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8일 일요일

[한국전쟁 (하)] 한국전쟁의 도상연습 진주만기습전쟁

 


제10호 [한국전쟁 ()]

 

한국전쟁의 도상연습 진주만기습전쟁

전원배

 

한국전쟁이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필자가 보는 최대의 미스터리는 무엇보다도 625일 새벽의 전면적인 남침을 몰랐다는 것이다. 전쟁에 관한 최고의 경전인 손자병법에는 용간(用間) 즉 간첩의 이용은 전쟁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며 전쟁의 결정적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을 치른 직후라 정보기관의 수준은 세계 최고였다. 그런 미국의 정보기관이 38선 근처에 소련제 탱크 수백 대를 집결시키고 일거에 내려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45101일 미국이 전략국을 해체하고 1947918일 중앙정보국을 창설했다.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선포하고 1949630일 비전투 요원만 남기고 주한미군을 철수했다.

맥아더는 월로비 소장이 이끄는 정보참모부(G2) 산하에 KLO 부대와 캐넌 중령이 이끈다고 하여 캐넌 부대(일명 Z기관)’라고 불린 첩보 부대를 두어, 소련과 북한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또 미국 공군 첩보 부대인 ASIS도 한국에서 첩보 수집을 하게 되었다.

월로비 소장은 이러한 첩보를 정리해 워싱턴으로 보고서를 무려 1195건이나 보냈는데 전면 남침이 임박하였다는 정보보고였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 시사점을 주는 다큐가 있다. 2019.03.17. JTBC에서 미국방송제작 다큐를 방영했는데 진주만 공습의 비화를 다룬 다큐이다. 당시 태평양함대 총사령관 킴멜(Kimmel)제독이 일본기습에 대한 대처 잘못으로 강등되자, 수십년에 걸친 법정투쟁 등 명예회복 투쟁 과정에서 백악관과 군최고지휘부가 일본군 기습을 알고도 기습을 유도했음이 사실로 드러난다. 소위 음모론과는 격이 다른 명작 다큐이다.

왜 미국은 1941, 1950년 두 번이나 적의 전면 침공이 예측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진주만 기습전에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은 거의 불가능했으나 진주만 기습 한방으로 압도적 찬성 속에 전쟁 참가와 군수산업의 대대적 확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군수산업 폐업으로 공황에 처했으나 한국전쟁 한방으로 군수산업 부활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1945년 미국 국방예산 990억불. 전쟁 끝난 첫해인 1946120억불, 한국전쟁 발발 후 550억불). 수수께끼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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