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문화칼럼] 축구가 인기 없으니, 공을 손으로 던지자고요?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나의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노래방 애창곡 조용필의 모나리자라는 대중가요 한 소절이다노래 등 예술작품을 접하면 특정 장소나 경험을 떠올리기 마련인데무엇이 연상되시는지노래방좋아하던 TV 예능 프로혹시 이 노래에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 혹은 거리 시위장면이 떠오른다면 어떠신지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을 거다그러나 실제로 민주노총의 집회가두시위 현장에서 대중가요들이 종종 울려 퍼진다얼마 전 윤석열 퇴진을 위한 민주노총의 가두시위 현장에서도 선두방송차에 한 무리의 밴드가 등장해 이 노래를 불렀다같이 걷던 한 동지는 뭐야지금 윤석열이 우리 사랑을 안 받아준다고 항의 시위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집회나 투쟁 현장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전반에 있어서 문화는 그다지 중요한 의제나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수많은 민주노조에서 문화국이 사라진 상황이 단적인 증거이다집회공간에서의 대중가요혹은 대중문화 패러디에 대한 문제의식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 보다는 그저 찬반양론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식의 인식이 대부분이다이런 와중에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제기가 있었는데지난 11월 수도권 합동유세 과정에서 오고 간 질문과 대답을 요약·정리해 봤다.

노동자 계급의식을 대변하는 노동자 문화가 많이 퇴색되고 있다민주노총이 대중성 확보즐거운 집회 문화 등의 이유를 대지만투쟁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대중가요가 행진할 때 방송차서 흘러나오면 내가 왜 이 집회에 참여했는지 자괴감이 든다즐겁기만 하면 의미도 없는 자본의 문화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지노동자 계급의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동자 문화를 지켜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이 있는지?’

이에 대해 현 당선인인 당시 기호 1번 쪽 후보는 이렇게 답변했다. ‘투쟁가만 틀고 딱딱하게 집회하는 게 힘들다는 조합원도 있고대중가요를 틀면 비판하는 조합원도 있고 해서 어렵다형식이 가볍다고 해서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대중가요는 자본의 문화이고 노동가요는 노동의 문화라고 이분법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과거에는 아침이슬이 저항가요로 불려 졌고 최근에는 이런 것이 없다 보니까 점점 더 투쟁가요 민중가요 이런 것만 집중해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직접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민주노총이 정신이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면 방법은 (대중가요 등도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고충이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이 되는 동지들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대답은 문화활동을 하는 나로서는 매우 유감스럽다우선 본인이 자본의 문화와 노동의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말자고 하면서 스스로는 형식과 내용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다형식이 가볍다고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노래몸짓연극 등 다양한 문화를 창작하는 내 입장에선 위원장 발언이라고 느끼기엔 새털처럼 가볍다형식과 내용은 형이상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있다음악에 왜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가 있는지는 아시는지톤 앤 매너라는 게 왜 중요한지는 아시는지수많은 창작자가 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위해 숱한 고민을 하는지 따위는 내 알바임?’이라는 말씀인지그래서 투쟁하기 위해 엄청난 조합비를 쓰며 새벽밥 먹고 달려온 조합원들에게 울려 퍼진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라는 노랫말 어디에 내용의 가볍지 않음이 있다는 건지또한 당선인의 이 대답은 마치 조합원들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는 것처럼 느껴진다.

120만이 넘는 조합원들의 취향과 생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그러하기에 지도부로서 역할을 할 이들의 철학을 묻는 것인데그에 대해 이런 조합원도 있고 저런 조합원도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씀하셔야 했는지심지어 이 말조차도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다유연함이라는 말로 둘러 표현했지만결국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로 대답을 마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민중문화 전반에 관해 이야기해야겠으나지면이 허락지 않으니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노동자도 이 사회의 대중이다하기에 대중문화는 노동자들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달리 말하면 민주노총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집회를 끝내고 갈 뒤풀이 노래방에서귀갓길 라디오에서집에 도착하면 TV에서숱하게 접하고 알아서 잘 향유한다그러니 민주노총이 뭘 할지를 고민하시길문화를 잃은 계급은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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