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영화 단상] 민주주의를 선동하는 영화와 피하고 싶은 자들 - 영화 『서울의 봄』 (2023)

 

박찬웅

영화 서울의 봄’ 열기가 뜨겁다. 12. 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 12일째(12월 3일 기준관객 425만 명을 넘어섰다영화는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쿠데타 주도세력인 하나회와 우유부단하며 보신주의에 가득 찬 군부의 상층관료들그리고 쿠데타를 저지하려는 소수 장교 간의 대비를 통해서 긴장감 있게 표현하였다영화는 과도한 설정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애국주의적 서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간의 대비만으로도 상영시간 2시간 21분 15초 내내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쿠데타 저지 측에 서 있던 8공수(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9공수이다특전사에 근무했던 공공운수노조 양규서에 따르면 공수부대 여단의 부대표기는 홀수로만 표기된다고 한다.)여단이 쿠데타군 수뇌부들이 모여 있던 수도사령부 경비단을 타격하기 위해 서울로 진입하려는 순간 관객들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육군본부 벙커에 모여 있던 군부 상층관료들은 다 같은 국군 아니냐는 타협과 절충을 앞세운 채 쿠데타군과 신사협정을 맺고 8공수를 회군시켰다.

그 사이 전방에 있던 노태건의 3사단과 2공수여단이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다전두광의 합수부에 의해서 언론과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통제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그 늦은 밤거리의 사람들은 서울로 진입하는 한강 다리가 통제되면서 영문도 모른 채오도 가지도 못하는 차량에서 쿠데타군의 진입을 늦추는 바리케이드 역할밖에는 할 수 없었다대세가 기울자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채 숨어 있던 국방장관군부 상층관료들은 쿠데타의 사후적 승인을 위한 병풍이 되었다영화 내내 보여준 그들의 기회주의적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적 행태는 관객들의 분통을 터지게 했고 혹시나 관객들이 기대했을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영화적 배반에 대한 기대감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다음 날 새벽전두광과 하나회 장성들은 참모총장 정상호 체포 건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결재서류를 내밀었다사태의 진정한 정치적 의미도 모른 채긴박했던 밤을 보냈던 대통령은 자신이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민주주의자임을 보여주는 소극적 저항을 보여주는데 멈추어 섰다결재서류에 ‘12·13 05:10 AM’이라는 승인 일자와 시각이 클로즈업되며 12·12 사태의 계기가 되었던 참모총장의 체포가 사후적 승인임을 보여주었다. 쿠데타 저지군의 희생과 노력이 좌절로 끝나고 자기 체면이나 세우려는 소심한 저항을 보는 관객이 느끼는 기분은 쿼바디스(우리를 놔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였을 것이다.

서울의 봄은 영화가 가지는 편집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동 시간대의 쿠데타군과 반란 저지군의 공간을 짧게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쿠데타군과 저지군 간에 상호 충돌하는 대치과정의 긴박감을 높여주었다. 12.12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이루어진 짧은 시간대와 쿠데타군과 저지군이라는 대립 구도가 명확한 사건에 걸맞은 빠른 교차편집은 관객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영화의 편집은 시대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핵심적 메시지를 중심적으로 보여주는 쇼츠(15초 이내의 짧은 영상영상의 연속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영화 관람객들의 반응도 다른 영화들과는 달라 보였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쿠데타에 성공한 하나회 장교들이 보안사령부 앞에 모여서 촬영한 쿠데타 성공 기념사진을 보여주었고 쿠데타 이후 개개인의 출세 이력이 그 사진 위에 자막으로 겹쳐 흘렀다전두광과 노태건은 대통령이 되었고 나머지들도 장관이며 국회의원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이어지는 장면은 검정 배경화면에 배우들 소개 자막이 흘러나왔고 전선을 간다.’라는 군가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전선을 간다.‘는 합창곡이 끝나갈 동안 관람객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군가의 노랫말처럼 당시 쿠데타군을 저지하던 몇 명의 젊은 군인들은 쿠데타군에 의해서 사살당했다. "전우여 들리는가그 성난 목소리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군가의 가사는 이렇게 끝맺음 된다. ‘전선을 간다.’는 군가의 마지막 후렴구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했지만패배한 그 전선으로 우리들을 나오라고 손짓한다.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끝까지 대통령과 상층 군부관료들이 이탈해 갔던 그 전선을 지켰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장면과 합창곡으로 인해서 서울의 봄은 정치적이며 선동적인 영화가 되었다보수우익의 준동으로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이 영화의 단체관람이 무산되었다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수많은 영화 관람평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 문재인도 분노가 불의한 현실 바꾸는 힘 되길를 바란다며 본인의 영화 관람평을 덧붙였다마치 그날의 대통령이 쿠테타의 합법성을 치장하기 위한 형식적 서류에 사후승인임을 소심하게 새겨 넣었던 것처럼 그도 현재의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자이다.


영화와 역사적 사실현재와의 대화

코로나 사태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개인화 경향을 가속화시켜 대면 모임은 적어지고 사회의 집단성은 약화되었다임기 초반부터 반수를 넘는 견고한 부정적 여론에 힘입어 현 정권에 대한 퇴진운동이 연일 계속되었지만퇴진 시위의 대중적 결합은 좀처럼 형성되지 않았다영화 관람료가 인상되었고 흥미를 끌 만한 영화가 개봉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영화 관람객들도 줄어들었다영화 관람은 사람들에게는 친목의 수단이자 작은 모임의 계기였다이 영화는 사람들이 좀처럼 모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성을 만들어 내었다.

관람객들은 자발적으로 영화 서울의 봄 보고 스트레스 챌린지라는 영화 외적 놀이까지 만들어 냈다영화 상영시간 내 스트레스 지수의 변화를 스마트 워치로 측정하고 SNS에 인증하는 릴레이가 이어졌다이에 대해 동아일보(12.07)는 스트레스 지수가 얼마나 위험한지심근경색이 4.7배 더 증가할 수 있다며 관람객들의 건강을 염려해 준다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말라는 충고로 들리는 이 기사는 무척이나 친절하다.

보수우익들과 친절한 동아일보가 나서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서울의 봄은 개봉 18일 만에 관람객 600만을 넘어섰다.(12.09) 지금 추세라면 1,000만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영화의 재미가 흥행을 이끄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단지 과거 사실에 대한 흥미와 그것에 대한 영화적 장치들의 정교함으로만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격언이 있다.(에드워드카,1961)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 과정소수 검찰 집단의 공권력을 이용한 국가권력의 장악과정과 이를 막지 못한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문재인 정부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이후의 행태에서 겪는 기시감이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 배경이다그래서 보수언론과 우익 정치세력까지 나서서 이 영화의 성공을 막으려 하고 있다그들의 마지노선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705) ‘연평도 해전’(600)일 것이지만 서울의 봄’ 관람 추세는 그들의 바람을 넘어섰다거리의 집회에서 폭발되지 못했던 정치적 사회적 대중의식은 영화 상영관으로 전장이 옮겨진 채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대중 정치의식의 발전과 상승의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한다특히 지난 시기 윤석열 검찰 집단의 정치권력 장악과정에서 보여준 집권 민주당 세력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반개혁적 대응은 쿠데타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군부 상층관료들을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정치 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은(2021.06.18) 제도와 절차를 중시하는 자신의 인품을 드러내 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군부 상층관료들의 신사협정이 하나회 쿠데타군의 성공에 기여했던 것처럼 검찰집단의 발을 묶어 두지도 못했고 오히려 검찰 집단의 정치적 힘이 강하다는 그것과 집권 민주당의 나약함과 무능력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켜 주었을 뿐이다검찰 집단의 수사와 기소권은 협치와 타협을 부르짖는 형식적 민주주의자들의 눈을 찔러대었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다시 거리의 몫으로 돌려졌다그래서 서울의 봄’ 영화는 오늘날 정치 검찰 집단에 맞서 싸우지도 못한 이들을 다시 지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관람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이 영화가 대중의 정치의식에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과는 별도로 영화를 통해 강조된 역사적 사실 중 하나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쿠데타 주도세력은 군사행동의 비합법적 수단을 통한 권력 장악 과정에서 군사행동에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체포를 시도하면서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자 합동 수사 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대통령에 의해 거절당했고 긴박했던 대치국면이 끝난 다음 날이 되고서야 사후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제도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자들은 이 점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지만사후이든 사전이든 절차적 승인은 참모총장의 체포와 그날의 대치 상황을 합법적으로 승인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쿠데타 주도세력은 박정희 군부독재의 후계자들이었고 대통령은 바로 그 독재가 만들어 낸 특정인들이 참가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서 선출되었다쿠데타 주도세력에게는 그 당시 국가체제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위해서 유리한 체제였다따라서 그 체제의 연장선에 서 있던 쿠데타 저지세력들의 동요와 실패는 예정된 결과였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현재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민주주의 제도에 의해서 선출된 집권 민주당은 권력을 차지했지만 민주주의의 틈 속에서 공권력을 사유화 해온 검찰 집단의 쿠데타를 막을 수 없었다이미 주어진 제도 아래에서 선출된 권력이 그 제도의 산물인 검찰 집단을 제거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였다법률에 정한 바에 따른 공정한 행사라는 공권력부정부패와 사회적 범죄에 대해 처벌하는 이 정의에 대해서 이미 낡아버린 기득권 정치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란공정이 무엇인지 민변의 해석과 대한변호사협회의 해석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일 뿐이다또한 지금의 반정부 투쟁에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점은 여야 협치의 복원각 정당이 참여하는 거국 내각 정도일 것이다.

진지하게 혁명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합법적 제도의 순응 속에서 자기 길을 찾을 수 없다기득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자리와 그것을 보전해 줄 권력의 재편과 분점이 최선의 길이다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가져야 할 합법성은 끊임없이 상승 발전하는 대중의 정치의식오늘날 사회적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하는 대중적 요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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