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20호에서 이어짐)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기억하시는지신라를 배경으로 미실과 선덕여왕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왕족은 아니었으나 실질적 권력을 가졌던 미실이 권력싸움에서 패한 후결국 왕이 된 선덕을 찾아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고구려인백제인신라인신라인 중에서도 선덕을 따르는 자미실을 따르는 자등 여러 집단으로 나눌 수 있지만횡으로 나누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딱 두 개로 분류된다당신과 나는 (서로 적대적으로 싸우는 것 같지만지배하는 자로서 같은 편이다.”

내겐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었다미실이 말하는 세상을 횡으로 가르는 선’, 그것을 우리는 계급이라고 한다노동자 동지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노동조합 교육을 할 때 계급’ 혹은 계급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진짜 신라시대 사람 보는 듯 한 눈길을 종종 느꼈던 터라드라마를 통해서일지라도 15백 년 전 지배계급의 일원이 지금 사람들에게 진실을 실토하는 듯한 그 장면이 사이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조합원들 계급의식이라곤 1도 없어요.”라며 그런 인식(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내용을 부탁하는 동지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교육 내용이 좋긴 한데... 그 계급’ 얘기는 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언제 적 계급 얘기요하하” “10년 넘게 노조 활동하며 여러 교육을 받아 왔지만 계급얘기는 처음 듣네요라는 식의 반응을 더 많이 겪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미실이 말했듯 계급이란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의미한다바야흐로 국민주권시대에 같은 국민 안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니조선시대처럼 강상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노동자는 자본가와 법률적으로 대등한 관계라고 나오는데 계급’ 타령하고 있는 꼴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보일 일이다뭐 지금도 예로 든다는 것이 무려 15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15년 전 드라마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름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장면을 현대물로 재구성 해봤다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실권을 장악한 누군가가 그를 탄핵하고 권력을 잡으려는 또 다른 권력자와 나누는 대화로 가정해 보자.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경상도 사람전라도 사람충청도 사람강원도 사람 등등 또 그 중에서 소위 1(민주당 지지자), 2(국민의 힘 지지자등등 이렇게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지만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딱 두 개로 나뉩니다어차피 우리는 권력을 나눠 갖고 지배하는 자들로서 같은 편입니다.”

... 이 정도면 똑같은 서사구조로 지금 현 시점을 다룬 현대물 장편 시나리오를 쓴다 해도 시청률 꽤나 나올 듯 하지 않으신지?

문화적으로 답해 보는 99%인 우리의 집단으로서의 정체성그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피지배계급으로서의 계급성이다법률과 제도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계급지배 사회이고 노동자는 그 사회의 피지배계급이라는 동일성을 가진 집단이다따라서 다른 문화와 변별 되는 노동자 문화의 성격 역시 그 첫 번째가 계급성이다.

그럼에도 계급을 말하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희한하게도 사회적으로는 대체로 부정되는(당사자들에게서 조차계급 담론이 문화의 영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기생충이라는 한국 영화가 국제적인 상을 휩쓸며 전 세계를 달굴 때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계급 문제에 주목했는데그에 대해 언제 적 계급 얘기냐?’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는 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물론 문화예술 영역과 현실 영역을 별개로 생각하는 형이상학적 인식이 이유이긴 하겠으나그보다 의식적인 긍정부정 여부와 관계없이 계급이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 나온 김에 기생충 얘기를 좀 더 하자면앞서 말한 미실의 대사와 기생충 속 자본가(극 중 박사장)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이다미실이 세상을 횡으로 나누는 선의 위와 아래를 말하듯 기생충 속 자본가 역시 습관적으로 그가 고용한 이들(노동자)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한다이 둘이 말하는 은 본질적으로 같다다만 과거에는 보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차이가 있을 뿐흔히 유리 천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사는 노동자에게 계급의 선은 그저 공간적 분리와 진입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과는 다르다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채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이들이 노동자이다따라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 역시 독점하게 된다트럼프의 저 유명한 유행어 ‘You’re fired(너 해고야)’가 말해주듯 자본가계급은 한손으로는 노동자의 목줄을 쥐고한 손으로는 그러한 힘을 물리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국가를 쥐게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찌 자신의 목구멍을 장악한 이들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심지어 자신의 목구멍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가족들의 목구멍도 모두 포도청이니 말이다.

맑스가 말했듯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고 지금도 그렇다미실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이들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그들의 지배대상이었던 백성들이었고기생충 속 박사장이 선을 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의 표현이다언제나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으로 각성하고 단결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자본가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서 저들은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각성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해서 노동자 문화는 그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가 계급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기제이다마치 보이진 않지만 땅 밑에서 들끓고 있는 용암처럼.


[중국혁명가] 천겅(陳賡), 두 번이나 장제스의 목숨을 구하다

 

이철의

천겅은 인민해방군이 자랑하는 상승장군이다난창기의장정항일전쟁국공내전에 참전하여 활약하였으며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다천겅은 지략과 용맹함이 뛰어나고모략과 지하공작에도 능하여 마오쩌둥이 필요한데 쓸 수 있는 특급 조커와 같은 인물이었다.

천겅은 황푸군관학교 1기생으로 재학 중 황푸 3걸로 꼽혔다천겅을 눈여겨 본 장제스는 그를 경호중대장으로 임명하여 신변에 두었다장제스가 군벌 천중밍과 싸울 때 사면포위를 당한 일이 있었다형세가 절망적이어서 장제스는 권총을 빼어 자살하려고 하였다그때 천겅이 장제스를 부축하고 등에 업으며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벗어났다.

광저우 상단의 반란 때 천겅은 또 한번 장제스를 구출하였다상단 두목이 칼을 빼어 장제스를 치려는 찰나 천겅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제압하였던 것이다장제스는 천겅을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 “공산당에 입당하지 마라 젊었을 때는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데 나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천겅은 출세가 보장되는 장제스를 마다하였다오히려 난창기의를 일으키고 누구보다 투철한 투사가 되어 국민당군을 괴롭혔다.


천겅(1903-1961) 후난성 샹샹현 출생무장집안 출신으로 조부가 후난군 장군이었다무산계급 혁명가군사가중국 인민해방군 대장국가와 중국인민해방군의 우수한 영도자신중국 국방과학기술교육사업의 기초를 닦은 사람(중국 공산당 홈페이지천겅은 1922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소련에 유학하여 군사기술을 배웠다.

1927년 난창기의에 참가하였고 다음해부터 상하이에서 중공 중앙 특과에서 복무하였다특과는 비밀공작을 하는 임무로 정보수집요인 경호체포된 당원의 구출등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1931년에는 홍군 4방면군 사단장으로 있다가 부상을 당해 상하이의 병원에 입원하였다병원에서 국민당에 체포되어 죽을 위험에 처했으나 쑹칭링(쑨원의 부인)등의 구명활동에 힘입어 위기를 넘겼다쑹칭링은 장제스에게 그가 두 번이나 당신을 살렸지 않느냐그러니 죽이지 마라.”고 적극 권하였다장제스는 천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후중난두위밍등 동기들을 보내 설득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상하이를 탈출한 그는 장시성의 중앙소비에트로 갔다장정 때 천겅은 간부연대 연대장을 맡아 당 중앙의 요인들을 경호하였다그 후 그는 남정북전을 하며 일본군국민당군과 싸웠으며 어디에서도 패하지 않는 상승장군이 되었다그는 1950년 쓰촨성 시창(西昌)에서 마지막 남은 후종난군을 격파하여 대륙을 통일하는데 마침표를 찍었다뿐만 아니라 윈난성에 남아 재기를 도모하던 국군 잔병을 완전히 소탕하였고 일부는 베트남으로 탈출하였다.

천겅은 1950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프랑스와 투쟁중인 베트남군을 지지응원하였으며, 1951년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부사령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사령원이던 펑더화이가 신병으로 귀국하자 사령원 직무대리를 맡아 중국군을 지휘하였다. 1952년 7월 해방군 군사과학공정학원 원장에 취임하여 중국군 현대화를 도모했으며해방군 부총참모장국방부 부부장등으로 재직하였다. 1955년 대장계급을 받았으며 1961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연애편지를 벽에 붙인 천겅의 부인

천겅은 성격이 활달하고 직선적인데다 유머가 풍부하였다. 1926공산당 5차 전국 대표대회 때 천겅은 참석한 왕건잉(王根英)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그는 왕의 바로 옆자리에 앉더니 펜을 꺼내어 구애하는 편지를 썼다. “왕건잉 동지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지금 당신에게 정중하게 구혼하니 나에게 시집오기 바랍니다.” 천겅은 옆에 있는 동지를 시켜 왕건잉에게 주었다왕건잉은 느닷없는 구애 방식에 화가 나 편지를 벽에 붙여 놓았다천겅은 다시 편지를 썼는데 왕은 마찬가지로 벽에 붙여 두었다천겅이 세 번째 편지를 썼지만이번에는 읽지도 않고 벽에 붙였다.

휴회 시간에 참석자들은 모두 벽 위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회의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부부가 되었다왕건잉은 1906년 상하이에서 출생하였다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9살의 나이에 방직공장의 아동 노동자가 되었다. 1923년 왕건잉은 중국 공산당 산하 조직이 개설한 노동자야학에 들어 혁명적인 교육을 받았다다음해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한 그는 1925년 반제애국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투쟁 중 공산당에 가입하였다왕건잉은 상하이에서 세차례의 무장기의에 참가했으며 1927년에는 공산당 제 5차 대회에 상하이 대표로 참가하였다.

천겅과 혼인한 그는 중공 중앙 특과에서 천겅을 보좌했다. 1931년 천겅이 당의 명령으로 어이완(鄂豫皖후베이 후난 안후이 경계에 설립한 소비에트소비에트로 떠났을 때 왕은 상하이에 남았다그는 상하이 비밀공작 중 국민당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국공합작이 성립되고 저우언라이 등 중공 중앙이 그를 구출 해냈다옌안으로 간 왕건잉은 당의 명령을 받고 전선으로 갔다팔로군 129사단 정치부 재정간부학교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하던중 일본군의 기습때 전사하였다그때 그는 무사히 일본군의 포위망을 벗어났으나 빼놓고 온 문건을 가지러 갔다가 적과 조우했다고 한다. 1939년 전사했을 때 왕건잉의 나이는 33세였다천겅과의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5년 뒤 천겅은 팔로군 문선대원이던 푸야(傅涯)와 재혼하였다푸야의 기억에 따르면 천겅은 구혼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째나는 당신의 혁명사업에 대한 신념을 존중할 것이며 진보하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둘째나는 당신이 내 주변에서 비서로 일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셋째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천겅대장이라는 연속극에 보면 푸야는 천겅에게 한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발을 닦아야 한다.” 위의 세가지는 기록에 있는 사실이고 아래는 재미로 덧붙였을 것이다신중국 성립 후 푸야는 베이징시에서 일했다그녀는 왕건잉이 낳은 아들을 자신의 아이들과 똑같이 키웠다왕건잉의 일기를 출판하기도 하였으며 홀로 남은 왕의 모친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고 한다.

 


[고발] 윤석열 검찰의 주가조작 범죄자 김건희 불기소


- 투기자본감시센터권오수 김건희 등 부패카르텔 사기 횡령 탈세 고발

 

허영구(투기자본 감시센터)

 

파산지경 도이치모터스에 투자한 김건희와 최은순

10월 15일 투기자본감시센터(투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윤석열김건희최은순권오수 등 17명을 서울중앙지검에 1차로 고발했다도이치모터스는 2006년 당시 마이너스(-) 31억 원의 자본잠식 상태인 회사였다주가 1만 원인 주식 10만 주를 증자해도 역시 10억원의 파산상태였다그런데 주당 5만원짜리 10만주를 발행해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상장에 실패하면 원금 20%의 사채이자로 반환하는 조건으로 상장을 진행했다.

도이치모터스 권오수는 2007년 12월 28김명신(김건희) 2억원최은순 3억원백정기 가족 17.5억원양경수 10억원 등으로부터 총 5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그러나 도이치모터스는 전년도 55억원에 달하는 손실과 145억원의 자사주 매각 손실, 2008년 금융위기로 주가가 1,825원까지 폭락해 보유시가 157억원회사 시가총액도 356억 원으로 급감했다.

 

권오수의 도이치모터스 우회 사기상장 효과 양도차익 463억원

2008년 10월 8권오수는 대주주 보유 주식중 일부를 시가의 7.5배 즉, 650%의 프리미엄을 주고 다르엔코의 경영권을 인수했다그러나 다르엔코는 그 해 3분기 매출이 2.6억원에 불과하여 회사를 유지할 수 없는 회사였다다르엔코 대표 손창현은 주식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대가로 도이치모터스를 우회 상장시켜주었다.

합병주식을 더 받게 합병비율 조작(142:18:1 비율로 감자)을 묵인하여 권오수에게 316억원도이치모타스 전체 주주들에게 463억원의 양도차익을 안겨주었다반면 손창현 등 대주주는 불법행위에 공모한 대가로 127억원의 프리미엄나머지 주식 추가 회수 10억원대주주들이 자본잠식한 컨텐츠랩에 대하여 85억원을 회수하는 등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국세청은 부당이득에 대한 몰수와 양도차익에 대해 추징해야

10월 17일 투감은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피의자 김건희에 대해 무혐의로 불기소를 발표한 날 관련자들을 탈세혐의로 국세청에 고발했다도이치모터스가 2009년 자기주식 매각선실로 발생한 이월결손금 159억원 중 132억원은 다르엔코 관련 손실이다도이치모터스는 이월결손금으로 2010년부터 3년간 총 31억원을 탈세했다이에 가산세 40%인 12억원지연가산세 39억원과 5배 벌금 155억원 등 238억원을 추징해야 한다.

권오수 가족의 매입원가는 주당 564원인데 합병 주가가 7,650원이므로 차익은 7,086원으로 총양도차익은 316억원이다여기에 주민세 22%인 70억원가족인 권혁민 10억워부인 4억원 등 84억원을 납부해야 한다도이치모터스 권오수는 최대주주로서 범죄총액은 598억원이고그 일가의 차익은 313억 원이다검찰은 김건희가 13.9억원의 차익을 얻었다고 했지만 기존주식에 주가조작이익신주인수권 차익 등을 포함해 32억원최은순은 16억원의 주가조작 차익을 얻었다따라서 국세청은 주가조작 차익을 부당수익으로 몰수하거나 양도세를 추징해야 한다.

 

김건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윤석열 검사가 배경

검찰은 김건희를 불기소처분하면서 김건희 명의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시세조종 주문이 확인됐지만 권오수를 믿고 수익을 기대하며 권씨의 소개에 따라 제3자에게 계좌 관리를 맡기거나 요청에 따라 관련 거래에 임했을 뿐’, ‘주범들과 공모하거나 범행을 인식하면서 계좌 관리를 위탁하거나 주식 거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권력의 하수인이자 썩어빠진 검찰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하고 있다투감은 고발장에서 권오수김건희최은순이 돈이 어두워 무리하게 비용을 사용하고합병비율을 조작하여 도이치모터스 상장부터 주가조작을 시작하였는데그 범죄 수사검사가 김건희의 남편최은순의 장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투감은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부패재벌과 범죄조직 김앤장은 물론 국무총리대법관장관검찰총장국세청장 등 상층부 모두가 하나의 부패 범죄 카르텔이고 그 핵심이 대통령이라며 즉각 탄핵하고 바러 수사에 착수해 재산을 몰수하고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 99%인 ‘우리’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 (20 호에서 이어짐 ) 99% 인  ‘ 우리 ’ 라는 집단의 실체와 정체에 대해 문화적으로 답해보자고 했다 .  해서 좀 철지나긴 했지만 옛 드라마 얘기 좀 해보련다 . 2009 년도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