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9일 수요일

부활하는 혁명의 시대와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은 4·19혁명을 기리면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실정과 폭정이 이 땅을 질식 할 때마다 민중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동학혁명의 마지막 전투였던 우금치에서는 농민군 15,000명이 전사했고 4.19혁명 당일에는 무장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시민 186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8000여명에 이르렀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다시금 민중 위에 선 자들은 일제의 조선총독부와 친일파였고 군부독재와 재벌이었다. 혁명의 혼란을 끝내고 민중을 위한다며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자들과 그에 기생하는 자들이 다시금 판치는 세상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적 힘은 끊임없이 생동하는 민중의 삶과 생산에 있다. 그 역동하는 알맹이를 낡은 외피로는 영원히 가둘 수 없다. 한 때의 압제자들은 패배했고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높이 세워진 4.19혁명 기념탑에 남겨졌다.

민중의 자발적 투쟁에 대한 기념과는 달리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자 역사적 한계를 가진 혁명으로 평가된다. 그 역사적 한계는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 진정한 민중의 공동체를 건설할 혁명정당의 부재와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에만 목을 매며 제도적 질서를 맹신하는 온건한 야당의 과잉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수레바퀴에 끼인 나약한 개혁정당들을 깔아뭉개버리고 박정희의 군사혁명위원회라는 종착역에 멈추게 되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오늘의 시대에도 유효하다. 올해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윤석열대통령이 입장하자 민중의노래(레미제라블)가 울려 퍼졌다.

극우정당의 축제에서 울려 퍼진 이 노래는 혼란스러운 세계적, 국내적 정세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와 민중을 자신들이 구할 적임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착적 인식이 이 정도에 이르면 평범한 사람에게는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남짓 그들이 보여준 정치를 살펴본 독자라면 그의 손에 들린 법전이 총칼로 보이고 국가의 공권력(형사소추권)을 마치 개인의 사적권리인 것처럼 보장 받는 검사집단이 군복을 입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온건한 개혁주의자들과 기회주의 정치가 판을 치던 개량의 시기에 마침표를 찍고 역사적 반동의 출현과 함께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중의 적 앞에 혁명을 외치지 않는 정당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민중의 바램을 신동엽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 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박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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