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4일 목요일

소비를 거의 하지 않을 각오로 시골로 내려와

낮선 땅에 3년이 넘자 그럭저럭 뿌리 내리는 느낌

나는 2020년 1월 4일 해남으로 귀촌했다. 2019년 말 정년 한 달 전부터 친하던 이들을 두루 만났다. “나 멀리 가서 살 거야.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앞으로는 보기 힘들 거야.” 사람들은 대개 어이없어 했다. 멀리 이민이라도 가느냐는 반응이었다.

나는 어지간한 일로는 해남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시골로 내려와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 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삼년 반이 지난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적응하는 동안 예상과 다른 여러 일들을 경험하였다.

첫째, 두해반 동안 임금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국립공원에 기간제로 취업하여 돈을 벌었고, 현장투쟁을 벌였으며, 노동조합에도 가입하였다.  둘째 녹색당에 가입하여 대의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구상의 국가나 사람들 하는 짓으로 보아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혼자라도 자연에 피해를 덜 끼치며 살자는 주의로 당 활동을 하게 되었다. 셋째, 땅을 오백 평쯤 사서 자급농을 할 생각이었지만 거저 땅을 얻었다. 이사하자마자 집 앞 백여 평 되는 텃밭을 얻었는데 밭주인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동네 아우네 산밭 800평을 매우 저렴한 연세로 얻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아우는 그냥 지으라고 했지만 내가 고집하여 연세를 주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시와의 연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 고집불통 영감이 시골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다. 

최근에는 하루 서른개 가량의 달걀을 팔아 생계에 보태고 있다. 비싼 달걀을 도시 사람들이 팔아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대중활동 경험은 귀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우호적 관계가 되었으며 해남 인근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었다. 땔감은 이웃한 강진의 표고농장에서 폐배지를 얻어다 쓰고 닭모이는 양조장의 술지게미나 맥주공장의 호프보리 찌꺼기를 얻어다 주고 있다. 동네 아우들이나 강진 녹색당원 동지의 트럭을 빌려서 쓰고 있다.

시골에서는 시비를 가리며 살기 힘들다. 일단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시비를 가릴 수 있다. 처음 이장에게 인사하러 갔을때 마을 발전기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발전기금을 이체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떡과 수육을 돌리며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개 두 마리를 풀어놓고 동네를 산책할 만큼 사람들과 친해졌다. 

윗집 형은 봄만 되면 두릅이나 엄나무 순을 가져다주고 옆집 할머니는 나 없을 때 묵은지나 갓김치를 마루에 두고 가신다. 생면부지의 타향에서 그럭저럭 뿌리를 박았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이철의(전 철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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