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선언, '탐욕스럽고 경멸적인' 세계전쟁 문서"
― 윤석열, 전쟁놀음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편집국
자본주의는 그 사회의 구성원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생산하지 않는다. 오직 팔아서 이윤을 남기고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양식이다. 자동화ㆍ무인화로 표현되는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이용한 생산능력은 날로 발전한다. 전 세계 각국이 생산하는 상품과 재화는 넘치고 넘친다. 이른바 과잉생산에 따른 경제위기의 연속이다. 실업과 빈곤은 점점 만연한 가운데, 자본주의 국가 간 경쟁은 언제 세계대전으로 발화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자본독재 국가(제국주의)들은, 자본주의 생산으로 인한 전반적 위기의 돌파구를 파괴와 살육을 통해 극복하기 위해 호전적인 전쟁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논의와 선언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토 32개국이 10일 방위산업 역량·생산 확대를 가속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의의 특성을 보면, 태평양 동맹국(IP4)인 한·일·호주·뉴질랜드 정상이 2022년부터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고 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인도-태평양 동맹국이 통합하여 전 지구적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체적인 전쟁 역량을 강화하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이 회의는 러시아-조선-이란-중국 네 나라를 "유럽-대서양 안보에 대한 체계적 도전을 계속 제기"하는 국가로 지목했다. 이미 쏘연방이 1991년에 해체되어 자본주의 길을 걷고 있고, 중국 역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로 전환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 회의는 여전히 ‘자유 가치동맹’ 운운하며 냉전적 사고와 광적인 전쟁 논의로 가득 차 있다. 미 국방성 분석가 콰트코프스키의 말처럼 "나토 정상선언은 '탐욕스럽고 경멸적인' 세계전쟁 문서"이다.
불나방처럼 전쟁으로 뛰어드는 윤석열 정권
[경제]
페트로 달러 협정 만료가 상징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서막
신재길
일부 미디어에 “‘페트로(석유) 달러’ 체제가 막을 내렸다”며,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50년짜리 페트로 달러 협정이 만료됐다”며, “이제 사우디는 미국 달러로만 석유를 판매하는 대신 위안화나 유로화, 엔화 등 다양한 통화로 석유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페트로 달러 협정 혹은 체제는 사우디가 원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는 대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 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1971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금 태환 정지 선언을 하며 달러 위상이 추락하자,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원유가격은 4배가 올라가고, 물가가 치솟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벌어졌다. 이에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의 파이살 국왕을 접견해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이 사우디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해 달러의 위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취지였다. 미국은 이를 통해 중동에 군사개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이 협정 자체가 공식 문건으로 공개된 적은 없다. 이 협정의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지, 계약 기간이 있다면 50년이 맞는지 등도 불확실한 상태다. 이 협정이 미국과 사우디 사이 ‘신사협정’ 수준이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 협정이 공식적이든 관행이었든 간에 그동안 페트로 달러 체제가 유지되어 왔고, 미국은 이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에게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응징하고자 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리고 페트로 달러 협정 만료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반세기 가까이 작동했던 페트로 달러 체제가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긴 하다. 오건영 신한은행 WM 사업부 팀장은 “페트로 달러 체제는 반세기 동안 굳어져 각국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라며 “달러 영향력도 굳건해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 지배 체제의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우디 원유 생산량은 최근 5년간 적게는 일일 1,100만 배럴에서, 많게는 1,240만 배럴까지 분포해 있다. 배럴당 80달러로 계산하면 일일 생산량이 거의 10억 달러에 달한다. 원화로 1조 4,000억 원 정도이다. 사우디는 이렇게 들어온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거나 미국의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미국의 무기를 구매한다. 세계에 뿌려진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환류되는 시스템이다. 달러 환류 시스템의 또 다른 예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관계이다. 미국이 중국의 공산품을 사고 달러를 지급하면 중국은 상품 판매 대금인 달러로 미 국채를 매입하여 달러를 다시 미국에 돌아가게 한다. 이렇게 달러 지배 체제는 곧 달러 환류 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페트로 달러 협정 문제는 달러 지배 체제 즉 달러 환류 시스템의 위기 징후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달러 환류 시스템의 위기로 볼 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미·중 대립과 미·러 대립 그리고 브릭스의 확대와 연결되는 글로벌 정치경제 지형의 변화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우전쟁으로 스위프트 결제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배제하였다. 이로써 러시아의 원유 수출은 달러화로 거래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사우디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이다. 러시아를 달러 체제에서 배제하여 미국은 스스로 달러 체제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과의 밸류체인 분리에 나섰다. 중국의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반도체 등 중국에 대한 수출도 제한하였다. 중국은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밸류체인 분리 정책으로 달러 환류 시스템의 유지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달러 지배 체제의 가장 큰 위험은 브릭스의 확대이다. 2024년 1월 1일 사우디, UAE,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의 신규가입을 통해 기존 5개국에서 10개국으로 회원국 확대가 이루어졌다. 브릭스는 전 세계 GDP의 27%, 인구 45%, 영토 31%, 원유생산 42%, 상품수출 25% 등의 막대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평균 5% 내외의 고성장세를 지속하며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브릭스는 궁극적으로 금과 원자재에 기초한 브릭스 통화를 계획하고 있다. 일단 과도적으로 위안화를 중심으로 각국이 자국 통화 결제를 점차 확대해 달러 비중을 줄여나가려 한다. 브릭스 가입국들의 면면을 보면 원유 등 자원 강국들과 중국이라는 세계의 공장인 제조업 강국이 포함되어 있다. 즉 브릭스는 자원국과 제조국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달러 지배 경제를 대체할 실물 경제 중심의 브릭스 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이다. 제조업 국가는 자원국에서 자원을 사 오고 자원국은 이렇게 들어온 제조국의 통화로 제조업 국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달러 지배 체제는 자원국과 제조국의 상품을 미국이 소비하는 체제였다. 제조국과 자원국은 사용가치가 없는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다. 결국 제조국의 노동력과 자원국의 자원이 미국을 비롯한 소비국의 소비를 위해 쓰인 꼴이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불균형의 상태이다. 이에 반해 브릭스 경제가 구축된다면 이는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균형적인 경제가 될 것이다. 달러 지배 체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국에 자원국과 제조국이 종속적 지위에 있으면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는 체제였다면, 브릭스 체제는 자원국과 제조국이 등가교환을 통해 상호 이익을 보는 체제를 염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 관계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국가 간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세계는 새로운 사회로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브릭스 경제 질서가 구축될 수 있다면, 미국 중심의 서방 경제 질서는 급격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부를 수탈하여 성장해 왔다. 그 수탈체제가 달러 지배 체제이다. 가치는 하나도 없는 달러를 찍어 자원과 노동력이 들어간 상품과 교환하여 소비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왔다. 이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불균형의 시스템으로 그 모순이 2008년 금융위기로 나타났다. 그 후 미국의 대응은 미국도 제조업이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중국과의 밸류체인 분리 정책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장과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제조업 유치를 위한 보조금이라는 것이 달러를 찍어내는 것인데 이는 달러 환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달러는 미국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제조업 유치를 위해 보조금을 주는 것은 미국 내에 달러를 머물게 한다. 처음에는 효과를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미국 내 물가 상승을 자극하여 달러가치의 폭락을 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데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자산시장과 제조업이 붕괴한다. 결국 미국의 달러 지배 체제의 유지와 제조업 부활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목표인 것이다.
브릭스에 사우디가 가입한 상태에서 페트로 달러 협정이 만료되었다는 뉴스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서막을 알리는 의미로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브릭스 경제의 구축은 달러 지배 체제에서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해설]
군수자본의 생산은 과잉자본의 폐기이다
─ 노동자와 인류의 미래와 함께.
이현숙
방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를 루마니아에 1조 3,000억원어치 수출한다고 한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K9은 최근 전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가까이 석권하는 대표적 효자 방산 무기체계”[<조선일보>, 2024.6.20.]라고도 한다.
“효자 방산”, 즉 사람 잡는 군수자본의 성격을 검토해 보자. 간단한 서술을 위해, 사회적 생산에 노동자와 자본가만이 있고, 내수용 탱크를 생산한다고 하자. 생산수단(기계, 철강, 전자장비)+노동자가 필요하다. 한 대 가격이 1억원이고, 7천만원(생산수단)+1천만원(임금)+2천만원(이윤)으로 분할된다고 하자. 군수 자본가는 8천만원의 자본을 투자하였다. 국가가 구매한다. 탱크는 시간이 지나면 고철이 되거나, 전쟁이 나면(혹은 전쟁을 일으켜) 소비되어 사라진다.
군수 자본가는 2천만원의 이윤을 올렸다. 철강과 전자장비 등 생산수단을 생산했던 자본가들은 7천만원어치를 군수자본에게 판매했다. 군수자본에 고용되어 1천만원의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자본가에게 그만큼을 구매할 것이다. 그만큼 “경기는 부양된다”. 또한 군수자본가는 2천만원의 이윤 중에서 2백만원을 자신이 소비(생필품과 사치품)하고, 1천 8백만원을 생산수단 재구매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무기가 생산되고, 더 많은 이른바 “유효수요”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만성적 자본과잉 ─ 금융업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는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의 과잉 ─ 으로 신음하는 자본에게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군수자본은 부자가 되고, 거기에 고용된 노동자도 먹고산다. 군수자본에 생산수단을 공급하는 자본도 판로가 확보되고, 고용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면 국민은 그만큼 부자가 되는가?
국가는 세금을 1억원 거두어서 탱크를 샀다. 세금은 노동자(근로소득세)와 자본(법인세)에게서 나온다. 자본세는 자본의 이윤에 부과하는 것이고, 이윤은 잉여가치, 즉 착취된 노동이다. 국가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한 손으로는 자본에게서 거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노동자에게 직접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탱크를 산다면, 결국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잉여노동으로 탱크를 산 것이다.
당연히 탱크는 노동자들에게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사실상 폐기된다. 이때 두 측면이 있다. 첫째, 탱크라는 실물이 폐기된다. 자연적 소재(사용가치)가 낭비된다. 오직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무의미하게 자연이 파괴된다. 둘째, 탱크 생산에 소비된 생산수단을 생산했던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직접 탱크를 생산한 노동자의 노동이 폐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탱크는 1억원에 팔렸다. 탱크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여된 노동은, 사회 전반 노동자의 잉여노동(세금)과 교환되었다. 따라서 탱크에 들어 있는 노동은 세금이고, 폐기되는 것은 사회 전반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이다. 탱크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여된 노동은 교환되어 보존된다. 따라서 군수자본과 그와 연관된 자본은 돈을 번다.
비유를 해보자. 나는 옥수수를 생산한다. 옆집은 닭을 키워 달걀을 생산한다. 나는 달걀을 사서 썩혀서 버린다. 그 돈으로 옆집은 나의 옥수수를 산다. 옆집의 달걀 생산노동이 폐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교환된 나의 노동이 폐기되는 과정이다.
탱크의 형태로 폐기되는 잉여노동(사회 전반의 비 군수 자본에서 발생)을 보자. 군수산업이 세금의 형태로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 잉여노동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첫째,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즉 임금이 늘어나고 소비가 확대될 수 있다. 소비재 부분에서 유효수요와 생산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담당하는 자본은 주로 중소자본이다. 국가독점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는 독점자본의 국가이므로, 이들의 요구는 묵살된다. 임금상승을 통한 유효수요 확대는 제한된다. 둘째, 비군수자본 일반에게 돌아가는 잉여노동의 증가. 즉 자본의 이윤율이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증가한 이윤이 재투자된다면 생산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숨 막히는 과잉자본의 시대에, 이는 만성적 침체와 공황을 오히려 증폭시킨다. 결국 축적된 과잉자본과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착취되는 잉여노동(자본)은 탈출구를 찾는다. 과잉자본 일부분은,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군수자본이 된다. 국가는 나머지 잉여노동(즉 자본)을 세금으로 거두어, 군수자본에게 건네주고, 인수된 군수품은 이런저런 방식(전쟁, 창고에 방치)으로 폐기한다. 결국 자본주의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착취하는 노동, 자본으로 전화되어야 하는 사회 전반의 잉여노동, 즉 과잉자본은 군수품과 교환되어 폐기된다. 과잉생산의 압력은 완화된다.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비해 웃자란 생산력을 경제적 방식으로 폐기한다. 군수자본의 생산은 생산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으로 과잉자본을 폐기하는 방식이다. 자본이 장악한 부의 모든 원천인 생산수단, 생활수단, 그리고 노동자들도 폐기된다. 더불어 자연도 인류의 미래도 폐기된다. 군수자본은 묻고 있다: 자본을 폐기할 것인가? 모든 것을 폐기할 것인가.
[정치]
진보정당의 한계를 넘어,
노동자계급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오세중
지난 총선 녹색정의당, 노동당의 참패 속에서 총선 평가와 진보정당의 전망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국회 몇 석 진출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비례 정당에 함께 한 진보당, 투쟁의 부재 또는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지도부, 비례위성정당 제도의 문제, 진보정당의 통합이 가능한지 또는 필요한지, 반자본-체제전환 운동의 필요성 등등….
이 시점에서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자. 87년 폭발한 노동자대투쟁은 ‘민주노조’ 건설과 확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96~97 노동법 개정 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한계를 느낀 노동자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이라는 결과를 맺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결국 의회의 한계와 정파들의 정치적 이견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치다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의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현시기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라는 것은 의회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건설) 운동’으로 협소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전환,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단순히 대의기구인 의회만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는 의회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전체가 개혁의 대상이다. 사법부는 여전히 기득권과 재벌 앞에서는 공평하지 못하며, 검찰과 경찰은 기득권과 재벌 앞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언론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수백 명이 폭격으로 죽는 것은 보도하지 않으면서,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 피격 사건을 특집으로 내고 있다. 그 이유는 수백 명의 목숨보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좌우되는 자본의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조직으로서의 정당은 다양한 계급ㆍ계층의 정치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정당은 근본적으로 계급사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계급의 소멸과 함께 소멸되어야 할 존재이다. 지금의 정당정치, 민주주의라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기득권 집단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민중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당면 과제는 정당정치로 귀결되는 협소한 ‘정치세력화’, 진보정당에 대한 논쟁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 즉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다. 노동자 민중의 권력 쟁취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계급 투쟁의 역동성과 활동가들의 임무
오세중
계급투쟁은 변화무쌍하며 역동적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폭발한 노동자투쟁은 조선공산당 재건, 남조선노동당 창당과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건설을 통해 노동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1950년 6.25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노동운동은 수십 년간 침체기에 들어간다. 이후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다시 성장하게 된 노동운동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며, 그 결과물로 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96-97 노동법 개정 투쟁을 거치면서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확대와 자본과 정권의 탄압 속에서 노동자 투쟁은 지속적으로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각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 일상적 시기에 다수의 대중은 자본가 계급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자들의 현실은 자본가에 대한 투쟁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며,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의식이 발전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96-97 노동법 개정 투쟁 같은 투쟁의 상승기에 노동자계급 의식의 확대는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투쟁의 침체기에는 확대되었던 의식도 다시 자본주의 의식으로 회귀하거나 다양한 기회주의, 개량주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회주의, 개량주의 정치조직이나 정당도 발생하게 된다.
노동자 투쟁의 침체기에 ‘주관적 의지’만으로 투쟁조직을 확대하거나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존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이탈하거나 개량주의, 기회주의 사상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의 활동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탈하거나 개량주의ㆍ기회주의 사상에 오염되지 않도록 내부 의식화ㆍ조직화 사업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투쟁의 침체기에는 대규모적인 조직화보다 조직의 골간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투쟁의 침체기에 ‘대중적 조직화’ 사업은 오히려 일반 대중에게 퍼져있는 기회주의와 개량주의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한 ‘대중적 조직화’는 오히려 분열과 동요로 귀결되며 결국 무능한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혁명적 정세는 “의도적으로, 자의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정당과 전체 계급의 의지 및 지도와 무관한 정황의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한다. 투쟁의 침체기에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조직의 이탈을 막고 내부의 의식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전면전을 준비하기 위한 전국적 골간 확대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논평]
군사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의 조·러 정상회담 결과
― 국제질서의 변화를 외면한 윤석열 외교의 후과
이건수
6월 19일 조·러 정상회담의 결과 양국 관계가 상호 군사원조 등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격상되었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는 것과 더불어서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한다는 내용까지 합의한 것이다.
북(조선)과 옛 소련은 1961년 7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담긴 ‘조소 우호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후 90년 한국이 옛 소련과 수교하며 96년에 이 조약은 폐기되었고, 북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지난 2000년 2월 ‘친선과 선린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상호 군사지원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한다는 내용까지 합의되면서 1961년의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양국 관계가 크게 격상된 것이다.
이번 조·러 정상회담에서 조선은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집요한 봉쇄를 러시아의 도움으로 돌파할 수 있게 되었고, BRICS 등과 협력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룰 기회를 잡았다. 지금 남북관계는 919 군사합의 파기, 오물풍선에 뒤이은 대북 확성기 재개 등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안보지형이 악화할 대로 악화된 조건이다. 한반도 안보지형이 더욱 위태롭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윤석열 정부 외교 실패의 후과다. 지금 세계 정세는 미국의 일극패권이 무너지고 BRICS가 부상하는 등 다극화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실효성 없고, 철 지난 한미동맹에 취해서 미국의 행동대장을 자처해 왔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미 제국주의의 일방적 표현인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함부로 외치며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외교행보를 이어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 규정하고 세심하게 관리해 왔으며, 윤석열 정부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외교 실수에도 불구하고 참을성 있게 한국을 대해왔다.
한국은 지난해에 미국을 우회해서 우크라이나에 포탄 10만 발을 수출한 바 있다. 교전국에 대한 군사 지원은, 곧 상대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22년 10월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면 “양국관계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경고를 알아먹지를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불법도청 문서에서 폭로된 바와 같이 50만 발의 포탄을 미국으로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결국, 러시아는 자기 말대로 한국 대신 북한과 관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푸틴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은 장면은, 윤석열 외교의 총체적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논평]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쑈에 치중하는 윤석열 정부
이건수
윤석열 정부의 좌충우돌과 설익은 정책으로 인한 혼란이 최근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6월 9일 오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항하여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대북방송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가 정전협정 위반이자 비상식적 도발 행위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빌미가 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손 놓고, 북한과의 적대적인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결국 안보현안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조선과 러시아가 지난 6월 19일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하자,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는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살상무기도 제공할 수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곧바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보내는 건 아주 큰 실수”라고 반발하면서, 북한에 초정밀 무기 공급 가능성을 시사하며 맞불을 놨다. 한국과는 별다른 관계도 없는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편들고 러시아를 적대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무비판적인 미국 추종외교를 반성하기는커녕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수렁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장호진 실장은 23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러시아 측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총선 이후 국정 지지율이 20% 이하로 추락하자, 윤석열 정부가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쑈에 치중하면서 설익은 정책을 마구 내쏟고 철회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중국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유해 제품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인증통합마크(KC)가 없는 80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한 바가 있다. 작년 예산 편성 때는 “나눠 먹기식 연구 개발을 원점 재검토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로 R&D 예산이 4조 6,000억 원 삭감되는 바람에 과학기술계 반발을 샀다. 그러더니 1년 만에 예비 타당성 조사까지 폐지해 내년엔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최근에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이 쏟아지는 등 설익을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루하루 정권을 연명하기 위해서 국민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국정운영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정치권이 부패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무능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무능을 넘어서 안보위기, 민생위기, 경제위기, 외교위기까지 불러들이는 정권을 과연 국민이 용납할까?
[노동]
공무원 임금인상 투쟁 승리를 위해서
이강국 (전공노 광명시지부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노총, 공무원 연맹, 전교조, 교사노조, 교육연맹, 민주우체국본부, 우정노조, 경찰직장협의회 9개 단체는 공무원, 교원 생존권 쟁취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공무원 임금 월 31만 3천 원 정액 인상, 정액 급식비 8만 원 인상, 직급보조비 3만 5천 원 인상, 저년차 공무원 정액 수당 인상을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 9개 단체의 공동투쟁이란 의미도 있지만, 공무원이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의 굴레를 깨고 실질적인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당당한 노동자로서 공무원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가는 데 의미가 더 크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
공무원 임금 인상하라! 우리의 외침은 정당하다. 지난 7월 6일 총궐기대회를 개최하였고, 현재 공무원 보수위원회에서 협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과거 공무원들의 투쟁은 정부나 여론에서 많은 뭇매를 맞았다. 철밥통이니, 배부른 투쟁이다, 라는 핀잔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신규공무원들은 낮은 연봉으로 인해 23년도 신규공무원 중에서 13,566명이 퇴직했으며, 공무원 경쟁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퇴직 사유가 어디 이뿐이랴. 악성 민원, 과중한 업무 등 근로 조건은 최악이니, 업무 스트레스로 공직이란 일터에서 떠나는 실정이다.
공무원의 열악한 환경은 명백히 드러났다
현실이 이러하니 언론도 정부도 우리의 목소리를 차단할 명분이 없다. 신규공무원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니, 더 이상 철밥통이라는 비난은 통하지 않는다. 정부도 부랴부랴 수박 겉핥기식의 승진 소요 연수 단축이니, 저연차 공무원 휴가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런 미봉책으로는 공무원의 근본적인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무원의 생계를 보장하지 않는 임금 체계는 장기적으로 공무원 삶의 질을 하락시켰다. 정부가 공무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열악한 임금 문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만 공무원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에게 더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케 하는 유일한 방책이다. 국가가 고용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조차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가 과연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질 수 있는가?
임금인상 투쟁만으로는 안된다
물가가 올랐으니, 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한다면, 결국 제자리 뛰기 운동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노동자의 생존임금으로써 노동력 재생산 비용으로서 임금인상 투쟁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이 다급하다지만, 임금 몇 푼 오른다고 해서 공무원의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물가 인상에 비례하는 임금인상은 결국 실질임금의 동결 아니면 하락을 의미할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물가가 오르면 그에 비례하는 임금인상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공무원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을 쟁취하는 내용으로 이번 임금인상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가에 비례하는 임금인상을 뛰어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생활임금이 되어야 하며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과 대폭적인 공무원 노동자들의 신규 채용이 병행되어야 한다.
“생활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 신규 채용 확대”
이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임금인상 투쟁에서의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의 임금인상 투쟁은 단순히 몇 푼의 임금을 더 받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국가의 책무 즉, 국가가 고용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을 보장함으로써 온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진다는 국가의 책무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더불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맞선 생활임금 쟁취 투쟁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과 신규채용을 통한 고용안정이라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그리고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인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부의 미봉책에 속지 말자. 아니 정부에 구걸하지 말자. 당당하게 싸워 공무원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을 쟁취하자
이대로는 살 수 없다! 공무원 임금 인상하라!
생활임금 쟁취!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간답게 살아보자!
대폭적인 신규채용으로 고용안정 쟁취하자!
[노동]
실질임금, 실질(노정) 교섭 쟁취를 위한 단결투쟁이 절박하다
주훈(민주연합노조)
여론은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이냐, 확대 적용이냐의 줄다리기 속에서 시급 1만원을 넘기는지 여부로 방향을 몰아가는 듯하다. 이 역시 자본과 정권의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한 방어벽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내년도 공무원 임금도 협의 중이다. 최저임금과 공무원 임금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통제하는 자본과 정권의 무기로 확실히 작용하고 있다.
물가폭등 속에서도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공무원 임금은 공공부문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기준으로 작용한 지 오래다. 공무원 임금은 정부(기재부)가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칼질한다. 작년에는 <공무원보수위원회>의 합의사항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률 적용으로 한 칼에 정리 한 바 있다. 즉, 공무원 임금 인상기준을 최저임금 인상 기준으로 맞춘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시종일관 모든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변경시키고자 한다.
1천만 이상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 한국사회 최대 노동자 집단이 포진되어 있는 공공부분 임금에 대한 정부의 확실한 통제! 대정부 투쟁이 불가피한 현실적 이유다. 내년도 임금 수준과 기준이 전년도에 정해지는데 정작 현장 단위의 임금교섭은 내년에 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가이드라인 내에서 임금교섭에 돌입하는 그것과 다름없다.
한국사회는 소수의 대기업 제외하고 민간, 공공 영역 가릴 것 없이 노동자 임금을 정부가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본은 정부와 중소 영세자영업자, 하청업자를 방패삼아 자신을 은폐ㆍ엄폐 하고 있다. 과하도록 넘쳐나는 언론을 앞세워서 말이다. 재벌, 대기업의 천문학적 이윤의 비밀은 위탁ㆍ하청 시스템과 더불어, 정부 통제로 쥐어짜는 임금 통제에 있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전체 노동자의 대정부 교섭과 투쟁이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면하여 실질임금, 실질교섭 쟁취를 위한 하나의 투쟁을 만들어 나가자. 누구를 상대로? 바로 정부를 상대로 말이다. 결국은 정치투쟁이다. 은폐∙엄폐하고 있는 자본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모든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투쟁을 현실화하자. 이런 방향에서 투쟁의 전략ㆍ전술이 세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노동정세 일지]
금속노조, 1차 총파업 소식 外
편집국
■ 7/3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
추모행동은 전국의 이주인권, 노동, 시민단체들이 공동주최. 지난 6월 24일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는 이주노동자 18명 포함 23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 화재참사가 발생. 희생자 다수가 중국동포 여성노동자들로 정직원 아닌 파견업체 소속,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없었음. 추모행동은 화성 제조업체 화재 참사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고 피해보상과 철저한 대책 촉구.
■ 7/4 최임위 제8차 회의를 앞두고,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결의대회
물가 폭등으로 인해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많은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고,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수.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추천 최저임금위원들은 “업종별 차등적용을 막아낸 것을 출발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끌어낼 수 있도록 위원회 내에서 투쟁하겠다.”고 의지를 밝힘.
■ 7/10 금속노조, 1차 총파업. 참여자 수는 6만 명 이상
한국지엠지부, 모트라스·유니투스·모비언트에 속한 모듈부품사 지회, 현대글로비스지회, 대우조선지회(한화오션) 등 사업장이 참여. 주요 모듈부품사가 모두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라인 역시 일부 정지. 전국 11개 지역에서 총파업대회 진행. 금속노조 총파업 주요 요구는 ▲ILO 핵심협약 이행 ▲노조법 2·3조 개정 ▲타임오프 철폐 ▲2024 임단투 승리. 금속노조 중앙교섭 요구로는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산업전환기 안전보호망 구축 ▲생활임금 보장 및 임금 격차 해소(월 기본급 159,800원 인상, 금속산업최저임금 통상시급 11,080원) ▲이주노동자 임금차별 및 노조 가입 불이익 금지.
■ 7/11 현대제철 인천공장 정문 앞에서 ‘금속인천 현대ISC 조합원 결의대회’
진짜 사장 현대제철의 자회사 노동자 차별을 규탄. 현대제철에 간접고용 되어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참여. 현대제철 인천공장은 직접고용 노동자의 2배가 넘는 노동자를 간접고용. ▲‘원청노동자와 동일처우’ 약속 이행 ▲단협위반 시정, 직무등급 정상화 ▲고용불안해소 ▲현대ISC지회 교육장 사용허가 ▲자회사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 ▲현대제철-현대ISC-현대제철지회-현대ISC지회 4자로 구성한 안전협의체 등을 현대제철 사측에 요구.
■ 7/11 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 하청노동자 23명, 불법파견 인정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 인정은 아사히글라스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 노동자들이 아사히글라스의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파견 관계에 있어 아사히글라스를 실질적인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 또 대법원은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된 아사히글라스 법인, 하청업체 대표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냄. 대법원은 “근로자파견 관계가 인정되므로 불법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혐의도 유죄로 봐야 한다”라고 판단.
■ 7/13 공공운수노조 4천여 조합원은 국회 앞에 모여 결의대회
공공성-노동권 확대와 국가책임 예산-일자리 확대를 요구하고 관련 입법 쟁취를 위한 하반기 공동파업 공동투쟁을 선포.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본대회를 마치고 윤석열과 보수양당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밟으며 행진. 행진대오는 여의도에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 힘 당사를 거쳐 행진.
■ 7/15 지난 5월 말 쿠팡 로켓배송을 하던 故정슬기님 사망
故정슬기님은 저녁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6시 30분에서 7시 사이까지 주 6일을 근무. 쿠팡 남양주2캠프에서 배송지까지를 매일 5번씩 오갔고 출퇴근 거리를 제외한 하루 이동거리가 무려 100km. 원청인 쿠팡CLS는 정해진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배송지를 회수하는 것과 더불어 고인에게 여러 차례 직접적인 업무지시. 정신적 압박과 과로에 시달리게 한 쿠팡의 시스템이 고인을 사망으로 이끈 것. 故정슬기님을 추모하며 쿠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 ▲쿠팡이 ‘우리의 시스템이 정슬기님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유족에게 사과할 것 ▲쿠팡이 ‘고인을 돌아가시게 한 우리의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말할 것 ▲정부가 과로사를 낳는 쿠팡의 배송시스템에 대해 철저한 관리감독을 실시할 갓 ▲정부가 쿠팡 택배노동자들이 왜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
■ 7/17 공공운수노조와 방영환열사대책위, 국회 앞 기자회견
김정재의원 등 10인이 택시월급제법(택발법 제11조의2) 개정안에 대해 현택시운영사업주들의 최저임금법 편법으로 회피를 용인해 주는 법이라며 개정안 폐기와 완전한 택시월급제 시행을 요구. 기존 택시노동자들의 임금은 승객 탑승 시간만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등,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게 산정돼 옴.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 불법 택시 사납금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택시월급제는 2021년부터 시행돼 서울에서 우선 운영. 오는 8월부터 택시월급제 전국 시행. 택시월급제법을 무력화시키는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에 상정.
[이주노동자]
지옥도 아리셀을 또 가슴에 새깁니다
김헌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아리셀 참사보도를 접하는 날이 바로 김승만 동지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습니다. 십몇 년을 아픈 몸을 부여안고 투쟁의 현장으로 가고 싶어 몸부림을 쳤던, 그러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동지가 차라리 부럽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지옥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동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을, 이주노동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동지가 먼저 도착한 세상에는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F-4 비자를 아십니까?
아리셀 참사는 행정관할의 난잡함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여러모로 관련돼 있다. 굳이 리튬전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업장 안전관리에서 소방과 안전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책임의 분산과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의 관할권 역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로 이원화돼 있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 노동자가 농사를 짓는지, 물고기를 잡는지에 따라, 심지어 작은 배를 타는지 큰 배를 타는지에 따라서도 담당 기관이 달라지고 다른 법이 적용된다. 겉으로는 복잡한 행정체계의 문제지만 이것이 이 나라가 가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근간이다. ([매일노동뉴스] ‘참사, 진상규명에 이르는 길’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
자본은 참 대단합니다. 이주노동자를 E-9으로 H-2로, F-4로, C-4로, E-8로, E-10으로 선을 그어놓고 가두고 갈라치기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 선을 넘어오는 자들을 미등록으로 내몰고 강제 추방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제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자는 E-9입니다. 사업장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업종 간 이동도 금지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부려 먹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 ‘아! 대한민국’에 일제 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혹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만주로 연해주로 떠났던 많은 동포가 찾아왔습니다. 발전된 조국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동포를 우대한답시고 특례 고용허가제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장도 약간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업종 제약도 없어서 그나마 약간의 권리가 보장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단체가 특례 고용허가제도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 알량한 특례 고용허가제도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로 가는, 그래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오롯이 누리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특례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는 동포 신분의 이주노동자들 비자는 H-2 비자입니다. 그런데 H-2 비자 이주노동자들이 안정적 체류를 확보하기 위해 또 비자를 바꿉니다. H-2 비자는 특례 고용허가제 비자이기 때문에 체류 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F-4 비자로 비자를 바꿉니다. 영주권에 준하는 안정적 체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자를 획득하는 방법의 하나가 자격증을 따는 것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자격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또 출입국 사무소 주변 행정사 사무실은 F-4 비자 알선이란 선전 문구를 내걸고 중계 수수료 등으로 돈을 법니다. 우여곡절 끝에 H-2 비자로 한국을 찾은 동포 이주노동자들이 또 온갖 노력을 기울여 F-4 비자를 취득합니다. 그러나 무슨 무슨 자격증으로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격증은 현장에서 쓰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인,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다시 단순노무업종으로 내몰리는 동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F-4 비자 소지자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단순노무직 종에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또 단순노무 중에서 호텔과 식당 등은 인력난에 시달리니 허용한다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요 아무튼 우수인력 유치라는 자본의 갈라치기를 동포 우대정책이라는 허울이 좋은 포장으로 덧씌워 또 벽을 만들었습니다. 우수인력 유치라는 허울이 좋은 차별 정책이 비자 진입장벽을 만들고 자격증을 취득한 우수인력인 F-4 비자 소지자는 우수인력이기 때문에 단순노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우수인력들이 단순노무를 하다가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쓰러졌습니다. 이게 아리셀 참사현장이 말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비자 중에서도 가장 부러워하는 F-4 비자를 소지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분통합니다. 억울합니다.
그러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막히고 억울한 죽음 앞에 오열하는 유족들을 향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은 ‘합리적’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들이댑니다. 참사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인데 그 비극 앞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서 자본은 또 천연덕스럽게 ‘합리적 후속 처리’를 들이댑니다. 그런데 이 자본가들이 들이대는 ‘합리적 후속 처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참사 희생자 중에 많은 이들이 F-4 비자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단순노무 업종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할 수 없는 업종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은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고 강제퇴거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그 악랄한 만행을 숨기기 위해 ‘단순노무 업종종사’를 ‘합리적 후속 처리’의 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겁니다. 배상금을 줄이기 위한 악랄한 계산법입니다.
이가 갈립니다. 그러나 이만 갈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잔인한 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터 보겠다고 F-4 비자를 선택하고 또 다른 벼랑 끝에 몰린 이주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치떨리는 현실 앞에,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저 자본가들에게 우리는 또 무엇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합니까?
위험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
3D업종이 보통명사가 되고 나니 자본은 ‘뿌리산업’이라는 또 희한한 명사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뿌리산업이라고 포장하는 ‘3D업종’은 ‘4D 업종’으로 이미 변했습니다. 더럽고 Dirty, 힘들고 Difficult, 위험한 Dangerous 뿌리산업은 이제 죽음의 Death 업종이 되어서 ‘ 4D 업종’이 되었습니다. 아리셀참사 이후 많은 전문가가 ‘위험의 이주화’를 말합니다. 아닙니다. 위험의 이주화가 아니라 ‘죽음의 이주화’입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활동가가 수년 전부터 ‘죽음의 이주화’를 부르짖어 왔습니다. ‘죽음의 이주화’를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윤에 눈이 먼 자본의 ‘뿌리산업’이 ‘죽음의 이주화’로 흘러가는 이 흐름을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아니 피가 맺히는데 거기서 또 죽으라니요? 헐한 목숨값 몇 푼 쥐여주고 자본의 철옹성을 쌓는 현장으로 내모는 이 현실을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가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을 어쩔 거냐고….
수많은 언론에서 중국을 언급합니다. 그러다가 또 양념처럼 라오스를, 베트남을 언급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리셀 참사현장에는 또 하나의 계급으로 살다가 비극을 당한 노동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쌓인 담장이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는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 담을 허물어 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너무나 강고하여 우리의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진 담장보다 새로 쌓아 올린 담장이 더 많은 잔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9년의 투쟁 끝에 작은 승리를 쟁취한 아사히 동지들이 그렇고, GM 비정규직 동지들이 그렇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동지들의 눈물이 나는 복직 투쟁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담장을 허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있습니다. 아니 그 담 너머에서 또 다른 계급으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혹은 불법으로 내몰리고, 외국인으로 내몰리고 그래서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이 아닙니다. 미등록입니다. 외국인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입니다.
감히 말합니다. 또 하나의 담장을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계급을 없애야 합니다. 어쩌면 이 담장을 허무는 일이 우리가 모두 싸워왔던 비정규직 철폐의 전선에서 함께 싸울 동지를 확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싸우다 싸우다 지쳐 쓰러지는 무모한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를 없애고, 다시 비정규직을 없애고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저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이 처절한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이를 악물고 다짐합니다. 투쟁!
[국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파산
― 러시아와 인도 정상회담, 경제ㆍ정치ㆍ군사적 협력 강화
김형균
세계는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각축전인 벌어지고 있다. 이는 정치적ㆍ군사적으로 이합집산하는 소용돌이 상황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나토 정상회의를 축으로 각국 정상이 몰려갈 때, 인도의 모디 총리는 러시아 푸틴을 만나러 갔다. 2024년 총선에서 3기(2024년~2029년) 정부 구성 인도의 모디 총리가 2024년 7월 8일~9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로 "러시아-인도: 견고하고 확장적인 파트너십"에 대한 양국정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인도의 행보의 핵심적인 동기는 바로 경제다. 인도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08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에, 미국은 원자력 관련 기술 이전을 하지 않고 사실상 훼방을 놓았다. 이런 환경에서 인도의 에너지 자원 확보는 제한되었다.
에너지 자원 확보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된 가운데, 러ㆍ우 전쟁 발발 이후,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원유를 싼값에 공급받아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에 맞는 안정적인 공급은 인도 경제에 있어서 관건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극동 사할린 지역의 천연가스와 원유에 대한 장기 계약이 논의 되었고, 원자력발전소 개발에 관한 의견을 교환 하였다(Haidr, 2024)
인도의 외교정책이 미국 중심에서 브릭스를 비롯한 러시아와 협력하게 되었을까? 인도 모디 정부는 3연임에 성공했다. 1기(2014년~19년) 정부는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하는 친미 외교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2기(2019년~24년) 정부는 인도를 일본, 호주와 하나의 군사동맹 체제로 묶어 세우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경제적 이익을 좇아 러시아와 정치-경제-군사협력을 발전시겼다. 철저히 경제성장을 위한 실리 중심 외교정책을 펼친 결과다. 러시아 역시 시베리아 대륙철도와 새로운 북극항로를 개발하여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의 협력 강화 움직임은 러시아의 북극항로 개발과 인도의 동방정책이 조우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국제질서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러시아가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에 인도가 적극 참가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형성되었다. 러시아가 추진하는 동방포럼은 미국 정치 체제를 비판하며 다자적인 새로운 국제질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기본 동력은 시베리아와 사할린 지역의 천연자원과 에너지 자원이다. 인도의 에너지 수급은 경제 성장에 크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인도와 러시아 사이의 경제협력 강화는 두 국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협정이 조인되지는 않았으나 점차 군사적 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러시아제 T-90 전차를 면허 생산하고 최신 전투기를 수입하며 핵 잠수함을 장기 임대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국가의 국방 협력은 무기 부품 조달에 국한되지 않고 첨단 무기 체계의 기술 이전과 협력으로 발전하면서 양 국가의 국방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이 원했던 인도와 미국 사이의 군사협력은 사실상 멀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중국혁명가]
문화대혁명으로 스러진 마오쩌둥 후계자
노동운동 출신의 혁명가 류샤오치(劉少奇)
이철의
류샤오치는 1898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마오쩌둥과 같은 후난성 출신인데 마오쩌둥보다는 다섯 살이 적다. 그는 적지 않은 기간 마오쩌둥의 후계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끝내 마오에 의해 국가주석직에서 해임당하여 실권한 뒤 문화대혁명 때 병사했다. 1981년에 공산당에 의해 복권되었으며 훗날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그를 기려 이렇게 말했다. “류샤오치 동지는 중국혁명과 건설에 전심전력, 노심초사하였다. 경제, 정치, 군사, 문화, 교육, 외교와 당의 건설들에서 탁월한 공을 세웠다. 그는 전당과 전군은 물론 전국 인민들의 깊은 흠모를 받고 있다.”
류샤오치가 태어난 닝샹현(寧鄕縣) 탄즈충(炭子冲)은 마오쩌둥의 고향 샹탄현 샤오산(소산), 펑더화이의 고향 샹탄현 우스 마을과 각각 30킬로 거리에 있다. 인근에서 공산당 주석과 후계자, 그리고 최고 군사지도자가 태어난 것이다. 류샤오치는 1919년 중학을 졸업하고 1920에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했다. 1921년에는 소련의 모스크바 동방 공산주의노동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이해 창립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2년 귀국한 그는 중국 노동조합 서기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장시성의 안위안(安源)의 탄광으로 가서 리리싼과 함께 광부들의 파업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안위안 광부클럽의 주임을 맡았으며 1925년에 전국 총공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상하이, 광저우, 우한에서 반제투쟁을 벌이고 홍콩·광저우 대파업 투쟁과 우한과 한커우의 영국 조계 반환투쟁에 참가했다.
1927년 중공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국공합작이 결렬된 뒤 허베이, 상하이, 동북에서 당의 비밀사업에 종사하였다. 193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적색노련 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당선되어 현지에서 근무했다. 1931년 중국공산당 6차 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당선되어 귀국했다. 그는 전국 총공회의 당서기를 맡았고 당내의 폐쇄주의와 모험주의 노선에 제동을 걸었다. 류샤오치는 “국민당 통치지역에서는 군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장기간 은신하며 역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 시기 리리싼과 취추바이 등을 대표로 하는 당내 지도부의 모험주의와 의견을 달리한 것이다.
1932년에는 장시성을 중심으로 한 중앙혁명근거지로 가서 노동운동을 지도하며 푸젠성 당서기를 맡았다. 1934년부터 장정에 참가했는데 1935년 구이저우성 쭌이에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마오쩌둥을 지지하였다. 1936년에 화북에서 중공 북방국 서기를 맡았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화북에서 군중을 고무하고 유격투쟁을 벌이며 항일근거지 확장에 종사했다. 1938년에는 중공 중원국 서기를 맡아 화중 지역의 일본군 후방에서 유격투쟁을 벌였으니, 험지에서 종횡무진한 것이다. 1941년 국민당이 환남사변을 일으키며 공산당 신사군을 공격, 주력을 궤멸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류샤오치는 화중으로 가서 신사군 정치위원겸 화중국 서기를 맡아 천이(陳毅) 등과 함께 무너진 군을 재건하였다. 1943년 옌안으로 간 그는 중공 중앙서기처 서기와 중앙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맡아 권력의 핵심부에 자리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마오쩌둥이 충칭에서 장제스와 국공담판을 벌일 때, 류샤오치는 옌안에서 중공 주석대리를 맡았다. 1947년 국민당군이 옌안을 점령하자 중공은 지도부를 나눴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런비스는 섬북을 전전하며 전쟁을 지도하고 류샤오치와 주더는 화북에서 전국의 토지개혁과 사회개혁운동을 지도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뒤 그는 정부 부주석을 맡았으며 1954년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1956년에는 중공중앙 부주석에 당선되었다. 1959년에 류샤오치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국방위원회 주석에 당선되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명이 아사하는 가운데 마오쩌둥은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마오쩌둥과 류샤오치는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서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류사오치는 조급한 집단화와 경제계획에 문제의식을 가졌으며 갈등관계에 있는 소련과의 관계복원을 원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천윈 등 지도부는 인민공사를 합작사로 되돌리고, 자영농지를 허용하며, 작은 개인기업을 허용하는 등으로 경제회복을 꾀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오쩌둥은 “당이 대중을 멀리할 뿐 아니라 지식분자의 “우파경향”, 농민의 “자본주의로 가는 자발적 경향”과 “소련의 수정주의로 빠져드는 경향”을 방조하거나 방치한다고 생각하였다. 류샤오치는 마오쩌둥을 공공연하게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국가주석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리지 않아 “사실상 밀어낸”것으로 되었다.
1959년 마오쩌둥은 펑더화이를 해임한 뒤 암암리에 반격을 꾀하였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뒤 류샤오치가 중소동맹 복원을 건의하자 마오쩌둥은 그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한 것처럼 자신을 밀어낼 것으로 생각하였다. 1966년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자, 상황이 좀 더 분명해졌다. 1968년 류샤오치는 “당내 주자파, 반혁명분자”가 되어 타도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는 모든 직무에서 축출되었으며 후계자 자리는 린비아오에게 돌아갔다. 그는 당에서 제명된 뒤 가택연금이 되어 홍위병들의 습격과 폭행을 당했다. 이후 송나라의 고도 카이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당뇨병, 폐렴이 악화되어 1969년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1980년 공산당의 류샤오치의 명예를 회복하였으며 복권되었다.
[추모]
노동운동가 故 김승만동지를 기리며
―노동해방의 꿈과 희망을 다시 세운다!
박찬웅
사람이 한평생 일관된 삶을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세상이 변하면 그 변화에 맞추어 신의 생각도 맞추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신념과 사상은 변화의 가운데서도 동일성을 가지게끔 해준다. 그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하며 힘든 운동가로 사는 삶을 유지하게 만든 것은 민중이었다. 사회의 절대다수이자 생산의 주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하지만 역사의 매듭에서는 떨쳐 일어나는 민중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은 고 김승만 동지의 삶에 원천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렵고 힘들었던 삶의 여정과 똑 닮은 듯한 산행을 좋아했다. 수많은 친구와 산행하며,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운동에서 실천해야 할 단결과 연대의 과정이었다. 정상에서 만끽했던 성취감은 기필코 쟁취할 새 세상을 향한 각오를 다지는 의식이었다.
고 김승만 동지는 1971년에 태어나 2024년 54세로 짧게 인생을 마감했다. 청년기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그는 청년기의 열정에 나이가 더해지며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족할 수 있을 때도 자신을 스스로 담금질했다. 오산에 있는 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아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했으며, 구조조정의 광풍 속에서 고립된 쌍용자동차 동지들의 투쟁을 지원했다.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에서 곤궁한 상근 환경에서도 주요 직책을 맡아 말없이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전국의 투쟁 사업장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비정규직 철폐 운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던 그에게 있어서 절박한 투쟁들에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산행의 보람이 정상에서 이루어지듯이 그가 가고자 한 길은 민중과 함께 싸워 쟁취할 노동해방의 세상이었다.
그는 노동당 당원이었으며,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이었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집행위원이기도 했다. 프닉스정치경제연구소와도 관계를 맺었고, 사회주의 정치신문 발간을 계획하는 소모임에도 참여했다. 지병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도 자신을 삶을 태워 하나의 불꽃이 되고자 했다. 그가 던진 불꽃은 '단결하라,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혁명의 이상과 신념을 가지고 새롭게 전진하라'는 당부였을 것이다.
그의 폭넓은 활동만큼이나 먼저 간 동지에 대한 애석함을 가진 많은 동지가 있었다. 이렇게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동지들의 뜻에 따라 노동전선은 일주일간의 추모 기간을 지정하고 임시 분향소를 차렸으며, 추모위원회를 구성해서 7월 5일 추도식, 6일에는 고별식을 가졌다. 7월 7일(일)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대성리 근처 산에서 개최된 고별식은 "해방의 그날 (노래공장 1992)" 추모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참석자 전원이 손을 잡았다. 노동해방 세상을 향한 헌신과 노력을 기리며 그 뜻을 받아 안는 모습에 먼 곳에서 고 김승만 동지도 기뻐했을 것이다.
[해방의 그날]
잡은 두 손이 썩어져 사라져도 노동해방의 그날을 생각한다.
우리는 기나긴 밤 다 지나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면
피맺혀 흐르는 저 강물은 맑게 흐르리
숨져간 영혼 강물 되어 굽이쳐 흐르리
기나긴 밤 다 지나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면
앞서간 열사의 함성소리 들려오리니
부활의 노래여 해방의 불꽃이여
[노동운동가 고 김승만동지 약력]
- 1971년 7월 9일 영암출생
- 1991~1997년 학생운동
- 1998~2004년 한국노동네트워크운동협의회 간사. 아시아노동넷
- 2005~2014년 오산이주노동자센터 간사, 오산다솜공동체
- 2003~5년 에바다농아원 투쟁
- 2000년대 초반~ ‘노동자힘’ 조직 활동
- 2009년 쌍용차 77 파업 투쟁 결합
- 2012년 ‘노동해방’ 조직 활동
- 2014년~2017 노동전선 조직국장, 집행위원장 역임
- 2020년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집행위원
- 2024년 6월 24일 동탄 자택 근처에서 산책 중 운명
- 생전 노동전선, 노동당, 전국결집, 프닉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등 다수 단체에서 활동
[노동자교양예술]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맑스주의 혁명가 이육사의 혁명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아석
이육사(1904~1944)는 서정시를 쓰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맑스주의자였다. 육사는 1932년 아나키즘에서 맑스주의로 전화해 가던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에서 7개월간 수학하고, 졸업식에서 공연한 연극 <지하실>의 대본을 썼는데, 이 연극은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그린다.
경성의 모 공장 지하실의 어두운 방에서 노동자 일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으로 ‘모월 모일 우리 조선혁명이 성공하다’라는 보도가 있고, 계속하여 용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평양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부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하는 방송을 해 오고, 마침내 공산제도가 실현되어 토지는 국유로 되어서 농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식당, 일터, 주거 등이 노동자 등에게 각각 지정되어 완전한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가 실현되었으므로 농민, 노동자는 크게 기뻐하여, ‘조선혁명성공만세’를 고창하고 폐막하였다. -「김공신 신문조서」(제2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1, 1997, pp. 149~150.-
1934년 4월 『대중』 지에는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이란 글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소개하였다. 1936년에는 「노신추도문」을 써서 노신의 리얼리즘 문학이 사회주의 혁명을 고취시켰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1936년 12월에 『풍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발표한다.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하고 그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厭離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엔 단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이육사(2004), 『이육사 전집』, pp. 63-63, 깊은 샘]
*군수야업(軍需夜業). 군수공장의 야간작업. 한국인들은 군수공장에 징용되어 야간에도 작업을 했다. *행상대(行商隊).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행상. *옥야천리(沃野千里). 옥토가 끝없이 넓은 들판. *풍양(豊穰). 곡식이 잘 익어 풍성한 모양. *앵속罌粟. 양귀비를 뜻한다. 원문에 嬰粟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앵속의 오식으로 모두 보고 있다. *찬연(餐宴) 눈부시게 밝다. 영광스럽고 훌륭하다. *염리厭離. 육사가 한문을 쓰지 않았기에, 불교에서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싫어하며 떠나는 것으로 추정.
사회주의 혁명가 이육사는 3연의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인 식민지 조국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하기 원한다. 이 새로운 지구는 2연에서 노래한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이다. 새로운 지구를 건설할 이들은 4연의 군수야업의 젊은 동무들”, “행상대”, “화전에 돌을 줍는 백성”, 노동대중으로, 이들이 5연의 “지구의 주재자로/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지”고 “옥야천리를 차지”한다. 이들은 6연의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본다. 이 혁명 과정에서 7연의 과거의 사상을 대변하는 “신(神)”은 새로운 별로 가는 노동대중 “이민”에 낄 이유가 없다. 혁명은 8연의 “한 개의 별”에서 시작하지만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과 모든 별”로 가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육사가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육사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육사의 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통해 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좌파’적 해석들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육사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1934년 7월 안동경찰서의 육사에 관한 기록에도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었음. 또 그 무렵은 민족공산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으로 나와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0, 1997, p. 178.) 육사는 사회주의 조직활동을 이어가다가 43년 7월 체포된 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2024년에 이육사의 1936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를 읽는 것은 학창 시절 독립운동가로만 알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혁명시를 소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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