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문화칼럼] 축구가 인기 없으니, 공을 손으로 던지자고요?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나의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노래방 애창곡 조용필의 모나리자라는 대중가요 한 소절이다노래 등 예술작품을 접하면 특정 장소나 경험을 떠올리기 마련인데무엇이 연상되시는지노래방좋아하던 TV 예능 프로혹시 이 노래에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 혹은 거리 시위장면이 떠오른다면 어떠신지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을 거다그러나 실제로 민주노총의 집회가두시위 현장에서 대중가요들이 종종 울려 퍼진다얼마 전 윤석열 퇴진을 위한 민주노총의 가두시위 현장에서도 선두방송차에 한 무리의 밴드가 등장해 이 노래를 불렀다같이 걷던 한 동지는 뭐야지금 윤석열이 우리 사랑을 안 받아준다고 항의 시위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집회나 투쟁 현장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전반에 있어서 문화는 그다지 중요한 의제나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수많은 민주노조에서 문화국이 사라진 상황이 단적인 증거이다집회공간에서의 대중가요혹은 대중문화 패러디에 대한 문제의식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 보다는 그저 찬반양론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식의 인식이 대부분이다이런 와중에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제기가 있었는데지난 11월 수도권 합동유세 과정에서 오고 간 질문과 대답을 요약·정리해 봤다.

노동자 계급의식을 대변하는 노동자 문화가 많이 퇴색되고 있다민주노총이 대중성 확보즐거운 집회 문화 등의 이유를 대지만투쟁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대중가요가 행진할 때 방송차서 흘러나오면 내가 왜 이 집회에 참여했는지 자괴감이 든다즐겁기만 하면 의미도 없는 자본의 문화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지노동자 계급의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동자 문화를 지켜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이 있는지?’

이에 대해 현 당선인인 당시 기호 1번 쪽 후보는 이렇게 답변했다. ‘투쟁가만 틀고 딱딱하게 집회하는 게 힘들다는 조합원도 있고대중가요를 틀면 비판하는 조합원도 있고 해서 어렵다형식이 가볍다고 해서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대중가요는 자본의 문화이고 노동가요는 노동의 문화라고 이분법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과거에는 아침이슬이 저항가요로 불려 졌고 최근에는 이런 것이 없다 보니까 점점 더 투쟁가요 민중가요 이런 것만 집중해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직접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민주노총이 정신이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면 방법은 (대중가요 등도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고충이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이 되는 동지들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대답은 문화활동을 하는 나로서는 매우 유감스럽다우선 본인이 자본의 문화와 노동의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말자고 하면서 스스로는 형식과 내용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다형식이 가볍다고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노래몸짓연극 등 다양한 문화를 창작하는 내 입장에선 위원장 발언이라고 느끼기엔 새털처럼 가볍다형식과 내용은 형이상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있다음악에 왜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가 있는지는 아시는지톤 앤 매너라는 게 왜 중요한지는 아시는지수많은 창작자가 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위해 숱한 고민을 하는지 따위는 내 알바임?’이라는 말씀인지그래서 투쟁하기 위해 엄청난 조합비를 쓰며 새벽밥 먹고 달려온 조합원들에게 울려 퍼진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라는 노랫말 어디에 내용의 가볍지 않음이 있다는 건지또한 당선인의 이 대답은 마치 조합원들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는 것처럼 느껴진다.

120만이 넘는 조합원들의 취향과 생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그러하기에 지도부로서 역할을 할 이들의 철학을 묻는 것인데그에 대해 이런 조합원도 있고 저런 조합원도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씀하셔야 했는지심지어 이 말조차도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다유연함이라는 말로 둘러 표현했지만결국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로 대답을 마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민중문화 전반에 관해 이야기해야겠으나지면이 허락지 않으니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노동자도 이 사회의 대중이다하기에 대중문화는 노동자들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달리 말하면 민주노총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집회를 끝내고 갈 뒤풀이 노래방에서귀갓길 라디오에서집에 도착하면 TV에서숱하게 접하고 알아서 잘 향유한다그러니 민주노총이 뭘 할지를 고민하시길문화를 잃은 계급은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니.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3)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는 앞에서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임과 동시에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로서 일국 단위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설명했고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지식 생산을 총자본과 개별자본들의 역할 분담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다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은 사회인식론적인 관점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사회적이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추후로 미루고우리는 정치·경제적이고 조직적제도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과 형식을 살펴보고자 한다네덜란드의 과학철학자이자 과학사회학자인 Arie Rip은 과학이 일정 정도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과학은 3중의 신용 순환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하였다. 1단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평판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 공동체 내 구성원들 간의 신용 순환이고, 2단계는 “R&D 예산을 위한 경쟁으로 연구개발 예산을 배분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에서의 신용 순환, 3단계는 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과 사회국가 간의 신용 순환이다.

먼저, 1단계인 과학 공동체 내부에서의 신용 순환을 살펴보자과학기술 보고서와 논문을 생산하는 과학기술자는 과학적 평판과 신용을 획득하게 된다그는 그 평판과 신용에 기반하여 연구개발 사업비와 정보에의 접근성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이는 생산적인 연구로 이어지고그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 보고서와 논문이 다시 생산됨으로써 순환된다. 1단계 신용 순환에서 보고서/논문평판/신용사업비/정보 간의 각 교환과 전환들은 과학 공동체 내에서의 평판과 신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2단계로 펀딩 에이전시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은 제안서를 받고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그래야만 적어도 차기 연도를 위한 예산을 유지할 수 있다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기능과 신용 순환은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과 결합되어 있다과학기술자들은 연구개발 예산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연구 제안서를 검토하고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정부 조직은 스스로 정부와 국민에게 예산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소속 공무원이나 위원회 구성원은 언론을 비롯한 대중적인 평가에 민감하다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은 다른 정부 부처나 후원자들과 공식적비공식적 연결 및 대중을 대상으로 한 확산 등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게 된다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과 과학기술자 간의 상호의존은 최근에 나타나서 안정화된 현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특징이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은 제도화되었다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로부터 예산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하고때로는 기관 단위의 R&D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한다그 제안서들은 과학기술자들 간의 동료평가를 통해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3단계에 해당하는 상관성에 대한 압력은 정부 부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그럼으로써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과학기술 지식의 결과물과 생산과학기술자의 지위는 사회적 맥락에 결합되어 있고, R&D 예산의 배분은 과학적 결과물에 의해 정당화된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의 가장 위층에 상관성과 정당성에 대한 경쟁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과학기술에 대해 사회적 맥락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혁신 등에의 상관성이 요구되었다명시적으로 임무를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사업단이나 중간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과학기술자들과 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들이 연계하여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기술에서 확립된 통제된 자율성을 만들어 냈다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은 아직 규칙들이 명확하지 않고 주요 주체들에 의해 인정받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신용 순환 자체가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최상위 단계의 신용 순환은 아직 확립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위법적이고 졸속으로 대폭 삭감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과학기술 지식 생산을 위한 3중의 신용 순환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고과학기술 전반이 정치화되었다한국을 성공한 산업국가로 이끌었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양식과 조절양식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관과 노동운동-5] 인간은 원인과 결과 관계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문영찬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와 같은 속담은 민중들이 소박하게 원인과 결과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발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노동인데노동 과정에서 인간 상호 간의 협력 필요성으로 인해 언어가 발생했고또 도구를 만들어 생산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고대인들은 초보적인 과학적 인식을 발전시켜 갔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초보적인 과학의 탄생을 의미했다왜 눈이 내리는가작물을 재배하려면 어떤 재료와 어떤 작업이 필요한가등등 인간은 생활 속에서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면서 원인 개념을 사고하기 시작했다인간은 노동 속에서 사물을 변형시키려면 어떤 작용이 가해져야 하는가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들을 원인이라는 개념결과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원인과 결과 관계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 관계 중의 하나이다자연은 수많은 상호 연관으로 얽혀 있는데원인과 결과 이외에 필연과 우연가능성과 현실성현상과 본질 등등 수많은 연관이 존재하는데원인과 결과는 여타의 더 높은 수준의 연관을 인식하는 데 있어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고 이를 반영하여 철학에서 당파적 대립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원인과 결과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간다는 주장이 등장하였다심지어 이 세계에는 원인과 결과 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나타났다그러나 노동을 하는 사람은 원인과 결과 관계에 근거하지 않고는 노동하여 먹고 살 자료를 생산할 수 없다물론 인간은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그러나 그때의 자유는 원인과 결과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활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인간의 노동은 원인과 결과 관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생산하는 것이다사회의 발전 또한 무수한 원인과 결과 관계의 연쇄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착취와 억압빈곤과 몰락은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가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며그러한 계급적 분열은 모든 부의 생산의 토대가 되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이와 같이 원인과 결과 개념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다 깊이 인식하여 본질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서 과학적 인식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영화 단상] 민주주의를 선동하는 영화와 피하고 싶은 자들 - 영화 『서울의 봄』 (2023)

 

박찬웅

영화 서울의 봄’ 열기가 뜨겁다. 12. 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 12일째(12월 3일 기준관객 425만 명을 넘어섰다영화는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쿠데타 주도세력인 하나회와 우유부단하며 보신주의에 가득 찬 군부의 상층관료들그리고 쿠데타를 저지하려는 소수 장교 간의 대비를 통해서 긴장감 있게 표현하였다영화는 과도한 설정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애국주의적 서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간의 대비만으로도 상영시간 2시간 21분 15초 내내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쿠데타 저지 측에 서 있던 8공수(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9공수이다특전사에 근무했던 공공운수노조 양규서에 따르면 공수부대 여단의 부대표기는 홀수로만 표기된다고 한다.)여단이 쿠데타군 수뇌부들이 모여 있던 수도사령부 경비단을 타격하기 위해 서울로 진입하려는 순간 관객들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육군본부 벙커에 모여 있던 군부 상층관료들은 다 같은 국군 아니냐는 타협과 절충을 앞세운 채 쿠데타군과 신사협정을 맺고 8공수를 회군시켰다.

그 사이 전방에 있던 노태건의 3사단과 2공수여단이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다전두광의 합수부에 의해서 언론과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통제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그 늦은 밤거리의 사람들은 서울로 진입하는 한강 다리가 통제되면서 영문도 모른 채오도 가지도 못하는 차량에서 쿠데타군의 진입을 늦추는 바리케이드 역할밖에는 할 수 없었다대세가 기울자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채 숨어 있던 국방장관군부 상층관료들은 쿠데타의 사후적 승인을 위한 병풍이 되었다영화 내내 보여준 그들의 기회주의적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적 행태는 관객들의 분통을 터지게 했고 혹시나 관객들이 기대했을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영화적 배반에 대한 기대감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다음 날 새벽전두광과 하나회 장성들은 참모총장 정상호 체포 건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결재서류를 내밀었다사태의 진정한 정치적 의미도 모른 채긴박했던 밤을 보냈던 대통령은 자신이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민주주의자임을 보여주는 소극적 저항을 보여주는데 멈추어 섰다결재서류에 ‘12·13 05:10 AM’이라는 승인 일자와 시각이 클로즈업되며 12·12 사태의 계기가 되었던 참모총장의 체포가 사후적 승인임을 보여주었다. 쿠데타 저지군의 희생과 노력이 좌절로 끝나고 자기 체면이나 세우려는 소심한 저항을 보는 관객이 느끼는 기분은 쿼바디스(우리를 놔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였을 것이다.

서울의 봄은 영화가 가지는 편집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동 시간대의 쿠데타군과 반란 저지군의 공간을 짧게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쿠데타군과 저지군 간에 상호 충돌하는 대치과정의 긴박감을 높여주었다. 12.12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이루어진 짧은 시간대와 쿠데타군과 저지군이라는 대립 구도가 명확한 사건에 걸맞은 빠른 교차편집은 관객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영화의 편집은 시대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핵심적 메시지를 중심적으로 보여주는 쇼츠(15초 이내의 짧은 영상영상의 연속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영화 관람객들의 반응도 다른 영화들과는 달라 보였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쿠데타에 성공한 하나회 장교들이 보안사령부 앞에 모여서 촬영한 쿠데타 성공 기념사진을 보여주었고 쿠데타 이후 개개인의 출세 이력이 그 사진 위에 자막으로 겹쳐 흘렀다전두광과 노태건은 대통령이 되었고 나머지들도 장관이며 국회의원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이어지는 장면은 검정 배경화면에 배우들 소개 자막이 흘러나왔고 전선을 간다.’라는 군가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전선을 간다.‘는 합창곡이 끝나갈 동안 관람객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군가의 노랫말처럼 당시 쿠데타군을 저지하던 몇 명의 젊은 군인들은 쿠데타군에 의해서 사살당했다. "전우여 들리는가그 성난 목소리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군가의 가사는 이렇게 끝맺음 된다. ‘전선을 간다.’는 군가의 마지막 후렴구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했지만패배한 그 전선으로 우리들을 나오라고 손짓한다.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끝까지 대통령과 상층 군부관료들이 이탈해 갔던 그 전선을 지켰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장면과 합창곡으로 인해서 서울의 봄은 정치적이며 선동적인 영화가 되었다보수우익의 준동으로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이 영화의 단체관람이 무산되었다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수많은 영화 관람평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 문재인도 분노가 불의한 현실 바꾸는 힘 되길를 바란다며 본인의 영화 관람평을 덧붙였다마치 그날의 대통령이 쿠테타의 합법성을 치장하기 위한 형식적 서류에 사후승인임을 소심하게 새겨 넣었던 것처럼 그도 현재의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자이다.


영화와 역사적 사실현재와의 대화

코로나 사태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개인화 경향을 가속화시켜 대면 모임은 적어지고 사회의 집단성은 약화되었다임기 초반부터 반수를 넘는 견고한 부정적 여론에 힘입어 현 정권에 대한 퇴진운동이 연일 계속되었지만퇴진 시위의 대중적 결합은 좀처럼 형성되지 않았다영화 관람료가 인상되었고 흥미를 끌 만한 영화가 개봉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영화 관람객들도 줄어들었다영화 관람은 사람들에게는 친목의 수단이자 작은 모임의 계기였다이 영화는 사람들이 좀처럼 모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성을 만들어 내었다.

관람객들은 자발적으로 영화 서울의 봄 보고 스트레스 챌린지라는 영화 외적 놀이까지 만들어 냈다영화 상영시간 내 스트레스 지수의 변화를 스마트 워치로 측정하고 SNS에 인증하는 릴레이가 이어졌다이에 대해 동아일보(12.07)는 스트레스 지수가 얼마나 위험한지심근경색이 4.7배 더 증가할 수 있다며 관람객들의 건강을 염려해 준다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말라는 충고로 들리는 이 기사는 무척이나 친절하다.

보수우익들과 친절한 동아일보가 나서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서울의 봄은 개봉 18일 만에 관람객 600만을 넘어섰다.(12.09) 지금 추세라면 1,000만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영화의 재미가 흥행을 이끄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단지 과거 사실에 대한 흥미와 그것에 대한 영화적 장치들의 정교함으로만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격언이 있다.(에드워드카,1961)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 과정소수 검찰 집단의 공권력을 이용한 국가권력의 장악과정과 이를 막지 못한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문재인 정부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이후의 행태에서 겪는 기시감이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 배경이다그래서 보수언론과 우익 정치세력까지 나서서 이 영화의 성공을 막으려 하고 있다그들의 마지노선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705) ‘연평도 해전’(600)일 것이지만 서울의 봄’ 관람 추세는 그들의 바람을 넘어섰다거리의 집회에서 폭발되지 못했던 정치적 사회적 대중의식은 영화 상영관으로 전장이 옮겨진 채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대중 정치의식의 발전과 상승의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한다특히 지난 시기 윤석열 검찰 집단의 정치권력 장악과정에서 보여준 집권 민주당 세력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반개혁적 대응은 쿠데타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군부 상층관료들을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정치 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은(2021.06.18) 제도와 절차를 중시하는 자신의 인품을 드러내 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군부 상층관료들의 신사협정이 하나회 쿠데타군의 성공에 기여했던 것처럼 검찰집단의 발을 묶어 두지도 못했고 오히려 검찰 집단의 정치적 힘이 강하다는 그것과 집권 민주당의 나약함과 무능력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켜 주었을 뿐이다검찰 집단의 수사와 기소권은 협치와 타협을 부르짖는 형식적 민주주의자들의 눈을 찔러대었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다시 거리의 몫으로 돌려졌다그래서 서울의 봄’ 영화는 오늘날 정치 검찰 집단에 맞서 싸우지도 못한 이들을 다시 지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관람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이 영화가 대중의 정치의식에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과는 별도로 영화를 통해 강조된 역사적 사실 중 하나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쿠데타 주도세력은 군사행동의 비합법적 수단을 통한 권력 장악 과정에서 군사행동에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체포를 시도하면서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자 합동 수사 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대통령에 의해 거절당했고 긴박했던 대치국면이 끝난 다음 날이 되고서야 사후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제도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자들은 이 점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지만사후이든 사전이든 절차적 승인은 참모총장의 체포와 그날의 대치 상황을 합법적으로 승인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쿠데타 주도세력은 박정희 군부독재의 후계자들이었고 대통령은 바로 그 독재가 만들어 낸 특정인들이 참가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서 선출되었다쿠데타 주도세력에게는 그 당시 국가체제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위해서 유리한 체제였다따라서 그 체제의 연장선에 서 있던 쿠데타 저지세력들의 동요와 실패는 예정된 결과였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현재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민주주의 제도에 의해서 선출된 집권 민주당은 권력을 차지했지만 민주주의의 틈 속에서 공권력을 사유화 해온 검찰 집단의 쿠데타를 막을 수 없었다이미 주어진 제도 아래에서 선출된 권력이 그 제도의 산물인 검찰 집단을 제거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였다법률에 정한 바에 따른 공정한 행사라는 공권력부정부패와 사회적 범죄에 대해 처벌하는 이 정의에 대해서 이미 낡아버린 기득권 정치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란공정이 무엇인지 민변의 해석과 대한변호사협회의 해석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일 뿐이다또한 지금의 반정부 투쟁에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점은 여야 협치의 복원각 정당이 참여하는 거국 내각 정도일 것이다.

진지하게 혁명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합법적 제도의 순응 속에서 자기 길을 찾을 수 없다기득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자리와 그것을 보전해 줄 권력의 재편과 분점이 최선의 길이다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가져야 할 합법성은 끊임없이 상승 발전하는 대중의 정치의식오늘날 사회적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하는 대중적 요구에 있다.


[기획] 국가보안법 철폐 없이 노동해방은 없다


조명제

1925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모체 일본 치안유지법은 제1조에 국체(國體)를 변혁하고 또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그 정()을 알고서 이에 가입한 자는 십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함이라고 명시하며 이 악법 본래의 목적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세력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악명을 떨치고 1948년 12월 1일 이승만정권에 의해 거듭난 국가보안법은 그 목적을 그대로 하고 폭력을 극대화하여 여타 파쇼악법과 함께 노동자 인민에 대한 탄압과 살인에 앞장서 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다박정희정권 초기특히 한국(조선)전쟁을 전후하여 무법천지의 국가 폭력이 자행되고 변혁세력에 대한 인적 청산’ 작업이 벌어져 이후 30년간 이남에서 변혁운동의 씨를 말리는 역할을 하였다.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지금껏 당당하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은다름 아니라 독점자본(재벌)과 파쇼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인민의 무기 즉정치사상의 자유를 봉쇄하는 그들의 목적이 사활적이기 때문이다그러하기에 노동자 인민의 처지에서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사활적일 수밖에 없다그런데 이 악법과의 투쟁 과정에서 잘못된 인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민족적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 중에는 국가보안법의 반통일적 성격에 집착해노동자 인민을 위한 통일이냐자본주의적 통일이냐의 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그런데 국가보안법의 칼을 휘두르는 지배세력즉 정권과 미제가 결탁하여 벌이고 있는 이북에 대한 경제제재와 때에 따라서 과감하게 내뱉는 이북정권의 몰락은 이후 통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는가독점자본의 지배와 미제가 작동하는 통일 말이다.

일부는 사상과 언론 결사의 자유가 봉쇄된 지금의 상황에서반혁명적 이론과 이북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 물들어결론적으로 지배계급의 반공주의에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것은 우파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서적 반감과 결합해 국가보안법의 반노동자성을 간과하거나그 투쟁에 적극성을 띠지 않는 경향을 낳기도 했다.

이 같은 편향과 오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 즉 제국주의시대의 모순에 대한 몰이해에서도 비롯되는데한반도에서의 분단과 통일의 문제가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의 현상 형태로서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본질과 현상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을 통해 파악하고 있지 못함에 따른 것이다.

자본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 인민에게 그 위기를 고통으로 전가한다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모순이기에 체제의 극복이 없다면 고통의 끝도 없을 뿐이다더구나 노동자가 체제에 저항하고 그 극복을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당근은 사라지고 채찍을 휘두르는 자본의 공격은 더욱 가혹해진다자본의 위기가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당근의 여유조차도 가질 수 없게 된 독점자본은 오로지 착취에만 매달리게 된다사회주의 쏘련의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수탈의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무인생산 단계에 이를 정도로 발달한 생산력은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이기에 노동자 인민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경각으로 내모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한층 심화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요구하고 있지만독점자본은 생산력을 파괴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억지로 꿰맞추려 한다독점자본의 모순은 날로 깊어져 가고 그들과 국가가 결탁한 제국주의 전쟁은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사상적 자유는 체제 극복을 위한 자본과의 전쟁에서 필수적인 무기이다정치사상의 자유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는평등세상을 향한 정치의식의 고양과 더불어 현시기 노동자계급의 우선적 과제이고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과제인 정치 참모부의 건설을 앞당길 것이다그래서 자유주의 소부르주아에게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있지만 노동자에게 그것은 노동자 인민의 권력쟁취를 위한 수단이 된다.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법으로 독일의 사회주의 탄압법이 있었다독일사회주의노동당(독일사회민주당 전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법을 폐지 시키고 조직적으로 급성장했으며 수많은 노동자 인민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공안탄압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그 유력한 무기로 휘두르려 할 것이다이미 노동자 인민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그 분노를 투쟁의 확대로 이어가야 한다지배계급이 75년간 고수하고 있는 이유즉 노동자를 정치적 무권리 무기력 상태에 빠뜨려 체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버리기를 바라는그 이유와 목적을 깨부수지 않고 운동은 나아갈 수 없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대중의 역동적 분위기를 만들고주요한 인민적 요구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의 슬로건으로 대중을 결집해 내자지금도 간첩단 조작사건을 획책하며 노동자 인민 탄압의 선두에 서 있는 국정원 해체 투쟁에 나서자민주주의 사수에 절절한 모든 노동자와 인민이 단결하여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새 세상을 향해 진일보하자! 




[문화]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어제도 들었다 . “ 사장님 ,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 저 사장 아닌데요 .  초면에 왜 그런 험한 말씀을 하시죠 ?” 라는 말이 올라와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  그저 웃으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