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과학칼럼] 과학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3)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는 앞에서 과학 공동체와 사회와의 구조적 결합과 상호작용임과 동시에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로서 일국 단위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설명했고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지식 생산을 총자본과 개별자본들의 역할 분담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다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은 사회인식론적인 관점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사회적이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추후로 미루고우리는 정치·경제적이고 조직적제도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지식 생산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과 형식을 살펴보고자 한다네덜란드의 과학철학자이자 과학사회학자인 Arie Rip은 과학이 일정 정도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과학은 3중의 신용 순환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하였다. 1단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평판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 공동체 내 구성원들 간의 신용 순환이고, 2단계는 “R&D 예산을 위한 경쟁으로 연구개발 예산을 배분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에서의 신용 순환, 3단계는 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으로 과학과 사회국가 간의 신용 순환이다.

먼저, 1단계인 과학 공동체 내부에서의 신용 순환을 살펴보자과학기술 보고서와 논문을 생산하는 과학기술자는 과학적 평판과 신용을 획득하게 된다그는 그 평판과 신용에 기반하여 연구개발 사업비와 정보에의 접근성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이는 생산적인 연구로 이어지고그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 보고서와 논문이 다시 생산됨으로써 순환된다. 1단계 신용 순환에서 보고서/논문평판/신용사업비/정보 간의 각 교환과 전환들은 과학 공동체 내에서의 평판과 신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2단계로 펀딩 에이전시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은 제안서를 받고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그래야만 적어도 차기 연도를 위한 예산을 유지할 수 있다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기능과 신용 순환은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과 결합되어 있다과학기술자들은 연구개발 예산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연구 제안서를 검토하고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정부 조직은 스스로 정부와 국민에게 예산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소속 공무원이나 위원회 구성원은 언론을 비롯한 대중적인 평가에 민감하다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은 다른 정부 부처나 후원자들과 공식적비공식적 연결 및 대중을 대상으로 한 확산 등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게 된다국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과 과학기술자 간의 상호의존은 최근에 나타나서 안정화된 현재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특징이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은 제도화되었다정부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들로부터 예산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하고때로는 기관 단위의 R&D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한다그 제안서들은 과학기술자들 간의 동료평가를 통해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3단계에 해당하는 상관성에 대한 압력은 정부 부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그럼으로써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용 순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과학기술 지식의 결과물과 생산과학기술자의 지위는 사회적 맥락에 결합되어 있고, R&D 예산의 배분은 과학적 결과물에 의해 정당화된다. R&D 예산을 위한 경쟁의 가장 위층에 상관성과 정당성에 대한 경쟁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과학기술에 대해 사회적 맥락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혁신 등에의 상관성이 요구되었다명시적으로 임무를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사업단이나 중간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과학기술자들과 정부의 펀딩 에이전시 조직들이 연계하여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기술에서 확립된 통제된 자율성을 만들어 냈다상관성과 정당성을 위한 경쟁은 아직 규칙들이 명확하지 않고 주요 주체들에 의해 인정받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신용 순환 자체가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최상위 단계의 신용 순환은 아직 확립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위법적이고 졸속으로 대폭 삭감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과학기술 지식 생산을 위한 3중의 신용 순환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고과학기술 전반이 정치화되었다한국을 성공한 산업국가로 이끌었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양식과 조절양식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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