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이주노동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이주노동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이주노동자] 지옥도 아리셀을 또 가슴에 새깁니다

  

김헌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아리셀 참사보도를 접하는 날이 바로 김승만 동지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습니다. 십몇 년을 아픈 몸을 부여안고 투쟁의 현장으로 가고 싶어 몸부림을 쳤던, 그러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동지가 차라리 부럽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지옥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동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을, 이주노동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동지가 먼저 도착한 세상에는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F-4 비자를 아십니까?

아리셀 참사는 행정관할의 난잡함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여러모로 관련돼 있다. 굳이 리튬전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업장 안전관리에서 소방과 안전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책임의 분산과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의 관할권 역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로 이원화돼 있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 노동자가 농사를 짓는지, 물고기를 잡는지에 따라, 심지어 작은 배를 타는지 큰 배를 타는지에 따라서도 담당 기관이 달라지고 다른 법이 적용된다. 겉으로는 복잡한 행정체계의 문제지만 이것이 이 나라가 가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근간이다. ([매일노동뉴스] ‘참사, 진상규명에 이르는 길’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

자본은 참 대단합니다. 이주노동자를 E-9으로 H-2로, F-4로, C-4로, E-8로, E-10으로 선을 그어놓고 가두고 갈라치기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 선을 넘어오는 자들을 미등록으로 내몰고 강제 추방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제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자는 E-9입니다. 사업장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업종 간 이동도 금지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부려 먹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 ‘아! 대한민국’에 일제 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혹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만주로 연해주로 떠났던 많은 동포가 찾아왔습니다. 발전된 조국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동포를 우대한답시고 특례 고용허가제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장도 약간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업종 제약도 없어서 그나마 약간의 권리가 보장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단체가 특례 고용허가제도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 알량한 특례 고용허가제도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로 가는, 그래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오롯이 누리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특례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는 동포 신분의 이주노동자들 비자는 H-2 비자입니다. 그런데 H-2 비자 이주노동자들이 안정적 체류를 확보하기 위해 또 비자를 바꿉니다. H-2 비자는 특례 고용허가제 비자이기 때문에 체류 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F-4 비자로 비자를 바꿉니다. 영주권에 준하는 안정적 체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자를 획득하는 방법의 하나가 자격증을 따는 것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자격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또 출입국 사무소 주변 행정사 사무실은 F-4 비자 알선이란 선전 문구를 내걸고 중계 수수료 등으로 돈을 법니다. 우여곡절 끝에 H-2 비자로 한국을 찾은 동포 이주노동자들이 또 온갖 노력을 기울여 F-4 비자를 취득합니다. 그러나 무슨 무슨 자격증으로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격증은 현장에서 쓰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인,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다시 단순노무업종으로 내몰리는 동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F-4 비자 소지자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단순노무직 종에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또 단순노무 중에서 호텔과 식당 등은 인력난에 시달리니 허용한다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요 아무튼 우수인력 유치라는 자본의 갈라치기를 동포 우대정책이라는 허울이 좋은 포장으로 덧씌워 또 벽을 만들었습니다. 우수인력 유치라는 허울이 좋은 차별 정책이 비자 진입장벽을 만들고 자격증을 취득한 우수인력인 F-4 비자 소지자는 우수인력이기 때문에 단순노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우수인력들이 단순노무를 하다가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쓰러졌습니다. 이게 아리셀 참사현장이 말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비자 중에서도 가장 부러워하는 F-4 비자를 소지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분통합니다. 억울합니다.

그러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막히고 억울한 죽음 앞에 오열하는 유족들을 향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은 ‘합리적’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들이댑니다. 참사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인데 그 비극 앞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서 자본은 또 천연덕스럽게 ‘합리적 후속 처리’를 들이댑니다. 그런데 이 자본가들이 들이대는 ‘합리적 후속 처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참사 희생자 중에 많은 이들이 F-4 비자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단순노무 업종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할 수 없는 업종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은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고 강제퇴거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그 악랄한 만행을 숨기기 위해 ‘단순노무 업종종사’를 ‘합리적 후속 처리’의 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겁니다. 배상금을 줄이기 위한 악랄한 계산법입니다.


이가 갈립니다
. 그러나 이만 갈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잔인한 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터 보겠다고 F-4 비자를 선택하고 또 다른 벼랑 끝에 몰린 이주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치떨리는 현실 앞에,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저 자본가들에게 우리는 또 무엇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합니까?

 

위험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

3D업종이 보통명사가 되고 나니 자본은 ‘뿌리산업’이라는 또 희한한 명사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뿌리산업이라고 포장하는 ‘3D업종’은 ‘4D 업종’으로 이미 변했습니다. 더럽고 Dirty, 힘들고 Difficult, 위험한 Dangerous 뿌리산업은 이제 죽음의 Death 업종이 되어서 ‘ 4D 업종’이 되었습니다. 아리셀참사 이후 많은 전문가가 ‘위험의 이주화’를 말합니다. 아닙니다. 위험의 이주화가 아니라 ‘죽음의 이주화’입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활동가가 수년 전부터 ‘죽음의 이주화’를 부르짖어 왔습니다. ‘죽음의 이주화’를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윤에 눈이 먼 자본의 ‘뿌리산업’이 ‘죽음의 이주화’로 흘러가는 이 흐름을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아니 피가 맺히는데 거기서 또 죽으라니요? 헐한 목숨값 몇 푼 쥐여주고 자본의 철옹성을 쌓는 현장으로 내모는 이 현실을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가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을 어쩔 거냐고….

수많은 언론에서 중국을 언급합니다. 그러다가 또 양념처럼 라오스를, 베트남을 언급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리셀 참사현장에는 또 하나의 계급으로 살다가 비극을 당한 노동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쌓인 담장이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는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 담을 허물어 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너무나 강고하여 우리의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진 담장보다 새로 쌓아 올린 담장이 더 많은 잔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9년의 투쟁 끝에 작은 승리를 쟁취한 아사히 동지들이 그렇고, GM 비정규직 동지들이 그렇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동지들의 눈물이 나는 복직 투쟁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담장을 허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있습니다. 아니 그 담 너머에서 또 다른 계급으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혹은 불법으로 내몰리고, 외국인으로 내몰리고 그래서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이 아닙니다. 미등록입니다. 외국인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입니다.

감히 말합니다. 또 하나의 담장을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계급을 없애야 합니다. 어쩌면 이 담장을 허무는 일이 우리가 모두 싸워왔던 비정규직 철폐의 전선에서 함께 싸울 동지를 확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싸우다 싸우다 지쳐 쓰러지는 무모한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를 없애고, 다시 비정규직을 없애고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저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이 처절한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이를 악물고 다짐합니다. 투쟁!


2024년 2월 27일 화요일

[이주노동자] '불법 이주노동자 퇴출'이라니, 그들도 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

'불법 이주노동자 퇴출'이라니, 그들도 사람입니다

 

김헌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이 독일에 도착했을 때 독일 노동부장관이 했다는 이 유명한 말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켄 로치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우리 곁으로 왔다. 이름하여 ‘나의 올드 오크’. 원작은 ‘The OLD OAK’인데,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제목은 ‘나의 올드 오크’이다. 올드 오크가 영국의 어느 탄광 마을에 있는 유일한 펍(선술집)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내가 가고 싶은 우리 동네 펍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영화가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나의 올드 오크’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불법고용 근절을 주장할 때,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함께 투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구호가 불법이주노동자 퇴출이란 구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에다가 건설경기의 악화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건설노동자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이럴 수는 없다. 약한 고리를 붙들고 투쟁하는 것은 유의미하고 적절한 투쟁이기는 하나, 적의 약한 고리를 물고 늘어지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2023년 연초부터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을 받으면서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 터라,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서 읍소하면 동지들의 상황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이 멈춰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민주노조가 외치는 당당한 외침, ‘국경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외침이, 건설노조 동지들의 외침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만남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급기야 파업현장에 참여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함께 타고 이동하는 버스에 ‘불법이주노동자 퇴출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우리가 1월부터 4월까지 단속추방을 저지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비정규직 이제그만’ 동지들, 민주노총 동지들, 장애인 동지들을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동지들, 그리고 하루 파업을 결심하고 혹은 야간을 마치고 달려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출입국 앞에서 목이 쉬도록 외쳤던 ‘불법 사람은 없다!’라는 외침은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건설노조 동지(?)들이 출입국 앞에서 ‘불법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업하는 현장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세우고 등록ㆍ미등록을 확인한다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배격하고 추방하기 위해 공권력의 동원을 호소하는 건설노조(?)의 전술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자본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통해 건설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으로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본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 소모품을 치우기에만 급급한 건설노조 동지들은 한 때 건설노동자가 아니라 노가다 막장으로 살면서 소모품의 삶을 강요당하던 시절을 잊지 말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그렇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이 되지 않는 방법은, 등록노동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자본가의 법인 ‘고용허가제’와 출입국 관련 모든 법은 미등록노동자들이 등록노동자로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자본가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악법 ‘고용허가제’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라는 우리 운동의 대의를 실천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을 옮기지 말라는 악법을 엿 먹이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체류 기한을 넘기지 말라는 악법에 맞서 ‘엿 먹어라!’로 응수하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그들은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혹은 당당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기꺼이 미등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다. 강제 추방 단속에 혈안이 된 법무부와 그 하수인들은 자본가의 앞잡이가 되어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체포 연행하여 강제 구금 후 추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절규하는 것이다. 우리는 쓰고 버리는 종이컵이 아니다. 우리는 쓰다 버리는 걸레 쪼가리가 아니다.

미등록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이 자본가의 책동에 놀아나는 자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결국 자본가의 앞잡이이다. 너희는 외래종이라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너희들은 건설노조의 가면을 쓴 자본가의 앞잡이들이다.’

자, 이제 우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미등록노동자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힘이 없어서 자본가의 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무기가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감히 우산을 그 로고로 쓰지 않는가? 이 우산 아래 들어오면 그 어떤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그게 거짓 선동일 리 없지 않은가?

다시 들어보자.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결국 노동력으로 소모되지 않고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이미 와 있는 사람으로 함께 사는 방법은 우리에게 있다.

켄 로치가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함께 고민해 보자고……. 다만 그 소주를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문 걸고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함께 둘러앉아 마시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자고…….



[청년]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기획1] 고용불안, 그 주범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다

 

오세중

건설노조 일부 지부에서 건설현장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출입을 막거나 단속을 촉구하는 집회, 심지어 정부기관의 단속에 협조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이런 사례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사용자들에게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를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를 관할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조합원들이 직접 공사 현장 출입구를 막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출입을 막기도 하였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대는 2016년부터 표면화되었다. 2016년 11월 건설노조 전북본부는 출입국관리소에 공문을 보내 이주노동자 단속을 요청했고, 경찰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 전북본부 차원에서 간담회를 진행하여 건설노조에서 사과하고 재방 방지를 위한 대책이 논의 되었다. 민주노총에서도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이 발표했다.

그러나 2017년 1월에는 건설노조 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에서 ‘불법외국인 체류자 근절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미등록이주노동자 출입을 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2023년 1월에는 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에서 조합원 1,000여 명이 참석하여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외국인 불법고용 퇴출 건설노동자결의대회’를 진행했다. 6월에는 강원건설지부에서는 이주노동자 숙소를 단속하는 ‘추노 활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2022년부터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 2023년 12월 27일에는 조합원 2,000여 명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촉구하는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촉구, 출입국관리사무소 규탄, 지역민 일자리 사수 건설노동자 총파업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러한 건설노조의 행동에 대해 영남권 이주 단위에서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영남지역의 7개 이주노동·인권 단체가 해당 집회를 규탄하고,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월 10일 기준으로 1,000여 곳 이상의 단체와 개인이 동참했다고 한다.

건설업에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주범은 다단계 하도급을 확산한 사용자들과 이를 용인한 정부이다. 정부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단속하는 방식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이용한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자료에 의하면, 건설 노동자 180만 명 중 이주노동자가 32만 명이 넘고, 그중 11만 명 이상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추정된다. 이미 이주노동자는 건설 노동자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일부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 단속에 동조하더라도 결국 자본과 정권에 이용만 당할 뿐이다.

당장의 일자리를 위해 이주노동자 단속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충돌은 노-노 갈등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즉 누구의 주장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보는지, 자본가계급에 맞선 전체 노동자의 투쟁을 조직하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당장의 자기 일자리를 위해서 다른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분열 정책의 결과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로 나누고, 원청-하청 노동자로 나누고, 남성-여성 노동자로 나누는 등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막기 위해 갈라치는 것이 바로 자본의 분할통제 정책이다. 그렇기에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하지는 못할지언정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력과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위한 조직이 아닌, ‘자본과의 협상’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전체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투쟁하는 민주노조’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의 집행부가 당장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조합원 다수의 요구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기가 쉬운가? 당연히 그러한 집행부는 조합원 다수의 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고용을 둘러싼 경쟁에만 노동운동을 한정하는 한 이러한 사태는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생산수단을 독점적·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오직 이윤을 위해서만 생산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소유관계·생산양식 자체가 근본 원인이다.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위한 노동운동을 더 고민하고 실천할 때이다. 그럴 때만이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는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지가 될 수 있다.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