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8일 일요일

[문화칼럼] 그럼에도 아름다우신가?

 


제10호 [문화]

그럼에도 아름다우신가?

박현욱


전태일 정신은 풀빵(나눔)이다.” “민주노총은 노동 안의 특권이다. 차비를 아껴서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전태일 정신은 온데간데 없다마치 한 사람의 말인 듯하다. 그러나 앞은 2020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위원장(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의 첫 마디이고, 뒤는 현 국토부 장관인 원희룡이 2021년 서울시의회에서 한 말이다. 요즘 말로 웃프다고 해야하나... 굳이 설명할 것도 없이 한 사람은 노동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최선봉에 서 있는 자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대척점에서 가장 적대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말이 마치 한 사람의 말인 듯 들리는 이 기묘한 현상 말이다. 두 사람은 전태일 정신과 그것이 풀빵정신임을 동일하게 말한다. 전태일 정신... 너무 익숙해서 정작 그게 뭔지 깊이 생각해보진 않은 말. 곧 있으면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한 날이고 민주노총은 매년 그랬듯 전태일 정신계승 노동자대회를 진행할 거다. 앞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전태일 정신을 말하는 것 또한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려나? 새삼 그 정신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이 기묘한 현상이 주는 불편함과 비슷한 불편함을 꽤나 느꼈던 듯하다.

전태일 열사와 풀빵, 그 아름다운 이야기야 사실일 테고 그 정신을 새겨 마땅할 일인데... 그래서 전태일 정신 계승이라 함은, 없을수록 더 아끼고 서로 나누자는 정신이란 말인가? 매년 수만의 노동자가 11월 둘째 주만 되면 그 나눔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결의하고 최루탄, 물대포 맞아가며 투쟁해 온 거라고? 왜 그리 불편했는지 알 거 같다. 20여년 넘게 내가 그 대회에 참여한 이유는,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면서도 저임금에 배고파하는 같은 노동자에게 풀빵을 베푸는 아름다운(?) 세상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돈 때문에 걸어서 출퇴근 하지 않는 세상, 풀빵 따위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끼리 나누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 아니라 없는 이들이 없어지는 진짜 아름다운 세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태일 정신은 그런 게 아니란다. 없어도 나누는 정신이란다. 그걸 계승하란다... 누구 좋으라고? 한번 물어 보자. 그렇게 없이 살아도 풀빵 한 조각 나눌 줄 알았던 아름다운 청년이 자신의 몸에 불은 왜 지른 건데? 풀빵 나눔이 전태일 정신이라면 풀빵을 나눠 준 날 정신계승 노동자대회를 하지 왜 분신한 날 하는 건데?

 이제 전태일 하면 누구나 자동으로 아름다운 청년을 떠올린다. 그 시작은 1995년에 개봉한 한 편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부터이다. 그 영화를 기대와 걱정이 섞인 마음으로 기다렸던 나는 제목을 접한 순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아름답다니... 아름답다니... 아름다운 사람... 맞지... 그럼에도 아름답다니...아직 나는 도대체 얼마나 처절해야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를 수 있는지 감히 상상도 못하는데 22살의 나이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절규했던 그 청년을 규정한 한 마디가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라니.

올해도 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자는 그 노동자대회에 있을 거고, 결코 아름답지 않을 준비과정을 거칠 거다. 온통 불에 타들어간 자식의 몸뚱이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달라는 말을 남기며 죽어가도 아름다운청년이고,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못 다 이룬 일이 풀빵과 나눔이 되어 있을 노동자대회. 그런 한, 앞에 말한 기묘한 현상은 전혀 기묘하지 않을 그 대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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