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현차 들고양이 파업과 도로연수

응답하라 1987 울산  
어용노조와 사측 폭력에 맞선 양봉수 열사 

양봉수 동지는 91년 말 사측의 ‘노조 없애기’에 맞서다가 해고된 후 93년에 복직했다. 복직 당시 93년 윤성근 현대차위원장이 김영삼 정부의 긴급조정에 따른 강제합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조합원들이 실망하고 같은 해 8월 선거에서 민주노조 진영이 분열돼 어용 으로 평가 받던 이영복 초대 위원장이 재선됐다. 이영복은 청와대에서 칼국수 먹으 며 노사협조를 강조했다. 

그런데 95년 회사 측은 노사 합의를 파기하고 작업강도를 높이기 위해 생산 라인에 신차 ‘마르사’를 투입했다. 이영복 위원장 측이 사측에 굴복한 가운데 양봉수 동지는 해당 라인의 대의원 권한을 동원하여 라인을 중단시켰다. 

이를 이유로 다시 해고당한 양봉수 동지는 ‘부당해고 무효 확인’ 심판을 청구했다. 노동법과 단체협약에 따르면 해고 효력을 다툴 동안에는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는데, 회사 측은 양봉수 대의원을 20여 명의 경비를 동원하여 정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95년 5월 12일 양봉수 동지는 노조탄압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동료 해고자 4명과 함께 회사 앞에 갔으나 출입을 저지당하였다. 이에 양봉수 동지는 온몸에 신 나를 붓고 “내 몸에 손대지 말 라”고 외치며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비들은 이를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저지하였다.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동지의 몸에 불이 붙게 되었다. 나는 그날 운전면허 연수 비정규직 강사를 하던 중에 비보를 듣고 회사 앞으로 달려갔다. 병상에 누운 양봉수 동지는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현장 조합원을 사랑한다 다시 돌아가 함께 하겠습니다”며 투쟁의지를 꺾지 않았다. 

투쟁에 소극적인 이영복 집행부 대신 민주노조 진영은 대책위를 만들어 현대차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조합원 대중의 자발적인 들고양이 파업(법외 파 업)에 들어갔다. 전직 위원장들이 파업지도부를 맡으면서 사측의 사과와 이영복 어용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면서 경찰과 대치했다. 

사측은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고 결국 파업대오는 체포되거나 흩어져 싸웠다. 경찰이 울산을 포위하고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했지만,우리 조직은 다른 동지들과 함께 경남을 돌아다니면서 수배자들을 피신시키고 투쟁 소식을 알렸다. 

내가 경찰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도로연수 차량 ‘프라이드’에 수배자들을 싣고 울산에서 경주로, 청도로 뛰어다니던 혈기 왕성한 시절, 그 많던 투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전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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