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세상의 창] 광장의 정치는 무엇으로부터 교란 되었는가!


 

제10호 [세상의 창


광장의 정치는 무엇으로부터 교란 되었는가!

박찬웅


취임 초기부터 시작된 윤석열 정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는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주의투쟁으로 발전해 왔다. 매주 지역 집회와 전국 집중 집회를 개최해온 촛불집회는 59차에(107) 이르렀고 30만 명을 넘어서는 윤석열 퇴진 범국민 서명을 일궈냈다. 이 집회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압력 행사와 민주당의 반개혁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취임 6개월이 지나자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이 사회적 발전을 억누르며 국민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 것이라는 확연해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지난 해 1022일부터 촛불집회의 정치적 요구는 정권퇴진으로 전화 되었다. 당시 집회장소를 가득 메운 시민의 자발적 참여는 퇴진이라는 정치적 구호의 실체로서 대중투쟁의 선도적 부분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전 시기, 연이은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문재인 정부와 역대 최고 의회 다수 의석) 진보적인 지지층의 요구에 기반 해서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획득했었다. 하지만 타협과 합의라는 명분 속에서 불철저한 개량 끝에 자신들 내부로 부터 반개혁적 세력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끊임없이 점증하는 사회적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던 민주당의 이념적, 정치적 한계의 반영이었다. 이로 인하여 민주당 일부와 국민의힘을 포함한 반개혁 기득권연합에 기반 한 현 정권이 등장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20대 대선의 결과 진보정당을 이탈한 민주당으로의 표의 결집은(47.83%) 종래의 민주당 지지와는 다른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가진 집단화 현상이자 대중적 정치의식 발전의 한 지표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의 민주주의에(선거,의회,사법) 대한 신뢰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정치에 대한 의존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의회정치와 구분되는 광장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대중적 동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의 초기 성공은 이에 기반 한 것이며 반면 태생적으로 의회주의 정당인 민주당은 당내 통합과 여당과의 협치를 앞세운 채 중도적 의회정치를 위해서 광장의 정치와는 거리를 두어 왔다.

윤석열정권의 행보가 사회적 발전을 역행하는 반동권력이라는 것이 명징해질수록 진보. 계급 대중운동은, 그것의 요구수준과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현 정부를 지지하는 층과는 다른 편에 서 있게 된다. 또한 의회를 통과한 대중조직의 요구가 대통령에 거부됨에 따라서 각급 대중조직은 정치적 편차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정치투쟁의 기조를 내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국면에 정치적 소수가 걸어야 할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민주당의 의회권력과는 구별되는 경제.정치 양 방면의 대중투쟁을 통해서 광장의 정치를 조직적, 사회적 요구 측면에서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이었다. 윤석열정권에 대한 투쟁에 소극적인 민주당의 불철저한 태도를 비판하며 광장의 퇴진투쟁으로 대중의 분노를 모아 가는 것은 양당 주도 정치질서에 대한 균열이자 군소 진보정당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광장정치의 퇴진 슬로건은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에서는 윤석열에 대한 의회 탄핵이라는 슬로건으로 전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국 상황의 자연적 흐름과는 달리 민주노총 주도로 뒤늦게 발족한 윤석열퇴진운동본부 준비위는 7151차 정권퇴진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분노가 쌓여 온 민주노총 조합원의 자발적 도로 점거 투쟁이 시작되었지만 민주노총 집행부에 의해서 제지되었다. 노동운동의 부분적 투쟁들을 하나의 계급투쟁전선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상반기 내내 보여준 허약한 모습의 실체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들이 한편으로 진보정당지지운동을, 다른 한편으로는 온건한 대중투쟁을 이끌어 온 것이 오늘날 정세에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의 급진적 발전을 가로막고 자신들만의 가두리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의 정당성을 입증해주었다.

연이은 국정참사와 사회운동 세력을 적으로 삼는 현 정권의 정치적 공세가 정세를 상승 시키는 요인이 되어 왔다면 정치세력들의 편협한 정세인식과 의회 정치를 중심으로 둔 정치적 대응이 광장의 정치를 교란해왔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광장인가 의회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부재한 사회운동세력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해야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의회이든 또는 광장의 권력이든 쟁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전 사회적 발전을 이끌어낼 정치적 격변이 필요한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다른 길이 걷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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