

3/5 지난 4일 파리바게뜨 제빵·카페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강요하고, 검찰 수사관에게 수사 기밀을 제공받는 대가로 향응과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황재복 SPC 대표이사가 구속됐다. 권영국 파바공동행동 대표는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의 민주노총 탈퇴와 허영인 회장의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수사 대응 공모의 최대 수혜자이자 몸통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라며 월급 사장인 황재복 SPC 대표이사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 황 대표에서 수사가 멈추면 꼬리자르기로 끝날 것이라 우려했다.


전국건설노조,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결의대회신종 노조탄압을 규탄

2/28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신종 노조탄압을 규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울산건설기계지부(지부장 장현수)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대한 건에 대한 심판회의를 진행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통한 단체협약 등에 대해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라며 수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앞장서며 신종 노조탄압을 해왔다.

 

택시노동자 방영환 열사, 145일 만에 노동시민사회장이 거행

2/27 방영환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장(이하 방영환 열사)가 분신으로 영면한 지 145일 만에 노동시민사회장이 거행됐다. 방영환 열사는 지난해 926일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임으로써 동훈그룹과 계열사 해성운수의 만행을 폭로했다. 방영환 열사는 해성운수와 동훈그룹이 완전월급제를 지키지 않으며 최저임금을 한참 밑도는 임금만을 택시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있고, 노동조합을 부당하게 탄압하며 부당해고했다고 외쳐왔다. 해성운수 근로감독 결과 최임법 위반 등 5개 위반사항이 적발됐고, 서울시가 동훈그룹 21개 사업장 전액관리제 이행 점검한 결과, 21개 사업장 모두 이를 전부 위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노총, 2024 투쟁 선포대회, 서울과 구미에서 개최

2/23 민주노총 2024년 투쟁 선포대회가 서울과 경북 구미에서 동시개최. 경북 구미에서는 영남권 조합원들이 모여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투쟁 승리를 외쳤다. 서울지역 집회에는 1600여 명이, 구미 집회에는 1400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이 내건 주요구호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모든 민중의 생존권 보장!’, ‘노조법 2·3조 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부자감세 철회! 국가책임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조할 권리 보장!’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보라색 풍선 행진

2/17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은 10.29 희생자를 상징하는 보라색 풍선 159개를 들고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종로, 을지로를 거쳐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유가족과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윤석열정권을 비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며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법을 내친 것은 근거도 명분도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노동] 

먹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LCD 모니터에 부착되는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업체로 일본 닛토덴코(Nitto Denko Corporation)100%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2003년에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했고, 50년간 공장부지 무상임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2003년도 설립. 현재까지 77천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면서 매출액의 82퍼센트의 63천억을 일본 본사로 가져갔습니다. 평택에는 한국니토옵티칼이 있습니다.

2022104, 설비 스파크로 인한 화재로 공장동이 전소됐습니다. 사측은 구미 공장을 청산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희망퇴직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93명이 희망퇴직을 했습니다. 하루만 일한 직원부터 9년 차까지 동등하게 17개월 치 임금을 희망퇴직금으로 청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7명의 인원이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고용승계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본의 협박에 굴복해 공장을 나갈 건지, 고용과 존엄을 지키기 투쟁에 전부를 걸고 싸울 것인지. 우리 발로 공장을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단호히 먹튀 자본의 책임을 묻고 함께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자본과 공권력 침탈에 맞선 공장 사수투쟁

지난해 83일부터 현재까지 자본과 공권력의 침탈에 맞서 조합원들과 연대동지들이 공장 사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84공장에서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회사는 결국 조합원 10명에게 4억의 손배·가압류를 청구했습니다.

2023130, 22일로 예고된 해고 통보 사흘 전, 구미 공장 사수를 위해 지회 사무실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사측에 구미 공장 재건과 고용승계를 지속해서 요구하며, 시민선전전을 진행하고, 구미시청, 산업단지공단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관계 기관과 고용노동부 구미지청까지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8월에는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기각되자마자, 사측은 공권력(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굴삭기, 크레인, 컨테이너를 동원해 조합원들을 공장에서 끌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87일 철거업체를 동원한 자본의 공장침탈이 자행되었으나 우리는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연이은 자본의 도발을 막아 내자 급기야 공권력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구미시는 경찰병력을 끌고, 소방서와 크레인과 레커차를 동원해 공장 울타리를 에워쌌습니다. 공장 철거를 위한 장비반입 시도를 공권력이 직접 자행한 것입니다. 사력을 다해 버틴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결국 공장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공장을 잘 사수하고 있으니, 아직 구미시에서 공장 해체 승인도 나지 않았는데, 사측은 공장 철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가처분, 가압류를 동시에 진행했고, 법원은 손배소 가압류를 받아들였습니다. 회사의 손해를 입증하기도 전에, 조합원들의 부동산(5), 전세보증금(5)에 각각 4천만 원씩 손배소 가압류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굴하지 않자, 노조 사무실에 단전ㆍ단수를 시도했습니다. 단전은 막았고 우리가 전기세를 내며 사용 중이고, 단수는 되었지만, 물탱크를 연결해 공원에서 물을 길어다 쓰다가, 연대 동지들이 농업용수를 배달해 주어 화장실의 불편을 해소하고, 식수는 생수를 사용 중입니다.


공장 철거에 맞선 고공농성 돌입

또 시간이 흘러, 12월이 지나기까지 재판부는 공장 철거 방해 금지 등의 가처분 결정을 미뤘는데, 구미시에서 공장 해체 철거 승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415일 구미시 건축과장과의 면담에서 곧 철거 승인이 떨어진다는 내용을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일 새벽 640분 고공농성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미시는 18일 저녁 530분 철거 승인을 했고, 재판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틀 뒤 가처분 결정을 합니다. 가처분 결정문이 고시되고, 사측에서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 위해서 작년 8월에 했던 행동을 똑같이 하며, 철거를 위해 현재까지 월~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공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16, 김천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러 왔지만, 전국에서 1,000명 넘는 동지들이 모였고, 조합원들은 아시바(발판) 위에 올라가 쇠사슬을 몸에 묶어 이 공장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사측의 침탈과 강제집행을 막아 냈습니다. 집행관은 다음에 집행 기일을 다시 잡아서 온다고 했습니다.

 

조합원과 연대의 힘으로 끝까지 싸울 것

리는 11명의 고용승계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공농성 중이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밑에서 2명의 동지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고공 농성자들을 무력으로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길은 간단합니다. 11명의 고용승계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이 상황은 정리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정신으로 단결해서 싸운다면, 고용승계 꼭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우리 같은 외국인 투자기업의 먹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노동]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으로 살길 찾자!

 

주훈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가 줄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이 줄어든 원인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자감세다. 나라 재정이 줄어 이에 따른 연쇄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러 피해 가운데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분야는 지자체다.

한국은 243개 지자체가 있다. 지자체마다 재정은 다르기에 국가는 지방교부세를 통해 필요하지만, 부족한 지자체 재원을 지원한다. 그래야 모든 지자체의 주민들이 그나마 형평성 있는 보편적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재정문제로 마땅히 제공받아야 할 보건, 의료, 사회복지 행정서비스가 지역에 따라 심각한 불평등, 불균형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천차만별이지만 나라에서 교부하는 지방교부세를 통해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이 지방교부세는 나라 재정과 직접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나라 재정에 일정 비율을 곱하여 재정부족분을 지자체에 교부하는 식이다. 계산식에 따라 일정비율은 거의 변동하지 않는바, 따라서 나라재정의 크기에 따라 지방교부세의 증감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 부자감세를 통해 나라재정이 크게 축소되었다. 연동하여 지자체에 교부되는 금액이 대폭 삭감되었다. 재정자립도가 충분한 몇 군데 지자체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자체의 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자연스레 사업비를 줄이느니,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느니 벌써 아우성친다.

문제는 인력감축에 따른 위탁 증가, 노동강도 증가, 위험성 증가 부분이다. 노조는 지자체 외 지방의회를 만나며 인력과 임금, 보건의료,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삭감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는 앞에 대고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년퇴직 등으로 발생하는 자연감소 공백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지자체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가령 하수 준설 업무의 경우 위험성 노출이 많은 노동이다. 그런데 기존 12명이 하던 일을 현재 6명이 하는 지자체도 있다. 안전관리를 담당할 노동자조차 두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직영으로 관리하던 업무를 다시 위탁으로 넘기는 지자체도 생기고 있다. 위탁운영 하는 사회복지, 보건, 돌봄서비스의 인원도 대폭 줄이는 지자체도 생기고 있다.

인력의 공백을 고용이 불안정한 기간제, 시간선택제임기제 노동자로 채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 지역에서 고용, 임금, 안전과 처우에 직접적 타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경우, 일정정도 방어하지만, 노조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경우, 현실은 더 비참할 것이다.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단결투쟁이 절실하다. 당면하여 윤석열을 몰아내야 한다. 노동자는! 특히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은 윤석열 퇴진의 구호에 양회동 열사의 피 값이 새겨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심판>의 구호는 양회동 열사의 목숨으로 <퇴진>으로 변경되었다. 단결 투쟁하자. 정규직, 비정규직의 강력한 연대, 단결, 투쟁을 정세가 부르고 있다.



[국제] 

푸틴과 서방의 도를 넘는 위선

 

번역 : 김의진

쏘련 붕괴 이래 서방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망령을 항상 탐색하고 있다. 1991년과 2003년 당시 사담 후세인이, 1998년에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2001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2011년에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3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등이 바로 그러한 망령들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 국제정치에서 악당의 역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주어졌다. 최근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은 서방 주류언론의 반()푸틴 공세를 재생시켰다.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은 러시아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세계의 기수로서 자신을 스스로 다시 한번 포장했다. 서방은 푸틴의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인권의 수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재차 굴고 있다. 실로 부끄러운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서방 지도자들에 의해 독재자로 묘사되고 있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은 실은 그들과 똑같은 부류이다. 그는 쏘련에서의 자본주의 반혁명의 정치적 적자이다. 그의 정치적 스승은 보리스 옐친과 아나톨리 소브착과 같은 극악무도한 반공주의자들이다. 푸틴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모든 대통령, 지도자들과 공통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자유시장의 옹호자이며, 열렬한 반공주의자이다.

오늘날 푸틴의 권위주의를 성토하고 있는 서방은 과거 19998월에 푸틴의 정치적 부상을 축하했던 바로 그 서방이었다. 당시 옐친 대통령의 부탁으로 러시아의 총리직에 올랐던 자유주의, “민주적지도자를 서방 국가들은 환영했다. 몇 달 후, 푸틴은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며 선거에 당선됐다. 러시아 경제의 자유화를 향한 푸틴의 헌신은 서방 지도자들에 의해 매우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자본과 마찬가지로 반공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위해 복무하는 모든 이들을 단결시키는 경향을 띠고 있다.

옐친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던 발렌틴 유마셰프는 푸틴의 대통령 당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마셰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옐친은 보리스 넴초프, 세르게이 스테파신, 니콜라이 악세넨코와 같은 후보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소. 옐친과 나는 차기 대통령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네. 우리는 푸틴에 대해 의논했지. 옐친은 나에게 물었다네. ‘푸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가 훌륭한 차기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답했소. ‘푸틴을 차기 주자로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더욱 어려운 과제들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일을 처리해 왔던 방식을 볼 때 명백합니다.’ 푸틴이 과거 KGB의 요원이었다는 것은 아무런 하자가 되지 않았다네. 푸틴은 시장개혁을 이어 나가기를 원하는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을 증명했소.”

 2000년에 최초로 푸틴과 회동했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푸틴이 경제개혁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약속을 표명했다고 말하며 유마셰프의 주장에 동의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도자들이 경제개혁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의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독점체에 더 많은 이윤을, 사유화의 확대를, 복지국가의 완전한 해체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한다.

푸틴은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전략적 목표가 국제제국주의 질서에서 더 높은 지위를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추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러시아 독점체의 이익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2007년 이전까지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의 친구이자 동맹자였다. 그 후에 일어났던 일련의 모든 사건(조지아에서의 군사분쟁,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분리독립, 미국이 후원했던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과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 등)은 모스크바와 서방 사이에서의 제국주의 내부 경쟁의 격화로 이어졌다.

오늘날 유럽-대서양 제국주의 블록은 민주적서방과 러시아 권위주의사이에 잘못된 선을 긋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그러나 양 진영이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났고 자라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양 진영은 인민들의 고혈을 대가로 자국 독점체의 이윤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의 개전 이래 2년 동안 노동자계급은 자각적 의식에 근거하여 그 어떤 제국주의 약탈자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레닌의 말은 이전의 모든 시기보다 더욱더 시의적절성을 지니고 있다.

번역 원문: Putin and the unbearable hypocrisy of the West. (In Defense of Communism)



[고발] 

위헌ㆍ불법 위성정당 해산해야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지난 37일 공활모(공공운수), 노동전선, 전국결집, 평등노동자회와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단체와 함께 한동훈, 이재명, 윤희숙, 용혜인 등 위성정당 관련자 15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관련 법률은 정당법 제49조 당대표 경선 등의 자유방해죄, 5년 이하 징역), 54(입당강요죄 등, 2년 이하 징역), 56(당원 명부 강제열람죄, 5년 이하 징역), 61(창당방해 등의 죄, 7년 이하 징역), 공직선거법 제230(매수 및 이해유도죄 제1, 2, 7년 이하 징역) 위반이다.

지난 311,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활모, 노동전선, 이수갑선생정신계승사업회, 전해투, 전국결집, 투기자본감시센터, 평등노동자회, AWC한국위원회 등 8개 단체가 윤석열 정부에 위성정당 해산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대표 조혜정), 더불어민주연합(대표 윤영덕), 위성정당 만든 국민의힘(대표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과 더불어민주당(대표 이재명), 새진보연합(대표 이재명), 진보당(대표 윤희숙)을 헌법재판소 정당해산 심판 청구하고, 겸하여 정당의 직무정지도 심판청구할 것을 요구했다.

정당이란 이념과 노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은 헌법과 정당법에 기초하지만 기존 정당이 별도의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수구보수 거대양당이 위성 괴뢰 사기 기생정당을 만든 것은 위헌이며 정당법 위반이다.

전국적으로 소수 정치세력이거나 지역차원에서는 <정당법> 17(법정시·도당수), “정당은 5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 18(·도당의 법정당원수) , “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정당 건설이 어렵다.

어렵게 정당을 건설했다 하더라도 소선거구제, 전체 의원수의 15.3%에 불과한 비례국회의원 수와 유효투표총수의 3% 이상을 득표해야 1석을 배정받을 수 있어 국회진출이 쉽지 않다. 만약 지역구 선출이 중대선거구제로 바뀐다면, 3, 4당에서도 당선자가 나올 것이다. 나아가 전면 비례대표제로 바뀐다면 1% 득표 시 3명의 국회의원을 배분받을 수 있다. 정하기 나름이지만 소수정당이 적은 득표(예를 들어 0.3%)로도 1명을 배분받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국회의원 1석 얻기 위해 벌이는 위헌 불법 위성괴뢰정당이라는 막장 드라마는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그런 일이 현실화될 수 없다. <공직선거법> 21(국회의 의원정수) “국회의 의원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 <개정 2020. 1. 14., 2024. 3. 8.>,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선거구에서 선출할 국회의원의 정수는 1인으로 한다. <개정 2016. 3. 3.>”, 189(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의 배분과 당선인의 결정ㆍ공고ㆍ통지) 1. “임기만료에 따른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며칠을 앞두고 여야 수구보수당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선거법을 개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38일 윤석열(한동훈)과 이재명을 앞세워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의원 수를 한 명 줄이는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서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까지 싹쓸이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자신이 만든 위성정당에 끌어들여 2중대로 만드는 대가로 몇 자리 떡고물을 선사하려 한다,

결국 총유권자 중 각각 30% 정도의 지지를 받거나 득표한 수구보수 양당(60%)이 나머지 40%를 배제한 채 권력 담합구조를 형상하면서 시계추 방식으로 이전투구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콘크리트 30% 고정지지율로 버티며 60~70%의 반대에 직면할 수 없으며 정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재벌과 부자중심의 한국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60% 고정적 지지를 얻은 세력이 담합하여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정책, 재벌부자감세와 복지축소, 노동자탄압과 노동법 개악이라는 친자본 반노동 정치와 정책으로 귀결된다.

위성정당은 헌법을 위반한 쿠데타 행위다. 수구보수양당이 담합하여 펼치는 위헌행위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위성정당을 해산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차제에 정당법을 전면 개정해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정당건설과 정치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노동자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



 [기획]

 소설을 통해 본 계급혁명의 조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찬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동네는 낙원구 행복동이다. 모두가 행복를 찾던 행복동, 모두가 가고자 했던 낙원은 한쪽에게만 열린 문이었다. 다섯명 가족의 빈곤한 삶을 하나로 묶어 주던 난장이 가족의 작은 집은 철거를 당했고 그 순간부터 가족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난장이 가족은 높다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구름을 대신하던 은강시로 이사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집을 나갔던 딸 영희는 가족이 살던 곳을 되찾기 위해서 철거된 집을 찾았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같은 행복동의 이웃인 신애 아주머니가 난장이 가족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갔다. 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라고 말했다. 은강그룹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큰 오빠 영수는 살인을 선택했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삶을 마감했다.

1970년대,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점을 잘 드러내 준 이 소설은 1978년 초판이 발행된 후 46년 만에 150만 부가 팔렸다. 경향신문은 이 소설이 광고 또는 홍보, 작가의 유명세 등의 영향 없이 꾸준한 판매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난쏘공]이 무려 46년 만에 고작 150만 부가 팔렸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1970년대 농촌의 분화, 그로 부터 형성된 도시 빈민과 저임금 공장 노동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한국 노동계급이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고향과도 같다. 한국의 노동자는 20238월 기준 2,1954천 명에 달하며 전국 인구의 90.7%가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 노동자계급은 인구에 있어서 절대적 다수를 차지한다. 노동자 계급은 정치·사회적으로 유력한 집단이 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46년 전의 처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 이 소설에서 표현된 일만 년 후의 세계는 만들지 못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빈곤을 주제로 한 계급투쟁은 낡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원동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상대적 욕망 속에서 싸우며 갈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은 체제가 만들어낸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 보다는 양보와 타협 속에서 체제를 바꿈으로써 모두가 지옥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낡아버린 계급적 분노를 담고 있는 소설은 고작 그 정도의 판매만을 기록했을 뿐인가 보다.

하지만 그들 주장은 사실일까?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불안을 낳는 계급적 분열 상태는 중산층의 존재를 통해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한다면 절대적 빈곤층이 다수 존재 했던 70년대 조차도 거짓된 희망으로 환상을 쫓는 중산층을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당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쓰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1970년대 당시 사람들은 그렇다. 41.3%, 어느 정도 그렇다. 21.5%”로 답하고 있다. 다수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를 소설에서는 거짓 희망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국내 경제 규모가 고도성장의 여지가 있는 경우, 중산층을 위한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게 된다. 집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하층으로서 짓눌려 있을 때조차도 개개인에게 열린 기회를 통해서 누구는 중산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전체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개인의 경쟁과 부를 위한 노력은 일상적인 일이다. 다수의 대중이 가지는 생활 향상에 대한 희망은 고도 성장을 향해 발돋움하는 70년대 한국 자본의 성장에 대한 대중적 반영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일정한 경제 성장의 규모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한정된 기회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 낙원에 들어 갈 수는 없다.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바람은 거짓 희망이었다.

오늘날은 다른 의미에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낙원구 행복동의 문이 닫혀 버렸다는 것을 안다. 고용 안정성과 중위소득 이상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인 국가기구의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의 고용은 예전과 같이 늘어날 수 없다. 자영업자, 중소상공인의 상위 30%는 예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지만 나머지는 공과금, 이자, 월세 비용의 상승으로 인하여 아래로 부터 차근차근 한계상황을 맞이한다. 낮은 노동소득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지나, 하층 자영업자의 처치는 다를 바가 없다. 다수가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채, 차오르는 물을 지켜보고 있다.

사회적 불만으로 꽉들어 찬 압력밥솥과 같은 사회상태는 어떠한 형식이든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간에 터져야만 한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지 아니면 질식상태가 얼마간 더 계속될지는 사회적 다수를 차지한 중하층의 정치적 태도에 달려 있다. 중산층은 현재의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적이다. 대부분의 당파가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투쟁에서 무산자의 깃발을 들고 그들의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는 정당은 부재하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무산자층에게 거짓 희망을 부추기며 그릇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렇듯 현재 경제 정치 상황이 요구하는 바는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시대와 구체적 상황을 달리 하지만 46년 전의 소설 [난쏘공]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자신들의 계급혁명의 단편들을 보여주었다. 노동운동을 탄압한 그룹 사장의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큰 오빠 영수 뒷편의 어린 여공들은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악당들과 맞설것을 종용했다. 신애는 남 보다 빨리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난장이의 말을 믿어 주었고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맞서 칼을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저희도 난장이랍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 모두가 살아나야 한다. 희망을 짓밟는 낡은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기 위해 치켜 세운 깃발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중국혁명가 열전]

 마오쩌둥 혁명을 위해 일가를 희생하다

 

이철의

 마오쩌둥은 중국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위인이다. 1949101, 신중국이 성립하기 전까지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로서 혁명이론 수립 및 당의 지도, 전략 및 전술의 수립, 전쟁 및 전투지휘에 이르기까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그늘로 빛이 바랬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중국 공산당사는 그를 가리켜 위대한 맑스주의자이자, 위대한 무산계급혁명가, 전략가, 이론가. 중국의 위대한 애국자이며 민족영웅. 중국 인민을 영도하여 명운을 개척했으며 국가 면모를 일신한 일대 위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오쩌둥이야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여기서는 혁명과정에서 희생한 그의 가족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마오쩌둥은 혁명에 투신한 뒤 여섯 명의 가족을 잃었다. 그의 아우로 마오쩌민(毛澤民)과 마오쩌탄(毛澤覃)이 차례로 희생되었고 아내인 양카이후이((楊開慧)가 국민당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촌 누이인 마오쩌지엔(毛澤建),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조카 마오추슝(毛楚雄)을 차례로 잃었다. 그뿐만 아니라 양카이후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도 모두 죽거나 다른 사람이 겪지 않을 고통을 받았다. 양카이후이가 국민당군에 잡혔을 때 후난성의 군벌 장군 허젠(何鍵)마오쩌둥과 이혼하고 공산당을 탈퇴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양카이후이는 너희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마오쩌둥은 양카이후이의 소식을 듣자 내가 백 개의 목숨이 있더라고 바꿀 수 없다.”고 비통해했다고 한다.

양카이후이가 국민당군에게 잡혀 처형당하자, 세 아들은 상하이 공산당 지하당에 맡겨졌다. 상하이당이 파괴되자 세 아들은 유리걸식하며 유랑하게 되었다. 셋째 마오안룽(毛岸龍)은 유랑과정에서 실종되었다. 첫째 마오안잉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고 둘째 마오안칭(毛岸靑)은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지만, 유랑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평생 고통을 받았다. 마오쩌둥은 언젠가 아들들의 유랑과정을 회고하며 어린 나이에 백가(百家)의 밥을 먹었다.”고 탄식하였다. 즉 구걸하거나 남의 집에 얹혀 지냈다는 뜻이다.

마오쩌둥은 두 번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의 사이에서도 여러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은 것은 딸 리민(李民)뿐이다. 첫 번째 딸은 마오쩌둥이 징강산 근거지를 빼앗긴 뒤 후난성과 장시성 등을 전전할 때라서 남에게 맡겼다. 그는 우는 허쯔전을 이렇게 달랬다. "아이를 맡기자. 혁명 투쟁에 승리한 후, 다시 데려오자." 그러나 그걸로 그만이었다. 둘째 아들 마오안훙(毛岸紅)은 장정을 출발하며 아우 마오쩌탄 부부에게 맡겼다. 마오쩌둥은 소비에트 은행 책임을 맡고 있던 요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불안한 신분이던 마오쩌탄 부부는 아들을 어느 경호원의 집에 맡겼는데 끝내 행방불명되었다. 국민당군이 루이진(瑞金)을 비롯한 장시성의 소비에트를 이 잡듯 뒤져 공산당원과 동조하던 민중들을 학살했으므로 함께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허쯔전은 국민당군이 루이진의 소비에트를 포위 토벌할 때 세 번째 아이를 낳았다. 쫓기는 환경에서 아이를 조산한 결과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혁명가의 부인 중 팔자가 기구하기로는 허쯔전이 손꼽힌다. 그는 장정 도중에 다시 딸 하나를 출산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 부부는 어느 농가에 아이를 맡겼는데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쯔전은 국민당군 비행기의 폭탄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고 그 여파로 마오쩌둥과 이혼하는 운명이 되었다. 허쯔전은 옌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리민을 낳는다. 리민은 소련으로 정양하러 간 어머니를 따라갔으며 귀국 후에도 허쯔전을 보살폈다. 허쯔전은 모스크바에서 정양 중 마지막 아들을 출산했으나 금방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오쩌둥과 이혼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오쩌둥의 자녀 중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세 번째 부인 장칭(姜靑)과의 사이에서 낳은 리나(李訥)이다. 그는 마오쩌둥 장칭 부부의 슬하에서 순조롭게 성장했으나 문화대혁명 후 어머니가 자살하는 비운을 겪었다.

마오쩌둥 일가 중 비교적 알려진 이는 맏아들 마오안잉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참전을 자원하였다.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이던 펑더화이가 말렸지만, 마오쩌둥은 아들의 참전 요청을 받아들였다. “마오쩌둥의 아들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식들을 출전시키겠는가?” 하지만 마오안잉은 미군 비행기의 폭격에 맞아 전사하였다. 네이팜탄에 시신이 새카맣게 타서 손목에 찬 소련제 시계를 보고 신분을 겨우 확인했다고 한다. 마오안잉의 전사를 알게 된 펑더화이는 직접 전문을 기초하여 마오쩌둥에게 보고하였다.

마오쩌둥은 방에서 자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기밀비서 예즈룽이 말없이 전보를 건네자, 마오는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는데 기록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이라고도 하고 아무 표정도 없었다고도 적혀 있다. 마오는 낮은 목소리로 예즈룽에게 말했다. “전쟁에는 희생이 따른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데 한 사람의 일만 생각할 수는 없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릉에 있다. 중국으로 이장하는 문제에 대하여 마오쩌둥은 인민의 자식들도 조선에 묻혀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노동자교양예술]

 마야코프스키 

-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예술로 추동 인물


 한아석

 마야코프스키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를 하나 옮겨보자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혁명을 향해 달려온 시인에게 막 눈앞에 시작된 관료주의는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철저하게 관습을 거부했던 그의 눈에 이런 현실은 배반당한 혁명으로 비쳐졌다. 마침내 1930414일 마야코프스키는 그의 시구절처럼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런 평가는 스탈린이 마야코프스키를 고립시켰고 마야코프스키는 그 때문에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고리키를 암살했고, 마야코프스키도 스탈린 때문에 자살해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스탈린 때문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마야코프스키의 작품 속에는 배반당한 혁명에 관한 구절이 단 한 줄도 없다.

소련의 제1차 경제개발계획은 1928년부터 1932년까지였고 마야코프스키는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스탈린이 이끄는 쏘련 사회주의 건설을 예술로 고무시켰다. 마야코프스키는 최후의 작품 중 하나인 희곡 <목욕탕>에서 타임머신을 발명한 추다꼬프와 관료인 조정국장 뽀베도노피꼬프와의 투쟁을 통해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무시켰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하여 세르게이 니끼찌츠에게 전화하며, 만일 세르게이 니끼찌츠가 동의하지 않으면, 니깐드르 페도또비치에게 전화합니다. 그런데 니깐드르 페도또비치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세몬 삐라미도노비치에게 전화합니다. 이런 모든 유형이 관료주의자의 일반적인 형상을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추다꼬프가 그따위 하찮은 물건을 발명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동무들. 우리가 5개년 계획을 4년 만에 완수하는 일, 그것도 일종의 타임머신입니다. 5개년 계획을 4년에 수행하는 일이것은 시대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5개년 계획을 4년에 수행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시대를 조직할 것인가? 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속도를 앞당기는 기계인 것입니다.” - 마야코프스키, 1 모범 인쇄소 클럽에 있은 목욕탕의 토론회에서 발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김규종 옮김(1993), 미스쩨리야 부프,p. 4 

마야코프스키가 (전화나 계속 돌려대는) 관료를 비판한 것은 혁명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탈린의 계획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그의 예술은 레닌과 스탈린이 이끈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다루었고, 관료주의 비판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1924년 마야코프스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걸작 시로 꼽히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서 스탈린을 레닌의 계승자이자 사회주의 건설 지도자로 다음과 같이 호명한다.

 <그대들을 / 요구하는 이는 / 스딸린 동지다. / 복도 오른쪽 / 세 개의 문을 지나면 / 거기에 / 그가 있다.> —〈동지들, / 멈추지 마시오! / 앞으로, 자 이 안으로!/ —〈우체국에 / 급히 / 장갑차를 출동시켜라!-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 이득재 번역(1989), 내가 아는 한 노동자, 열린책들, pp. 59-60.

그는 스탈린 시기에 가장 사랑받는 국민시인이였다. 먀아코프스키가 사망했을 때 15만명이 참석했다. 소련 역사에서 레닌, 스탈린 다음으로 많은 추모객이 참가한 장례식이었다. 스탈린의 억압 때문에 고립되어 자살했다는 마야코프스키가 인민에게 받은 이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1935년 스탈린의 마야코프스키는 과거에도 그러했고현재에도 우리 소비에트 시대의 가장 재능 있는 시인이오. 그의 추억과 그의 시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범죄요.”라는 평가는 <프라우다> 머리기사로 실렸다


. 1937년 마야코프스키 박물관및 도서관이 모스크바에서 문을 열었다. 스탈린이 자신을 레닌의 계승자로 인정했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열정적인 추동자였던 마야코프스키를 자살에 이르도록 억압할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가십을 퍼뜨리는 이들이여, 마야코프스키를 제대로 읽기라도 했나요? 마야코프스키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러분 모두에게. 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하지 마오. 그리고 이야깃거리로도 만들지 말아주오. 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하오.”

야코프스키는 하잖은 가십에 묻힐 수 없는, 소련 사회주의의 성공을 예술로 추동했던 맑스·레닌주의의 영원한 바쿠스(박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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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어제도 들었다 . “ 사장님 ,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 저 사장 아닌데요 .  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 ?” 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  그저 웃으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