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6일 월요일

노조 사무실 지하에 차린 정리해고 투쟁 비밀 아지트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97년 금융위기 당시 현차는 조업중단을 반복하며 2~3개월 씩 최저생계비만 주고 집단휴가를 실시했다. 3만 조합원들은 온몸으로 해고의 두려움을 느꼈다. 김대중정권이 IMF가 요구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강행하자, 민주노총 이갑용 집행부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런데 6월 민주노총 대대에서 중앙파와 김광식 현대차 집행부 등이 반대해 총파업이 부결됐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동지들과 함께 다가 올 정리해고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김광식 위원장이 민주노총 총파업에 반대하는 표결 사진을 담은 유인물에서 “김광식 집행부가 희망퇴직을 명목으로 한 정리해고에 동의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마침 유인물을 뿌린 당일 김광식 집행부가 희망퇴직에 합의하는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유인물 배포 이후 파문이 확산되자 김광식 집행부는 정리해고에 반대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집행부가 유인물을 뿌리던 우리 조직원 3명을 잡으면서 내 정체가 드러났다. 

나는 동지들 권유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노조 사무실 아래 지하 비밀아지트에서 기거하면서 3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이어갔다.

그런데 회사 측은 6월 30일 교섭을 하다가 갑자기 울산 노동부에 정리해고 명단을 접수했다. 조합원들이 들고 일어나자, 김광식 집행부도 희망퇴직을 중단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결국 정리해고 분쇄 공장점거 파업투쟁이 7월 20일부터 8월 24일까지 진행했다. 윤성근 정갑득 이헌구 등 현차 전 위원장들이 굴뚝에 올라가 파업투쟁의 전면에 섰다.




그런데 8월 20일 김대중 정권이 전경 2만여 명과 헬기 5대를 동원하고 “공장에 진입하여 강제 진압하겠다.”고 협박하는 가운데 김대중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와 김광식 위원장, 정몽규 회장이 만나 축소된 정리해고안을 합의했다.

애초에 정리해고 대상이 만 명이었는데, 합의안에 따라 식당 노동자 177명과 미혼 남성노동자 177명 총 344명이 정리해고 되고 2천명이 무급휴직 됐다.우리는 다른 조합원과 함께 김광식 집행부의 직권조인에 항의하며 조합원 총투표를 요구했다. 총투표에서 다수가 반대했으나 사측과 정부는 합의안을 강행했다. 이후 집행부는 불신임투표 요구에 사퇴했다.

98년 현차 정리해고 투쟁이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지만 ‘금 모으기’ 애국 광풍 속에서 미국과 국제자본, 재벌, 국가권력이 강행한 정리해고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지를 보여줬다. 자동차 부품 사업장 만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정리해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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