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일 월요일

월드컵 , 경기의 민중성 역동성 제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가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하자, 수만 명의 모로코 이민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수천 명은 폭도로 변해 파리 곳곳에 방화하고, 자동차를 부수고 경찰과 충돌했다. 지난 10월 인도네시아에서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해 경찰과 충돌하면서 174명이 사망했다.

오늘날 축구, 럭비, 미식축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크기의 공을 갖고 단체전을 하는 동서양의 경기들은 과거 민속놀이인 패싸움을 점차 스포츠로 순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시대까지 전해 내려 온 단오날 민속놀이 '돌싸움' 역시 마을 간 패싸움이었다. 중세의 민중들은 돼지 방광으로 만든 가죽공을 놓고 수백 명씩 마을 간 대항전인 몹 풋볼(mob football)을 하다가 교회나 관청을 골문을 삼아 파괴했다. 

축구폭동에 골머리를 앓았던 지배계급은 축구를 금지시키고 참가자들을 투옥시켰다. 귀족들이 축구 폭동을 근절하고자 규칙을 도입해 신사적인 경기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축구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장 노동자들 간의 대항전으로 확산되면서 대중화됐다. 

최초의 전국적인 리그는 공장노동자들의 아마추어 경기였지만 점차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인들의 경기로 변질됐다. 

민중의 억눌림을 분출하던 패싸움을 단체경기로 순화시켜

자본과 권력은 축구와 같은 집단경기를 통해 노동계급을 통제했다. 노동자 선수들은 돈 잘 버는 엘리트 선수가 돼 규칙을 지켜야 하고, 일반 노동자들은 관중이 돼 경기를 방해해선 안 된다. 축구의 역할과 규칙을 지키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역할을 수용하고 자본주의 규칙을 준수하는 훈련인 셈이다.

하지만 공장노동자들이 가끔 자본가의 규칙을 거부하고 파업을 하듯이, 관중들도 가끔 역할과 규칙을 무시하고 난동을 피운다. 미국 <타임>지에 따르면 축구 폭동으로 체포된 영국의 홀리건 가운데 80%가 육체노동자이거나 실업자였다.

‘줄다리기’에서 보듯이 집단경기의 생명력은 복잡한 규칙이나 현란한 솜씨가 아니라 관중과 선수가 구별되지 않는 민중성이며, 팀이 단결했을 때 폭발하는 역동성이다. 노동자는 자본이 요구하는 선수와 관중의 구분을 거부하고 때로는 선수로, 때로는 관중이 돼야 한다. 

프로축구를 시청하면서 대리만족하기보다는 동료 노동자들과 편을 갈라 서로 부딪치면서 동료애와 계급의식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김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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