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8일 목요일

『골리앗 상공에서 쓴 비밀일기』

김현종의 육필원고에 얽힌 추억

1990년 4월 26일 늦은 밤 울산 동구 자취방에 쉬고 있는데 김현종(가명, 현대중공업 노동자) 동지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웬만해서는 직접 전화하지 않는 동지라서 전화를 받아보니 예의 침착한 음성으로 지금 볼 수 없냐는 것이었다. 

바로 현대중공업 정문 앞 2층 호프집으로 달려갔다. 보자마자 그는 오토바이 키를 나에게 넘겨주며 무덤덤하게 “한 동안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오늘 밤 현대중공업 골리앗 점거 농성 조로 차출(?)되어서 점거농성 가는데 이번에는 구속될 거라 했다. 비장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시 기다리라 하고 문방구로 가서 노트 한 권, 볼펜 한 자루를 사서 그에게 전달하면서 농성 중 일기형식으로 글을 남기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피식 웃으며 “지금 소풍 가는 줄 아느냐, 겉보기에 평온해 보이지만 분위기 살벌하다.”라면서 “그 일기를 어떻게 가지고 내려오냐.”고 했다. 




 나는 “세상일 모른다.”면서 “ 반드시 틈이 날 거라.” 하면서 “만일 바로 체포될 상황이면 골리앗 상공에서 기록을 불 질러라”했다. 정부와 자본은 헬기까지 동원하며 진압에 나섰지만 51명 의 노동자는 13일 동안 82미터 높이의 골리앗에서 투쟁했다. 

이에 호응하여 울산 곳곳에서 730명이 연행될 정도로 대규모 가두시위가 이어졌고, 전노협은 전국적인 총파업을 단행했다. 다행히 글솜씨 좋은 그가 생생하게 기록한 그 일기는 점거농성 막바지에 언론사 기자들이 올라갈 때 믿을 만한 기자를 통해서 무사히 지상에 내려왔다. 

그 일기가 바로 『골리앗 상공에서 쓴 비밀일기』이다. 요즘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잔잔한 파문 을 일으키고 있나 보다. 

 김현종의 육필원고는 당시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외곽 출판사인 노동문학사 편집위원인 정지아 작가와 내가 최종 편집을 함께했다. 머리를 맞대고 원고를 다듬던 30년 전이 문득 어제 같이 느껴진다.   <전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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